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세계수의 부활 (2)
게임을 하다 보면 가끔…… 아니, 자주 겪게 되는 상황이 하나 있다.
개발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넣은 것인지 의문이 들 만큼, 악의적이기까지 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업적이나 퀘스트 같은 것들에 좌절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씨발, 이걸 어떻게 깨냐?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최고 난이도를 깨라니, 이게 말이 되냐?
-그거 그냥 장식용 업적임. 깨라고 만든 게 아님.
보통은 몇 번 도전하다가 이내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는 포기하고 마는 유저들. 하지만 이런 이들에게 사람들이 자주 하는 명언이 있었다.
-세상에 깨지 못하는 퀘스트는 없는 거 모름? 넌 그냥 아직 공략법을 모르는 것뿐이야!
아주 일상적으로 게임이 어렵다고 징징대는 사람들에게 면박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이 말은, 의외로 액션이나 RPG 게임이 아닌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이라고 불리는 미연시 게임 하나에서 비롯되었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인생은 이상해(Life is Weird)!’.
이 게임에 등장하는 8명의 여성 캐릭터. 이들은 하나하나 개성 넘치는 매력을 뿜어내며 많은 남성 유저들을 유혹했고, 사람들은 다양한 사건과 방법을 통해서 아리따운 그녀들을 공략해 나갔다. 다양한 방식으로 해피 엔딩을 끌어내는 재미. 이 게임은 한때 많은 이의 인기를 끌었지만, 유일하게 한 캐릭터만큼은 그 누구도 공략에 성공하지 못했다.
[바주카 걸, 메이린.]다른 정상적인 캐릭터와 다르게, 정말 개발자가 약 빨고 만들었다고 해도 모두가 고개를 절로 끄덕일 정도로 정신 나간 캐릭터. 그녀는 별명 그대로 한 손에 거대한 대전차포를 들고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주인공을 사지 절단 내며 폭사시켰다.
[뭐? 나는 우동 싫어한단 말이야!]콰앙.
[흐흥…….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무슨 영화야!]콰앙.
[아, 몰라! 말 걸지 마! 오늘 짜증 나!]콰앙.
.
.
.
단 한 번.
여러 선택지에서 단 한 번만 실수해도 바로 심기가 꼬여 주인공을 순식간에 사지 절단 폭사 엔딩으로 보내 버리는 거침없는 행보. 거기에 그녀에게 죽는 순간, 저장 데이터까지 모조리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해 사지 절단 엔딩을 당한 이들은 이를 갈았다.
-씨발! 저 미친년은 왜 갑자기 난입해서 사지 절단 엔딩 시키는데! 나는 사츠코랑 데이트하고 있었다고!
-아, 그거 일부러 그년 만나는 거 피해 다니면 갑자기 등장해서 강제로 선택지 부여함.
-개발자 새끼들 존나 악랄함 ㅋㅋㅋㅋㅋ. 무조건 목숨 걸고 상대해야 함.
-이 정도면 미연시가 아니라 생존 스릴러물 아니냐?
-바주카를 든 미친년으로부터 살아남기 ㅋㅋㅋㅋㅋㅋㅋ
-웃긴 게, 다른 얘들은 스크립트가 정형화되어 있는데 그 폭파광만 맨날 선택지가 다름.
가만히 두면 알아서 찾아와서 바주카포를 날려 주는, 찾아가는 서비스까지 해 주는 악랄함을 보이는 메이린. 그녀의 그런 깽판에 참다 못한 이들은 집단 지성을 통해서 그녀에 대한 공략법을 모아 가기 시작했다. 취향, 성격, 키, 몸무게와 같은 세부 신상 정보를 시작으로, 그녀가 건네는 대화 스크립트와 선택지에 따른 결과까지…….
하지만, 그런 이들의 노력에도 그녀의 바주카포를 이겨 내고 클리어 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를 개발한 개발자라는 자는 어지간한 미친 새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메이린이요? 어디 공략할 수 있으면 공략해 보시죠. 제가 만들어 낸 회심의 역작이자, 제 이상형이자 꿈의 반려인 그녀를 감히 어줍잖은 각오로 취할 수 있을 것 같나요? 제가 구상해 낸 스크립트에 따라 만들어지는 경우의 수만 해도 12,356가지. 거기서 진정한 해피엔딩은 딱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그 엔딩은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야, 이 새끼들아! 네놈들은 우리 메이린 말고 다른 놈들이나 공략해.]단 한 번만 실수해도 꼼짝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끔찍함.
