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NBA RAW novel - Chapter 112
웰컴 투 NBA 112화
#112. 하이엔드 3&D
헤일 메리 패스라는 스포츠 용어를 아는가?
미식축구에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 시도하는 슈퍼 롱패스를 일컫는 말로, 성모 마리아에게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던지는 패스라는 의미다.
한국어로 표현하면 하느님 부처님 단군왕검님 제발요 패스 정도가 되려나.
성공하면 단번에 터치다운이지만.
백 번 시도해 한 번이나 성공할까 말까 한 마지막 발악.
지금 휴스턴 로키츠가 처한 상황이 바로 헤일 메리 패스를 던져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 4쿼터 11:59
[블레이저스 114 : 111 로키츠] [4쿼터 남은 샷클락은 불과 0.9초. 마지막 공격권은 로키츠의 손에. 트레버 아리자, 인바운드 패스를 준비합니다.]하든이 내 어깨를 꾸욱 짓누르며 도망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연장으로 가려면 무조건 3점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
역시 마지막 버저비터를 쏠 선수는 에이스인 하든, 또는 크리스 폴이겠지.
‘뭐, 솔직히 넣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0.9초면 천하를 훔칠 수도 있는 시간…….
아니, 마지막 버저비터를 시도하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얌전히 놔둬서는 안 되겠지.
[킴을 거세게 뿌리치고 3점 라인으로 달려 나오는 하든! 반대편에선 크리스 폴이! 카펠라의 스크린이 킴을 가로막습니다!]아니, 방금 밀친 건 120% 파울이잖아!
‘아무리 클러치 상황이라고 해도 이런 것까지 못 본 척하고 넘어가다니.’
나는 필사적으로 시선을 다른 데로 향하는 심판을 맹렬히 쏘아보았다.
하여간 사무국의 충실한 마리오네트 같은 놈들.
여기서 하든이 기적적인 버저비터를 성공시켜 영화 한 편 찍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
[하든, 패스를 받자마자 3점! From corner!]하지만 뭐…… 기적 따윈 벌어지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지.
0.9초면 거의 엘리웁 버저비터 러닝 3점을 쏴야 하는데, 그게 들어갈 리가 있나.
‘그건 조던도 못 넣을걸.’
결국 하든이 어정쩡하게 던진 공은 림을 스치지도 못하고 코트로 떨어졌다.
[114 대 111. 숨 막히는 혈전이 블레이저스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로키츠 선수들이 고개를 떨구는군요.] [카메라가 악수를 나누는 제임스 하든과 시온 킴의 모습을 비춥니다. 오늘의 최다 득점자는 38득점의 데미안 릴라드였지만, 아마 사람들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을 장면은 분명 이 둘의 맞대결일 겁니다.]“제임스, 좋은 경기였어요.”
“…….”
아무 말이 없네.
설마 화내려나?
“……잘했다, 루키. 계속 이렇게만 하라고.”
“하하. 고마워요.”
하든은 의외로 흔쾌히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심지어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며 자신의 번호까지 알려 줬을 정도.
‘참 속을 알기 힘든 타입이라니까.’
뭐랄까.
내가 동료들에게 전해 들은 하든이란 사람의 성향은 철저한 개인주의자에 가까웠다.
거만하고 갑질이 심한 것도 사실.
다소 이기적인 면이 있으며 언론 플레이를 많이 하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팀메이트로선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이렇게 말하면 순 인간쓰레기 같지만…….’
놀랍게도 이 정도면 소위 말하는 ‘NBA 슈퍼스타’ 중에선 중하위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최소한 사람은 안 패잖아. 범죄도 안 저지르고.’
그러면 일단 최악은 피한 거지.
우리 릴라드, 맥컬럼이나 덴버의 요키치 같은 선수들이 이상할 정도로 젠틀한 친구들이라서 그렇지, 다른 구단에서 슈퍼스타들이 벌이는 갑질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어휴. 왜들 그러나 몰라.
우리 릴라드를 봐.
앨범 잘 뽑혔다고 칭찬 몇 마디만 해 주면 항상 해피하잖아.
“우리 저우치하고도 인사 좀 나누라고. 네게 꼭 말을 붙이고 싶어 하는 모양이던데.”
