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 Director Returns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모든 기억은 흐려진다.
인간이 그리 설계되었고, 또한 그리해야만 살 수 있는 동물이기에.
한데도, 좀처럼 잊히지 않는 기억이란 것이 있었다.
화인이라고도, 상흔이라고도 표현하는 그런 아팠던 기억 말이다.
내겐 전생의 NQ가 그랬다.
그때의 나는 매 순간이 아팠고 매 순간이 절망스러웠다.
도저히 나를 지킬 수 없는 환경이었고 버티고 싶지도 않은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버틴 이유는 하나였다.
그토록 바랐던 꿈이, 그곳에 있었으니까.
―상부에서 AAA급 프로젝트 하나 기획 중이다. 연호야, 나만 잘 따라와라. 내가 그 프로젝트에 너 꽂아줄게.
―AAA급이요? 저희 회사 방침 모바일 아니었습니까?
―주가 방어용···이 일차 목적이긴 하지. 그런데 이번엔 마냥 찌라시처럼 던지고 마는 프로젝트가 아니야. 슬슬 모바일도 끝물 아니냐. 시장이 다른 걸 원하기 시작했어. 알지?
―···과금 반감이 역치를 뚫었죠.
―그래, 다음 트렌드는 과금 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다운 게임’이야. 네오 소프트는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어. 너 똑똑하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도 알겠고.
―이 프로젝트, 무조건 실행될 거란 말이죠?
―그래, 상부에서 널 낙점했어. 성적이랑 별개로 너만큼 디테일에 미쳐있는 변태 새끼가 없으니까.
막 이직을 결심하던 30대 초반의 일이었다.
정 이사는 아직 구체화 되지 않은 AAA급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날 꽂아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며, 그 대가로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본격적인 손을 뻗어왔었다.
여느 회사가 그렇듯 게임 회사에도 사내 정치라는 게 있다.
좋게 말하면 충성, 다르게 말하면 라인을 탄 것이다.
나는 정 이사의 라인이었고, 그의 충실한 사냥개였다.
그러니까, 쓰고 버리는 패였다는 말이다.
―이사님, 프로젝트는···.
―아직 시기상조야. 이 프로젝트는 히든카드잖냐. 주가가 더 방어되지 않을 지점에서 여론 반전용 카드로 써야지.
―그건···.
―연호야, 뭐가 걱정이냐? 내가 너 꽂아준다는데.
그 말을 믿었다.
내 꿈을 이뤄줄 수 있는 사람이 정 이사라는 걸 믿었고, 지금 당장이야 어떻게 되든 간에 AAA급만 만들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줄 알았다.
내가 멍청했지.
―형!
김선우.
개발 4팀 팀장 김선우.
NQ의 보물, 황금알 낳는 거위, 회사의 미래.
그리고, 회사에서 유일하게 내 친구였던 놈.
나와 다르게 참 사회적인 놈이었다.
서글서글한 인상답게 누구와도 잘 지냈고, 어떤 의견에도 개방적이어서 주변 입김을 통제할 줄 알던 놈이었다.
확실히 능력은 타고난, 그래서 나와는 접점이 없을지도 모르는, 그런 놈이었다.
그럼에도 친해졌다.
―AAA급 프로젝트 발표 봤어? 실적으로 팀장 뽑는다더라! 나 가능성 있겠지?!
놈이 나와 같은 꿈을 꿨으니까.
패키지 불모지였던 한국에 걸출한 명작 하나를 만드는 게 꿈이라던, 그런 놈이었으니까.
대화가 꽤 잘 통한다고 생각했다.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우리만이 서로를 긍정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친하게 지냈고, AAA급 프로젝트의 후보로 놈이 꼽힌 날도 축하를 해줬다.
―축하한다. 내 몫까지 열심히 해줘라.
―형이 도와야지, 어?! 스페셜 땡큐에 천연호 이름 석 자 박아야 할 것 아니야!
―실없는 새끼.
시름을 딛고 일어나고자 했다.
내 손으로 꿈을 이루지 못해도 옆의 친구 놈이 이룬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그렇게 자위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 말만 안 들었다면 영영 그랬겠지.
다시 생각해도 의문이다.
―그 형은 글렀지. 고집이 너무 세잖아. 뭐라더라, 예술병? 명작병?
왜 그랬을까.
―하여튼 귀찮게 됐다. 또 새 프로젝트 들어가야 해.
―아, 천 팀장님이 맡기로 했던 거요?
―어쩌겠냐, 나보고 해달라는데. 그 형이 이번에도 대차게 말아먹었잖냐.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사회적 위신이 문제였나?
나와는 다름을 회사에 알리고자 한 건가?
