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 Director Returns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리메이크 (2)
이젠 개발 3팀이 되어버린 리와인드 모드 제작팀 수장 유리 잭슨.
그는 손발이 벌벌 떨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혼란 속에서 팀에 복귀했다.
안타깝게도 팀은 축제 분위기였다.
“유리 씨! 믿고 있었다고! 우리도 이제 정규 개발팀이야!”
팀원들의 표정에선 활기가 가득 느껴졌다.
하지만 유리는 웃을 수 없었다.
“하, 하하….”
이런 반응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리 잭슨이라는 사람이 누군지에 관한 이해가 필요할 터.
쉽게 말하자면 그렇다.
그의 인생을 라이트 노벨식으로 표현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날 세계관 안다?!] 정도가 되겠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시작부터 끝까지 그렇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의 소프트웨어 공학과에 입학해 친구를 만들러 간 동아리가 하필 ‘헬릭 모드 제작팀’이었다.
때는 한창 아이덴티티의 모드 대회가 열리던 시기였고, 유리는 청춘의 추억을 만드는 감상으로 개발에 참여했다.
한데 그게 너무 잘 된 게 아닌가.
유리가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넘어가자고 했던 말들이 게임의 핵심 시스템이 되어버린 것이다.
―헬릭 모드니까 E―40이 쓰는 얼굴을 지옥에 맞게 수정하는 게 어떨까?
디자인 컨셉부터,
―헬릭1은 똥꼬를 타고 다니잖아. E―40이 벽을 때리면 치질 게이지가 차게 하는 건….
시스템적 기믹이나,
―E―40이랑 미소를 합치자. 헬릭3처럼,
본작의 고증을 살린 기괴한 컨셉까지.
동료들의 반응은 그랬다.
―녀석….
―…대체할 수 없는 감성인걸?
―이 녀석과 함께라면 혹시…?
헬릭 모드를 개발하던 팀원들은 꿈이 큰 사람들이었다.
유리처럼 가벼운 마음이 아닌, 모두가 리와인드 입사를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었기에 모드 제작에 또한 진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기꺼이 수장 자리를 유리에게 내주었다.
그렇게 만든 헬릭 모드가 정규 대회에서 1위를 수상.
그들은 위풍당당하게 리와인드에 입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리는 기쁘지 않았다.
‘리와인드라면 업무 강도가 엄청 쎈 곳이잖아.’
프로그래머의 지옥이라 불리는 리와인드에 스스로 발을 들이다니, 그 사실에 벌벌 떨 수밖에.
하나 다행인 점은 그랬다.
‘어라, 우리 조금 외딴섬이네.’
개발 3팀이라는 정규 팀으로도 채용되지 않을 정도로 모드 팀에 대한 업무 지시 사항이 적었다.
이대로 월급이나 받아먹으면서 살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항상 뜻처럼은 되지 않는 법이다.
―어이, 치프! 정규까지 힘내보자고!
여전히 정규 개발팀이 되고 싶은 팀원들이 너무 열정적으로 일한다.
리와인드 전체 회의에서 숨을 죽이던 유리가 연호의 사냥감이 된 이유였다.
여하튼, 그렇게 오늘.
“고유리 예쁘다!”
“고유리 멋있다!”
“고유리 꼴… 읍! 으읍…!”
팀원들의 박수와 환호 속에서 유리는 등에 식은땀이 나는 기분을 느끼며 자리로 돌아갔다.
머리를 쥐어 싸매며 고민하는 내용은 그랬다.
‘내가? 헬릭2를 리메이크하라고? 내가? 내가?’
유리도 나름 개발 짬이 좀 차다 보니 리메이크 자체엔 별생각이 없었다.
문제는 하필 개발해야 하는 것이 리와인드의 작품 중에서도 명작으로 분류되는 헬릭2라는 것이다.
걱정이 많은 (고)유리 잭슨은 생각했다.
‘이거,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좆된다.’
리메이크는 양날의 검이었다.
아직 그 광풍이 불지 않은 시점임에도 개발자라면 알 정도로 장단이 확실히 뚜렷했다.
가장 먼저 그래픽 문제.
확실히 유저 입장에선 자신이 사랑했던 게임을 더욱 높은 해상도로 볼 수 있으니 이득이다.
하나, 그것조차 해상도를 어떻게 높이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린다.
아무렴, 유저가 저해상도에서 상상력으로 채운 부분을 구체화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한다’라는 말과 같지 않겠는가?
