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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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해가 바뀌어 개의 6년(201) 봄, 천자 유총은 칙사를 보내 역적 이통을 토벌할 병력을 징발할 것을 명령했다. 형식은 칙명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원병을 청한 것이었다. 나는 칙사로 온 태부 공융과 환담을 나누고 그가 송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삼만의 병력을 들려주었다. 나는 중부교위 영자에게 이 병력을 맡기고 여남의 이통을 치도록 했다. 유총은 이 삼만 병력에 더하여 천병(天兵)이라 일컫는 천자의 병력 이만을 탕구장군 여대에게 맡겨 서부 여남으로 진격했다.
이통은 전의를 상실했다. 그는 개인의 영달도 중요하게 여겼지만 제 영지 속민의 안전을 우선으로 여기는 인물이었다. 오만의 병력이 낭릉으로 진격하자 이통은 싸움을 포기하고 유총에게 귀부할 뜻을 내비쳤다. 유총 또한 이통만큼 그 지역을 잘 다스릴 인물이 없는 관계로 그 귀부를 기쁘게 받았다. 유총은 이통의 처자식을 송경으로 소환해 볼모로 잡는 한편, 그를 여전히 중용하여 본래 다스리던 땅을 그대로 맡도록 했다. 여남태수에는 이미 고순이 있었으므로 여남을 분리하여 서여남군(西汝南郡)을 신설하고, 이통을 서여남태수에 임명했다. 삼만의 병력이 털끝 하나 상하지 않고 돌아오니 심히 기꺼웠다. 아직은 쌀쌀한 봄 날씨에 기어코 밖으로 나와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비비적거리며 아들 녀석이 몸 성히 돌아오기를 바라던 어미들은 군량이나 축내고 돌아왔다, 어메는 잘 있었냐 묻는 아들을 팔짝팔짝 뛰며 맞이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광경인가.
서여남에 천자의 깃발이 꽂히는 것은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훗날 위나라의 도읍이 되는 허창이 속한 고을이자 무수한 선비들을 배출한 영천군은 현재 공백지대였다. 유비도 덥석 그곳으로 진출하지 못했다. 신경 써야 할 전선이 지나치게 길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총이 서여남으로 진출해 영천을 바라보게 되니, 서여남의 유총은 유비를 견제할 훌륭한 말뚝이 되어줄 것이었다. 또한 낙양으로 진출할 꿈을 꾸는 병주의 원소를 제어할 포석 또한 가능했다. 나는 이통의 귀부가 완료되자 북부교위 왕수를 다시 송경으로 보내 천자의 덕을 찬양하고 새로이 영역을 넓힌 것을 축하했다. 유총은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는지, 태부 공융을 다시 보내 원정군을 사령했던 중부교위 손관에게 여강군의 곤향현(昆鄕縣)을 영지로 봉하고 곤향후라 부르게 했다. 어차피 여강군 곤향현은 나의 땅이었으므로 유총의 말은 생색내기에 불과했지만, 양쪽의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방증이 되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의 문턱에 접어들 무렵, 나는 가신들을 모으고 출병을 명령했다.
“정병 오만을 징발하여 영천으로 진격, 대장군부의 깃발을 꽂을 것입니다.”
량이가 내 생각에 동의했다.
“유비의 손발이 묶여 있으니 출병하기에 적기입니다.”
유엽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물었다.
“편제는 어떻게 하실는지요.”
“여남의 진등은 관우의 병력을 격멸하는 데 크나큰 공을 세웠으나 지금까지 마땅한 상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선봉을 맡겨 영천을 손에 넣으면, 진등을 허후(許侯)에 봉하고 영천태수를 더하여 공로를 기릴 것입니다. 합비에서는 서부교위 좌자를 주장으로, 남부교위 육의를 부장으로 하여 출병하도록 하지요.”
좌자는 노인 특유의 고집스런 입모양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육의는 제 실책을 만회할 기회를 얻어 눈을 빛냈다. 노인과 바다 조합이다.
영천은 빈 땅이어서 가는 중간 조우한 도적 떼를 토벌한 것 이외에는 별 다른 충돌이 없었다. 내가 영천을 점령하라 명한 것은 유비의 손발이 묶여있어 밖으로 뻗어나가기 수월하기도 하거니와 원소와 유비가 동맹을 맺은 고로 양측을 모두 견제하기 위해서는 영천이 꼭 필요했다. 그러나 내가 영천을 독식하면 천자 유총의 직할령은 내 영지에 갇히는 꼴이 된다. 이는 나와 유총 모두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내 영지에 유총의 직할령이 갇히게 되면 남은 것은 우리 둘 사이의 갈등과 충돌뿐이었다. 나는 영천의 동쪽을 점거하고, 북부교위 왕수를 송경으로 보내 천자와 일을 의논했다.