“아, 그럴게요.”
“그래. 그럼 다음엔 휴스턴에서 보자고.”
내 어깨를 툭 두드리고 멀어지는 털보 양반.
그런 하든에 대한 몇 안 되는 호평이 자기 사람은 잘 챙긴다는 것.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기준에 든 사람은 끔찍하게 잘 챙기는 타입이라던데.
그렇다면 나도 이걸로 하든의 ‘안중에 든’ 사람이라는 인증을 받은 건가?
‘괜히 뿌듯해지네.’
그렇게 생각하며 씩 웃음을 짓고 있는데, 사이드라인 리포터가 내게 다가와 마이크를 내밀었다.
“승리 축하합니다, 킴! 엄청난 명승부였네요!”
“하하. 고마워요, 마리아.”
사실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흘러갈 게임이 아니었다.
3쿼터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98대 81로 우리가 상대를 압도하고 있었거든.
“4쿼터에 데미안 릴라드가 발목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는 깜짝 놀랐어요. 발목 상태는 괜찮은 건가요?”
“글쎄요. 다시 출전한 걸 보면 가볍게 삔 것 같은데…… 저도 걱정이네요.”
이게 문제였다.
3쿼터 종료와 동시에 발목을 접질린 릴라드는 절뚝거리며 벤치로 향했고.
약 7분간 발목에 얼음 팩을 대고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하든과 폴은 릴라드 대신 투입된 샤바즈 네이피어를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렸고.
급히 다시 출전했지만 발목이 정상이 아닌 릴라드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우리를 추격해 왔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원 포제션까지 점수 차를 좁히며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을 정도.
‘3쿼터까지 점수 차이를 벌려 놓지 않았다면 정말로 대역전을 허용했을지도.’
이게 MVP급 선수들의 저력이라는 건가?
상대의 약점을 포착하면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처럼 집요하게 달려드는 모습.
확실히 휴스턴 로키츠는 무서운 상대였다.
“그것 때문에 데임이 볼멘소리를 내더라고요. 제 기록을 깰 기회를 날렸다고.”
“다음엔 꼭 깰 거야!”
내 뒤편에서 그렇게 소리치며 지나가는 릴라드.
그 익살맞은 모습에 나와 마리아는 나란히 웃음을 터트렸다.
“경이로운 수비 퍼포먼스였습니다, 킴. 이번 시즌의 시즌 MVP를 따 놓은 당상이라고 평가받는 하든을 경기 내내 완벽히 봉쇄하셨는데. 하든을 상대한 감상이 어떠셨나요?”
“어휴. 죽는 줄 알았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완벽 봉쇄란 표현을 쓰긴 좀 그러네요. 결과적으로 28점이나 넣었으니까.”
“그렇다면요?”
“그냥 잘 버텼다 정도? 제가 하든을 이겼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듭니다. 오늘은 어디까지나 팀 대 팀으로 이긴 거죠.”
“그래도 엄청난 일이잖아요. 무려 그 제임스 하든인데요!”
“하하. 오늘은 기선제압을 했다고 치죠.”
그래. 오늘은 어디까지나 전초전에 불과하다.
휴스턴 로키츠와는 매 시즌 3~4번씩 맞붙어야 하는 관계니까.
그리고…….
우리가 지금의 기세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분명 더 높은 무대에서 맞붙게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승리는 분명 값진 성과였다.
◎ 경기 결과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114 : 111 휴스턴 로키츠] [Sion Kim – 39min] [16PT 3AST 9REB 5STL 3BLK] [FG 6/11(54.5%) 3PT 3/6(50.0%) FT 1/1(100%)]* * *
블레이저스 대 로키츠 경기가 끝나고.
김시온의 활약은 한바탕 리그를 뒤집어 놓고 말았다.
지금껏 그 누구도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 제임스 하든 수비법.
그 해답에 가장 근접한 장면이 나온 날이었으니까.
당연히 플레이오프에서 휴스턴 로키츠를 만나야 하는 서부 컨퍼런스 팀의 전력 분석관들 또한 눈에 불을 켜고 김시온의 수비 영상을 분석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틀어막은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김시온만큼 하든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데 성공한 선수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 이걸로는 안 되겠는데요.