일단 모델링 역량부터가 중요하단 말이다.
둘째,
‘너무 똑같아도 안 되고 너무 멀어져도 안 돼.’
너무 똑같다면 ‘이럴 거면 왜 다시 만들어 파냐’ 소리가 나온다.
너무 다르다면 ‘IP이름 빌려서 추억을 망친다’라는 소리가 나온다.
유저들이 리메이크에 원하는 것은 원작의 충실한 고증과 그것을 시대에 맞는 세련된 형태로 재가공하는 것이다.
즉, 원작이 명작으로 분류될수록 그 명작을 다시 쓰는 일의 난이도는 천정부지로 솟을 수밖에 없다.
진퇴양난의 위기.
유리는 게 거품을 물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럴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 그의 유일한 절망이었다.
“어이, 유리! 오늘은 회식이나 하자고!”
주변에선 ‘이 녀석이 또 무슨 사고를 칠까?’ 따위의 기대감 넘치는 눈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유리는 이제와 저 기대감을 무를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아아, 우리가 ‘정규’가 된 날이니까.”
언제나처럼, 평정을 가장하며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으로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그런 그가 드디어 해내는 것이 있었다.
‘천연호 씨발새끼….’
리와인드의 외딴섬으로 불리는 개발 3팀, 연호와 부딪칠 일이 없어 그에 대한 반감이 없던 유리 잭슨이 오늘 ‘천씨새’의 동정 딱지를 뗐다.
* * *
그렇게 개발 3팀에 연호의 적이 하나 더 생긴 어느 날이었다.
이 말이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달래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만인의 씨발새끼좆같은새끼개새끼맞짱깔새끼인 천연호에게도 약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가령 하나의 예를 들자면 지금.
“하나만 더요.”
“끄으읍…!”
“옳지. 하나 더.”“끄르륵…!”
바로 운동 되시겠다.
아이덴티티의 성공 이후 사내에 신설된 편의 시설 중 하나인 피트니스 센터, 그곳에서 연호는 서림의 지시를 따라 바벨 스쿼트를 하고 있었다.
왜 사내에 피트니스 센터가 있는지는 중요치 않은 일이다.
아무렴, 이미 식당이나 숙직실에 스파링 장까지 있는 마당에 새삼 이야기해봤자 더 입만 아플 내용이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연호가 아직 운동이란 걸 하고는 있단 것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노력을 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으며 업보를 달게 치르는 중이란 말이다.
하나, 연호는 니시무라와 콥슨이 아니었다.
고강도 트레이닝을 통한 실전 압축 근육의 형성, 파괴력과 내구력의 상승 따위가 아닌 ‘살아서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몸만들기’가 목적인 만큼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3대 300은 요원한 일.
연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뿐이었고, 그것을 지켜보는 서림은 눈을 둘 곳을 모르고 있었다.
“이제 그만….”
“하나만 더.”
해석해, ‘잠시만 더 볼게요’라는 말이었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다.
정확히 날짜를 짚길 연호가 집까지 찾아와 가족 문제를 해결해줬던 시기, 그리하여 자신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착각하고 그 착각이 깨졌던 시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때 한 번 의식하고 나니 이젠 연호를 전처럼 보기 힘든 게 아닌가.
월급 주는 기계로만 보이던 인간이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무릇 오랜 관계의 갑작스러운 변화 앞에서 사람이 느끼는 첫 번째 감정은 ‘부정’이다.
세상천지에 스스로에게 솔직하여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어른스럽게 수용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고, 서림이 그런 부류인 것도 아니었다.
‘내가 이 인간을 좋아해? 내가?’
라는 생각이 한창.
부정의 시기 속에서 나날이 커지는 미혹을 견디던 서림은 이제 ‘분노’의 지경에 접어들었다.
‘…아니지? 내가 왜?’
인간 한서림.
가진 건 자존심뿐, 콧대가 높기라면 이루 말할 데 없고 실제로 높은 콧대에 맞는 능력과 집 안까지 겸비한 사람인데다 자존심을 꼬집어 줄 친구도 없다.
그러니 나날이 느는 것은 한숨, 혹은 미혹에 대한 괴로움뿐일지니.
암만 부정하려 해도 안 되고 분노를 토해내도 속은 영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 결국 하는 것이라곤 연호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물론, 정상적인 방법으로 바라보진 않았다.
부끄러우니까!
“서리….”
