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사람에겐 형상이 존재한다.
두 발로 서며, 두 팔을 가지고, 어깨 위에 목, 목 위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처럼 보인다.
이족보행은 오랜시간 널리 생태계에서 인정받아온, 사족보행에 버금가는 가치있는 진화의 산물이었으며, 대지를 딛는 속박으로부터 풀려난 두 손은 비로소 두개골 내부 복잡한 의식의 흐름을 반영할 수 있는 의지의 현현이다. 이를 통해 내우주와 외우주가 소통하게 될 길이 열려 세상은 자연이라는 한계를 넘어 인공이라는 새로운 패권에 도달한다.
물론 아바르틴엔 사람의 형상이 보다 다양한 편이다. 아바르틴이 아니더라도, 유전의 무작위성과 후천적인 사고(事故)를 생각하면 형상 그 자체가 가치있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다만 존재하는 모든 사람의 실루엣을 겹쳐 두었을 때, 또는 동이 터오는 산등성이 위에 선 그림자를 역광으로 바라볼 때 ‘저것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형상이 존재한다는 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치 하나의 생물처럼 무더기로 쏟아져 내려오는 저 개체들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었다.
헤게모니아는 무리지어 뒤섞인 저 군상들을 세밀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하나하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크기부터 당혹스럽다. 작은 것은 손가락만한데, 큰 것은 수 십 미터에 이른다.
머리 비슷한 것이 있는 것부터 목도 없이 부리나 주둥이가 붙은 것이 있다.
팔이 붙어야 할 자리에 청동 바퀴가 붙은 것도 있고, 촉수 때문에 엎어져 땅 위에서 허우적 거리기만 하는 것도 있다.
팔이 몇 개나 달려서 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모습으로 움직이는 것도, 그저 둥그런 몸뚱이가 굴러갈 뿐인 것도 있다.
박쥐 날개부터 새 날개, 잠자리 날개와 모기 날개 같이 온갖 날개들이 붙은 것들이 있고, 균형 있는 날개를 가지고서도 그걸 펼칠 힘이 없어 기어 다니는 것도 있다.
아직은, 플레이어들은 이들의 존재론적 고통을 알지 못했다.
자아도 가지지 못하고 마성 속에서 이끌려 나왔으나 외우주에선 그 존재가 성립되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들이 방향도 없이 각자의 욕망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단지 그 사람의 형상으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자신의 통증을 암시할 수 있을 뿐이었다.
헤게모니아가 볼트의 말에 응답했다.
-이것들이 악마라고?
멀리, 다른 천공성에서 볼트는 자신의 백팩을 풀더니 어떤 장비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볼트가 말했다.
-나도 잘은 모른다. 하지만 몇몇 개체는 종교화에서 비슷한 걸 본적이 있는 것 같군.
-종교화?
헤게모니아가 의아해하자 볼트는 손가락으로 제법 덩치가 큰 악마 하나를 가리킨다.
머리가 귀여운 종달새처럼 생긴 악마고, 두 번째 천공성에서 나타난 직후부터 황금으로 만든 높다란 의자에 앉아만 있었다.
하는 행동은 손아귀에 잡히는 주변의 개체를 붙잡아 자신의 입에 통째로 털어넣는 것이다.
부리로 들어간 악마는 수 초만에 새악마의 몸을 통과하고, 의자라고 생각되었던 변기를 지나 그 아래로 풍덩 빠진다.
헤게모니아로서는 저게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네뷸라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볼트가 말했다.
-옛신들은 천사를 닮았으니, 옛신들이 부리는 것이 악마인 게 이상할 건 없겠지.
-어, 그래? 원래 천사가 악마를 부리는 건가?
-성경 읽어본 적 없나?
-누가 그런 걸 읽어? 치스트카, 넌 읽어봤냐?
치스트카가 과열된 포강을 식히기 위해 방열판을 드러냈다.
순간 달아오른 강철과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공기를 긁어냈다.
-뭐? …볼트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거 같군.
볼트가 자신의 작업을 잠깐 멈춘 다음 답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그래.
-읽지도 않고 비난할 수는 없지.
-하, 나는 성경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종교를 비난하는 거지.
헤게모니아가 말했다.
-아무튼! 안 읽었단거네. 그래서 천사랑 악마가 뭐? 쟤네가 우리가 알고 있는 천사랑 악마라고?
볼트가 가로저었다.
수 백 미터는 떨어져있으니 필멸자들에겐 의미없는 동작이겠지만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을거다. 그렇다고 우연의 일치도 아니겠지.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헤게모니아가 말을 끊었다.