거기에 해 봤자 수백 개 정도로 끝나는 다른 캐릭터들과 다르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분량의 스크립트를 가지고 있는 그녀. 이 모든 것이 정신 나간 개발자의 사심이 가득 담겨 있는 뒤틀린 욕망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인터뷰를 통해서 공개되었다. 그리고 유저들의 질타 역시 어마어마했다.
-저 미친 새끼가? 이거 실화냐?
-ㅋㅋㅋㅋㅋㅋ. 이게 게임이냐.
-개발자가 작정하고 엿 먹이려고 만들었네.
-진짜 존나 깬다. 이거 수정도 안 하고 그대로 출시한 회사도 미친 거 아니냐?
일부러 그 누구도 클리어 하지 못하도록 이중 삼중으로 배배 꼬아 둔 그녀. 하지만 수많은 이가 그녀의 바주카포에 무참하게 폭사당하며 좌절하는 그 상황에서도 결국에는 개발자만을 위해 만들어진 그 엔딩을 보고 만 이가 있었다.
[사랑해요. 이 세상이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도…….]바주카포를 들고 완전히 폐허가 되어 골조가 드러나 황망한 고층 빌딩의 옥상에서 감격한 듯 눈물을 흘리며 사랑을 고백하는 메이린. 해피엔딩과 함께 주인공과 입을 맞추는 그녀의 이미지 한 장을 보면서 유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 이거 뭐임? 그 미친년을 공략했다고?
-그게 중요함? 도대체 미연시 게임에서 뭔 짓을 했길래 도시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냐?
-ㅋㅋㅋㅋㅋㅋ 세계 종말 엔딩 뭐야ㅋㅋㅋㅋㅋㅋㅋ
-와……. 앞으로 이 게임 만든 회사랑 개발자는 전부 걸러야겠다. 미친놈들인가 진짜.
-님, 이거 어떻게 깼음? 공략법이 뭐임?
숱한 미연시 전문가들이 도전했지만, 결국 그 거대한 벽을 뚫지 못하고 포기하고 만 그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미친년의 마음을 사로잡은 유저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물었지만, 익명의 그는 짤막한 댓글 하나만을 남기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세상에 깨지 못하는 퀘스트는 없어요. 아직 공략법을 모르는 것뿐이지.
“저기요! 덱스 님! 제 말 들리세요?”
귓가에 강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잠깐 옛날 생각에 빠져 있던 재영은 바로 지척에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멜리사를 발견하고는 흠칫했다.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요. 죄송해요. 방금 뭐라고 했었나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되묻는 재영. 그런 그를 보며 멜리사는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이 드래곤 하트…… 도대체 어디서 나신 거죠?”
꽤 동요한 듯한 그녀의 목소리. 그도 그럴 것이, 세계수조차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라고 한 것을 보면, 지금 이 상황이 절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재영 본인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런 그녀의 반응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럴 만도 하지. 정상적인 공략법은 쓰지도 않고 버그성 플레이로 해결해 버렸는데.”
“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재영의 혼잣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눈살을 찌푸리는 멜리사. 그런 그녀에게 재영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이 드래곤 하트를 어디에서 났냐고 물으셨죠?”
드래곤 로드와의 거래를 통해서 얻은 것이 아닌 이상, 드래곤 하트를 얻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 그렇기에 멜리사는 혹시나 하는 얼굴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게 맞는지 직접 확인하려 했다.
“제가 직접 사냥하고 구해 왔죠.”
“이럴 수가……. 그게 가능할 리가…….”
고룡급 드래곤.
일개 인간 따위가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를 사냥했다는 재영의 말에 멜리사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신음했다.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눈빛의 그녀. 하지만 이내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정말이지, 저도 오래 살면서 인간을 많이 알았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덱스 님은 그 상식을 완전히 깨부수는 별종이군요.”
“그런 소리 원래 자주 들어요.”
