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10
“내가 절대 안 된다고 했어. 너를 절대 공유할 수 없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끝까지 케어하고 싶다고 말이야.”
“형,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하하하!”
준안이 호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한다는 표정이었는데, 옆에서 그 모습을 본 고이와 혜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피식-’ 웃었다.
우진은 그런 ‘팀 우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내 그는 천천히 고개를 대고 누웠다.
사실, 를 하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데에는 남들이 모르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의 주인공 김준호와 의 주인공 주석태를 가상 세계에서 만나보지 못했다는 점이랄까.
만약 두 캐릭터가 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였더라면, 이제 겨우 두 번밖에 남지 않은 ‘가상 세계 구현’의 기회를 과감하게 쓸 용의도 있었다.
연쇄살인범이나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으로 구호 지역 최전선에서 일하는 의사나, 매한가지다.
일반인이 현실에서 그들과 대면해서 얘기를 나눠볼 기회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상 세계를 경험할 때, 우진이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것은 오직 ‘캐릭터의 삶’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캐릭터의 삶이 오직 배우의 상상과 현실 고증을 덧붙인 분석만으로는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을 때.
물론 노력을 쏟아붓는 건 당연하지만, 애초에 노력의 영역으로는 커버가 다 되지 않을 때.
그때, 우진은 다이어리의 힘을 살짝 빌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학생 역할을 하라면, 쉽게 할 수 있다.
‘내’ 본연의 삶에서 학생이었던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처럼 조선의 왕을 해보라고 한다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는 분석과 상상만으로는, 커버가 완벽하게 안 되는 거다.
그 시절을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타고난 아이큐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법의학자, 최규보.
실존 인물이자, 조선 역사에서 대표적인 폭군으로 남은 연산군.
수십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감히 이해하지 못할 아버지라는 존재가 대입된 이건우와 백성호.
대의와 운명이라는 소용돌이에 휩쓸려 어렸을 때부터 죽음과 생존의 경계를 넘나드는 삶을 살아야만 했었던, 그래서 인생의 목표가 아버지와 함께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을 사는 소탈한 꿈을 가진 이정혁.
남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남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 속에서 본연의 자아를 피우는 ‘서번트 증후군’ 환자 젊은이.
그리스 로마신화의 영웅 오르페우스와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인 헤파이스토스.
그리고, 현실에서는 절대 볼 일이 없는 괴생명체들과 끊임없이 싸우는 매튜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우진이 가상 세계에서 만났었던 역할들은,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상상력과 노력을 뛰어넘어야만 하는 측면들이 분명 있었다.
그래서, 김준호와 주석태도 다이어리 속에서 대면하는 경험이 분명 필요하다고 느꼈었던 것이었고.
다만,
「하나로 묶어서 구현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 네가 만나고 싶은 캐릭터는 어찌 됐든 두 명이니까, 아마 두 개의 세계를 각각 열어야 할 거야.」
「…아, 아쉽네요.」
「선택은 너의 몫이니까, 나는 묵묵히 기다릴 뿐이야. 궁금한 게 있으면, 특별 가상 세계로 언제든지 넘어오렴.」
「감사합니다, 조만간 또 봬요.」
기회를 두 번이나 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커서, 가상 세계를 열 수가 없었다.
결국, 이번에는 분석과 상상력만으로 커버했었기에.
연기적인 아쉬움이 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주변과 언론에서는 연기를 잘했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연기였다.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하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그것이 ‘내’가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나’에 이어서 작품을 선보이는 후배들이 부디 선배의 부족했던 연기를 지워버리는 명품 연기를 선보여주기를.
우진은 마음속으로 작은 염원을 되새기며, 편히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 손님 여러분. 곧 비행기가 이륙하오니, 안전을 위해….
안내 방송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내가 어두워졌다.
옆에 앉은 준안은 눈을 감은 지 오래였다.
우진은 잠시 준안을 살펴보다가, 좌석 조명을 켰다.
– 스르륵.
이내 가방에서 꺼낸 다이어리를 펼치며, 우진은 자신이 배우로서 걸어온 길을 읽어내려갔다.
307화
할리우드로 돌아온 우진은 곧장 후반 작업에 참여했다.
포스트 프로덕션 작업에서 배우들이 참여하는 부분은 거의 후시 녹음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일정을 아무리 길게 잡는다고 한들, 배우 개인의 스케줄은 나흘 안으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
하지만, 영화 의 포스트 프로덕션은 보통과 다른 케이스였다.
에릭 크리스토퍼 혼 감독이 일부 장면들에 대해 보완촬영이 필요하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는데, 그 이유가 뭔고 하니….
편집하는 과정에서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도통 지울 수 없을 정도로, 눈에 거슬리는 액션 씬을 몇 가지 발견한 탓이었다.
촬영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할 만큼, 깔끔한 느낌이었거늘.
막상 완성 막바지 단계에 이른 CG를 입히고서 보니까, 예상과는 확연히 다른 그림들이 보였거니와.
