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285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285화
285. 류민의 제안
[제안? 감히?]인간의 제안에 화를 낸 사람은 플루닉토스가 아니었다.
투명화를 쓴 채로 그 옆을 지키던 바알이었다.
난데없이 악마가 나타났지만 류민은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기척 감지로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으니까.
[인간 주제에 감히 대공 각하께 제안한다고? 주제도 모르는 인간이구나!] [바알.]플루닉토스가 차분하면서도 위엄 있는 표정으로 충신을 꾸짖었다.
[흥분을 가라앉혀라. 그리고 누가 마음대로 투명화를 풀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 버러지 같은 인간이 가당치도 않은 말을…….] [그렇다고 끼어들라는 명령은 하지 않았다. 말대꾸하라는 명령 또한.]뒤늦게 잘못을 인지한 바알이 머리를 조아렸다.
[송구합니다. 벌은 달게 받겠…….] [그만 됐다. 이깟 일로 벌이라니. 당치도 않지. 따지고 보면 네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그렇게 말한 플루닉토스가 발 앞의 작은 인간을 내려다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 어이없고 하찮은 눈빛으로.
“그런지 아닌지는 들어보면 알 거 아니야?”
[좋다. 어디 말해 보거라. 무슨 제안을 하고 싶은 거지?]“너 대신 천사들을 죽여줄게. 특히 미카엘, 녀석의 숨통은 확실하게 끊어주지. 어차피 규칙상 네가 직접 나서진 못하잖아?”
[흥.]플루닉토스가 콧방귀를 끼었다.
[천사들을 죽여주겠다고? 고작 그것뿐인가?]“나쁠 건 없을 텐데? 미카엘을 비롯한 천사들을 죽이면 좀 더 확실하게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거 아니야?”
[미카엘을 죽이지 않아도 전쟁은 이길 수 있다.]“확실해? 미카엘은 시간을 끌면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던데? 그래서 아카식 레코드의 권한을 넘기면서까지 전쟁을 늦추려고 한 거고.”
[그래봤자 패배가 늦춰지는 것뿐이다. 숫자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현재 우리 마족이 훨씬 우위에 있으니까.]“하지만 약속대로 나를 넘겼으니 전쟁은 늦춰질 거 아니야? 악마 대공인 네가 직접 현신하는 일도 물 건너갔을 테고. 그럼 천족에게도 반등의 여지가 있지 않겠어?”
[그럴 여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아무리 그래도 전쟁에서 이길 확률이 100%는 아닐 거 아니야? 승리가 확실시한 경기였다면 신들이 승패를 두고 내기를 걸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전쟁이라는 큰 싸움에선 언제나 변수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지. 그런 마당에 승률을 조금이라도 올릴 방법이 있다면 시도해 보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나라면 그럴 거 같은데.”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말이군.]류민이 끄덕이자 플루닉토스는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조금 전에 코웃음을 치던 것과는 상반된 태도였다.
“칭찬이라면 감사하게 받아들이지.”
[네 말대로 미카엘과 일부 천사들이 사라져준다면 전쟁의 승기는 확실히 우리 쪽으로 넘어오겠지. 생각할수록 좋은 제안이다.]“그렇다니까?”
[하지만 미카엘을 죽일 수 있겠느냐?]“내 실력을 의심하는 거야? 6인의 대천사를 처치한 나를?”
[그걸 떠나서 미카엘을 끌어낼 수 있겠냐는 말이다. 마왕성에서 널 풀어주면 바보가 아닌 이상 꿍꿍이가 있다고 여길 텐데?]“끌어내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어? 지금 바로 전장에 합류해서 죽여버리면 그만인 것을.”
[지금 죽이겠다고? 19라운드 이후가 아니라?]아무래도 녀석은 당장 죽이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긴 모양.
류민이 끄덕이자 플루닉토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시스템의 룰을 모르는 건가? 아님 바보인 건가? 너는 지금 천사 측에 고용된 용병이다. 파티로 인식되어 서로 죽일 수 없단 말이지. 그러니 나한테 부탁할 생각일랑 하지 말아라. 아무리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나라도 개발자가 아닌 이상 룰을 바꿔줄 수는…….]“자칭 신이라더니 나보다 더 모르는구만?”