“도대체 어떻게 하신 거죠? 아무리 천계와 연관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고룡급 드래곤을 죽일 수준의 힘을 발휘하는 것은 제아무리 상위의 존재라 하더라도 불가능할 텐데……?”
세계수에 박혀 있는 데스브링어가 폭주했을 때, 그 마검에 잠식되어 버린 악마를 순식간에 제압하며 보여 주었던 강렬한 신성력을 기억하는 멜리사. 하지만 그 힘이 드래곤을 죽일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 강했지만, 재영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뭐…… 죽창 한 방이면 끝나던데요?”
“네……?”
“그런 게 있어요. 하나하나 설명하려면 너무 이야기가 길어서요. 그보다…… 이제 세계수와의 만남을 제가 왜 요청하는지 아시겠죠?”
세계수와의 만남. 그것을 다시 요청하자 멜리사는 아까와는 다르게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요. 세계수님께서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신 것 같지는 않으시지만…… 만나 보셔야 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군요. 따라오세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멜리사. 그녀의 빠른 걸음을 따라 아무 말 없이 걸어가는 재영의 옆에서는 탄이 재밌다는 듯이 낄낄거리고 있었다.
“키키킥……. 저 엘프 표정 좀 봐. 엄청나게 당황한 것 같은데?”
“그럴 수밖에. 세계수가 틀리는 경우는 흔치 않잖아.”
세계수가 원하던 대로 심장을 가지고 왔는데도 불구하고 경악해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동요하는 멜리사. 하지만 기뻐하기는커녕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 그녀의 반응에는 재영도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탄과 엘에게 물었다.
“왜? 그게 무슨 말이야?”
“엘프들의 여왕은 세계수와의 직접적인 교감이 가능해. 그리고 세계수는 보통 엘프들의 여왕을 통해서 아르카디아 대륙 전체에 닥쳐 오는 여러 위험과 중대한 미래에 대한 예언들을 전달하고는 하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나니.
전 대륙을 관조하며 전지(全知)의 권능을 일부 가지고 있는 세계수. 그렇기에 그녀는 재영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가지고 있는 칭호들을 ‘인식’하고, 직접 보지는 못했던 재영이 이룩해 낸 위업들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세계수조차도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했다? 세계수의 사소한 말 한 마디에도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엘프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지.”
세계수의 예지 능력조차도 뒤틀려 버린 상황. 예상한 것과 다르게 드래곤의 심장을 더 빨리 가져온 게 분명히 좋은 일이라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멜리사의 가슴 한편에는 불안감이 피어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런가? 나는 특별하게 뭐 한 건 없는 것 같은데?”
딱히 무슨 일을 벌이는지 숨기려고 하거나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던 재영. 하지만 그런데도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세계수의 상태에 무어라 설명할 말이 뾰족하게 없던 그인지라, 투덜거리듯이 말하자 엘이 끼어들었다.
“그거야 당연하죠. 인간이 그렇게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없었으니까 그렇죠.”
인과를 뒤틀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행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힘, 개연성.
세상의 순리와 정해진 운명을 거스를 수 있게 해 주는 이 개연성을 이용해서 모든 것을 뒤엎어 버리는 재영의 행보를 계속해서 봐 왔던 엘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옆에서 직접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저조차도 미래에 대한 예지가 불가능한 수준인데, 세계수라고 가능할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의아한 눈빛으로 되묻는 재영. 하지만 그런 그에게 엘은 묘한 미소를 짓고 손가락으로 그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덱스 님은 모르시겠지만 덱스 님 주변에는 언제나 인과의 폭풍이 휘몰아쳐요. 그 때문에 본인뿐만 아니라 마주하는 사람의 운명과 미래조차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수준으로 어그러지게 되죠.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미쳐 날뛰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그의 옆에서 계속해서 함께하는 엘은 언제나 보고 있었다.
본래 그저 비참하게 죽었어야 할 이의 운명이 대양을 누비며 다른 대륙을 점령하는 운명으로 뒤바뀌는 것을.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야만 했던 번성했던 도시가 완전히 잿더미로 뒤바뀌는 미래를.
본래 따로 떨어져 있어야 할 대륙들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미래를.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정해져 있는 확정적인 운명이 너무나도 우스울 정도로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뒤바뀌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