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296
296화
서울 서초동.
“실례합니다.”
진우가 [변호사 김향숙 법률사무소]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와우..”
로비에는 상담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이 한가득이었다.
“뭐, 세상이 바뀌었어도 김 변호사님은 여전하시네.”
“어떻게 오셨죠?”
“변호사님께 상담을 받으려고 왔습니다.”
인포데스크에 앉아 있던 여직원이 진우에게 방문한 이유를 물었다.
“변호사님과 직접 상담하는 것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어려우세요. 예약을 해드릴까요? 아니면 사무장님과 상담을 하시겠어요?”
“흐음…”
진우가 잠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펜과 종이를 빌려 메모를 시작했다.
“이 메모를 변호사님께 전해주시겠습니까?”
여직원이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진우가 고이 접은 메모를 들고 변호사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여직원이 진우를 변호사 방으로 안내하였다.
향숙은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일에 치여 연필을 비녀 삼아 쪽을 진 채로 기록 속에 파묻혀 있었다.
“오진우?”
“네, 변호사님.”
“이 메모의 의미가 뭐지?”
“적혀있는 그대로입니다. 원하신다면 아드님의 신기를 제거해 드리겠다는 거죠.”
“… 신기를 가지고 있으면 헌터가 돼.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 1위인 직업이지. 그런데 그걸 왜 제거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여차하면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는 직업이죠. 위험은 위험대로 감수하면서 신력을 모아 바치면서도 치료비로 대부분의 돈을 탕진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식을 그런 위험에 내몰지는 않겠죠. 그렇지 않나요. 변호사님?”
“훗… 괜히 시간 낭비를 했군. 헌터라는 직업은 개인이 원한다고 해서 가질 수도, 가지지 않을 수도 없어. 신기를 가진 이들이면 무조건..”
“그래서 테스트를 하는 거죠. 하지만 민수는 아직 테스트를 받을 나이가 되지 않았구요. 그래서 숨기고 계시는 거죠.”
“마치 본 사람처럼 말을 하는군.”
“지금 한참 발작 중이지 않나요? 신병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텐데요? 이대로 방치를 한다면 오히려 민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겁니다.”
향숙이 뿔테 안경을 치켜 올리며 진우를 노려보았다.
“좋아. 그건 그렇다고 치고 네가 신병을 없앨 수 있다는 걸 어떻게 믿지?”
“그거야 직접 보시면 알 일인데 믿고 말고 할 게 뭐가 있겠어요?”
향숙이 한동안 진우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 보더니 인터폰을 눌렀다.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상담은 모두 취소해 주세요.”
[네? 변호사님 지금 밖에 대기하시는 분들이…]“오늘 대기하고 계신 분들은 주말에 무료로 상담을 해드리겠다고 양해 드리고 모두 돌려보내세요.”
향숙이 인터폰을 끄자 진우가 피식 웃었다.
“네가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치고, 원하는 건 뭐지?”
“법인을 하나 설립해 주세요. 제약 회사로.. 그리고 그 회사의 고문변호사가 되어 주시면 됩니다.”
“제약회사와 고문?”
“네, 아주 획기적인 약을 하나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여차하면 헌터 협회나 헌터병원에 빼앗길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방어막이 필요하다?”
“네”
“고문료는 어떻게 지불 할 거지?”
“이미 선불로 지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훗! 몇 살이지?”
“다음 달이면 스무 살이 되죠.”
“… 그렇군.”
향숙이 손목에 채워져 있는 시계를 힐끗 바라 보더니 쇼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단 선불 고문료를 받으러 가보지.”
**
향숙의 집.
민수는 잠이 들어있었다. 아마도 발광을 막기 위해 약물을 이용해 억지로 재운 것 같았다. 민수의 상태를 살핀 진우가 향숙으로부터 차를 얻어먹고 있었다.
“민수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세 사람뿐이죠. 김혁성 어르신과 우병진 선생, 그리고 저!”
