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78)
이태겸이 전달한 것은 박경원을 감금하고 심문했던 동영상 기록이었다. 워낙 용량이 커 외장 하드에 담아서 왔다.
(처, 첫째 도련님?)
충격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던 박경원은 백서준의 옆에 앉은 유은호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도박 때문에 인생이 지하로 처박힌 박경원은 주성의 경호원으로 일하던 과거가 인생의 황금기였다.
도박 빚으로 누군가에게 쫓길 때마다 ‘그때 그런 일 맡고 관두지 말았어야 했어······.’라고 추억 팔이를 하곤 했었다.
(당신 도련님 아닌데.)
유은호는 평소와 같은 무표정이었지만, 유연서는 다르게 보였다.
‘형이 화나면 무섭긴 해.’
그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화면 속 박경원을 대하는 것처럼 폭력을 쓴 건 아니고, 사춘기 때 어쭙잖게 대들었다가 서릿발 같은 눈빛을 마주해야 했었지.
(그래서, 아저씨가 안 죽였으면 누가 죽였어?)
백서준이 주먹으로 책상을 두들겨 박경원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했다.
(나, 나는······!)
(말투 똑바로 하시고.)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백서준은 박경원이 뭔가를 말하려고 뻐끔거리다가 다시 꾹 다물고를 반복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봤다.
(근데 왜 아저씨가 안 죽였다고 변명해. 수상하게.)
(그, 그건······.)
(그럼, 누가 시킨 건 맞지? 아저씨는 그냥 대가를 받고 한 거고.)
박경원은 눈동자를 쉼 없이 굴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말하면 뭐 된다는 건 잘 알고 있네······ 백서준은 일단 넘어가고 최남윤의 영정 사진을 내밀었다.
(그럼 이분은 아시나?)
(어, 어어어······.)
그는 수갑으로 채워진 손을 덜덜 떨면서 사진에 대고 삿대질했다. 어렴풋이 기억은 나는데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아저씨랑 같은 시기에 주성 유 회장 저택 경호했었잖아.)
(아! 아 그렇지! 맞아요!)
(그리고 동시에 관뒀고. 하필 그 집 며느리가 사망하고 며칠 안 돼서.)
(아니 그건······! 우리 거의 다 짤린 거예요. 경호를 어떻게 하면 애가 그렇게 될 때까지 아무도 안 말렸냐고······.)
며느리의 죽음으로 기업 이미지도 떨어진 데다가, 집안 분위기가 말도 아니었다. 그걸 보다 못한 유 회장이 홧김에 지시했고, 그 시절 경호원 대부분이 권고사직으로 포장돼서 다 해고된 건 두 사람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박경원을 한 번 찔렀더니 뭐가 나와도 줄줄 나올 것 같은 예감이다.
(이 사람 지금 어떻게 된 줄 알아요?)
백서준은 사진 밑에 숨어있던 최남윤의 사망 기록을 보여줬다. ‘사망’ 글자가 형광펜으로 칠해져 있어서 못 발견할 수 없다. 박경원이 눈을 크게 떴다.
(누가 죽였을 거 같아?)
박경원은 떨리는 눈동자로 백서준과 유은호를 번갈아 쳐다봤다.
(서, 설마.)
(에이, 머리가 안 돌아가셔?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 난 경찰인데, 얘는 가업 이어받을 귀한 몸이고.)
백서준이 능청을 떨면서 박경원의 긴장을 풀었다. 유은호는 눈이 아프지도 않은지 계속 박경원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 무서운 시선을 애써 외면하던 박경원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유은호는 왜 여기 있을까? 그리고 왜 갑자기 그때 일을 물어보는 걸까?
[박경원, 몸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 사람은 아직 그 일을 안 잊었거든.]당시에는 이 새끼 뭐야? 라고 생각하며 끊었던 전화가 어쩐지 수상했다.
(그······ 그럼?)
(아예 대가리가 안 돌아가는 건 아니네. 박경원 씨, 지금 목숨 간당간당해요.)
(······.)
(어떻게, 여기서 안락하게 있다가 어디 조용한 곳으로 뜰래? 아니면 밖에 나가서 뒈질래?)
백서준이 의미하는 어디 조용한 곳은 당연히 교도소다. 하지만 박경원이 생각하는 조용한 곳은 외국이었다. 그의 눈동자에 희망이 차올랐다.