“합비공께서는 병력을 몰아 영천으로 북진하셨습니다.”
“그 일은 짐도 들었다.”
“영천을 정벌하는 일은 손쉬우나 합비공께서는 다만 황상을 두려워하셨습니다.”
합비공이 천자를 두려워한다는 말이 천자 자신이 들어도 우스워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어째서 두려워하는가?”
“영천 전역을 대장군부가 접수하게 되면 천병이 뻗어나갈 곳이 마땅하지 않으니 감히 그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정은?”
“마땅히 영천 서부로 천병을 보내신다면 그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라 하였습니다.”
영천의 서쪽은 제국의 고도(古都)인 낙양과 맞닿아있었다. 낙양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방향을 잘못 잡은 메뚜기 떼가 황폐한 전답에서 날개만 비비다가 굶어 죽어버렸고, 그 무수한 주검들이 겨울의 건조한 공기에 바싹 말랐다가 봄의 따사로운 햇살에 바삭바삭 익어 가루가 되어버렸다. 분말이 된 메뚜기 떼의 주검이 낙양 전역을 안개처럼 자욱한 바, 분해된 단백질의 고소한 냄새가 낙양에 그윽하다는 풍문이었다. 이렇듯 폐허가 된 고도는 재건하는 비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투입되어야 하며 여러 세력들이 넘보는 터, 서로 눈치를 보느라 여태 공백지로 남아있었다.
영천의 서쪽을 천자에게 내주겠다는 것은 낙양을 주겠다는 의미와 같았다. 다른 제후들보다도 천자에게 낙양은 각별했다. 무너진 궁중을 재건하고 당당히 남면하여 뭇 제후를 호령하는, 그야말로 하늘의 아들다운 면모를 뽐내는 것이 유총의 비원이었다. 이러한 합비공의 포석은 유총의 환심을 얻음과 동시에, 병주와 맞닿은 낙양을 유총에게 얻게 함으로써 원소의 세력을 제어하게 하려는 의중이었다. 합비공 스스로는 유비와의 결전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뜻이었다.
“좋다. 영천의 서쪽으로는 천병을 보내겠다. 합비공에게 전하라. 제법 배포 있는 배려에 천자가 심히 기꺼워했노라고.”
왕수는 절을 올리며 그 명을 받들었다.
“황감하신 말씀, 반드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천자는 이통의 직속 병력 오천에 더하여 장군 반장에게 병력 이만을 맡겨 영천의 서쪽을 점거했다. 시야가 맑은 날에는 낙양의 쓸쓸한 윤곽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 천자 유총이 마침내 영천까지 진출하자, 감히 폐허 낙양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선비들이 많은 영천에 머물러 있던 선비들이 몇몇 사관하기를 청했다. 화흠(華歆)과 관녕(管寧), 왕랑 등 업도로 천도할 때 따르지 않았던 조정의 늙은 신하들이 유총을 알현하고 벼슬을 받았다.
남양군과 장안군을 점유하고 있던 장제는 병력을 보내 장안의 동쪽, 낙양의 서쪽인 홍농군(弘農郡)을 점령했다. 이로써 낙양을 사이에 두고 원소, 장제, 유총이 솥발의 정세를 이루었다. 세력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던 공백지에 점점 막대한 병력이 주둔하기 시작하니 긴장이 팽배해졌다. 지진을 미리 감지한 연못의 메기가 물 밖으로 나가려 지랄을 하듯, 각 제후들의 접경지대에 살던 백성들은 살림살이 전부를 보자기 하나에 넣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영천도 얻었겠다, 유비를 치기에 적기입니다.”
백각교위 가후가 나에게 말했다. 가후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나는 출병의 패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내가 태연한 척 하고 있어서 그렇지, 하루 빨리 유비의 본거지인 담성을 무너뜨리고 그 교활한 얼굴을 짓뭉개고 싶었다. 그는 내 빙부 원술을 독살한 장본인이자, 내 아내 시영의 아비와 일족을 빼앗은 자였다. 원요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키게 한 장본인이며, 강동의 손책이 멋대로 수춘을 짓밟도록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런 유비가 지금은 호되게 얻어맞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가후의 진언은 적절했다. 장제와 유총으로 원소의 발목을 붙잡고, 오군의 제갈근, 단양의 장패, 여남의 장료와 고순, 영천의 진등에게 일제히 진공을 명령하며 형북의 노숙과 형남의 아버지 제갈현에게 원활한 보급을 당부하고 합비의 중앙군을 대거 휘몰아쳐 북으로 향한다면 유비가 당해낼까 싶었다. 아마 어려울 걸. 북쪽의 조조도 그 호기를 놓치지 않을 테니까.