“김혁성은 헌터 협회장이니 치료를 해줄리 만무하고, 우병진은 이미 10년 전에 죽었다고 하니 불가능하고 결국 민수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라는 거구나.”
“현실적으로는 그렇죠. 하지만 지금 제 상태로는 민수를 완전하게 치료할 순 없어요.”
향숙의 아미가 좁혀졌다. 진우의 말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말이 다른데?”
“민수가 테스트를 받기까지 2년이 남았죠. 그 시간이면 충분히 민수를 치료할 수 있어요. 그 사이에도 민수가 저렇게 고통스럽게 살지 않을 정도의 치료는 가능하구요.”
“해봐.”
“성격이 급하시네요.”
“못하는 거군. 날 속인 거야.”
“아뇨.”
진우가 종이와 펜을 꺼내 들었다.
“계약이 먼저 아닐까요? 법률가답게!!”
2시간의 진통 끝에 세 장짜리 계약서가 완성되었다. 향숙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진우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19살이라고? 지금껏 내가 만나본 사람 중 최고군. 믿을 수가 없어.”
“당연하죠. 누구한테 배운 건데.. 하하”
지난 삶에서 향숙과 알고 지낸 시간만 12년이었다. 진우를 위해 향숙이 어떻게 협상을 해왔는지 곁에서 지켜보아 왔는데 그 노하우를 모를 리 없었다.
“거울 속의 나를 보는 것 같아 기분 나쁘지만 인정하지. 협상은 이 쯤하면 될 것 같으니 이제 계약조건을 이행해 볼까?”
“그럼.. 약탕기를 주세요.”
***
늦은 밤이 되어서야 민수가 깨어났다. 민수에게 약 한 사발을 먹인 진우가 다시 민수를 재웠다.
“이게 끝?”
“민수는 내일 아침에 자연스럽게 눈을 뜰 거예요. 그러니 그때는 약으로 재우지 마세요.”
“또 발작을 일으키면?”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제가 곁에서 지켜보는 게 가장 좋겠지만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가 계셔서…”
“이사를 와! 같이 살면서 민수를 지켜봐!”
“아버지가 계시다고 말씀드렸는데…”
“같이 이사 와. 모든 비용을 내가 다 책임지지.”
“오늘 이사를 나왔거든요.”
“위약금이 필요하다면 그것까지 다 책임질게. 이사를 오지 못할 다른 이유가 또 있나?”
“이유는 없어졌네요. 다만, 아버지와 상의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럼 같이 가도록 해. 내가 설득할테니!”
향숙이 편한 얼굴로 잠이 들어있는 민수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더니 경호원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곤 진우와 함께 아파트를 나섰다. 진우는 단지 약 한 사발을 먹게 하였을 뿐이었다. 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향숙은 왜 태도를 바꿔 진우에게 매달리는 걸까?
그것은 그 약을 먹이는 과정에서 보여준 진우의 행동 때문이었다. 수면효과를 주고 있는 링거를 뽑아내자 2시간 만에 민수가 깨어났다. 다시 발작을 하려고 하였고 경호원들이 그런 민수를 힘으로 찍어 누르려 하였다. 그러자 진우가 나서 경호원들의 행동을 저지하더니 민수의 몸 몇 곳을 손가락으로 찍어 눌렀다.
손짓 몇 번에 불과했는데 거짓말처럼 민수의 발작이 멈췄다. 민수의 뒷목을 주물렀을 뿐인데 민수의 입이 벌어졌고 약을 먹일 수가 있었다. 진우가 민수를 편하게 눕히고 몸 이곳, 저곳을 주물러 주니 잔뜩 찡그리고 있던 민수의 표정이 펴지면서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이 어린 청년이 해내고 만 것이다.
향숙이 운전하는 차는 30분 만에 장춘기의 집에 도착하였다.
“아빠!”
“어, 왔니?”
“왔냐? 짐꾼?”
장춘기가 오진철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형님은 여기에 어떻게?”
“얌마, 내 집에 내가 있는 게 뭐가 이상한데?”
