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409)
제409화
#409. 체할 수도 있는 자리라는 거군요.
서대치는 강무혁의 명에 따라 새벽 기차로 일찍 부산에 내려갔으나 도중에 몬스터가 사고를 일으켜 지체되는 바람에 정오가 지나 부산역에 도착했다.
곧바로 벡스코를 찾았으나 강무혁은 타 길드 관계자들의 점심 초대로 자릴 비운 상황이었다. 대신 노송린이 그를 맞이했다.
“너 내가 누군지 알지.”
“예.”
“내가 어떤 놈인지도 알지?”
“예.”
“내 성질 알만한 놈이 왜 이제 와. 단장님 시간이 금쪽인 거 몰라? 빠릿빠릿하게 안 다녀?”
“죄송합니다. 오는 길에 몬스터가 기찻길을 막아서 지연됐습니다.”
“네가 빨리 잡고 왔어야지.”
“기차가 멈춰 선 곳과 사고 난 지점이 멀었습니다.”
“그럼, 뛰어왔어야지. 원정대 파티장 달았다고 벌써 군기가 빠진 거냐?”
“…….”
서대치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길드에서 노송린이 자신의 윗사람인 건 알고 있다. 랭크도 한참 위였다. 경력과 실력도 아직은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
하지만 독립적인 원정대 특성상 직속인 이진주를 제외하곤 다른 공격대의 헌터가 태도를 지적할 순 없었다.
이른바 우리 새끼는 까도 내가 깐다는 암묵적인 룰이었다.
‘단장 입안에 혀처럼 군다더니. 텃세를 부리는 건가?’
상황은 다르지만, 서대치가 프리랜서 시절 많이 겪어본 일이었다. 익숙했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뛰어오도록 하겠습니다.”
“뭐, 그렇다고 진짜 뛸 필요까지는 없고. 크흠, 차라도 잡아타고 오란 말이야.”
노송린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바꾸자 서대치는 혼란스러웠다.
‘뭐지? 군기 잡는 게 아닌 건가? 갈굴 땐 언제고, 뭘 또 이렇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지?’
서대치는 고랭크 헌터 중에 제정신이 아닌 자들이 많다는 걸 들은 바가 있었기에 노송린을 그쪽 부류로 여기기로 정리했다.
반면 노송린은 자기반성을 하는 중이었다.
‘처음엔 이놈 뒤를 캐다가 단장님한테 경고먹은 게 생각나서 욱했었는데, 또 이놈 형이 죽은 걸 생각하니 짠하네. 그래, 얘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 단장님한테 걸린 내가 바보지. 에휴, 괜히 이진주한테 이르면 피곤하기만 하니까. 그냥 넘어가자, 넘어가.’
노송린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밥 먹었냐?”
“예. 기차에서.”
“그럼, 단장님 시간 좀 걸릴 것 같으니까 그동안 쟤나 좀 맡아라.”
서대치는 노송린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법 잘생긴 얼굴에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가 쭈뼛대며 서 있었다. 누가 봐도 신인 헌터로 보였다.
노송린이 덧붙여 말했다.
“단장님이 뽑은 유일한 신삥이다. 정식 입단은 삼일절 지난 다음이지만, 그 전에 길드 분위기라도 익히게 네가 쟤 궁금해하는 거 있으면 대답 잘해주고. 뭣도 모르는 애 괜히 갈구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서대치는 이 뜬금없는 임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최소한 노송린과 붙어 있는 불편한 상황보다 나으리란 판단 때문이었다.
“어이, 신입. 와서 인사해라. 이놈 이름은 서대치고, 네 선배다. 원정대 소속이고.”
“아, 안녕하십니까! 한가람이라고 합니다!”
한가람은 90도로 허리를 구부려 인사했다.
서대치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곤 노송린에게 물었다.
“바로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단장님 오시면 연락하마.”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따라와요.”
서대치는 한가람을 데리고 벡스코 밖으로 나갔다. 한가람은 삭막한 그의 표정에 잔뜩 굳어 뒤를 졸졸 쫓아갔다.
행사장에서 거리가 멀어지자 서대치는 벤치 하나를 잡아 앉았다. 한가람도 눈치를 보다가 그 옆에 슬며시 앉았다.
“궁금한 게 있습니까?”
“그, 글쎄요. 아직 뭐가 궁금한지도 몰라서…….”
“없으면 가보세요.”
“예?”
“궁금한 게 없는데 왜 여깄습니까? 어차피 3월에 입단하면 신입 트레이닝 과정 밟을 텐데. 우리 길드가 이제 B급이긴 한데, 훈련 시스템은 어지간한 티어 길드에 비빌 수 있어요. 거기서 다 배울 거니까 어떻게 따라갈진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그 트레이닝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됩니까?”