그렇게 본인을 띄우고, 나를 희생양으로 삼고 싶었나?
어째서?
의문이 치솟았고, 결국 나는 답을 찾지 못해 회사를 떠났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랬다.
―김선우 그 인간 마음에 안 들어요. 관상이 딱 간신 상이잖아!
조아윤이 옳았다.
김선우는 정치로 시류를 제 손안에 가둘 능력이 있는, 타고난 정치가였으니까.
이후의 일은 뭐 없다.
나는 아이덴티티를 만들었고, 고티를 탔고, 과로사로 죽었다.
과정에 조아윤을 통해 NQ의 여러 이야기를 들었었다.
―AAA급 프로젝트요? 망했죠. 애초에 핵과금 BM만 뽑아내는 회사였잖아요. 이제 정상적인 구조로 만들려고 해도 개발 인력들 경험이 0인데 어떻게 좋은 걸 만들어요?
김선우의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슬슬 각 보다가 퇴사해야죠. 이거 가라앉는 배야. 아참, 저 네오 소프트 쪽에 스카웃 제의 왔어요.
언제나 NQ의 경쟁사였던 네오 소프트는 패키지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해 다음을 노렸고, 조아윤이 그 인선으로 점찍혔다.
―정 이사 나가리에요.
나를 미워했고, 내가 미워했던 모든 사람이 묘한 결말을 맞았다.
아이러니였다.
결국 우리의 입장은 180도 바뀌었었으니까.
부끄럽게도 그 과정에서 유치한 희열 따위를 느꼈었다.
내가 옳았다고, 역시 너희가 틀렸다고.
홀로 그런 생각에 빠져 아이덴티티에 더 집착했다.
성공해서 그 인간들 앞에 나타나고 싶었다.
내가 진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고 말하고 싶었다.
질척한 감정이 그리도 깊었건만.
한데, 참 이상하게.
“이런 곳에서 다 뵙네! 하기야 판교 땅이 좀 좁습니까! 반가워요! 나 NQ의 정찬호 부장이라는 사람입니다!”
막상 이 인간들을 다시 보니 가슴이 조금도 술렁이지 않았다.
정 이사의 명함을 받곤 내 명함을 건넸다.
갑작스레 합석한 이 무례한 인간이 무어라 말을 내뱉고 있음에도, 그 곁으로 나를 동경 어린 눈으로 보는 김선우가 있음에도, 언제나 나를 /내려보며/ 비웃던 인간들이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음에도.
“한국에서 이런 걸출한 인재가 나올 줄은 제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것도 30도 안 된 젊은이가요!”
아무런 감상이 들지 않았다.
깨닫고 마는 것이다.
나는 정말, 이제 이 인간들과는 상관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NQ의 천연호는 더 이상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잊히지 않을 줄 알았다.
그 상처가 평생 내 속에 잔류해 시시각각 내 목을 조여올 줄 알았다.
한데 그게 아니란다.
묘한 해방감이 몸을 적셨고, 이윽고 이슬이 햇볕에 스러지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인생의 굴곡과 기억이라는 것은, 어떻게든 사람이 버틸 수 있는 형태로 변하고 마는 것이구나.
가슴이 편안해지니 옅게 미소가 삐져나왔다.
한서림이 그런 나를 놀란 눈으로 보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려니 하며 정 이사의 말을 계속 흘려넘겼다.
내게 남은 불쾌함은 술에 취한 채로 주정을 부리는 그의 행태에 관한 것 하나였으니까.
그런 때, 그가 무시할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대외적인 시선은 좀 신경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그래도 어른으로서 대표님 걱정돼서 그래.”
실례되는 말임은 취한 정 이사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아는 듯했다.
뒤쪽, 김선우부터 NQ의 직원들 모두 안색이 새하얘졌으니까.
“응? 그 막 어디 나갈 때마다 광대처럼 하면 디렉터들 이미지가 떨어지지 않겠어? 우리도 나름 품위를 지켜야지.”
‘우리’라는 단어로 묶는 게 참 묘했다.
이 인간은 언제나 ‘네가’라는 단어로 나를 떼어뒀으니까.
“사람이 너무 싸 보이면 안 돼. 대표님은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충고 감사합니다.”
말을 끊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적어도, 하나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있어서.
마치 전생의 그때로 돌아간 듯 나는 미처 못했던 말을, 내 감정의 찌꺼기를 긁어내 털어냈다.
“왜 광대면 안 됩니까. 우리는 즐거움을 주기 위해 있는 사람들인데.”
“···뭐?”
“게임 개발자잖습니까. 게임 만드는 사람. 놀이를 만들어서 즐거움을 주는 사람. 엔터테이너.”