“그게.. 친구 분 집에서 생활을 하시겠다고…”
“그 새끼가 싫다고 그러잖아. 써글…”
장춘기가 인상을 와락 쓰자 오진철이 웃었다. 지금까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빠, 이분은 김향숙 변호사님이세요. 상의 드릴 일이 있어서 같이 왔어요.”
장춘기가 눈치껏 진우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뭐냐? 저 아줌마는?”
“저를 도와주실 변호사님요. 갑자기 같이 살자고 하시는 바람에…”
“뭐? 오늘 이사 왔는데 오늘 나간다고? 얌마!”
“죄송해요. 그 집에 환자가 있어서 곁에 붙어서 돌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럼 짐꾼 일은?”
“해야죠.”
“써글.. 도움은 됐냐?”
“네, 형님. 큰 신세를 졌어요.”
“네가 내 집에서 오래 머물 거라곤 생각 안했다. 그저 도피처에 이를 때까지 경유할 곳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민식이 아저씨 생각이었겠죠?”
“써글… 다들 어떻게 아는 거야.”
장춘기가 인상을 쓰자 진우가 웃었다. 장춘기는 황민식에게 비밀이 없는 사람이었다. 한번 믿으면 완전히 믿어버리는 단순한 사람이었기에 아마도 자신의 일도 황민식과 상의를 하였을 것이다.
“여기 있어도 돼. 네 아버지랑 얘기를 해보니까 배울 것이 많더라. 경험만 놓고 보면 민식이 형님보다 훨씬 대단한 분이야. 그러니 신세진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
“저도 그러고 싶은데 저 변호사님 사정이 좋지 않아서요. 번거롭게 해드렸네요.”
“자식! 나도 눈치는 있다. 너 일부러 그런 거잖아. 딱 타이밍 잡아서.. 우리 집 찍고 저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었잖아.”
“오올…”
뒤통수가 화끈해졌다.
“이 형을 놀린 벌이다. 네 아버지 의족 때문이지? 집을 구하지 않은 건?”
“아저씨와 형님들이 도와주셔서 의족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그래도 어차피 한번 구하는 거 더 좋은 걸로 구하고 싶어서요.”
“그래, 너는 그럴 놈이지. 그래서 너한테 이용당해주는 거야. 악의가 없으니까.. 의족을 구할 거면 헌터 협회가 운영하는 상점에 가봐. 비싸긴 해도 거기 물건이 제일 좋아.”
“감사합니다. 형님.”
“들어가자. 대충 얘기가 끝났을 시간이니…”
장춘기가 물고 있던 담배를 대충 비벼 끄더니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
다시 향숙의 집.
“오늘은 일단 이 방을 써. 내일 서재를 치워 놓을 테니까 진우는 방을 옮기도록 하고.”
“괜찮아요. 변호사님, 아빠랑 같이 잘래요.”
“훗.. 이렇게 보면 애 같은데 말이야. 알아서 해.”
향숙이 오진철에게 인사를 하더니 방문을 닫고 나갔다.
“이게 뭔 일이니? 저 변호사님이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따라오기는 했다만…”
“그랬어요?”
진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논리적으로 따져 진철의 의지를 꺾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감성적으로 접근한 모양이었다.
“그 민수라는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더라. 진심이 느껴져서 이 아빠도 울컥했지 뭐니.”
“좋은 엄마죠. 좋은 변호사이기도 하고, 동료가 되면 더 없이 든든한 사람이에요. 예쁘기도 하구요. 하하”
“녀석!”
오진철이 과하게 진우의 머리를 헝클었다.
“아 참, 저녁 식사 안하셨죠?”
“아.. 그러고 보니 너 오면 먹는다고 춘기 군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이구..”
진우가 휴대폰으로 시간을 살핀 후, 몸을 일으켰다.
“식사 준비해 드릴게요.”
“나는 괜찮은데?”
“제가 배가 고파요. 아빠.”
진우가 웃으며 방을 나섰다. 부엌에 가보니 커다란 냉장고가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텅텅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