“일단 기초 과정은…….”
서대치는 말을 하려다가 움찔했다.
질문받는 게 귀찮아서 교관단에 다 떠넘기려고 했더니, 어째 틀어진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괜한 말로 신입의 호기심을 자극한 듯했다. 한가람의 두 눈이 없던 질문도 샘 솟을 것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한 번만 설명할 테니 잘 들어요.”
“말 편히 하십시오, 선배님.”
“아직 정식 입단 안 했잖습니까. 그리고 입단한 뒤라도 제 말투가 달라질 건 없습니다. 혹시 아까 노송린 헌터 말투 때문에 오해했나 본데. 우리 길드는 상호예의가 기본자세입니다. 아까처럼 가끔 튀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사람은 몇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랭크로 찍어누르는 행동은 금물이니까 참고하세요.”
“예!”
서대치는 자신이 왜 여기로 불려와서 신입을 가르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면서도 한가람의 질문을 허투루 대하지 않았다.
‘단장이 신입을 맡기려고 날 부른 건 아니겠지만, 일단 이것도 임무는 임무니까.’
그는 험악한 인상과 다르게 주어진 일에 의외로 성실한 헌터였다.
* * *
강무혁은 점심 초대 문자에 적힌 장소를 찾아갔다.
벡스코 근처의 대형 레스토랑이었데, 아예 전체를 대관해서 이번 2차 드래프트에 참여한 길드들끼리 친목을 도모한다는 취지의 모임이었다.
레스토랑 입구에 들어서니 제법 많은 수의 길드 관계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안면이 있는 사람들끼리는 한데 보여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첫 만남인 사람들도 서로 명함을 뿌리며 바쁘게 인맥을 넓히고 있었다.
강무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길드명이 적힌 카드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모임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었기에 참여 길드들 면면을 확인해 오늘 모임의 성격을 유추하려는 것이었다.
‘매년 드래프트 때 이런 자리가 마련된다는 건 들은 적이 있긴 한데. 여긴 어디 주최로 모인 거지? 대충 보니 알 것도 같은데.’
실제 2차 드래프트에 참여한 길드는 책임자만 이곳 레스토랑에 세워놓기만 해도 다 들어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길드는 지역별로, 규모별로, 혹은 과거에 공동 작전을 수행했던 인연에 따라 모임을 가졌다.
문제는 강무혁이, 아니 아이언윌은 그 어떤 부분에서도 이번 모임에 포함되기 애매한 위치라는 점이었다.
그가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강 단장님 오셨네? 왜 자리에 앉지 않고 입구에서 서성댑니까?”
태극 길드 전략팀장인 조익준이었다.
“관찰 중이었습니다. 제 포지션이 어디인지.”
“어디 헌팅 나온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초대로 왔는데 무슨 포지션을 찾아요.”
그랬다. 강무혁이 이곳에 온 이유는 조익준의 초대 때문이었다.
그는 얼굴 익혀두면 괜찮은 자리가 있다며 강무혁을 불렀다. 강무혁은 썩 내키지 않았으나 조익준과의 관계를 생각해 이곳에 발걸음 했다.
조익준은 친근한 사이인 척 강무혁에게 붙으며 말했다.
“여기 길드들 규모는 작아도 다 알짜배기입니다. 듣자 하니 중소길드 몇 군데 합병하셨다던데. 혹시 또 압니까? 함께 일할 사람이 있을지.”
“온 김에 솔직히 말하죠. 절 여기 부른 의도가 뭡니까, 조익준 팀장님?”
“의도랄 게 뭐 있겠어요? 그래도 우리가 신의주에선 한솥밥 먹는 사이인데.”
“정확히는 낮은 단계의 협력 조직일 뿐이죠. 마경 공략을 위한 신의주 투자 외에 아직 정해진 사안은 없지 않습니까.”
“딱딱하게 구는 건 여전하시네. 그냥 온 김에 밥 한 끼 먹고 간다, 편하게 생각합시다. 그러다 체합니다.”
“즉, 체할 수도 있는 자리라는 거군요. 조익준 팀장님 통해서 절 초대하기 위해 누군가가 마련한 자리라고 여기면 되겠습니까?”
“아이고! 아니에요, 아니야.”
조익준이 손을 내저으며 부정했지만, 강무혁은 찰나 스치는 조익준의 당황을 읽어냈다.
“여기 모인 길드들. 전부 영남권 길드들인데. 영남권 길드 모임을 주재하는 건 부산의 싸울아비 길드죠. 거기에 태극 길드와 아이언윌? 전혀 어울리지 않는군요. 게다가 싸울아비와 같은 티어 길드가 2차 드래프트를 신경 쓸 것 같진 않은데, 누가 A급 길드인 태극 길드를 부른 걸까요? 조 팀장님은 또 왜 그걸 받아들였고요. 그것도 절 함께 부르라는 조건까지 맞추면서.”