-됐어. 저것들을 박살내는데 필요한 답이 아니라면 나중에 듣지.
볼트는 침묵으로 수긍한다. 이제는 헤게모니아를 대하는 법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치스트카가 껄껄 웃으며 무리지어 꿈틀거리며 쏟아지는 만마를 향해 포구를 들었다.
-이번에는 정말 위기군.
악마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어찌나 숫자가 많은지, 먼저 쏟아진 악마들은 그 다음 위로 쏟아지는 악마에 깔려 죽기만 하고 있다.
천공성에서 분수 솟듯 뿜어지는데, 다음 천공성으로 떨어져내리기도 전에 가장자리로 흘러넘쳐서 허공에 쏟아지는 악마의 숫자도 비슷해보인다.
볼트가 자신의 작업을 끝마치고, 다시 백팩을 멘다.
백팩에서 이어지는 호스, 그 호스 끝에는 액체를 방사하는 하나의 관과 그 관으로부터 이어지는 가스 점화기가 매달려있다. 화염방사기다.
-숫자는 무한대나 다름 없다고 생각해라.
치스트카 또한 방열판을 닫더니, 주포를 발사한다.
악마들이 쌓이고 쌓인 사실상의 육벽을 때리자 멀리서도 보일만큼의 피반죽이 터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자리에 다시 악마들이 쏟아진다.
-하, 숫자는 많지만 경험치 효율이 엉망이군. 쉽지 않겠어.
헤게모니아는 방금 폐허로 만든 천공성 위에서 카자하를 이끌고 앞으로 나섰다.
그 뒤를 살카잇과 놀 전사들이 따른다.
헤게모니아는 악마들을 관찰한다.
-어차피 악마도, 악마의 숫자도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 목표는 저 첫 번째 천공성에 도달해서 옛신인가 뭔가 하는 놈의 머리를 따는 거지.
볼트가 물었다.
-돌파만 하면 된다?
치스트카가 동의했다.
-흐음, 그것도 쉽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돌파를 위해서는 우선 전선이 형성 되어야 한다. 이대로는 포위 당해 짓눌릴 뿐이야.
그리고 저 하늘 위에서, 신들의 대화를 엿듣는 이가 있었다.
-그럼 우리가 전선을 만들겠다.
살카잇의 잘린귀가 가장 먼저 그 목소리에 반응했다.
살카잇이 으르렁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무엄하다! 어찌 분노하는 자의 머리 위에서 말을 걸어오는가?
-오랜만이군, 살카잇. 하지만 서로 신경 긁는 소릴 할 때는 아닌 것 같은데.
-…이번만 동의해주마, 라크락.
살카잇과 전사들, 그리고 세 명의 플레이어는 천공성의 반대편 하늘을 바라보았다.
또 다른 천공성이, 하지만 옛신들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천공성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첨단 과학과 지고한 마법을 두른 제국 기술의 결정체, 별지기였다.
별지기만 하더라도 비프넨의 첫 번째 천공성 보다 몇 배는 거대하다.
별지기만이 아니다.
별지기의 뒤로는 제국 전체에서 공수된 공중항모 전단 4개 부대가 뒤따른다.
그리고 그 공중항모를 호위하는 함재기들이 구름을 헤치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별지기의 상층부 갑판, 난간 위로 한 발을 올려놓은 사도 라크락이 통신기를 빼들고 말했다.
“아아, 천재 지휘관, 듣고 있나?”
이티모 타워의 바센 라크 오라즌이 웃으며 답했다.
바센은 오래전엔 라크락이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바센도 이제와서는 다 내려놓았다.
“예, 천재 지휘관 듣고 있습니다. 절 그렇게 부르셔서 그런지 옆에 있는 도르돌이 시무룩하군요.”
“무슨 말을 하는겁니까, 대장군.”
도르돌이 투덜거린다.
라크락도 웃었다.
“뭐? 그 친구는 노력가잖나? 천재는 자네처럼 시건방진 사람 욕하려고 있는 말이야.”
바센이 또 웃는다.
라크락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간다.
“우리 침투군이 목표한 지점까지 왔다. 그리고 상황은… 화면으로 봐라.”
바센은 이미 별지기로부터 전해지는 화면 송출기를 확인하고 있다.
기이한 괴물들이 천공성들을 덮으며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고, 세 명의 신에게 접근 중이다.
바센이 말했다.
“좋습니다, 대제. 상황이 나빠보이진 않습니다.”
“내가 전사들한테 자주 하던 말이군.”
바센은 라크락이 자신의 말을 꼬집는다고 생각했다.
최악의 상황이라고해도 달려들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 순간에는 지휘관이 거짓말이라도 해야한다.
