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134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134화
극한을 향하는 남자(7)
인간 악기를 구하는 과정 자체는, 스승을 모집할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지원 의사를 내비친 사람을 추려서 한데 모아서 실력을 보는 것뿐.
굳이 차이점을 꼽자면, 스승 모집과 달리 인터넷에 ‘공고’를 한 것이라 순식간에 화제가 되었다는 점 정도일까.
‘거슬리는 기사가 몇 있기는 했지만.’
원래 빠가 생기면 자동으로 까도 생기게 마련 아니겠는가.
적대적인 포지션의 언론사들은 ‘사람을 도구 취급하다니 몰상식하다’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그리고 원래 그런 기사 쪽이 훨씬 주목이 끌리는 법이고.
물론 실제로 나에게 타격으로 이어졌느냐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았지만.
-ㅋㅋㅋ 기자 수준. 누가 보면 강제 동원령 내린줄 알겠슴.
-진짜 음주를 싫어한다면 이런 글을 안 쓰는게 훨씬 나을 텐데 ㅋㅋ 음주는 어떤 형태로든 ‘관심’을 받으면 그걸 200퍼 활용하는 인간임.
말마따나 그랬다.
빠와 까가 뒤엉켜 벌어진 난장판 덕분에, 순식간에 수많은 관심이 몰렸고, 동시에 지원자도 많아졌다.
인재풀 자체가 넓어졌으니 자연스레 고를 수 있는 선택지도 넓어졌고.
결과적으로 나는,
나의 입맛대로 인재를 선택할 수 있었다!
“자,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사람이 몰려 시장바닥처럼 북적거리던 오케스트라 연습실에 남은 인원은, 단 십 수명 정도였다.
나는 최후의 최후까지 남은 이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
“으, 음주님께서 우리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셨어!”
“지, 지금 카메라 돌리고 있었던 사람 있나!? 한 번만 보기에는 너무 아쉬운데….”
뭔가 분위기가 매드맥스의 한 장면 같이 변할 거 같아서 좀 무섭긴 한데.
그렇다고 마냥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우선, 함께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다만, 공고를 보셨다시피 저는 함께할 ‘사람’을 모집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동업자’를 모집한 건 또 아닙니다.”
“옙!”
“인간 악기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노예처럼 굴리던, 머슴처럼 굴리던, 이미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맞습니다!”
여기저기서 울리는 여간 기합이 아닌 목소리들.
확실히, 수백 명 중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은 이들이다. 충성심과 나에 대한 이해력이 모자란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만,
“아뇨, 아닙니다. 노예도, 머슴도, 종도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을 그렇게 취급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바로 잡을 것은 확실히 바로잡아두어야 했다.
“네…?”
“그럼 대체…?”
“그야말로, 악기.”
“….”
“인간 악기.”
말이 없어졌다.
정적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나는, 저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매우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나조차도 어떻게 사람을 악기로 만들지, 처음에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으니까.
‘힌트는 가상악기였어.’
가상악기가 무엇인가.
진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A라는 악기를 ‘a’의 방법으로 연주하지 않고, ‘b’라는 방법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다.
만약 기타 소리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면, 운지법, 피킹, 아르페지오를 배우고 행하는 대신 건반 터치와 노브 조절, 마우스 클릭질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본질적인 작동원리를 왜곡하는 거라 볼 수도 있겠지.’
다만,
그렇다고 해서.
가상악기를 다루는 행위가 쓸모가 없는가?
그건 또 아니었다.
가상악기도 가상악기 나름대로, 실력과 경력이 쌓인다면 퀄리티가 올라간다.
만드는 이의 ‘의도’를 담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미 그 경지에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그러므로,
“제가 가상악기를 연주하면, 여러분이 그걸 실시간으로 듣고 다시 연주합니다.“
“….”
“이게 제가 생각하는 인간 악기의 연주 방법입니다.“
그렇다.
노예도 종도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악기’가 되라고 했다.
나의 의도를 읽고, 그대로 연주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일부러 연륜 있는 실력자 대신 여러분을 뽑은 이유이기도 하고요.”
합격자들의 나이는 대개 젊은 축이었는데, 이건 내 노림수였다.
세간의 어른들이 ‘나이를 먹으면 머리가 굳는다’라며 자주 자조의 목소리를 내뱉듯이, 음악도 나이가 많을수록 자기만의 연륜이 쌓여 스타일의 변화를 꾀하기가 어려우니까.
단기간에 변화 폭이 클 수밖에 없는 이들을 선정한 것이다.
“음주님.”
한참의 정적을 뚫고, 가장 앞에 있는 남자가 나를 불렀다.
이변수라는, 실력과 스펙이 빵빵한 관악기 쪽 지원자였는데, 궁금한 것이라도 있었을까?
“예.”
“위대한 계획에 동참하게 하여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그저,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할 뿐이었다.
“…음주님의 말씀을 듣고, 약 10초 동안은 이해가 잘 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음주님이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여 보니, 답은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대단한 곡을 만들려고 하신다. 그것밖에 없다.”
눈빛은 올곧았다.
신념이 엿비쳤다.
뭐랄까.
일반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는 ‘팬심’이라는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다고나 할까.
‘이 정도로 나를 믿고 따라주다니.’
솔직히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왕’을 칭한 것은, 반쯤 장난일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만큼은, 진짜 왕이 된 느낌이었다.
“정확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바라는, ‘왕’의 모습을 취했다.
“오오오오오오!”
“제가 지금부터 만들려고 하는 곡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곡입니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밀려드는 함성.
시뻘겋게, 하얗게, 퍼렇게.
각기 다르게 물들어가는 인간 악기 확정자들의 얼굴.
