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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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노란 샤쓰 입은
조조는 표정의 변화 없이 글 읽기를 마쳤다. 그것을 곱게 접어 하후연에게 건네니 하후연은 바로 옆에서 수발을 들던 문사에게 그것을 주었다. 문사는 조심스레 받들어 수많은 죽간들 사이에 쌓아놓았다. 이제 저 글을 조조가 다시 보는 일은 없다는 뜻이었다.
조조는 등받이에 몸을 쭉 펴며 나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이윽고 김이 오르는 차가 준비되었다. 조조는 잘 알려진 문화인이다. 그는 아들 조비·조식과 함께 당대의 문학을 끌어올린 건안칠자(建安七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나도 그가 쓴 시가인 단가행(短歌行) 중 한 구절을 즐겨 읊곤 했다.
對酒當歌 술잔 마주하여 노래한다.
人生幾何 인생은 얼마나 되나.
譬如朝露 비유하건대 아침이슬 같은 것,
去日苦多 지난날 고생 많았지.
慨當以慷 슬퍼 탄식하여도
憂思難忘 근심 못 잊네.
何以解憂 근심 어이 풀까,
唯有杜康 오직 술뿐이로세.
고단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김 몇 장에 소주를 마시면서 단가행을 중얼거리면 소주의 달고도 쓴맛이 최고조로 우러나오곤 했다. 나는 조조를 앞에 두고 속으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댁 덕분에 하루하루 잘 버텨냈어. 고마워요.
내가 차를 몇 모금 마시자 조조가 닫았던 입을 열었다.
“태산의 장선고가 우리의 편의를 봐준다니 내칠 까닭이 없는 말이오.”
호의적인 반응에 나는 마음을 한결 편히 할 수 있었다. 조조도 차로 목을 적셨다.
“그래, 우리가 서주를 박살내는 동안 장선고는 어디를 노릴 참인가.”
폐부를 찌르는 말에 나는 말을 잃었다.
“청주인가? 전해가 서주를 구원하면 청주의 목덜미를 움켜쥘 참이지.”
조조는 주저 없이 맥을 짚었다. 덤덤한 말투로.
“…아직 아무것도 결정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가.”
아무 변동 없는 얼굴 뒤에 무엇을 숨겼는지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나에게 차 한 잔을 더 권했지만 나는 서둘러 그의 면전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조조는 말린 생선과 비단 몇 필을 끊어 건네주었다. 조조의 상장 악진이 나와 영자를 호위하여 노국과 태산의 경계까지 수행해주었다. 악진은 키는 작지만 다부진 인상이었다.
그의 휘하는 군율이 엄정하고 병사들의 결기가 살아 있었다. 비록 노구가 오천의 병력을 이끌고 있다지만 조조 같은 유력한 전국제후에는 역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새삼 통감했다. 한낱 사자를 후히 대접하고 호위까지 붙여주는 호의를 보여주면서도 자신의 속내는 털끝만큼도 보여주지 않는 조조가 두려웠다.
나는 노구에게 회담의 결과를 알려주었고, 노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조의 진격은 거침없었다. 노군에서 출병한 조조는 순식간에 동남방으로 진군하여 도겸의 성 십 여 개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서주는 공황상태에 빠졌고, 도겸은 담성(郯城)에 전 병력을 배치하고 대규모의 농성준비를 마쳐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다. 서주 제일의 군재라던 조표는 연전연패하여 거지꼴이 되었다.
조가사준의 기량은 서주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는데, 이곳 태산까지 발 없는 말을 타고 그들의 활약상이 생생히 전달되었다. 하후묘재가 선봉에서 사흘 만에 서주의 성 다섯 개를 공파하였다. 하후원양이 기병대를 우회하여 도겸의 본진을 타격, 서주의 본영이 지리멸렬했다. 조자렴이 도겸의 어깻죽지에 화살을 쏘아 맞혔다. 조자효가 단기필마로 나서 도겸의 상장 여유(呂油)의 목을 베었다. 조조가 풀어놓은 네 마리의 사냥개는 서주를 일말의 자비심도 없이 물어뜯었다.
예상대로 청주의 전해가 평원상 유비를 대동하고 급히 서주로 기동했다. 우리는 산채의 전 병력을 털어 북진했다. 태산태수 응소는 이천의 병력은 남겨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비록 전해의 본영이 서주로 출병했다지만 오천 병력으로도 쉽사리 꺾지 못할 것이었다. 헌데 오천의 병력을 더 쪼갤 수는 없었다. 우리는 응소를 잘 달래고 오천의 병력을 이끌고 청주로 향했다.
청주의 상황을 한 단어로 압축하면 혼란이었다. 청주에서 가장 큰 세를 떨치는 이는 북해상 공융도 아니고 공손찬의 괴뢰자사인 청주자사 전해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황건 잔당의 세력이 가장 융성했다. 바로 작년에 황건의 맹장인 관해가 북해의 공융을 공격했다가 평원상 유비의 원호로 대패하긴 했지만, 여전히 황건의 세력은 막강했다. 훗날 조조의 강병으로 일컬어지는 청주병은 다름 아닌 이들 중 출중한 이를 선발하여 구성한 부대였다.