그것을 눈치챈 백서준이 팔꿈치로 유은호의 옆구리를 쳤다.
(야, 너도 뭐라고 말 좀 해 봐.)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준다면 인도적인 차원에서 배려해 줄 수는 있습니다.)
유은호는 조용히 분노하는 와중에도 백서준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태연하게 블러핑을 쳤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지 않겠어? 잘 생각해 봐.)
첫 심리전은 그렇게 끝났다. 유연서는 일단 영상을 정지하고 마른세수했다.
‘나 없어도 잘하고 있네.’
아니, 원래도 나 없이 잘 해결하긴 했으니까······ 유연서는 감은 눈을 꾹꾹 누르고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방향키를 연타했다.
(그, 사실······ 돈이 필요한 사람을 모으라고 했습니다. 절박할수록 좋다고······.)
(그 사람이 누군데? 우리가 아는 사람이야?)
(몰라요. 지, 직접 봐야 알아요.)
(아저씨, 잔대가리 굴리지 말고. 사진만 있으면 되지?)
백서준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박정호가 붙었으니 막힐 건 없었다. 박금주는 주성의 안주인으로서 오랫동안 지반을 굳건히 다졌다. 당연히 가지고 있는 정보가 유은호와 유연서보다 더 많았다.
(아저씨, 우리가 지금 이런 찌끄레기 잡자고 아저씨 감금한 거 같아? 대가리가 누구냐고!)
(나, 나도 잘 몰라!)
대충 보니 첫 대면 이후 며칠간 얼굴도 안 비추면서 피를 말린 것 같다. 그리고 하나씩 정보를 풀었다.
최남윤의 일기장과 주성 일가 중 누군가가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고 날조한 자료를 내밀어 공포를 주고 당근을 흔들어 보이니 박경원은 쉽게 입을 열었다.
저쪽은 아직 오후 시간이겠군······ 유연서는 바로 백서준에게 연락했다.
(어, 몸은 어떠냐?)
“영상 조금 봤어. 결과는 어떻게 돼?”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는 모습에 백서준이 피식 웃었다.
(일단 ‘꼬리’ 쪽은 다 확보한 거 같다.)
“누구야?”
(총 세 명. 박경원 그리고 최남윤과 바꿔치기한 스토커, 그리고 정원사로 일했던 양홍식.)
“······그래?”
(일단 잡아서 털어봐야지. 근데 이러다가 ‘머리’ 쪽이 눈치채면······ 아무튼, 형이 알아서 할 테니까 귀국하고 봐.)
믿고 맡겨도 된다고 판단한 유연서는 통화를 끊고 침대에 몸을 눕혔다. 삐, 이명과 함께 심장이 쿵쿵 울리는 소리가 수면을 방해했다.
어린 시절 유연서는 활달하고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박경원은 그가 떼를 쓰면 못 이긴 척 목말을 태워준 사람이었고 양홍식도 그와 정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불현듯 속이 불편해진 그가 입을 열었다.
“베타. 조율은 어떻게 됐지?”
“말해.”
***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인다?”
“아, 잠을 못 자서요.”
유연서는 무거운 눈을 비볐다. 영혼 조정 이후로 찾아온 것은 불면증이었다.
‘베타가 준 특전은 두 개······.’
하나는 영혼 조정에 있어서 고통을 경감시켜 주는 특전이고 다른 하나는······.
두루뭉술한 혜택이긴 한데, 직접 써봐야 알 것 같다. 유연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 기다려졌다.
그의 대답을 시차 적응을 잘 못 한 거로 판단한 박승환이 그의 등을 가볍게 쳤다.
“나도 시차 적응 끝났는데 아직도?”
“형은 바쁘게 돌아다녔잖아요. 난 그냥 쉬었고.”
“너희 제작사에서 다 해줘서 우리는 그냥 편하게 이곳저곳 돌아다녔지.”
박승환과 김재호 감독은 2주 전에 미국에 와서 여러 캠페인에 참여했었다. 유연서도 중간에 합류해서 여러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오늘은 간단하게 영화제 출품작 감상하시면 됩니다. GV는 내일 오전, 그리고 레드 카펫은 저녁에 있습니다.”
차윤호의 말에 유연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속 살해’는 한국에서 제법 많은 제작비를 썼지만, 여기서는 독립 영화로 분류될 정도로 이곳의 평균 제작비는 높았다.
