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rd of another world is well fed RAW novel - Chapter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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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면 음식이 상해요, 안상해요? (3)
병사들의 오전 막바지 훈련을 지켜보던 싱클레어 백작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훈련을 멈추었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구슬땀을 흘리던 병사들이 드디어 끝난 훈련에 안도하며 연신 영주를 향해 환호했다.
“주방에서 신경을 쓴 모양입니다.”
“좋아. 이리 내 오게. 아, 병사들이 먼저임을 잊지 말고.”
“우워어어!”
영주의 말에 가까이 있던 병사들이 다시 한 번 환호성을 터뜨렸다.
현 백작의 위에 오른 페트릭 싱클레어는 아버지, 테오도르와는 달리 무인이 아니었다. 본인 스스로가 경지 높은 기사였던 노영주는 훈련 참관 한 번 없이 가만히 있어도 기사들과 병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지만 페트릭은 이런저런 행사를 통해 끊임없이 병사들과 마주칠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충성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잊지 않으려 노력할 줄 아는 자였다.
“차, 차린 것이 별로 없어 송구합니다, 영주님!”
주방장이 영주 몫의 식사를 받쳐 들고 왔다.
평소 그의 식탁과 비교하면 접시 개수가 퍽 적었지만 야외에다 병사들의 훈련지라는 특수 상황과 낯선 형태에다 특이한 냄새 때문에 초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차림이었다.
긴장된 상황에 말을 살짝 더듬은 주방장이 연신 손바닥을 앞치마에 문지르며 질문에 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이지?”
“여기 노란 빛깔의 음식은 굴을 다져서 채소 몇 가지와 버무린 뒤 계란 물을 입혀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부쳐낸 것으로 굴전이라 합니다. 붉은 수프는 닭고기와 함께 고추라는 향신채를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꽤 매운 맛이 강하니 조심하십시오.”
“오호-.”
“수프 안에 면이 있으니 건져 드시면 됩니다요.”
닭개장에 면을 넣은 것은 도미닉의 기지였다.
[병사들을 다 먹일만한 쌀을 갑자기 구하기는 어려우니… 밀가루 면도 괜찮지!]시간이 없어서 반죽을 숙성시키지 못한 탓에 밀가루 냄새가 조금 나기야 하겠지만 닭개장의 향이 워낙 강하니 정말 민감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도미닉의 생각은 적중했다.
“크아! 좋구만!”
“후-, 후-! 매운데 계속 당기는 맛이에요.”
“맵긴 뭐가 맵다고 그래, 이 정도도 못 먹으면 사내도 아니지, 씁-. 하!”
“예끼, 이 사람아, 이마에 땀이나 닦고 그런 소릴 해!”
“으하하하하!”
사방에서 면과 국물을 그릇째 들이키는 병사들이 보였다.
매운 맛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훈련장 곳곳에 퍼져 나가며 왁자지껄, 즐거운 웃음소리가 연신 끊이질 않았다.
이 상황의 일등공신인 도미닉은 주방의 천막 한 쪽에 서서 팔짱을 끼곤 흐뭇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었다.
후룩-.
영주도 붉은 빛 수프를 한 숟갈 떴다.
곧 눈이 번쩍 떠졌다.
‘맵다…!’
혀에 닿는 첫 맛은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지금껏 먹어 본 적 없는 화끈한 매운 맛! 게다가 일반적인 수프보다 족히 20여도는 더 될 법 한 펄펄 끓는 수프의 온도까지. 얼른 목구멍으로 꿀꺽 삼키는데 닭고기의 구수한 맛과 푹 익은 야채의 오묘한 단 맛, 소금과는 조금 다른 감칠맛 넘치는 짠 맛이 한 데 어우러져 미각이라는 것이 폭발했다.
매운 맛의 고통이 느껴지는데도 계속 손이 갔다. 연거푸 몇 숟갈을 들이키자 곧 온 몸의 땀구멍이 열리며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주르륵.
이마에서 굵은 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영주는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아예 그릇째 들고 국물을 크게 들이 마셨다.
“으어-. 이거, 좋군. 아주 좋아.”
그릇을 내려놓으며 만족스러운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얼굴에도 미소가 감돌았다.
‘오랜만에 입맛이 도는 느낌이야.’