“…죄송합니다. 여기 발뻗고 있는 놈이 이제 피볼 사람들한테 상황이 최악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말에 라크락이 되물었다.
“왜 죄송하단거지? 상황이 나쁘다는 말인가?”
바센은 전술과 전략에 대한 인상이 라크락과 불일치할 때마다 자신이 틀린 건 아닌가 하고 고민했다.
이 문제에 대해 도르돌이나 티오네, 마즈다리, 다른 신들, 심지어 야천과도 이야기해본 적 있었다.
야천의 답도 바센에게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었으나, 그러려니 넘어갈 수는 있게 되었다.
‘원래 그런 성격이거든.’
바센이 라크락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해볼만한 상황이 맞습니다. 단기결전을 노린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것 참, 우리 천재 지휘관께서 생각이 너무 많군. 긴장한 건가?”
“점심 내기 바둑도 아니고, 아바르틴의 명운이 걸렸지 않습니까.”
“그냥 점심 내기 바둑처럼 해.”
“예?”
라크락이 말했다.
“자네, 점심 내기 바둑 진적 없잖나? 그럼 아바르틴의 명운이 아니라 점심이 걸렸다고 생각해. 평소대로 이기겠지.”
간결한 지혜에 바센의 머리가 맑아진다.
바센은 순간 라크락의 시야를 공유한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렇다. 이제 상황이 나빠보이지 않는다.
“…좋습니다. 대제, 리자드맨 전사들 및 사도들에 대한 현장 지휘를 맡기겠습니다. 저는 도르돌과 함께 별지기, 그리고 함대를 움직이겠습니다.”
“무운을 빌지.”
바센이 대꾸를 하기도 전에 통신이 끊어진다.
바센은 성격 참 급하다며 꿍얼거리면서도 자신의 할 일을 곧장 수행한다.
이번 작전은 아바르틴 역사에도 몇 없는 기이한 작전이다.
서른에 가까운 사도들이 하나의 전장에 올라서며, 이들은 주로 냉병기를 들고 고대의 전투를 벌인다.
이들은 라크락을 따라 쐐기 대형으로 전선을 유지할 것이다.
또한 후방에선 제국이 자랑하는 최첨단 기술들의 포격, 폭격이 이어질 것이다.
적의 빈약한 항공 전력으로 보아 공중항모들은 함제기의 절반만으로도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어보인다.
화력을 투사해 적들의 종심을 완전히 비워내고 전선을 앞으로 당기는 것이 바센의 목표다.
최후의 돌파자는 세 명의 신이다.
이들 신들은 모두 현신한 상태로, 바센이 파악하기에 이들은 신들의 현신체들 중 중상위권의 학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단독으로 맞서면 모를까, 수 많은 적과 맞서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들 중 하나가 분노하는 자라는 것이다.
‘야천에 감히 필적하는 자.’
과거와 같이 만전을 기한 상태였다면 지금의 상황도 달랐겠지만, 그런식으로 생각하면 모든 전투가 유리하기만을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휘관이라면 불리한 상황에서도 이기게 만들어야 한다.
바센이 통신기에 대고 말한다.
“제군, 결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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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신과 새로운 신, 고대의 천공성과 악마, 과거의 전사들과 최첨단 무기가 뒤섞인, 그 누구도 들어본 적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신화가 아바르틴 전세계에 생중계 된다.
이제 제국은 모든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올바른 정보가 전달된다.
이미 서대륙 의장 사르쵸의 연설에 더불어 부유하는 수정을 통한 옛신들의 공격으로 제국에는 옛신들을 향한 반감이 가득했다.
다만 그 반감은 불안에 가까웠는데, 자신들이 따르던 신들이 없는 세계에서 옛신들에 어떻게 저항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지기를 경유해서 송출되는 침투군, 그리고 각 지역에서 이름 높은 사도들의 모습이 드러나자 분위기가 반전된다.
불패의 역사와 불가능했던 승리, 위대한 영웅의 일대기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된다.
비록 신들이 없어도, 이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황궁을 비롯한 여러 경로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공표된다.
새로운 신들은 타천을 당하기 전 안배를 마쳤다.
저 상공의 천공성을 공격하는 침투군이 바로 그 안배였다.
또한 만신전은 자신들에게 패배했던 신들을 되살리는데 성공했다.
그 신들은 과거의 인연을 묻어두고서, 아직 자신의 신도들이 남아있는 아바르틴을 지키기 위해 옛신들에게 반기를 들었다.
아직 신을 잊지 않았던 이들이 화면 송출기를 부여잡고 통곡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