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454
453
“일단 현재로서 가장 좋은 방법은….”
천우진이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천공 요새. 그리고 검은 사막. 이 두 곳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는 거다.”
“어디가 진짜 제단이 설치되어 있는 곳인지 모르니까 한꺼번에 공략해서 둘 다 부숴 버리겠다, 이건가?”
“그래.”
천우진이 지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또 속았다간 파멸이야. 끝이라고. 그렇다고 어디에 진짜 제단이 있는지도 알아낼 방법이 없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둘 중 하나만큼은 진짜라는 거다.”
“쩝. 전략적으로 불리한 싸움이네.”
지크가 입맛을 다셨다.
“나 이런 싸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잖아.”
천우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 방법이 최선이고.”
“병력 규모는?”
“부족해.”
천우진이 대답했다.
“믿을 만한 사람이 너무 적어.”
“믿을 만한 사람이… 적다고? 왜?”
“게이머는 어지간하면 거르는 게 좋다. 왜냐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심심해서 게임을 초기화시켜 버리겠단 또라이가 섞일지 어떻게 알아?”
“그건 맞네.”
지크는 천우진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
게이머는 기본적으로 믿기 힘든 존재였다.
막말로,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한 게이머만큼 위험한 존재도 드물었다.
예컨대 현실에서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게임 속에서는 희대의 악당, 혹은 살인마 노릇을 하는 정신 나간 작자들도 많았다.
예를 들면 유명한 랭커 중에 란 ID를 쓰는 미국인 게이머가 있었다.
290레벨에 랭킹 20위권 안에 드는 는 서브컬처에 심취한 양덕으로서, 게임 BNW 내에서 사악한 흑마법사로서의 역할에 목숨 건 이었다.
가 얼마나 컨셉충이었냐면, 멀쩡한 NPC들을 잡아다가 사악한 생체 실험을 진행하는 개인 방송을 진행할 정도였다.
만약 그 와 함께 오즈릭 교단과 싸우게 된다면?
아군이 아니라 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 밖에도, 순전히 심심풀이로 이 게임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싶어 하는 정신 나간 작자가 끼어들 수도 있었다.
“그럼 NPC 위주로 구성해야 하는 건가?”
“NPC들도 다 믿기 힘들지. 오즈릭 교단은 NPC 아니냐? NPC라고 함부로 믿었다간 큰코다칠 거다.”
“그것도 그러네.”
“게이머든 NPC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사람은 안 돼. 그렇다고 함부로 황제한테 도움을 요청하지도 마. 오즈릭 교단이 어디까지 침투해 있는지 짐작조차 안 가니까.”
“어렵네.”
지크가 딱 잘라 말했다.
“믿을 만한 동료도 구하기 힘든데,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단 거잖아.”
“그래서 너한테 이렇게 아쉬운 소리 하잖아.”
천우진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너는 니 개인적인 능력도 능력인데, 다른 게 훨씬 좋으니까.”
“으응? 그래? 나한테 뭐 좋은 게 있어?”
“인맥.”
“……!”
“너 믿을 만한 NPC 많이 알지? 강한 NPC도 많이 알고?”
“그, 그렇지?”
생각해보니 그랬다.
지크는 강한 NPC들과 친분이 있었다.
지금은 사부 밑에서 한낱 머슴으로 일하고 있는 도제 베텔규스, 마법의 지존이라는 치천존, 그리고 신하인 그레이트 위저드 데시마토까지 있었다.
거기에 더해 뇌신 바즈라의 후예인 타이칸과 의 성녀인 자네트.
그리고 프로아 왕국과 혈맹을 맺은 국가들까지 합치면, 지크의 인맥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어디 그뿐인가?
지크는 살아 있는 전설인 랭커 용태풍과도 나름 돈독한(?) 친분을 과시하고 있기도 했다.
“너.”
지크가 천우진을 노려보며 미심쩍다는 투로 물었다.
“솔직히 딱 말해라. 내가 아니라 내 인맥이 더 필요한 거 아냐?”
“아, 아닌데?”
천우진이 순간 움찔하더니 오리발을 내밀었다.
“난 그냥 니가 내 친구고! 어? 믿을 만한 게이머니까 그런 거지! 니가 같이 싸워 주면 니 인맥도 같이 싸워 주는 거 아냐?!”
“이거 수상한데….”
“아, 아니라니까?”
“이 새끼 이거 수상한데….”
“친구끼리 오해는 금물이다. 하하… 하하하….”
천우진은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끝까지 결백한 척했다.