“아, 이사님. 끝나고 LA 자선 행사도 참석하실 예정이죠?”
“네. 그건 왜요?”
“박 관장님이 부회장님과 같이 오신답니다.”
“······그래요?”
최유진이 오는 건 놀랍지 않다. 제 회사를 물려받을 거면 외국 인사들과도 친분을 맺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물론 그 이면에는 유연서의 건강에 관한 걱정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박금주는 의외다.
‘안 오실 줄 알았는데······.’
박정호를 통해 그들이 뭘 쫓는지 알아도 ‘너희들 알아서 해라’라고 묵인할 뿐 아무런 행동은 하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설마 우리는 손 떼라고 할지도.’
그럴 수도 있다. 가까운 가족 중 한 사람이 유력 용의자인 셈이니 이대로 덮자고 하겠지. 손자에게 죄책감이 있다고 해서 자식만큼 아끼는 건 아니니까.
“멍하니 뭐 해? 너 진짜 어디 아픈 거 맞지?”
“아니에요. 가죠.”
박승환의 성화에 정신 차린 유연서가 그를 뒤따라 영화제 현장으로 향했다.
‘비속 살해’의 상영관으로 향한 유연서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관객석이 반 이상 차 있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외국 영화인데 사람이 많네요?”
듣기로는 더빙도 아니고 자막판이었다.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있을 텐데도 관객은 쉴 새 없이 들어왔다.
“다른 영화제에서도 꽉 찼거든, 오늘도 그러겠네.”
“그래요?”
“다들 영화광이니까. 게다가 ‘비속 살해’는 요즘 여기서 입소문 쫙 깔렸대. 너도 들었지?”
진정한 영화인이라면 한국의 영화, ‘비속 살해’는 봐야 한다는 약간의 허세가 깔린 소문이었지만, 나쁠 건 없었다.
제 좌석을 찾아가는 중간에 그의 얼굴을 알아본 몇몇 관객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역시 차윤호에게 보고받는 것 보다. 직접 체감하는 건 달랐다.
“이야, 나도 노인 분장하고 올 걸 그랬나?”
“근데 형도 완성본 못 봤어요?”
“아니? 이게 한 다섯 번째인가?”
“······허.”
“내가 봐도 내 연기가 죽이는데 어떡하냐?”
박승환의 능청을 무시하고 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몸이 무거웠는데, 복잡한 생각을 비우니 한결 나았다.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첫 장면은 법정이었다.
(다만, 피고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정신질환이 있는 아들을 극진히 돌보며······.)
카메라는 선고받는 황대식의 뒷모습을 멀리서 서서히 당겼다. 법정 장면은 황대식이 어떤 죄를 지었고 어떠한 사정이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줬다.
감독 김재호
제작·투자 유연서 / JS Ent.
황대식이 교도소로 향하는 장면은 다양한 색감을 끼얹어 오프닝 시퀀스로 활용했다. 이어서 장면이 전환되고, 양아치 1에게 맞는 황민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됐다.
버스비가 없는 황민재가 발을 질질 끌며 집으로 향한다. 길은 ‘비속 살해’를 구성하는 요소 중 큰 틀이었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는 경사지고 구불구불하다. 반대로 희망적인 상황이 보일 때는 막힘 없이 뚫리는 길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런지 길을 걸어가는 조손을 비추는 장면이 많았다.
‘······빛이 특이하네?’
그리고 유연서가 유심히 본 건 화면의 색감과 빛의 사용이었다.
황대식의 재판과 양아치에게 맞고 홀로 집에 들어가는 황민재의 장면에서는 회색톤을 써서 차가움을, 황대식이 손자를 만났을 때는 그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직관적으로 보여줬다. 탁상 위의 유리 장식에 햇빛이 통과하면서 여러 색이 번잡하게 섞여 있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눈이 피로한 건 아니었다. 관객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게끔 자연스러운 색감의 변화를 신경 쓴 것 같았다.
‘어쩐지 조명 감독이랑 열심히 상의하시더라.’
그때는 연기에 신경 쓰느라 몰랐는데, 이렇게 완성본을 보니 또 새롭다.
‘재밌네······.’
촬영 때와 비교하니 색다른 재미가 느껴졌다. 이래서 영화인들이 미장센을 찾는 건가. 유연서는 어느새 영화에 푹 빠져서 끝날 때까지 스크린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