“하나 더.”
운동을 하며 땀을 뻘뻘 흘리는 동안 연호의 신경은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때가 서림이 연호를 관찰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원체 본판이 좋아 일그러져도 그럴싸하게 생긴 얼굴.
의식하며 보고 있자니 문득문득 멍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쿵!
“어, 어…?!”
연호가 기절했다.
너무 높은 강도의 운동 탓에 인 블랙 아웃이었다.
“선배? 선배?!”
심장이 내려앉은 한서림이 연호의 뺨을 쳤고, 뒤로는 드디어 쓰러진 마왕을 보며 개발 1, 2팀의 직원들이 용사 한서림에게 소리 없는 환호를 보냈다.
* * *
다행히 연호는 너무 늦지 않게 정신을 차렸다.
블랙아웃 자체가 순간적인 현상이라 그렇다.
하나 바로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넋을 놓아버린 트레이너 탓에 연호가 영 상태가 좋지 않았다.
두 사람은 피트니스 센터 구석에 있었고 연호는 서림의 무릎에 머리를 뉘인 채로 혼미한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서림은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무엇보다 부끄러운 것은 얼굴을 보는 데 정신이 팔려있었다는 사실.
서림은 그것을 꾹 참아내며 넌지시 물었다.
“…괜찮아요?”
“죽진 않은 것 같아.”
“…안 되겠으면 말하지.”
“말했는데 하나 더라길래 될 줄 알았어.”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도 제 몸에 관심이 없는 건가.
놀라움을 느꼈으나 타박할 순 없는 입장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문득 든 생각은 역시 이 인간은 누가 옆에서 돌봐주지 않으면 객사라도 할 것 같다는 추측.
실제로 회귀 전 연호의 죽음이 그랬던 사실을 알 턱이 없는 입장일진대도 꽤 신빙성 있는 추측을 해낸 것이다.
물론, 서림의 신경은 이미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평생?’
이거 완전….
그렇게 헛생각이나 떠올리던 중 연호가 슬슬 일어나려는 조짐을 보였다.
서림은 무의식적으로 연호의 이마를 눌렀다.
“더 누워있어 봐요.”
“괜찮은데?”
“그건 내가 결정하는 거지.”
“….”
힘이 빠진 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연호가 미심쩍은 듯한 기색을 보이며 다시 누웠다.
서림은 연호의 시선을 피했다.
침묵이 감돌았고, 결국 어색하니 내뱉는 것은 일 얘기였다.
“…요즘은 한가하네요.”
“그치, 난 기획이고 넌 AD니까.”
“맨날 남 거 감독만 하려니까 나른해져요.”
“네 일도 곧 생겨.”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어색함을 일로 회피하는 경향성에 관해선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중반부 챕터 이후로 사라진 일감이 생긴다는 것에 서림의 귀가 쫑긋했다.
“후반부?”
“응, 후반부.”
헬릭4는 스토리 분기점을 기준으로 초, 중, 후반으로 막을 크게 3개로 나누는 게임이었다.
이제껏 들었던 연호의 말로는 후반부 3막 챕터가 엔딩의 분기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던가.
생각하던 중 서림은 문득 떠오른 것을 연호에게 질문했다.
“근데 선배.”
“응.”
“결국 주인공이 아내를 죽인 건 맞아요?”
연호는 기획을 확정하기 전까지 스토리를 말해주지 않는다.
하여 서림이 아는 것도 직접 원화를 그리고 모델링을 검수했던 중반부 챕터까지 밖에 없었다.
거기까지의 단서는 말하고 있었다.
여자를 죽인 것은 주인공이며, 주인공은 그 일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게다가 형사라는 정체성까지 있으니 무슨 사연이 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상념도 떠오르는 것이다.
질문을 끝내자 연호의 표정이 바뀌었다.
서림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했다.
‘어, 그거다.’
오랜 시간 봐 왔기에 아는 것이 있었다.
연호는 이따금 게임에 관해서 생각할 때면 깊은 물 속에 잠기는 것처럼 침잠한 표정을 만들었다.
그가 아주 멀게 느껴지는 낯선 감각이 일었고, 그 끝에서 연호가 읊조렸다.
“응, 남자가 죽인 게 맞아.”
서림은 반사적으로 물었다.
“왜요?”
그에 돌아온 답은 조금 의미심장했다.
“선택을 해야 했거든. 사랑이랑 책임 중에서.”
여전히 모를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