병력 상황을 점검하고 물자의 충분을 논하며 슬슬 북벌의 잔불을 지펴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꼭 사람 일이 마음먹고 벌이려면 글러버리고 만다는 것이 인생의 이치인가 보다. 뜻밖의 변수가 서쪽에서 발생했다.
남양에 덩그러니 남은 장제는 불안감에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그의 전략을 도맡아 처리하던 가후는 인질로 합비에 억류된 것에 더하여 심지어 그곳에서 벼슬까지 받고 합비공의 충실한 부역자노릇을 자청해서 하니 장제로서는 미칠 지경이었다. 장제는 불안감을 씻지 못하고 합비의 가후에게 여러 차례 밀사를 보냈으나 답신은 오지 않았다.
장제의 상황은 결코 녹록하지가 않았다. 장안의 바로 서쪽에는 관중십장의 우두머리인 마등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은 막강한 기병력을 기반으로 무서운 속도로 세를 불리고 있었다. 특히 마등은 한중에 주둔하면서 유장의 익주와 장제의 장안을 번갈아 살펴보고 있었다.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면 곧장 밀고 들어가겠다는 태도였다. 게다가 동쪽에는 낙양을 사이에 두고 관동삼제후의 일각인 원소가 있었다.
그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은 남쪽 경계와 맞닿아있는 천자 유총의 직할령이었다. 제갈찬이 지어준 송경의 작은 궁중에 붙어있을 따름이었던 그가 강하군 전역을 차지하더니, 여남 서부를 석권하고 이어 영천의 서부를 얻으니 이제 장제 본인의 세력보다 더욱 강성해졌다. 천자는 의욕적으로 세력팽창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의 영지는 동쪽, 남쪽, 서쪽은 모두 제갈찬의 영지에 둘러싸여 있고 오로지 북쪽만이 그가 나아갈 방향이었다. 헌데 북쪽에는 고도 낙양과 장제 자신의 영지가 존재했다. 만일 천자가 낙양으로 진출한다면 장제는 더 나아갈 길이 없이 고립될 것이었고, 원소와 접경할 것을 껄끄러워한 천자가 남양을 과녁으로 삼으면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합비공이 그와 표면상의 동맹을 체결했다지만 그것은 순전히 필요에 의한 동맹일 따름이요, 형주 평정이 완료된 이 시점에서 장제의 가치는 그다지 크다고 할 수는 없었다. 유총이 세력을 불리며 제갈찬의 서쪽을 단단히 받치고 있으니 이제 장제는 없어도 괜찮은 동맹이 되었다.
평서장군의 벼슬과 완후의 작위가 때려죽일 역적 수괴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여반장(如反掌)이었다. 만일 유총이 남양으로 진출하겠다고 공언하면 합비공이 무어라 하겠는가. 황상, 장제는 황상의 충직한 신하이온데 어찌 그를 치려하십니까. 부디 재고해주시옵소서. 말이라도 그렇게 할까?
“천만에……”
제갈찬이 먼저 장제를 역적으로 선포하고 천자에게 쌀을 퍼다 날라줄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 소용이 없는, 도리어 원수 같은 동맹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다른 쪽에 붙어야지……”
장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손가락에 냉기가 깃들어 장제는 손을 비볐다.
그는 휘하의 맹장 호거아(胡車兒)를 불렀다.
“너, 한중에 좀 다녀와야겠다.”
어깨가 떡 벌어진 장골 호거아는 주군의 당부에 우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등을 만나면 되는 것입니까.”
“그렇다. 이 서찰을 전해주면 된다.”
장제는 품에서 서찰을 꺼내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호거아는 그것을 받들었다.
“서둘러 가라. 혹 천자나 제갈찬의 눈이 심어져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도록 하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겠습니다.”
호거아는 노복 둘만 거느린 채 빠르게 완성의 서문을 박차고 나섰다. 호거아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그가 서쪽으로 부리나케 달려가는 것을 누군가는 보았다. 서문을 지키는 경비병은 번을 교대할 때가 되자 뻐근한 목을 좌우로 까딱거리더니 막사로 향하지 않고 성의 어두운 곳으로 향했다.
‘장군 호거아, 서쪽을 향해 출성(出城)’
죽간에 쓴 글을 경비병은 바닥에 파묻었다. 새벽에 누군가 와서 그것을 파내 동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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