– 뭐?
그래서 나온 결론은.
– 이건 참고 대상이 못 돼요. 정답을 안다 해도 수비 플랜을 실행할 선수가 없어서 못 따라 할 겁니다.
– 어느 정도 도움은 되지 않겠나?
– 왼손잡이인 하든의 스탭백을 봉쇄해라. 슈팅 파울 유도에 넘어가지 말아라. 파워와 민첩성, 사이즈라는 삼박자를 갖춘 윙 디펜더를 붙여라. 이걸 누가 몰라서 못 합니까? 그런 수비수가 없어서 못 막는 거지.
민첩성, 파워, 사이즈는 기본이고, 경이로운 스태미나와 스크린을 피해 다니는 기술을 겸비한 최상급 윙 디펜더만이 실행 가능한 수비 플랜.
이는 대부분의 팀에겐 알고도 따라 할 수 없는 전략이었다.
– 생각해 보십쇼. 지금 리그에 이런 수비가 가능한 윙 디펜더가 몇 명이나 있죠?
– ……글쎄. 생각나는 이름이 몇 없군.
– 그나마 떠오르는 선수들도 다들 나이가 많은 선수들이죠? 그 노땅들이 경기 내내 이랬다간 10분도 못 가서 스태미나가 방전될 겁니다. 베테랑의 노련함과 젊은이의 체력을 겸비해야만 한다는 소리인데, 그런 수비형 윙이 어디 흔합니까?
– …….
– 이게 가능한 젊은 수비수를 데려올 거면 맥스 계약은 줘야 할 겁니다. 트레이드라면 기둥 하나를 뽑아야 할 거고요.
떠들썩해진 것은 TV의 전문가들도 마찬가지.
당연히 TNT의 코너 1위 역시 김시온의 차지였다.
“이거 보세요. 스탭을 완벽히 따라붙으며 가슴 범핑으로 속도를 죽였죠. 여기와 여기. 두 번 페이크를 시도했지만 넘어가지 않고 블락까지!”
“오우. 완벽한 수비였습니다.”
킴의 수비 장면을 몇 번이고 반복 재생하며 심층 분석하는 패널들.
보통 수비에서의 활약상은 눈에 띄는 블락, 스틸을 제외하면 한눈에 대단함을 알기 어렵지만, 지금처럼 대인수비에서 원맨쇼를 펼친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솔직히 말할까요? 제 생각에 킴은 이미 리그에서 두 번째로 뛰어난 3&D 선수입니다.”
“뭐?”
“컴온, 케니. 그건 좀 과장 아닌가요?”
처음에 다른 패널들은 케니 스미스의 말을 가볍게 받아넘겼지만.
“아니. 이건 진짜라니까? 숫자를 좀 보라고요.”
지난번에 제대로 망신을 당한 케니 스미스는 구체적인 통계를 근거로 내밀었다.
탁!
화면에 현재 NBA에서 활약하고 있는 주요 3&D 선수들의 스탯이 떠올랐다.
“킴은 아마 3점 슛 성공률이 35%만 되어도 컨텐더 팀의 주전으로 뛸 수 있을 거예요. 그만큼 수비에서 제공하는 가치가 어마어마하니까.”
“그건 그렇지.”
“그런데 지금까지 킴의 3점 슛 성공률이 어떻죠? 무려 41.1%입니다! 그것도 경기당 2.5개를 성공시키면서!”
화면에는 효율과 볼륨을 X, Y 축으로 나타낸 그래프가 떠올라 있었다.
볼륨과 효율 모두 클레이 탐슨이 독보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었고.
그다음이 김시온.
로버트 코빙턴, 트레버 아리자, 제이 크라우더, 웨슬리 매튜스 등등, 리그의 내로라하는 3&D 롤플레이어들은 그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이 친구는 하이엔드(High End. 최상급) 3&D예요. 보세요. 지금 클레이 탐슨을 제외하고 3점 슛 성공률 40%에 경기당 2.5개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3&D가 누가 있죠?”
