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914)
과거의 진실 (2)
그래야 자신의 할당량을 채울 수 있었으니까.
“그나마 학교에서라든가 범죄로 끌려간 사람들은 기록이라도 남지, 그렇게 길거리에서 끌려간 사람들은 기록도 안 남아. 공식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어린 피해자는 열두 살이네.”
열두 살. 고작 초등학교 5학년이다.
그 나이에 뭐 그리 큰 잘못을 했다고 끌려가서 그 고통을 받아야 했겠나?
“가난해서 구두닦이를 했다고 하더군. 그리고 그게 부자들의 눈에는 보기 안 좋았던 거지.”
“흠…….”
“그걸 그 당시에 검찰과 경찰은 엄청 악용했고.”
삼청 교육대에 끌려간 것은 남자만이 아니었다.
여자들 역시 끌려갔는데, 그곳에 끌려간 여자들은 상당수가 집단 강간을 당해야 했다.
저항하지 못하는 여자들이 끌려왔는데, 그들을 통제해야 하는 건장하고 무식한 놈들이 과연 발정이 안 났을까?
그러다가 임신이라도 하면 그냥 패 죽이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당시에 그들을 관리하던 조교들 중 일부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했지만 그 대가는 같은 조교에게 맞아서 병신이 되거나 간첩이라는 죄를 뒤집어쓰고 남산으로 끌려가는 것이었다.
불만분자를 포섭해서 국가를 전복하려고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애초에 진짜 범죄자들은 삼청 교육대가 아니라 재판을 받아서 교도소로 가는 형태였고, 경찰들은 범죄자를 찾는 게 아니라 자기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도리어 범죄자들을 추적할 시간이 없어서 그 당시에 범죄 추적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해야 했다.
당연히 범죄율은 무섭게 치솟았고 말이다.
“심지어 경찰이 무리한 요구를 해서 거부했더니 삼청 교육대로 끌려간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야.”
“무리한 요구요?”
“돈이나 잠자리 같은 것 말일세.”
경찰은 그 당시에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있었고, 그들의 말 한마디에 누군가의 인생이 끝날 수도 있었던 시절이었다.
“가령 네가 나랑 잠자리를 갖지 않으면 너의 남편이나 자식을 삼청 교육대로 끌고 간다는 식의 협박이 잦았던 모양이더군.”
노형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시스템이 효과가 있을 리가 없을 텐데요?”
노형진의 말에 피식하고 웃는 김성식.
“조두순과 조양은이 삼청 교육대 출신이네. 그거면 말 다 했지.”
“하긴.”
법조계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그곳에서 사망자가 얼마나 나왔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국가가 대놓고 사람을 죽여도 어쩔 수 없었던 그 시절.
하물며 강제로 끌려가서 실종된 사람이라면 국가에서 찾아 줄 리가 없다.
삼청 교육대는 한국의 킬링 필드였다.
“그냥 갑자기 사라졌다가 반병신이 되어 나타나서 삼청 교육대에 갔다 왔다고 하면 절망할 뿐이었지.”
“이번 사건도 그렇게 강제로 끌려간 사람이겠군요.”
“그럴 걸세.”
물론 삼청 교육대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배상 조건이 참 웃긴데, 그 당시에 삼청 교육대에서 고통받았다는 걸 피해자가 직접 증명해야 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법에 가까웠다.
더 웃긴 건 그 법이 진짜 보상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반동분자를 걸러 내는 데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보상해 준다고 하고는 자기 스스로 신고하도록 했는데, 그렇게 신고한 사람들은 경찰과 정부에 반동분자로 찍혀서 개정되지 않았다고 다시 괴롭힘을 당했던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그나마 재평가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극우 세력은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강간범에 살인마라며 자기 합리화를 멈추지 않고 있다.
공식적인 기록으로만 1만이 끌려갔고 비공식적으로는 10만이 넘을 거라 예상되는데, 그들이 어떻게 다 강간범에 살인마이겠는가?
