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818
01821 1821화
그 순간 브랜든과 패드릭이 진지하게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풋!”
“크흠!”
웃음을 억누르는 모습을 보며 태수가 빙긋 미소 지었다.
“저 진짜 찾아갈 건데요.”
“진짜 그러실 거 같아서 그런 상황이 닥치면 더 연락 못 드릴 거 같습니다.”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요.”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부담을 갖지 말라고 하십니까?”
“하하.”
태수와 브랜든, 패드릭은 웃는 얼굴로 지휘 막사를 향해 걸어갔다.
썩 좋지 않은 첫 만남이었지만 이젠 잊힌 지 오래였다.
함께 주먹을 섞은 사이랄까.
브랜든과 패드릭은 태수의 남성미와 배짱에 감탄했고, 태수는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 준 그들에게 감사했다.
그 속에서 생겨난 호감들이 이젠 제법 친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 화기애애함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진료소 건물을 나선 순간이었다. PKO군이 단독 군장에 소총까지 멘 채로 지나다 태수와 시선이 마주쳤다.
“…….”
척.
그들은 형식적으로 상급자인 브랜든과 패드릭에게 거수경례를 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눈빛은 태수를 향해 있었다.
그 속에서 표출하지 못한 억울함과 불만이 느껴졌다.
아까 그 일이 굴욕으로 남아 있을 터였다.
엄연히 따지면 태수가 준 굴욕은 아니었기에 이 정도로 넘어가는 눈치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들도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기에 또다시 주먹다짐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브랜든과 패드릭이 좌우에서 호위하고 있어서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다.
태수가 어색한 미소를 지을 때였다.
패드릭의 묵직한 저음이 들려왔다.
“저놈들이 아직 닥터 최에 대해 제대로 모르나 봅니다. 한판 붙어야 정신을 차리려나.”
“저 그렇게 폭력적이진 않습니다.”
“…….”
패드릭이 커다란 얼굴로 뚱하니 바라보자 태수가 멈칫했다.
“그때도 제가 시비를 걸었던 건 아니었죠.”
“실력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것도 붙어 보기 전에는 모르는 겁니다. 붙을 생각이 없으니까 앞으로도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당분간은 조금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저쪽에서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패드릭이 진심으로 걱정하자 태수가 어깨를 들썩였다.
“걸어오는 싸움까지 피할 생각은 없고요.”
“현명하게 판단하실 거라 믿습니다.”
“그보다 가시죠. 계속 떠들고 있으면 지휘 막사에 들어갔을 때 또 권총으로 조준당할지 모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쪽입니다.”
패드릭이 안내하고, 브랜든은 반대쪽을 듬직하게 지켜 줬다.
그렇게 좌우 호위를 받으며 태수는 걸음을 옮겼다.
대피소와 지휘 막사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곧 세 사람은 지휘 막사에 같이 들어섰다.
지휘 책상에는 사무엘 중대장과 엔드류 델타 팀장, 그리고 사이먼 기자가 나란히 둘러앉아 있었다.
척.
패드릭과 브랜든이 좌우에서 똑같이 차렷 자세로 서서 보고부터 했다.
“모셔 왔습니다.”
“수고했다. 막사 밖에서 대기하도록.”
“썰.”
대답한 브랜든과 패드릭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뒤돌아 다시 지휘 막사 밖으로 나갔다.
태수는 갑자기 좌우가 텅 빈 느낌이었다.
태수는 다른 누구보다 사무엘 중대장과 먼저 시선을 마주쳤다.
그와 시선을 마주한 순간 태수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미소 지으며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얼굴이 돌변한 태수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해서 왔습니다.”
“일단 앉으십시오.”
“그러죠.”
태수는 지휘 책상의 빈자리로 향했다.
자리에 앉은 후에도 태수는 사무엘 중대장을 향한 날카로운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그때 사이먼 기자가 말을 건넸다.
“일단 오해는 풀었어. 그러니까 여기 이렇게 앉아 있는 거고.”
“고생했어.”
“진짜 고생했지.”
사이먼 기자는 공치사를 숨기지 않았다.
그런 성격이 차라리 좋았다.
하지만 사이먼 기자와 대화하는 와중에도 태수의 시선은 여전히 사무엘 중대장을 향해 있었다.
그 따가운 눈빛을 사무엘 중대장은 피하지 않았다.
턱.
그가 두 손을 책상에 올리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이먼 기자의 말대로 앞선 문제에 대한 오해는 풀렸습니다. 하지만 전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똑같이 행동할겁니다.”
“그러시겠죠.”
“…….”
“겨우 그 한마디 하려고 여기까지 부르신 겁니까?”
태수가 싸늘하게 말하자 대답은 옆에 있는 엔드류 델타 팀장에게서 들려왔다.
“그건 아닙니다.”