평년보다 이른 더위에 지친 것은 영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뜨겁고 맵고 짠 수프 한 그릇이 지친 몸에 활력이 되어 주는 것이 아닌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들바들 떨고 있던 주방장은 그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여전히 도미닉은 천막의 한 쪽 그늘에 서서 무심히 전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서지 않을 생각인가?’
정말 선의였단 말인가?
도미닉을 바라보는 이안의 눈에 당혹스러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마을인 에버그린에 낯선 형태의 건축물을 올리고 있다는 걸 처음부터 지켜본 그였다.
돈이 많이 들 거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도 수 차례 들은 참이었다.
‘공을 세웠으니 이를 빌미로 도움을 요청할 줄 알았는데…’
맛있는 음식으로 영주의 환심을 산 뒤, 안타까운 마을의 경제 사정을 들먹이며 읍소한다면 충분히 초기 자금을 융통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도미닉은 여전히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구나.’
올곧은 기사의 마음에 부끄러움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
“우하하, 영주님께서 특별 상여금까지 내리셨다고!”
“입 닦으실 건 아니죠?”
“당연하지! 내 몫은 모두 자네 거야. 내 마음 같아선 상여금 전부라도 주고 싶지만 주방에 딸린 식구들 몫까지 줄 수는 없으니 이해해주쇼. 우하하하!”
병사들이 즐거워한만큼 영주의 기쁨도 컸던 모양이었다.
주방으로 따로 집사를 보내 두둑한 주머니를 건넨 걸 보니 말이다.
“요새 금화를 자주 본단 말이야.”
주방장에게 받은 금화를 냉큼 챙긴 도미닉이 희희낙락하며 금화를 불빛에 비춰보며 혼잣말을 했다.
“…미안하군.”
그 때, 이안이 슬며시 다가와 도미닉에게 작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네? 뭡니까? 또 어디가서 내 욕이라도 했어요?”
“…”
“와-. 진짜 욕했다고? 사람 그렇게 안 생겨가지고.”
“미안하다.”
“뭐, 됐어요. 안 보이는 데선 나랏님도 욕하는 거고 그런 거지 뭐. 그런데 뭐라고 욕을 했기에 사과를 해요?”
“…그대를 오해했다.”
“오해요?”
“나는 그대가 영주님의 앞으로 나서서 자신의 공을 밝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의 생각이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떨구는 이안이었다.
금발의 아름다운 미남이 자책하는 모습은 누구라도 동정심을 느끼기 충분한 장면이었지만, 도미닉의 표정은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그걸 내가 밝힐 거라고 생각했어요? 왜?”
“…그래야 상을 받을 테니.”
“쯧쯧-.”
이제 귀까지 벌개진 이안이었다. 도미닉은 그 모습을 보고도 혀를 끌끌 찼다.
“순진해가지곤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뭐?”
“이봐요, 기사님. 내가 진짜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이니까 잘 들어요.”
도미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선심쓰듯 입을 열었다.
“누가 봐도 확실한 공로를 세웠다면 그 다음엔 뭘 해야 하게요?”
“…글쎄.”
“정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랍니다.”
이 세상물정 모르는 기사놈아, 소리가 목끝까지 차올랐지만 다행히 이안의 허리춤에 달려 있는 칼자루가 눈에 들어와 선을 지켜 말하는 데 성공한 도미닉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대와 그대 마을은 영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보였다.”
“도움이요?”
“그래.”
“도움은 받을 생각 없어요. 투자면 모를까.”
도미닉이 씩 웃었다.
“에버그린의 촌장, 도미닉은 따라 오시오. 영주님을 뵈야 하니 옷차림을 바로 하시는 걸 추천하지요.”
타이밍 좋게 집사가 영주의 명을 가지고 왔다.
고풍스러운 복도를 지나 영주의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지난 번에도 온 적이 있는 장소였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허허, 그대에겐 벌써 몇 번째 도움을 받는지 모르겠어.”
“당치 않습니다.”
영주의 목소리에 호감이 뚝뚝 묻어 나왔다.
“그래, 그대가 나서지 않았다면 병사들이 크게 고생할 뻔 했다지? 조개 감기라고 했나?”
“예.”