심지어 여중생조차도 길거리에서 다툼을 했다고 경찰에서 삼청 교육대로 끌고 갔다는 기록이 있다.
“박덕화 씨의 동생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자료가 없는 모양인데. 박덕우 씨라고 했던가?”
“맞습니다.”
“공식적인 사망자 명단에는 없고…….”
공식적으로 삼청 교육대로 인한 사망자는 쉰네 명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삼청 교육대는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자들, 즉 사회적 잉여 인간의 처분 장소로도 활용되었고, 중년인이나 학생, 심지어 우울증 환자나 장애인조차 강제로 끌고 가서 하루 종일 구타와 가혹 행위 그리고 육체적 고통을 주기 위한 수많은 체조들로 괴롭혔는데 사망자가 고작 쉰네 명밖에 안 될 리가 없다.
“당장 그 당시 사람들이 증언한 것만 해도 수백은 넘고.”
어느 순간 사라진 사람들은 애초에 자료조차 없다.
그래서 그 당시 사망자가 천 명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뭐, 이탈하면 현장에서 총살이었으니까.”
삼청 교육대라고 하지만 특정 교육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국에 있는 군부대에 배치해서 훈련받게 했는데, 당연하게도 그 당시에 그걸 감시하던 것은 무장한 군인들이었다.
당시 규칙에 따라 이탈하려고 하는 자들은 무조건 총살이 인정되었기 때문에 이탈은 꿈도 못 꾸고,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런 실종 사망자들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기는 하죠.”
사실 그 가족들이 원하는 건 돈을 받는 게 아니다.
다만 죽은 가족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최소한 그들의 생사라도 확인하고 싶은 게 바로 가족들의 마음이다.
“하지만 쉽지 않을 거야.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역사에서는 상당히 예민한 문제가 아닌가?”
그 단시간 내에 발생된 피해를 생각하면 삼청 교육대는 러시아의 굴라그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다.
오죽하면 차라리 죽고 싶다고 자살을 했겠는가?
“그 자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네. 정권이 바뀌면서 깡그리 소각 처리해 버렸으니까. 더군다나 삼청 교육대의 조교 노릇을 한 건 그 사람들에게도 감추고 싶은 기밀이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도는 해 봐야지요.”
그런 일은 제법 많다.
당장 광주나 제주도에서 학살에 참여한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그들은 평생을 입을 다물고 살았다.
삼청 교육대도 마찬가지.
사실상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걸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흠…….”
“그래도 드러난 사람은 있지 않겠습니까?”
노형진의 말에 김성식은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드러난 사람이야 있지. 하지만 박덕우 씨에 대한 기억이 있지는 않을 걸세.”
이어 정색을 하고 경멸하듯 말했다.
“그 당시에 조교들에게 강제로 세뇌되다시피 한 건 끌려온 사람이 인간이 아니라 짐승, 아니 그 이하라고 하는 거였다네. 좀 독하게 말하면, 삼청 교육대는 사람들을 마루타 취급한 거지.”
그런 상황에서 이름을 불러 줄 리가 없다.
그들을 부르는 명칭은 당연히 번호였고, 개개인의 존엄성은 없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피해자들을 인격적으로 대해 준 소수의 조교들은 빨갱이라고 잡혀가서 모진 고문을 당했네.”
그러니 박덕우의 신변이나 이름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가 원하는 건 그 현장이 아니라 그곳에 있던 경찰입니다.”
“경찰? 아!”
박덕우는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잡혀갔다고 추정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지역별로 할당량이 떨어졌을 테니까, 그곳에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끌고 간 놈은 당연히 경찰이겠지요.”
“그렇군. 조교만 생각했지 경찰은 생각 못 했어.”
그리고 경찰의 근무 기록은 당연히 남아 있다.
그 지역의 관할 경찰서에서 추적이 가능하다면 당연히 의심스러운 자를 찾을 수 있으리라.
“좋아, 내 기꺼이 도와주지. 이런 역사의 그림자를 지우는 것도 결국은 우리 변호사들의 업무니까.”