심지어는 몇몇 연결 씬에서 연결 전·후 장면들의 디테일이 조금씩 어긋나는 경우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바스트 샷에서는 캐릭터가 오른손을 들고 있는데, 그다음 연결된 풀샷에서는 왼손을 들고 있다던가.
괴생명체와 싸우는 대규모 전투 씬에서, 앵글이 전환되기 직전에 캐릭터가 서 있었던 위치와 구조물의 거리가 전환 후에 맞지 않는다던가.
이런 소소하고도 간단한 디테일들이 어긋나는 것을 흔히 ‘옥에 티’라고 부른다.
‘옥에 티’는 어느 작품이든 최소 한 가지씩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특히나 처럼 대형 재난을 소재로 하는 작품에서는 더더욱 놓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발견한 이상, 어떻게든 편집의 힘으로 커버를 치느냐.
아니면, 재촬영을 하느냐.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관객들이 몰라주길 바라며 넘기느냐.
셋 중에서 하나의 선택지를 골라야 하는데, 에릭 감독은 깔끔하게 재촬영을 선택했다.
우진을 비롯한 배우들도 이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예산이 더 들지언정, 찝찝하게 끝내고 싶진 않았으니까.
제작사 ‘원더브라더스 필름’에서 에릭 감독의 의견을 수락하자마자, 간단한 재촬영에 들어갔다.
팀원들과 촬영장에서 반가운 재회를 나눈 것으로 시작된 작업은 2주가 소요되었다.
그렇게, 후반 작업이 모두 끝난 영화는 9월 말.
미국과 영국, 그리고 한국.
세 나라에서 동시 개봉했는데, 엄연히 말하자면…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된 셈이었다.
시차 때문에 말이다.
뭐, 어쨌든….
는 국내 개봉 첫날부터 전 석 매진을 기록했다.
[(★★★★★) 미친 스케일을 자랑하는 할리우드표 괴수재난물!] [(★★★★★) 160분의 러닝 타임을 순삭시키는 수작! 연출, 연기, 그래픽 3박자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영화!] [(★★★★★) ‘백우진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 다운 작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단숨에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하는 것은 물론, 연일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극장가를 점령해나갔다.
유튜브에는 리뷰 영상들이 금세 업로드되기 시작했으며, 이 영상들은 ‘우선 동시 개봉 3국’을 제외한 타국 팬들에 의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원더브라더스 필름’이 작심을 하고 내놓은 신작에 쏟아지는 전 세계 팬들의 관심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
[백우진 주연 할리우드작 , 개봉 첫 주 만에 400만 관객 돌파!] [‘평작 세례’ 속에서 잔잔한 호수처럼 조용했던 국내 박스오피스, 갑자기 등장한 할리우드 수작 한 편에 파도처럼 휩쓸리다!] [백우진 할리우드작 ‘원더브라더스 필름’ , 흥행 수익 1억 달러 돌파!] [무서운 기세, 백우진… 2016년도 그의 해인가!]국내 반응은 날이 갈수록 뜨거웠고, 북미와 영국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3국에 이어서, 차례대로 개봉한 유럽 시장과 아시아 시장에서도 곧장 뜨거운 반응이 몰려왔다.
그 결과, 는 개봉 한 달도 안 되는 시점에 이미 전 세계에서 9천만 달러가 넘는 손익분기점을 단숨에 뛰어넘는 흥행 수익을 올렸다.
당연히 배우들과 주요 제작진들에게 흥행에 따른 인센티브가 지급되었는데, 액수의 단위가 국내 시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에이전트와 소속사에게 지불하는 수수료, 그리고 우진이 개인적으로 ‘팀 우진’ 멤버들에게 챙겨주는 금액들을 제외하더라도.
‘억…!’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의 출연료가 통장에 꽂혔다.
돈 욕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숫자를 보면 어안이 벙벙할 만한 액수였다만.
그런 생각도 잠시뿐이었다.
잡다한 생각을 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이 이어졌으니까.
1편의 흥행 기세를 체크하는 동시에, 제작사 ‘원더브라더스 필름’은 2편 제작을 위한 프리 프로덕션을 빠르게 진행했다.
그 사이.
네 명의 주연 배우들은 미국 전역을 돌며 시사회를 비롯한 인터뷰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미국 현지에서의 스케줄이 어느 정도 끝나자, 그다음은 영국 스케줄이 이어졌다.
영국의 최대 공영방송국인 ‘BBC’ 채널을 포함한 각종 토크쇼 출연과 인터뷰 일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이클뿐만 아니라 우진도 웨스트엔드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기에, 영국 매체와의 인터뷰를 다수 진행할 만한 접점이 높았다.
미국 현지에서는 2주 동안, 영국에서는 1주일 동안의 공동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일정.
그것은 바로… 아시아 투어였다.
아시아 7개국을 짧게는 당일, 길게는 1박 2일 동안 순회하면서 영화 홍보를 한 뒤.
마지막 순서로, 한국에서 2박 3일간 체류하는 일정이었다.
할리우드 작품의 내한 기자간담회는 개봉 전에 홍보를 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의 케이스이지만.
