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75
00176 176화
그 사이 송민규는 수술동의서를 가져왔다.
태수는 받아들자마자 곧바로 환자에게 다가갔다.
“환자분 지금 수술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수, 수술이라니? 이제 안 아픈데.”
70대 환자는 펄쩍 뛰었다.
아무래도 수술이라는 게 거부감이 먼저 드는 모양이다.
태수도 이미 많은 환자들을 경험해 봤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치료비를 걱정하기에 망설임이 더했다.
어떤 사연이 있더라도 수술을 해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태수는 경계부터 하는 환자에게 차분하게 물었다.
“아까 죽을 듯이 아프셨죠?”
“…….”
“한 시간만 지나면 똑같이 아플 겁니다. 아니, 그보다 더 아플 수도 있습니다.”
“무슨.”
환자가 믿지 않자 태수는 증거를 보였다.
씨암 모니터를 가까이 가져와 환자가 보기 좋은 곳에 위치 시켰다.
“여기가 위입니다. 그런데 아래 부분이 끊어져 있죠?”
“그런데.”
“여기가 십이지장이라는 뎁니다. 위하고 장하고 연결시켜주는 데요.”
본디 십이지장의 작용은 설명과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이해하기 편하도록 하는 설명이라 그런지 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아는데.”
“지금 위에서 소화시킨 음식물이 장이 아니라 배에 가득 찬 상태입니다. 염증도 생겼고요. 여기 배액관에 흘러나오는 거 보시죠?”
태수가 계속 부정할 수 없는 증거들을 제시하자 환자가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보, 보여.”
“지금 수술 안 하시면 식사를 하실 수가 없어요. 그리고 정말 배가 끊어질 거 같이 아픈 현상만 계속 될 겁니다.”
“그래도 이게 돈이 많이 들 텐데.”
“제가 아직 그렇게 비싼 의사 아니라서 많이 나오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안 아프게 해 드릴 테니까 한 번만 믿어 주세요.”
그 뒤로도 태수의 설득은 이어져 갔다.
환자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결국 펜을 들었다.
동의서에 사인을 하기 직전 환자가 마지막으로 태수에게 물었다.
“진짜 수술 받으면 안 아픈 거지?”
“수술 후에는 지금 같이 아프진 않으실 겁니다.”
“아프긴 아프다는 거잖아.”
“조금은 아프죠. 배를 갈라야 하는 거니까요. 대신에 조금만 아프게 하겠습니다.”
태수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솔직히 그렇게 여유로운 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작정 수술실로 끌고 들어갈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떤 병이고 어떻게 수술하고, 또 어떤 회복 과정까지 진행될 건지 환자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다.
옆에서 태수의 비슷한 설명을 계속 듣고 있던 아들 겸 보호자가 결국 나섰다.
“아버지, 이제 그만 수술 받으세요. 돈은 제가 낸다니까요.”
“넌 돈이 썩어나?”
“아버지 편찮으신 데 쓰는 돈이 뭐가 아깝다고요. 그러니까 받으세요. 아예 제가 사인할까요?”
“됐다. 내가 하고 말지.”
환자는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사인했다.
환자와 대화하느라 지체한 시간은 5분 남짓뿐이다.
이런 소모적인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동의서를 받아든 태수는 바로 송민규에게 지시했다.
“수술실로. 그리고 보호자 분 잠깐만요.”
태수의 부름에 50대 중반쯤으로 추정되는 보호자가 다가왔다.
“왜 그러십니까?”
“말씀드려야 할 일이 하나 있어서요.”
“뭔데요? 혹시 아버지 병이 위독하신 겁니까?”
보호자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태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수술 받으면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뭘 말한다는 건데요.”
“전 전문의가 아니라 레지던트 4년 차 전공의입니다.”
태수의 솔직한 이야기에 주변에 있던 모두가 멈칫했다.
물론 보호자의 눈빛도 크게 흔들렸다.
“지금 그 말씀은.”
“레지던트 4년 차고 다른 말로는 치프라고도 합니다.”
“지금 레지던트가 수술하겠다는 겁니까?”
보호자가 곱씹듯이 묻자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이 사람이…….”
“화를 내셔도 좋고, 욕을 하셔도 좋습니다. 정 원하시면 수술방 닫고 이송 조치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요?”
보호자가 날카롭게 물었지만 태수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환자분이 그때까지 버티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연로하신데다가 고통을 오래 참고 계시느라 체력이 많이 소진 됐습니다. 그리고 이송 중에 복막이 터지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걷잡을 수 없습니다.”
태수의 냉정한 소견을 보호자는 믿지 않았다.