“동요하지 않는군. 어째서 내가 이것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
“영민하신 영주님께서 낯선 향신료와 조리법을 두고 그 배경을 알아보실 것이란 예상은 어린 아이들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하하! 듣기 좋은 말이야.”
처음부터 도미닉은 이 상황을 예상했었다.
홍콩식 굴전은 물론이고 이 지방에선 보기 힘든 고춧가루를 사용한 닭개장을 내놓았다. 배고픔에 정신없는 병사들이야 ‘오늘 주방장이 꽤 힘을 줬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영주는 다를 것이다.
‘매일 주방장의 음식을 먹는 영주야. 그러니 그의 조리법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바로 눈치 챘겠지.’
마침 오늘은 촌장들의 정기 회의일이니 몇 번이고 도미닉이 한 음식을 경험한 적 있는 영주의 머릿속에 그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그래도 벌써 조개 감기까지 확인하다니, 일 잘하는데?’
뭐, 오히려 좋았다.
일 못하는 상사보다는 까다롭긴 해도 일 잘하는 상사 쪽이 훨씬 환영이었으니까.
“그대에게 영주성의 주방과 안살림을 맡기려고 한다면 거절할 텐가?”
상념에 빠져있는데 영주의 미소와 함께 제안이 하나 전해졌다.
“높이 평가해주신 것은 감사하나, 성의 주방에는 이미 실력 있는 주방장이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희 마을에서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있어 몸을 빼기 어렵습니다.”
“하하. 거절 할 줄 알았다. 그대에게 이 주방은 너무 작을 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아쉽군. 식재료에 대한 통찰과 조리법에 대한 지식은 수도의 아카데미에서 수학할 때도 자네만한 정도의 경지에 이른 자를 보지 못했거든.”
“과찬이십니다.”
“다시 생각해 볼 수는 없나? 보수는 넉넉히 주지.”
“저라고 어찌 영주님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겠습니까. 다만, 마을의 사활을 걸고 준비 중인 사업이 있어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몸을 빼낼 수가 없습니다.”
“사업?”
마침내 도미닉이 원하던 타이밍이 왔다.
영주의 눈에 호기심이 잔뜩 어렸다.
“예. 주군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만들어진 에버그린을 부흥하여 부끄럽지 않은 주군의 땅으로 당당히 이름 올리기 위해 미력하나마 발버둥을 치는 중이옵니다!”
영주를 부르는 호칭이며 말투가 극존칭으로 바뀌었다. 어쩐지 목소리도 좀 간드러진 것 같다면 착각일까?
‘사극에서 보면 간신들이 이렇게 하던데?’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집무실 문 앞에서 부복하고 있는 이안의 얼굴도 부끄러움으로 물들었지만 정작 도미닉은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돈 줄 놈한테 아부 몇 마디 하는 게 뭐 어때서.
“촌장의 마음은 알겠으니 평소처럼 말해도 좋다. 그런데 에버그린은 요즘 해조류 판매로 꽤 사정이 나아졌다고 들었는데 와전 된 것이었나?”
“예. 지금이야 다행히 신의 도움으로 해조류를 채취하여 입에 풀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주님의 땅인 에버그린은 원래 특산품이 나지 않는 척박한 어촌 마을이지요.”
“으흠-.”
도미닉의 말에 영주가 침음성을 삼켰다.
사실 싱클레어 백작가가 대대로 다스려온 이 지방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꽤 풍요로운 땅이었음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모든 마을이 동일한 부를 가질 수는 없는 법이었다.
‘특히 에버그린처럼 최근에 생긴 마을은 모든 점에서 부족하기 마련이지.’
당연한 이치였지만 영주의 입장에서는 미안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해조류를 판매하여 마을에 돈이 돌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부 역시 농부 거북이 떠나면 사라지고 말 것이니 촌장 된 도리로 어찌 행운에 의존할 수 있겠습니까. 행운이 행복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마을 사람들이 굶주림에 신음하지 않을 방도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요.”
“그래, 그럼 지금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라는 것이 그 고민의 결과인가?”
“예. 영주님.”
“내가 해야 할 일을 그대가 하고 있었군. 이것 참… 좋아, 그대가 구상하고 있는 일을 돕지.”
“도움은 괜찮습니다.”
도미닉의 거절에 백작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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