이번에도 는 평범한 프로세스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어차피 ‘백우진’이라는 이름의 영향력만으로도, 한국에서는 흥행에 성공할 것임을 쉽게 점칠 수 있는바.
이미 개봉 전부터 팬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작품인데, 홍보를 더 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으랴.
차라리 팬들과 깊게 소통하면서 감사한 마음을 최대한 표현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 찰칵, 찰칵!
– 와아아아!
이른 아침.
인천공항에 들어선 출연진들을 환영하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와 환호.
우진을 비롯한 배우들이 환한 미소로 화답하며 빠르게 호텔로 이동했다.
짐을 풀고 간단하게 씻은 뒤, 메이크업을 받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당일, 오후 5시.
내한 기념 레드카펫 행사가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개최되었으며,
[(인터뷰) ‘죽음의 도시’ 내한… 잭 콜린 ‘한국 팬들에게 감사, 소주 원샷 인증하겠다’ 입담 과시] [(현장 포토) 오웬 바넷사 ‘한국 안마의자에 감탄… 흔들리는 게 예사롭지 않다. 미국에 돌아갈 때 사갈 생각’ 폭소] [마이클 오버렛, ‘내한 두 번째, 이번에도 우진과 함께여서 즐겁다’ 경험자의 여유… 엄지 척!] [배우 백우진, ‘내한’이라는 이름으로 모국 팬들 앞에 설 때마다 오묘한 감정 들어… 항상 사랑해주시는 팬분들께 감사드린다.] [영화 팀 내한 키워드 #큰절#소주#안마의자#백우진]배우들은 수많은 팬과 취재진 앞에서 입담을 뽐내었다.
출연진 중에서 우진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한국 땅을 두 번이나 밟은 마이클은 을 연신 언급하면서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사랑해요, 한국!”
온라인에서는 ‘마 씨 성을 가진 푸른 눈의 한국인’이라고 불릴 만큼, 간단한 한국어를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구사하는 것은 덤이었다.
덕분에, 인터뷰 현장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일정이 조금 빠듯합니다만,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동료들에게 한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명소들을 소개하고 싶어요.”
우진의 작은 포부에, 배우들은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그리며 고개를 주억였다.
레드카펫 행사가 종료된 후에는, 팬들과 셀프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해주느라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경호원들에게 마지못해 끌려가면서도 종이를 놓지 못하는 우진의 모습이 팬들에게 찍히기도 했는데,
└ 우진잌ㅋㅋㅋㅋㅋ 예전에 종방연 때도 스태프한테 끌려가지 않았었나?
└ 어떻게든 사인을 해주려는 자 VS 어떻게든 사인을 못 하게 막으려는 자… 세계관 최강자들의 싸움이닼ㅋㅋ
└ 솔직히 현장에 가서 저런 모습 보면, 사인 못 받아도 행복할 듯. 저 아련한 표정 봐 ㅋㅋㅋㅋㅋ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화제가 되었다.
정신없는 하루였고.
“싸, 싸랑해요! 여녜가 뉴스!”
“감사합니다!”
해외 스타들이 내한할 때면, 절대 빠질 수 없는 매체와의 인터뷰를 성황리에 마치는 것으로.
입국하자마자 펼쳐진 13시간의 스케줄이 끝났다.
밴에 오르자마자,
“휴!”
“어메이징한 하루였어.”
“여태까지 내가 가봤던 나라 중에서, 한국만큼 팬들이 크게 환호를 해주는 곳은 없었어.”
“바로 그거야, 잭! 내가 예전에 뮤지컬 공연으로 왔을 때 말이야. 팬들의 환호를 듣고 얼마나 놀랐었는지 모른다고.”
“얼씨구, 마이클. 우리보다 한 번 더 와봤다고 뽐내는 거예요? 우진 앞에서?”
“맞아, 우진은 코리안이라고!”
“엣헴! 처음과 두 번 이상은 엄연히 격이 다른 법!”
“와, 물고기한테 수영하는 법을 가르치는 격일세. 우진, 저런 마이클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해요?”
“하하하!”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배우들의 잡담이 끊이질 않았다.
우진은 그런 동료들의 반응을 보며 호쾌하게 웃었다.
한국이라서, 괜스레 뿌듯한 기분.
왠지 숙소에 그냥 들어가자니, 아쉬운 마음이 클 것 같은 이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까 생각하던 찰나.
– 꼬르륵.
“배고파, 배고파!”
“좀만 참아요, 마이클. 룸서비스 시켜 먹자고. 이 밤에, 어디 가서 먹겠어요?”
“맞아. 벌써 밤 10시가 넘었네. 이 시간에 문 여는 데가 어딨어.”
“……?”
잭의 말에, 오웬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에, 우진과 마이클은 잠시 휘둥그레진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어허,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친구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한국 배달 문화의 위엄 하나만큼은 반드시 가르쳐줘야겠네.
“저기 잭, 오웬.”
이윽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우진이 말을 이었다.
마이클이야 과거 뮤지컬 내한 공연 때 경험한 문화라서 익숙할 테니까.
잭과 오웬에게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건, 오해에요.”
“네?”
“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