김성식은 자신이 있다는 듯 말했다.
***
김성식은 노형진의 부탁대로 그 시절에 근무하던 경찰들에 대해 수소문을 했고, 그 결과 개중에서 그나마 믿을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지옥이었지.”
그 당시에 박덕우의 집을 관할하던 경찰인 상진택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때는 경찰도 매일같이 두들겨 맞았어.”
할당량이 정해져 있었고, 상부에서는 그걸 채우지 못하면 경찰을 끌고 가겠다고 협박을 했다.
“할당량은 매일같이 내려오는데 그걸 채울 방법이 없었지.”
“범죄자를 잡아서 보낼 수 있지 않았나요?”
“그러면 좋지.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나?”
수사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연히 그때는 지금처럼 과학수사도 없었고 CCTV도 없었다. 그냥 감과 경험으로 추적해야 하던 시기다.
“그러니 제대로 수사하기도 힘들었지.”
일반 범죄자 잡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국가에서는 경찰에게 어마어마한 숫자의 갱생 대상, 즉 삼청 교육대 대상자를 끌고 오도록 강제했다.
“그렇다고 아무나 잡는 것도 안 되고. 그 당시에는 부도덕한 경찰들이 참 많았지.”
일단 잡아 두고 삼청 교육대에 보낸다고 하면 집안에서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거기에 재미 들린 경찰들은 범인을 잡기보다는 돈 좀 있어 보이는 사람을 잡는 데 혈안이 되었었다.
어차피 그 시기에는 굳이 범죄자가 아니어도 교육 대상자만 끌고 가면 실적으로 인정되니 안되면 아무나 잡아가면 그만이었던 것.
“그 당시에 우리 반장은 두 달 만에 집을 사더군. 두 달 만에 말이야.”
상진택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러지 못해서 엄청나게 괴롭힘을 당했지. 서장실에 가서 뒈지게 맞기도 했네, 돈을 뜯어 오라고 했더니 제대로 뜯어 오지도 못하고 범죄자만 잡아들인다면서.”
“어이가 없네요.”
경찰의 존재 목적이 범죄자를 잡는 건데 그 시기는 그게 아니라 돈을 뜯는 게 목적이었다니.
“그러면 혹시 학생도 많았습니까? 중학생들요.”
“많았지.”
“그중에서 박덕우라는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박덕우라…….”
상진택은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하네만 전혀 모르겠네.”
“그의 집의 관할서가 이곳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여기에서 잡혀갔을 텐데요?”
“하지만 내가 그 당시의 일 대부분을 기억하거든. 특히나 학생 같은 경우는 말이지.”
돈에 눈멀어서 닥치는 대로 잡아 오는 놈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학생은 최대한 빼 주려고 노력은 했단다. 그게 노력만으로 끝난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그렇지.
“그리고 학생들은 대부분 돈이 안되니까 많이 잡아 오지도 않았어.”
그때만 해도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다녔다.
그래서 그 부모가 부자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기에 표적이 되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수량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그건 그렇지. 그렇지만 내 기억에 중학생은 없었어. 특히 박덕우라는 이름은 전혀 기억에 없네.”
“아…….”
노형진이 안타까운 탄성을 내지르는 그때, 상진택은 의외의 소리를 했다.
“그곳이 아닐지도 모르지.”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때는 말이지, 내가 부임한 곳은 가난한 동네였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할당량을 채운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는 거지.”
강제로 끌고 왔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사람들. 그러니 할당량을 채우기가 어렵지 않았던 곳이다.
“하지만 옆 동네는 부자 동네였네.”
“부자 동네요?”
“그래. 그 당시에 막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부자들이 모여들던 동네였다네.”
그런 곳은 반대로 섣불리 끌고 갈 수가 없다.
부자라는 것은 정부에 선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는 시대였으니까.
설사 선이 없다고 해도, 적당한 돈을 가지고 흔들면 선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