“……한 명도 없군요.”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A급 3&D라고 평가받는 트레버 아리자, 로버트 코빙턴, 웨슬리 매튜스가 37%에 2.5개 정도고, 그나마 작년에 제이 크라우더가 반짝하며 39.8%에 2.2개를 기록했지만 이번 시즌은 32.8%로 추락했죠. 에릭 고든은 볼륨은 3.2개로 1위지만 확률이 36%고요. 지금 NBA에서 시온 킴만큼 고효율, 고볼륨으로 3점을 넣어 주고 있는 전문 3&D는 탐슨밖에 없다는 소립니다.”
“케니, 그렇다면 탐슨의 이번 시즌 성적은 어떻죠?”
“성공률 44%에 평균 3.1개 성공입니다.”
그 압도적인 효율과 볼륨에 혀를 내두르는 패널들.
“혼자서 급이 다르긴 하네.”
“커리에 가려져서 그렇지, 그 친구도 독보적인 수준이라니까.”
탐슨이 혼자서 천상계에서 놀고 있다면, 김시온은 인간계 최상위권은 된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킴이 루키 시즌을 보내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탐슨은 루키 시즌에 41%에 1.7개를 성공했어요. 평균 출전시간을 킴과 똑같이 32분으로 환산하면 2.2개죠.”
“수비력은? 탐슨의 루키 시즌 수비력은 어땠지?”
“탐슨? 그 친구도 루키 시즌부터 수비가 좋긴 했지. 하지만 지금 킴에게는 명함도 못 내밀어. 지금 킴은 디펜시브 팀을 거론해야 하는 레벨이라고.”
NBA 역사상 3&D 분야의 GOAT라고 평가받는 클레이 탐슨.
그 탐슨의 루키 시즌과 비교했을 때 3점과 수비 양쪽 모두 앞선다는 이야기였다.
“이거 재밌네요.”
옆에서 조용히 케니의 의견을 경청하던 찰스 바클리가 이야기를 넘겨받았다.
“1998년 데뷔한 팀 던컨 이후로 루키가 디펜시브 팀에 선정된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NBA 레벨의 선수를 막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경험을 갖춰야 하는데, 그건 루키가 갖추기 어려운 요소니까요.”
“하긴. 루키는 수비에서 구멍만 되지 않아도 다행이라는 말이 있으니까.”
“자, 하나씩 뜯어 보자고. 루키가 디펜시브 팀에 선정된 사례는 역사상 5명밖에 없었어. 카림 압둘 자바, 하킴 올라주원, 마누트 볼, 데이비드 로빈슨, 팀 던컨. 전원 예외 없이 빅맨이었지.”
훗날 뉴올리언스 펠리컨즈의 루키 허브 존스가 어마어마한 수비력을 보여 주며 유력한 디펜시브 팀 후보로 거론되긴 했지만.
다른 내로라하는 선수들에게 밀려나며 아깝게 수상에 실패하게 된다.
그만큼 루키 시즌에 디펜시브 팀에 선정되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다음 상대는 듀란트인가?”
“그 팀의 앞선 수비력을 생각하면? 킴 혼자서 커리, 탐슨, 듀란트를 전부 막아야 할걸.”
샤킬 오닐의 유머에 빵 터지는 패널들.
“좋아. 한 가지 가정해 보자고. 킴이 워리어스를 상대로도 좋은 활약을 보여 준다면?
“그때는 더는 누구도 킴의 레벨을 의심할 수 없게 될 거야. 그쯤 되면…… 디펜시브 팀보다 더 의미 있는 이야기가 거론될지도 모르지.”
“설마 올-NBA?”
“아니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고.”
찰스 바클리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올 디펜시브 팀은 시즌이 끝난 뒤에 선정되잖아. 그것보단 올스타가 먼저겠지.”
“아하. 그러네.”
루키 시즌에 올스타로 선정된 사례는 09-10 시즌의 블레이크 그리핀이 마지막이었다.
시즌 초에 누군가가 김시온의 올스타 가능성을 언급했다면 분명 웃음거리가 되었을 테지만.
지금 Inside the NBA의 크루 중에서 바클리를 비웃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는 모두가 진지하게 가능성이 있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올 디펜시브 팀. 그리고 올스타라…….”
패널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스크린에 블레이저스의 다음 스케줄이 떠오른다.
김시온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맞이해야 할 다음 상대.
농구 역사의 한 시대를 풍미한 왕조.
바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