[무엄하다, 인간! 여기가 어디라고……!]바알이 발끈했지만 플루닉토스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무슨 소리냐, 검은 낫. 내가 뭘 모른다는 거지?]“룰을 바꿀 필요는 없어. 편을 바꿔주는 아이템이 있으니까.”
[편을 바꿔주는 아이템?]“진영 변경권이라고 들어봤어?”
플루닉토스가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못 들어봤다는 반응.
“랭킹 1위를 하면 특별 보상 하나를 선택할 수 있지. 나는 진영 변경권이라는 임시 스킬을 골랐고.”
[특별 보상에 대해선 알고 있다. 하지만 진영 변경권이라는 보상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는데?]못 믿겠다는 말투.
류민이 피식 웃으며 스킬창을 열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해야 믿으려나? [스킬 정보 공유].”
공유할 스킬을 고른 뒤 명령어를 외우자 정보창이 떠올랐다.
[임시 스킬 – 진영 변경권]-효과 : 자신의 진영을 천족에서 마족으로 변경할 수 있다.
변경 시 마족은 아군, 천족은 적으로 인식되며, 마족과 천족 역시 시전자를 뒤바꿔서 인식한다.
퀘스트 조건 또한 마족의 승리로 변경된다.
재사용 시 다시 천족 진영으로 돌아갈 수 있다.
18라운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임시 스킬이다.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던 정보창이 보란 듯이 악마들에게 공유되고 있었다.
[이런 임시 스킬이 있었다니…….]“이거면 미카엘을 비롯한 천족들을 죽이는데 문제없겠지?”
[그렇겠군. 이것만 있으면 천족들을 팀킬 할 수 있겠어.]“그럼 내 제안을 받아들일 건가?”
[아직 네가 원하는 대가를 듣지 못했다. 아무런 이득도 없이 이런 제안을 하는 건 아니지 않나?]“물론이지.”
미소 짓던 류민은 곧장 원하는 바를 말했다.
“미카엘을 죽여주는 대신 날 풀어줘라. 그게 내가 요구하는 대가다.”
[재료로 삼지 말아 달라는 얘기군.]“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거든.”
목숨은 한낱 미물에게도 소중한 법.
플루닉토스는 그 정도야 어렵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전쟁의 승률을 높일 수 있다면야 네 영혼 정도는 포기하도록 하지.]“그리고 또 있어.”
[또?]“나한테 천사들을 처치했을 때의 보상을 줬으면 하는데. 악마의 축복을 강화해 준다거나, 죽였을 때 추가 보상이 들어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야. 자칭 신이라면 그 정도는 줄 수 있겠지?”
악마 대공과 대화해 보고 싶어서 온 것도 있지만, 류민이 진짜 바라는 보상은 이것이었다.
악마에게서 추가 보상을 얻기 위해서.
도중에 미카엘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순순히 마왕성까지 들어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악마 대공과 협상하면 필시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목숨을 살려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지 못할망정 추가 보상이라니. 허허, 이렇게 간 큰 인간은 내 생전 처음 보는구나.]“설마 보상을 줄 능력이 안 돼서 말 돌리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 마왕성에서 내 능력은 신에 필적한다. 시스템을 건들진 못하지만, 플레이어에게 추가 보상 정도야 줄 능력은 되지. 하지만.]짐짓 위엄 어린 표정을 지은 플루닉토스가 류민을 내려다봤다.
[네까짓 작은 인간에게 내려줄 보상 따위는 없다. 순순히 살려서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거라.]“이거 아쉬운데. 이러면 천사를 죽일 맛이 안 나서 약속을 못 지킬 수도 있겠는걸?”
“그냥 의욕이 안 난다, 이 말이지. 툭하면 보신탕으로 만들겠다고 위협하던 주인이 사냥개한테 사냥감을 잡아 오라고 풀어주면 순순히 잡아 오겠어? 기회라며 이참에 도망이나 가겠지. 사냥감을 잡더라도 뭔가 보상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보상이.”
[으음…….]류민의 요구가 타당하다고 생각됐는지 플루닉토스가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
[확실히 보상이 있어야 널 움직이게 할 수 있겠지. 나도 마음 놓고 보낼 수 있을 테고.]그러다가 이내 결정했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알겠다. 너에게 추가 보상을 주도록 하지. 단, 조건이 있다.]“조건?”