‘이 자식 눈치 하나는 100단이라니까?’
속으로는 지크의 귀신 같은 촉에 놀라며….
***
지크는 천우진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쨌거나 오즈릭 교단에 맞서 세계의 멸망을 막는다는 대의에는 공감했다.
그래서 천우진이 주는 새로운 퀘스트를 받고 오즈릭 교단과의 싸움에 나서기로 했다.
[알림 : 이 당신에게 퀘스트를 부여합니다!]퀘스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오즈릭 교단이 설치한 들을 파괴하라.
•타입 : 에픽 퀘스트(매우 중요!)
•진행률 : 0%(0/2)
•보상 : +10레벨
•비고
– 천공 요새 전투
– 검은 사막 전투
•주의 사항 1 :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이 세계는 멸망할지도 모릅니다!
•주의 사항 2 : 이 퀘스트는 천공 요새와 검은 사막에서 벌어지는 2개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해야 합니다!
세계의 운명이 걸린 퀘스트이기 때문인지 퀘스트의 타입은 무려 이었다.
이란 게임의 큰 흐름, 즉 시나리오라는 뜻.
이는 곧 퀘스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매우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알림 :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입력 : YES!]지크는 망설이지 않고 퀘스트를 수락했다.
[알림 : 당신은 와 중 특정 한 개의 전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알림 : 당신의 행선지를 선택해 주십시오!]그러자 지크의 눈앞에 선택지가 떠올랐다.
[천공 요새] [검은 사막]지크는 고민했다.
“어디로 가나….”
“내 생각인데.”
천우진이 지크에게 조언했다.
“천공 요새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왜?”
“싸움이 벌어질 필드가 좁으니까. 보자… 대충 현실로 따지면 서울시 한 개 구 크기 정도?”
“아하? 그럼 천공 요새로 가야겠네.”
지크는 천우진의 조언을 받아들여 로 가기로 했다.
왜?
천우진의 말마따나, 디버프 마스터인 지크는 좁은 지형에서 엄청나게 유리했으니까.
반대로 필드가 엄청나게 넓은 검은 사막의 경우 지크의 디버프 필드가 전체를 커버하기에 다소 어려운 점이 없잖아 있었다.
[입력 : 천공 요새]지크는 입력창에 라고 입력함으로써 퀘스트의 행선지를 정했다.
“그래. 넌 천공 요새로 가. 나는 검은 사막으로 갈게. 참고로….”
“참고로?”
“리더는 니가 아냐.”
“아?”
“천공 요새에는 랭커가 갈 거야. 진짜 강한 놈이 간다. 그 친구가 천공 요새의 리더를 맡기로 했으니까, 이번만큼은 군말 없이 따라 줘. 부탁한다.”
“그러지 뭐.”
지크는 딱히 리더에 대해 집착하지 않았기에, 천우진의 간곡한 부탁을 수락했다.
그게 지크의 스타일이었다.
지크는 남이사 뭘 하든 본인이 맡은 역할만 충실히 해내면 된다는 주의였기 때문이다.
만약 리더가 병신 같은 판단을 내린다면, 그때 가서 의견을 내면 그만이기도 했고.
“자세한 일정은 오늘 저녁까지 알려줄게. 나 그럼 먼저 일어나 본다? 좀 바빠서.”
“수고해라.”
“그래. 조만간 ㅂ… 뭐야? 너 왜 코피 나? 어디 아프냐?”
“또?”
지크는 또다시 흘러내리는 코피를 황급히 손으로 슥 문질러 닦았다.
“캐릭터 건강 관리 잘해라. 중요한 전투가 코앞이야.”
“알겠어, 인마.”
지크는 차마 밤새도록 성인 콘텐츠를 즐기느라 그런다고는 말하지 못한 채 얼버무릴 뿐이었다.
“그럼, 조만간 보자.”
천우진은 그 말을 남기고는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스르륵! 하고 허깨비처럼 사라져 버렸다.
***
천우진이 떠난 후.
“무슨 말씀을 나누시는지는 정확히 못 알아들었습니다만….”
미켈레가 지크와 천우진의 대화를 정확히 알아듣지 못한 이유는, 게이머들끼리의 대화는 NPC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설정 때문이었다.
예컨대 이 세계가 사실은 가상 현실이며, 또 NPC들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하나의 데이터 덩어리일 뿐이라는 것 같은 충격적인 진실들 말이다.