확신에 찬 강무혁의 눈을 마주한 조익준은 이내 혀를 내두르며 항복 선언을 했다.
“하여간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다니까. 맞아요. 단장님 불러달라고 한 건 싸울아비 길드입니다. 거기 부길마가 나한테 부탁하더라고. 신의주 개발하면서 얼굴을 좀 텄더니 바로 오퍼가 오네.”
“싸울아비가 왜요?”
“뭐, 거기까진 나도 잘 모르겠고. 불렀으니 곧 오겠죠. 만나서 물어봐요. 아 참, 이번에 신입 하나 뽑았다면서요. 딱 한 명만.”
“소식 빠르시네요.”
“겉으로 보기엔 난 잘 모르겠던데. 괜찮은 물건인가 봐요?”
“기대주입니다. 주세아 길마님이 관심을 가지는.”
조익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강무혁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주세아라는 이름이 들어간 순간 생각이 복잡해졌다.
‘거짓말 같진 않은데…. 하긴 단순히 변덕만으로 헌터를 뽑을 사람도 아니고. 도대체 한가람이라는 헌터에게 뭘 본거지?’
조익준이 알아본 한가람은 그다지 특이할 사항이 없는 헌터였다.
각성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고, 마감 기간이 아슬아슬하게 작년 헌터 커리큘럼에 참가한 헌터였다.
성적 무난. 실습 무난. 특출난 곳 없음.
이게 한가람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였다. 그나마 유의해야할 사항이라면, 정신계 특성이라는 것. 커리큘럼 과정 당시 교관에게 알아본 바로는 그마저도 제대로 발현된 적이 거의 없는 능력이라고 했다.
‘본인 설명으로는 자기 강화 계열의 버프 비슷한 느낌이라고 했다지? 그건 즉 본인도 헷갈린다는 뜻이야. 자기 자신도 모르는 특성을 강 단장이 알린 없을 거고. 진짜 뭐지?’
조익준은 강무혁에게 말을 붙여 한가람에 대해 좀 더 털어보고자 했다. 쉽사리 넘어올 상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관심을 접을 수도 없었다. 최소한 강무혁의 헌터 영입 기준에 대해 털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다른 사람의 개입으로 무산됐다.
“두 분 다 오셨군요.”
주인공처럼 마지막에 등장한 남자가 강무혁과 조익준을 향해 다가왔다.
강무혁은 그 남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성선제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바닥에선 워낙 유명인이었으니까.
“여기 조익준 팀장님은 신의주 건으로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강 단장님은 오늘 처음 뵙는군요, 싸울아비 길드 고요한입니다.”
“아이언윌 강무혁입니다.”
강무혁은 싸울아비 길드의 부길마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싸울아비 길드가 평소 나오지도 않던 2차 드래프트 자리를 빌려 날 불렀다? 둘만 따로 만나길 요청한 게 아니라? 둘 중 하나겠군. 갑자기 일이 생겼거나, 아니면 이런 자리를 빌려 자연스럽게 만나야만 했거나.’
어느 쪽이든 티어 길드의 움직임에는 경각심을 가져야 했다.
강무혁의 전투 스위치가 켜졌다.
* * *
삐삐빅!
갑자기 대박호의 어군 탐지기가 요란스럽게 울려댔다.
선장은 접던 그물을 멈췄다.
“이야, 오늘은 공치나 했더니 이게 뭐다냐? 완전 물반 고기반 이네?”
탐지기에 뜬 물고기 떼는 막말로 손만 담그면 물고기가 딸려 올라올 수준이었다.
선장은 일꾼들에게 다시 그물을 던질 준비를 시키고 선수를 돌렸다.
그는 오랜만의 만선을 꿈꾸며 휘파람을 불었다.
“자자, 배 가득 채워 들어가자고.”
투웅!
“응?”
순간 선장은 배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선저에서 둔중한 충격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선장은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그물 끊어!”
본능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순 없었으나 오랜 경험이 그런 판단을 내렸다.
그때였다.
콰작!
무언가 부서지는 굉음과 함께 배가 기울었다. 선장은 곧바로 선원들에게 외쳤다.
“퇴선! 퇴선! 구명조끼 챙…….”
목청이 찢어지라 외쳤으나 목소리는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순식간에 배가 쪼개지더니 선원들이 바다로 빨려 들어갔다. 선장도 차가운 바다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어군 탐지기에 뜬 대규모 물고기 떼의 모습을.
‘모, 몬스터…….’
그것이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