“전문의도 아니라면서 뭘 그렇게 확신해요?”
“제 말이 미심쩍으시면 바로 이송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당장 준비해 줘요!”
보호자의 목소리가 크고 거칠어졌다.
태수는 그래도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그렇게 해 드리죠. 송 선생.”
“네. 치프.”
“이송 준비해 드려.”
“시간 끌면 위험한 거 아닙니까?”
“수술을 거부하시잖아.”
태수의 말에 송민규가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로 보입니다.”
“나도 알아. 그렇다고 보호자 허락이 없는데 어쩌라고.”
“이송하는 중에 사망할 확률이 큽니다.”
“수술 거부하는데 어쩌라고?”
태수의 말에 보호자의 얼굴이 순간 새까맣게 죽었다.
태수가 돌아서려 할 때였다.
턱!
보호자가 얼른 태수의 팔을 붙들며 사정했다.
“믿지 못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러면요?”
“…….”
보호자가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때였다.
“으으으.”
커튼 안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보호자는 태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왜, 왜 또 아프신 겁니까?”
“부피바카인이라는 약물을 투여했는데도 다시 진통이 오면 안 좋은 건데요. 빨리 이송하셔야 합니다.”
“늦으면요?”
“생명을 장담하기 힘듭니다.”
태수의 냉정한 말에 보호자가 놀라 소리쳤다.
“수술, 수술해 줘요!”
“해도 됩니까?”
“빨리!”
보호자의 입에서 벼락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허락이 떨어졌다.
태수는 곧장 송민규를 다그쳤다.
“수술방하고 마취 선생님은?”
“조금 전에 준비됐답니다.”
“바로 가지.”
차르륵!
태수가 커튼을 걷어냄과 동시였다.
송민규가 스크레쳐카 바퀴에 고정된 잠금 장치를 풀었다.
철컥철컥.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그 모습을 본 태수가 의아하게 물었다.
“환자 잘못 되면 송 선생도 책임 피할 수 없을 텐데.”
“그럼 실패할지도 모르는 수술을 억지로 하려는 겁니까?”
“아니.”
“그럼 됐습니다.”
송민규는 그렇게 말하며 환자를 수술실로 옮길 준비를 이어갔다.
그때였다.
태수가 송민규에게 말했다.
“고마워.”
“뭐요?”
“아주 사인이 굿이었어.”
태수가 싱긋 웃었다.
그랬다.
송민규는 재치 넘치게 태수의 의도를 간파하고 위급함을 보호자에게 전했다. 그 작전은 물론 훌륭하게 성공했다.
“살려야지요.”
송민규의 짤막한 한마디였다.
그 순간 태수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전에는 자신이 막내였지만 지금은 레지던트들 중 최고참이었다.
그때 자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그때 자신이 불만족스러웠던 건 뭐였을까.
그런 생각은 태수에게 새로운 시선을 열어줬다.
여유로움도 한때였다.
이젠 그동안 배우고 익힌 걸 누군가에게 알려줄 때다.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태수가 나지막이 송민규에게 물었다.
“그럼 어시스던트 맡아줄 거지?”
“네?”
“내가 어떤 놈인지 궁금하면 같이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
송민규는 대답하지 못했다.
수술실이 열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술실에도 당직 인원들이 대기하고 있던 탓이다.
환자를 수술실로 들여보낸 후 태수와 송민규는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송민규는 아직까지도 태수의 이런 독단적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그때 손을 모두 씻은 태수가 송민규에게 물었다.
“준비됐나?”
“…….”
“되면 들어와.”
태수는 더 재촉하지 않고 먼저 몸을 움직였다.
수술실에 들어가자 마취된 환자 주변으로 마취과 의사, 수술실 간호사, 그리고 각종 기계들로 가득했다.
태수는 마취과 의사에게 먼저 인사했다.
“새벽인데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보다 치프. 진짜 할 수 있겠어?”
“지켜봐 주십시오.”
태수는 마스크로 가려진 눈매를 부드럽게 하며 대답했다.
그때 태수에게 다가온 간호사가 알코올 솜을 내밀며 말했다.
“그동안 얼굴도 안 비추시더니 이제야 얼굴 뵙네요?”
“네?”
“뭐예요. 벌써 절 잊으셨어요?”
날카로워진 간호사 얼굴을 본 태수가 멈칫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눈매였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태수 눈매가 반달로 변했다.
“죄송합니다. 김수진 간호사님.”
“뭐야. 진짜 이제 기억난 거예요? 내가 그렇게 잘해 줬는데.”
“물론 그 은혜 안 잊었죠.”
태수는 또 한 명의 반가운 간호사를 만나 솔직히 기뻤다.