이 인간은 여전했다.
게임이 아닌, 자리를 봤다.
“게임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우리가 유저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란 건 변하지 않잖습니까. 그게 우리가 만든 세상을 즐겨주는 사람들을 위한 리스펙이잖습니까.”
단적으로 말해, 여장?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사장이다.
내가 정말 권위를 내세워 그걸 쳐냈다면 양길상도 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리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품위가 아니죠.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렇게라도 즐거웠으면 된 거니까.
게임을 사랑해준 사람들에게 그렇게라도 미소를 주는 것 또한 일이니까.
감사함을 표할 방법 중 그것이 있다면, 행하는 것이 옳으니까.
디렉터는 즐거움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잔을 놓았다.
뒤늦게 직원들이 정 이사를 말렸다.
“죄송합니다! 저희 부장님이 너무 취하셔서.”
“괜찮습니다. 나름 유쾌했네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는 꽤 마셔서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서림아, 가자.”
“아, 네.”
밖으로 나오니 폐부에 맑은 공기가 파고들었다.
밤공기는 꽤 시원했다.
* * *
서림은 함께 걸으며 연호의 안색을 살폈다.
꽤 취한 건지 가로등 아래 비친 귓불이 붉었다.
그럼에도 걸음은 반듯하니 과연 성정대로.
평소와 다르지 않음에도 오늘따라 달라 보이는 것은 직전의 일 때문일 터다.
“뭘 그렇게 봐.”
“그냥 신기해서요.”
“뭐가.”
“선배가 남한테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하는 거 처음 봤어요. 모르는 사람 보고 웃는 것도 처음 봤고.”
“그렇게 신기한 일인가?”
“조금?”
많이.
직전의 연호는 서림이 아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언제나 철면피 같던 모습과 다르다.
자칫 약점을 보일 정도로 어리숙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참으로 반듯하게 서있는데도, 저러다 픽 쓰러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 정도였다.
묘한 감상이 일어 서림의 가슴을 적셨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나도 취한 건가.’
서림은 괜히 닭살이 돋는 기분에 감정을 털어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런데 선배가 여장에 그렇게 진심일 줄은 몰랐네요.”
“뭔 개소리야?”
“앞으로도 여장하겠다는 말 아니었어요? 그 부장인지 뭔지 하는 사람한테 한 말.”
우뚝, 연호가 멎었다.
그가 서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안 해. 이만하면 많이 참아줬어.”
“그럼 그 말은?”
“뭐, 유저들이 좋아하면 여장할 수도 있지. 근데 그게 난 아닐 거야.”
순간이었다.
가로등 아래 비친 연호의 얼굴 그림자가, 삐뚜름한 모양새로 변한 것은.
“길상 씨 요즘 한가해 보이더라.”
“···.”
“서림아.”
“···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 법이야.”
삐뚜름한 그림자는 미소를 그린다.
그럼에도 눈만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금, 몸에 소름이 돋았다.
서림은 무심코 생각하고 말았다.
‘이 인간···.’
생각보다 뒤끝 있구나.
···라고 말이다.
* * *
그날의 만남 이후 날이 꽤 지났다.
리와인드는 언제나 그렇듯 자잘한 해프닝, 혹은 사고와 함께 순조로이 개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양길상과 점심을 먹는 중이었고, 때를 기다리며 그의 이마 전선을 확인하는 때.
“아참, 연호 씨. 이거 보셨습니까?”
“네?”
“인터넷 기사요. 에이, 연호 씨 세상 돌아가는 거 잘 모르시는구먼.”
킥킥 웃으며 양길상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뭔가 싶어서 보니 인터넷 뉴스 기사.
그리고, 제목을 본 순간 몸이 굳었다.
[네오 소프트 박영준 대표, AAA급 패키지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다!]내가 아는 것보다 조금 더 젊은 대표가 웃는 얼굴로 기사에 실려 있었다.
내용을 훑는 눈은 빠르게 굴러갔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네오 소프트가 패키지에 도전하는 미래는 적어도 5년 뒤에나 있을 일이었으니까.
한데 어째서 이 일이 벌써 벌어진 걸까.
답은 지문 속에 있었다.
“이 부분 보이십니까? 사장님도 이제 꽤 거물이네요.”
양길상이 가리키는 곳엔 인터뷰 중 네오의 대표가 답한 문장이 실려 있었다.
[리와인드의 성공에서 가능성을 봤다. 천연호 디렉터에게 감사를 표한다.]말할 필요가 더 있을까.
‘미래가 바뀌었어.’
나비효과였다.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사에 나온 대표 말입니다. 사장님하고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뜻밖의 제안이 건네져 왔다.
나비효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