[이번 라운드 내로 반드시 미카엘을 죽여야 한다.]“그건 걱정 마셔. 말 안 해도 녀석부터 죽일 거니까.”
[그리고 내 부하, 바알을 데리고 가도록.]그 말에 놀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알이었다.
[대공 각하? 어째서 저를 저딴 인간에게……?] [검은 낫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는지 감시 차원에서 동행하거라. 말마따나 약속을 어기고 도망갈지도 모르지 않느냐?]“안 도망간다니까 그러네. 쯧.”
혀를 차는 류민이었지만 그 모습마저도 싫다는 듯 인상을 쓰며 바라보는 바알이었다.
[각하. 저에겐 대공 각하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부디 다른 악마를 보내시는 것이…….] [다른 녀석은 믿을 수 없다. 너니까 이런 임무를 내리는 거다. 서열 1위인 네가 가는 게 더 확실하기도 할 테고.] [아…….]믿는다는 말에 감복했는지 바알이 한동안 입을 벌리다가 부복 자세를 취했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 *
류민은 바알을 따라 마왕성을 나왔다.
그러다가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라운드 진행 장소로 돌아왔습니다.] [자격 박탈이 취소됩니다.]‘1시간 내로 빠져나와서 다행이군.’
조금만 더 마왕성에 머물렀다간 그동안 쌓아온 노력이 물거품이 될 뻔했다.
‘이런 곳에서 생을 마감할 순 없지.’
다행히 플루닉토스와 협상이 잘 끝났다.
그 증거로 류민에겐 한 가지 버프가 걸려 있었다.
[버프 ‘악마 대공의 대리인’이 걸려 있습니다.] [버프 효과로, 천족 살해 시 상대에 따라서 일정량의 스탯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18라운드 한정 버프 효과입니다.]‘얼마나 스탯이 오를진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지.’
여기에 악마의 축복까지 쓰면 전보다 많은 스탯 포인트를 얻을 수 있을 거다.
‘일단은 진영부터 바꿔볼까?’
류민이 임시 스킬을 사용했다.
[임시 스킬 진영 변경권을 사용하셨습니다.] [플레이어 ‘검은 낫’의 진영이 ‘천족’에서 ‘마족’으로 변경됩니다.] [이제부터 천족은 당신을 적으로 인식할 것입니다.] [진영 변경에 따라 퀘스트 승리 조건이 변경됩니다.]메시지를 보고 퀘스트창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천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퀘스트 조건이 천족을 상대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제 천사 앞에서 악마의 축복을 쓴 뒤 스탯 포인트를 갈취하는 일만 남았다.
‘준비는 다 끝났어. 완벽해.’
옆에 있는 바알이라는 감시자만 없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할 테지만.
[지금 당장 전장으로 가 대공 각하와 약속한 대로 천족을 말살하라. 특히 미카엘을 우선으로 죽여야 할 것이다. 네놈 따위가 죽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의심스러우면 지금 확인해 볼래?”
류민이 도발했지만 바알은 72명의 악마 귀족 중 서열 1위.
보기엔 멍청해 보여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럼 뒷짐 지고 구경이나 하고 있겠단 소리야?”
[그럴 수밖에 없다. 20라운드 이후면 몰라도 규칙상 지금의 난 전쟁에 관여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내가 참여하면 너희 플레이어들은 모조리 끝장날 테니까.]“아아, 그러셔요?”
[그러니 긴말하지 말고 약속한 대로 이행이나 해라. 만약 네놈이 약속을 어기고 도망갈 경우에는…….]바알의 눈이 시뻘건 살의로 물들었다.
[결코 살아남지 못할 줄 알아라.]“아, 글쎄 도망 안 간다니까?”
[일 처리나 똑바로 하거라. 투명화 상태로 지켜보겠다, 인간.]그 말을 끝으로 스르륵 사라지자 류민이 투덜거렸다.
“거 잔소리 한번 엄청 해대네.”
그리 말한 류민이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보이진 않지만, 자신을 따라오는 바알의 기척이 느껴졌다.
피식-
류민의 입에서 별안간 조소가 흘러나왔다.
‘악마 대공이 무슨 생각으로 바알을 붙였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군.’
다름 아니라 바알의 생각을 읽고서 악마 대공의 꿍꿍이를 알아낼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