김수진 간호사는 태수가 1년차일 때도 수술실 담당이었다. 그녀로부터 각종 수술 기계의 사용법을 익혔었다.
그 대가로 가끔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후 기쁨은 잠시였다.
“수술부터 하고 나중에 이야기하시죠.”
“여전하시네요.”
“별말씀을.”
태수는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수술실에서 잡담을 많이 나눌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닌 탓이다.
우선 태수는 알코올 솜으로 수술용 장갑을 한 번 더 소독하고는 바로 환자에게로 향했다.
아직 송민규는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태수는 개의치 않고 수술 시작을 선언했다.
“시작하겠습니다.”
“어? 어시스트도 없는데.”
마취과 의사가 당황하며 말했지만 태수는 수술대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메스.”
태수가 선언하자 김수진 간호사가 바로 메스를 건넸다.
받아든 태수가 환자의 배를 그으려던 순간이다.
지잉!
수술실 입구에 설치된 자동문이 열리더니 송민규 모습이 드러났다.
태수 모습을 본 송민규가 조금은 황당한 눈매로 바라봤다.
“혼자 수술하실 수 있습니까?”
“참관이면 위에서 봐.”
태수가 눈짓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수술실 위쪽에는 참관할 수 있도록 유리로 막아 놓은 장소가 있다.
하지만 송민규는 개의치 않고 들어왔다.
“그럴 거면 진즉 올라갔을 겁니다.”
“그럼 뭐해? 빨리 달라붙지 않고.”
“알겠습니다.”
송민규가 빠르게 마지막 소독을 마치고 어시스던트 자리로 다가왔다.
태수는 그 모습을 힐끔 바라볼 뿐,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왜 들어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반대편에 섰는지.
그건 나중에 따질 문제였다.
우선 환자부터 수술하는 게 옳았다.
메스로 환부를 가르자 막혔던 복수가 쏟아져 나왔다.
송민규는 의외로 침착하게 옆에 선 어시스던트 보조 간호사에게 말했다.
“발포어(고정형 리트렉터), 썩션 두 개.”
보조 간호사는 송민규의 오더에 맞게 바로바로 수술 도구를 건넸다.
송민규는 발포어로 환부를 벌려 고정시킨 후 썩션 두 개를 사용해 복수와 음식물 찌꺼기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수술실이 확장되고 전문화 된 만큼 수술 도구도 많이 늘어난 모양이다.
외려 태수는 그걸 몰랐다.
쿠러럭!
송민규가 썩션으로 계속 복수와 부유물을 빨아들이자 조금씩 파열된 십이지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태수도 궁금한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수술에 집중했다.
“생리식염수 준비해 주시고요. 수혈팩 하나 달아주세요. 김 간호사, 믹스터, 엘리스.”
“여기요.”
김수진 간호사가 빠르게 수술 도구를 내미는 사이 다른 수술보조 간호사는 수혈팩을 달고 생리식염수를 준비했다.
태수는 두 가지 수술 도구로 우선 파열된 양쪽 십이지장의 끝을 집었다.
복수가 역으로 위장이나 장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또 반대로 흘러나오는 음식물들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그 사이 생리식염수가 준비됐다.
태수는 김수진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제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들이부으세요.”
“네. 바로 시작할게요.”
“송 선생. 썩션 하나 나한테 주고 디버로 조금 더 환부를 벌려.”
태수의 말에 송민규는 대답보다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생리식염수로 씻고, 또 씻어내자 복수와 음식물들이 거의 사라졌다.
더는 빨아드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태수는 다음 수술 순서를 이어갔다.
끊어진 십이지장의 양쪽 조직이 허물어진 상태였다.
아마도 위액에 일정 부분 녹아버린 모양이었다.
그나마도 복수와 뒤섞여 희석되어 이 정도만 진행되었다.
태수는 위장에서 내려온 십이지장의 끝은 다듬기만 하고, 소장과 연결된 십이지장은 아예 잘라버렸다.
태수의 과감하고 빠른 손놀림에 어시스던트하는 송민규의 손길이 따라가질 못했다.
“뱁콕 아니, 후크.”
요청하는 수술 도구가 정신없이 변했다.
그에 따라 보조하는 간호사 또한 손길이 바빴다.
빠르게 보조하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수의 손길은 너무도 자연스럽고도 신속했다.
십이지장의 양쪽 끝을 정리한 태수가 김수진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Catgut(흡수성 봉합사) 준비해 주세요.”
김수진 간호사가 빠르게 니들홀더에 흡수성 봉합사를 준비했다.
그 사이 송민규가 힐끔 시간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