“여러분은 인간 악기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곡을 만든 사람들’의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따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원래부터 충성심에 대한 걱정은 별로 없기는 했다.
다만 지금은 뭐랄까, 진짜 당장 이 사람들을 데려다 쿠데타를 일으켜도 따라와 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제는 내 하기 나름이다.’
나는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움직였다.
“곡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만들 것은….”
내가 가상 악기로 연주를 하면, 참가자는 나의 의도를 읽고 ‘곧바로’ 연주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해봅시다.”
이게 진짜 작동하는지, 알아보아야 했다.
결과는….
“오.”
양호.
마스터 키보드의 각종 노브를 조작하여 찍은 음을,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전해 들은 인간 악기가 연주했는데,
얼핏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짓거리가, 실제로 ‘작동’했다.
다만,
“…죄, 죄송합니다.”
인간 악기도 ‘인간’이다.
실수를 하거나, 연주 의도를 잘못 읽는 경우는 얼마든지 나왔다.
구현할 실력이 모자란 경우도 있었고.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트레이닝을 받을 거니까요.”
다만, 이렇게 되리란 것을 예상한 것도 아닌데. 방법이 있더라.
그것은 바로 나에게 가르침을 약속한 스승들의 존재였다.
‘각 분야 최고의 교수들이지.’
나와 인간 악기를 가르치는 데에 한 치의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게 진짜 되는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기는 했지만,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나 할까.
“…이런 방식으로 곡을 만들려는 사람은 음주님께서 처음일 겁니다.”
“하하. 제가 첫 스타트 끊은 게 좀 많아야죠.”
“듣고 보니 그렇네요…?”
실연을 보이니, 순순히 가르침을 내려주더라.
그리고,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신 은둔 고수는,
“허.”
“….”
“하!”
대체 자신이 지금 뭘 보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듯, 눈을 계속 비비고 연신 탄성을 토하시더라.
“이 절벽을… 사람을 업고 등판한다고?”
“에헴.”
“거기다가, 사람을 악기로 삼다니!”
“….”
“그… 인권적으로 괜찮은 겐가?”
“문제없습니다! 저는 음주님의 악기가 꿈이었으니까요!”
이것저것 태클을 걸고 싶으셨나 보다.
다만, 본인이 좋다는데 거기에다 대고 말꼬리를 잡을 수는 없을 테고.
본인이 내뱉은 말을 부정하고 싶으시지도 않을 테고.
“완벽하게 서로를 이해하거나, 완벽하게 주인에게 종속되거나.”
“….”
“고수께서 말씀하신, ‘극한의 악기’에 대한 조건입니다.”
“….”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나는 눈을 부릅뜨며 의지를 피력했다.
필사적으로 고안해 낸, 현 상황에 최적화된 방법이다.
여기서 안 된다고 등을 돌리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
정적이 흘렀다.
우적우적-
아니, 저작 소리가 들려왔으니 완벽한 정적은 아니었다.
이변수 씨와 나를 앞에 두고 남노인이 목소리를 낸 것은, 선물로 사 온 순대를 입에 모조리 밀어 넣고 나서였다.
“자네 무협지 좋아하는가?”
“…네?”
“무협지 말일세. 처음 만났을 때에 무협지 용어를 꺼냈지 않는가.”
“아… 좋아하죠.”
글 읽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재밌는 소설’에 한정한다면 밤새도록 읽은 적도 많았고.
무협은 내 기준에서 당연하게도 재밌는 축에 속하는 장르였다.
“…나도 뭐, 옛날에는 자주 읽었지. 거기에 여러 세력이 존재하지 않나, 정파니, 사파니, 마교니.”
“그렇죠.”
“그 세 구도를 현실에 빗댄다면, 나는 정파 쪽 사람이네.”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남노인은 의외로 무협 세계관에 꽤나 빠삭한 모양이었다.
혹시 산속에 틀어박힌 것도 무협지의 영향이라던가?
…쓸데없는 잡념이었다.
“단 한 분야를 위해 수련을 계속했지. 스승에게 배우고, 나 스스로 발전시키고. 정도의 길을 걸었어. 다만, 자네는 그렇지 않아. 사파… 아니, 마교 같네.”
“….”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걸어온 길은, 그 누가 보아도 ‘정도’라고는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네. 자네의 음악의 길은, 그 앞에 자그마한 흔적조차 없는 황무지니까. 위험천만하니까.”
노인의 눈에 떠오른 감정은, 진득한 걱정이었다.
다만, 당연하게도.
나는 그의 걱정에 호응할 생각이 없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멈출 생각은 없나 보구먼.”
“무협지 속 마교주, ‘천마’가 약해 빠진 것 보셨습니까?”
“하하, 그건 그렇지.”
이유는 간단하다.
꿈을 위해서.
그저 그뿐이었다.
남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클라리넷을 잡았다.
그리고, 이변수와 나에게 턱짓을 했다.
나는 척척 장비를 세팅했고, 이변수 또한 가지고 온 클라리넷을 손에 쥐며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내가 본 무협지 속 마교의 끝은, 언제나 멸망이었어.”
“….”
“자네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네.”
남노인이 호흡을 들이마시고, 악기에 내뱉었다.
하나의 ‘극한’을 만들었다.
그것을 들은 나와 이변수 또한,
극한에, 오르기 시작했다.
남노인의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고수께선 요즘 소설은 잘 모르시는군.’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요즘에는, 천마가 주인공인 무협 소설도 있다고 말이다.
그 소설의 끝은 대체적으로, 해피엔딩이라고 말이다.
마교에 지배당하는 무림.
나는 그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을 하나 구해다가, 스승께 선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