[나는 이 게임이 벌써 서비스를 종료하게 내버려 둘 생각 같은 거 없다. 아직 몇 년 되지도 않았잖아. 10년이 넘는 게임도 많은데 벌써 끝내라고?]지크가 했던 이 말은 미켈레에게 다음과 같이 들렸다.
[나는 이 세계가 멸망하게 내버려 둘 생각 같은 거 없다. 아직 몇 년 되지도 않았잖아. 10년이 넘는 ■■도 많은데 벌써 끝내라고?]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한단 말은 세계의 멸망으로.
게임이란 단어는 삐- 처리되어 들리는 것이다.
NPC가 스스로 인공지능임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필터링 기능이었다.
“어쨌거나 이 세계의 운명을 건 싸움인 겁니까? 오즈릭 교단과의?”
“확실히는 모르겠고. 대충은 그런 것 같은데?”
지크가 대답했다.
“저도 돕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전하를 돕겠습니다.”
“자식. 고맙다.”
“바쁘실 것 같은데 어서 가 보시지요. 저는 본국의 정예들을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그래.”
지크는 미켈레에게 프로아 왕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맡겨두고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뀨우! 주인 놈아! 어디 가냐!”
지크가 워프 게이트로 향하자 햄찌가 번개처럼 달려 나와 따라붙었다.
“주인 놈아! 뀨우! 햄찌도 같이 가자! 어디 가는 거냐!”
“일단은….”
지크가 대답했다.
“사부님 뵈러.”
“뀨우?! 쿤룬산은 왜 가냐! 사부님 여기 계시지 않냐!”
“잠깐 볼일이 있으셔서 쿤룬산에 가신다고 했어.”
“뀨우?”
“일단 가자.”
지크는 햄찌를 데리고 곧장 쿤룬산으로 향했다.
***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지크는 슈퍼 비행선 을 타고 쿤룬산까지 날아가 사부의 집에 도착했다.
“사부님?”
그런데 사부는 집에 없었다.
“응? 어디 가셨지?”
“뀨우! 킁킁! 킁킁킁! 사부님 지금 계곡에 계신다! 뀨우우!”
“그래? 가보자.”
지크는 햄찌를 따라 사부의 냄새를 쫓았다.
[쿤룬산 : 망각의 폭포]란 쿤룬산에 있는 아주 거대한 폭포로써, 현실로 치자면 그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나 빅토리아 폭포도 울고 갈 정도로 엄청난 규모가 높이를 자랑하는 천혜의 자연 경관이었다.
또한,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가 워낙에 강력해 단 1초라도 맞으면 정신을 잃어버린단 뜻에서 그 이름이 가 된 폭포이기도 했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부는 그 에서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사부님! 저 왔습니다.”
“돌쇠를 보러 온 게냐.”
“예?”
지크는 순간 너무나도 놀랐다.
‘어, 어떻게 아셨지?’
사실 지크는 사부에게 돌쇠를 빌려 가기 위해서 왔기 때문이다.
왜?
오성천의 일원이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돌쇠라면 세계가 운명이 걸려 있을지도 모르는 이 전투에서 분명히 대활약해줄 테니까.
“제자야.”
“예?”
“뭘 그리 놀라느냐? 얼마 전에 새로운 기술을 배웠는데 네 녀석이 딱히 본좌를 찾을 일이 있겠느냐? 문안 인사를 드릴 때도 아니거늘.”
“아하!”
“잠시만 기다리도록 하여라. 돌쇠는 곧 나올 것이다.”
“어디서 나옵니까? 근처에 뭐가 없는데요?”
“저기다.”
사부가 손가락으로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예? 저, 저길 들어갔다고요? 돌쇠 영감이?”
지크가 그렇게 놀란 이유는 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실력자라 하더라도 밑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맞고 있다가는….
‘죽을 텐데?’
진짜로 사망할 수도 있었다.
의 수압은 제아무리 초인적인 육체 능력을 지닌 돌쇠 영감이라 할지라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들어갔으니 나오지 않겠느냐? 살아서 나오느냐, 죽어서 나오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니라.”
“하하… 하하하….”
지크가 황당해서 헛웃음을 지을 때였다.
“뀨? 주인 놈아! 누군가 나온다!”
햄찌가 폭포 한가운데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돌쇠 영감, 역시 살아 있었던 건가?’
지크는 하는 표정을 지으며 를 빠져나오고 있다는 돌쇠 영감을 기다렸다.
그런데….
“어어? 저건 돌쇠 영감이 아닌데?”
정작 를 빠져나오고 있는 사람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인 도제 베텔규스가 아니라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웬 남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