삼국지 정사에는 원소가 청주를 잠식하고 자신의 맏아들 원담(袁潭)을 청주자사로 파견했는데, 그때의 기록이 이렇다. ‘원소가 원담을 청주자사로 명하여 보내니 당시 청주에 주인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열렬히 환영하였다.’
말 그대로, 청주는 주인이 없었다.
노구는 오백의 기병을 암노에게 맡겨 이끌게 하고, 좌익은 노아에게, 우익은 영자의 형인 손강에게 맡겼다. 손강은 영자의 형이긴 하지만 문무의 자질이나 외모가 범상해서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다. 노구는 나와 영자를 참군으로 삼아 중군을 맡았다.
청주는 여섯 개의 군국으로 이루어졌다. 제국, 평원국, 동래군, 제남국, 낙안국, 북해군이 그것이다. 이 당시 유비의 직책이 평원상으로서 평원을 점유하고 있었고, 제국에 청주의 치소인 임치가 있었으므로 이곳이 전해의 본거지였다. 북해국은 북해상 공융이 다스리고 있었으며 그 이외에는 이러저러한 황건 잔당이나 군소 토호들이 점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태산과 인접한 청주의 최남단인 제남에 당도했다. 황건의 난이 극심했을 때 조조가 그곳의 상으로 있었는데, 이후 황폐해져 쇠약한 황건의 잔당이 약소한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제남의 중심지는 동평릉현이었다. 동평릉현의 현령은 이미 황건에 의해 목이 잘렸고, 그곳은 황건의 장수인 사마구(司馬具)와 서화(徐和)가 다스리고 있었다. 선봉에 섰던 암노가 중군으로 돌아와 정탐의 결과를 알려주었다.
“대장, 제남의 병력은 도합 사천. 사마구와 서화라는 녀석이 웅거하고 있어.”
“숫자놀음으로는 비등한 세력이렷다.”
노구는 깊은 신음을 토했다. 나는 올라탄 말의 허리를 얌전히 걷어차 그의 앞으로 나섰다. 나도 제법 승마술을 깨쳐 말을 타고 원정을 나갈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저들은 욕망이 없는 자들이야.”
영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욕망이 없다니.”
“욕망은 없되 욕구만 남은 자들이다.”
영자는 조금이라도 어려우면 귀를 닫아버린다. 그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려운 얘기를 좀 해볼까. 헤겔은 이렇게 말했다. 욕구는 주체에 있어서 무언가가 결핍된 상태다. 욕구는 다만 욕망의 전제일 뿐, 욕구의 주체와 욕구의 대상인 객체가 분열되어 있다. 그러나 반면에 욕망이란, 욕구를 통해 느끼는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주체의 활동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체와 욕망의 대상인 객체의 분열을 극복하고 그것의 통일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려운 얘기를 더 쉽게 말해보자. 사흘 밤낮을 굶주려 자취방 안에서 치킨을 먹고 싶다고 외치는 것은 다만 날 것의 욕구일 뿐이다. 마침내 치킨을 먹고자 하여 치킨집에 전화를 하는 행위, 그것으로부터가 바로 욕망인 것.
사마구와 서화,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황건의 잔당들. 그들은 다만 배고프고 지친 자들. 한없는 생존의 욕구만을 느끼지만 그들은 제남에 웅크릴 뿐 그 무엇도 하지 않는다. 겨우 백성들의 양식을 좀먹고 강간을 할 뿐이다. 그것은 욕구를 배설하는 단발적인 미봉책일 따름. 그들은 욕망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전국제후와 황건잔당의 극명한 차이다.
제후들 중 형편없는 자질로 손꼽히는 원술만 해도 그렇다. 그는 욕망이 있다. 그렇기에 조직적인 군사를 일으켜 조조를 치고 황제를 채근하여 관작을 뜯어낸다. 흑산적의 장연과 연합하기도 하고 도겸을 부추겨 조조의 뒤통수를 치게 하기도 한다. 계책을 쓴다. 중원통일의 장대한 야심부터 일개 군을 번성시키려는 편협한 야심 모두 욕망이다. 아무리 조악한 욕망이라 한들 다만 추위를 피하고 굶주림을 면하려는 욕구와는 명백히 다르다.
황건은 쉽게 꺾일 것이다. 그들의 정신을 빼놓은 후 양식을 나눠주고 거친 옷이나마 입혀준다면 그들은 그대로 누런 두건을 벗어던지고 양순한 민중으로 돌아갈진저.
나는 노구에게 말했다.
“과감히 돌파하여 사마구와 서화의 모가지를 따는 거야, 대장. 그러면 제남은 그대로 대장의 땅이야.”
사마구와 서화, 그들이 칼 한 자루로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장패의 상대가 될까? 나는 복잡한 셈법을 거치지 않고 쉽게 답을 찾았다.
“장패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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