“…….”
“우선 아기의 상태부터 듣고 싶고, 앞으로 의료팀의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여쭈려고 모신 겁니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였다. 엔드류 델타 팀장에게 시선을 돌린 태수의 표정이 어느새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아까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클라크 장군님께 꼭 말씀드려서 팀장님과 팀원들이 외박이라도 다녀올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릉.
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깊이 숙였다.
사무엘 중대장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목소리였다.
왜 그런지 이 자리에서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가장 심기가 불편한 건 사무엘 중대장이었다.
“크흠.”
그가 헛기침을 하며 대놓고 불편함을 드러냈다.
태수는 그런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계속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그렇게 되자 엔드류 델타 팀장이 좀 난감해졌다.
“닥터 최, 이러지 마시고…….”
“신세 진 건 언젠가 자그맣게나마 꼭 돌려 드리겠습니다.”
“전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전 제 마음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겁니다.”
지지 않는 태수의 말에 엔드류 델타 팀장은 사무엘 중대장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러다 얼른 그가 태수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 일은 나중에 다시 말씀하기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인사는 받아 주시는 겁니까?”
“네. 확실히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태수는 끝까지 정중하게 말한 후 다시 허리를 펴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사무엘 중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언제 부드럽게 미소 지었냐는 듯 태수의 얼굴에는 밝았던 표정이 지워져 있었다.
상반된 그 모습에 사무엘 중대장이 영 못마땅한 얼굴로 변했다.
하지만 태수가 부하가 아니었기에 더 뭐라 할 건덕지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밝힐 뿐이다.
“금일 18시 이내로 발전기와 조명 설치는 완료될 겁니다. 지금쯤 시작됐을 겁니다.”
“네.”
“……그리고 식량은 의외로 신선 야채들이 있어 마을 주민들에게 인계했습니다. 식사도 준비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태수는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사무엘 중대장도 큰 기대는 없었는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런 어색함이 흐를 무렵 사이먼 기자가 말을 덧붙였다.
“마을 주민들이 되게 좋아하던데. 가져온 향신료 양도 상당해서 토착 음식을 만들어 줄 거 같아.”
“그래? 여기 음식은 어떤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먹어 보겠네.”
태수가 맞장구 치자 사이먼 기자가 다음 말을 꺼냈다.
“그리고 발전기는 우선 수술에 쓰고, 그 후에 생활 전기 쪽으로 돌릴 수 있게 할 건가 봐.”
“그렇게 해야지. 우리만 쓰겠다고 가져온 건 아니니까.”
그와 대화하는 태수의 반응 역시 부드러웠다.
사이먼 기자는 엔드류 델타 팀장과는 또 입장이 달라서 사무엘 중대장을 의식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 갔다.
“그렇게 되면 나 배터리부터 충전하려고. 거의 다 떨어져서 걱정했는데 마침 잘됐지 뭐야.”
“메모리가 부족하진 않고?”
“그건 노트북에 옮겨 놓으면 돼. 하드디스크 용량 빵빵해서 걱정 없어. 노트북도 전기 없어서 열어 보지도 못했다니까.”
“인터넷은 되나?”
태수가 묻자 사이먼 기자가 고개를 저었다.
“반군들이 아주 깔끔하게 날려 버렸지. 1차 교전 끝나고 인터뷰한 것부터 얼른 전송한 거였거든. 그런데 2차 교전 때 바로 통신 장비부터 바주카포로 쏘더라.”
“저런.”
“그게 붕 날아가는데…… 진짜 바주카포 쏜 놈 때리고 싶더라니까.”
“캠프 갔을 때 수소문해서 한 방 날리지 그랬어.”
태수는 대놓고 반군 캠프를 언급했다.
사무엘 중대장 들으라는 소리였다.
그 의도를 모를 리 없는 사이먼 기자는 쿵짝을 맞춰 대답했다.
“안 그래도 찾아볼까 했는데, 거기 취재할 게 너무 많아서 말이야.”
“누군지 몰라도 꿈에 드래곤 나왔나 보네.”
“내가 찾아다닌 거 알면 식겁했을 텐데 말이야. 하하.”
사이먼 기자가 웃을 때였다.
쿵.
불쾌함이 도를 넘어섰는지 사무엘 중대장이 책상을 가볍게 쳤다.
그 소리에 태수와 사이먼 기자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사무엘 중대장은 가볍게 헛기침하며 말했다.
“흠! 사적인 대화는 밖에서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더 할 얘기가 있습니까?”
“닥터 최에게 물을 게 있습니다.”
“뭡니까?”
태수가 딱딱하게 대답했지만 사무엘 중대장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반군 진영에서 수술했다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듣고 싶습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뭐라는 겁니까?”
어리둥절한 사무엘 중대장이 묻자 태수가 침묵했다.
“…….”
“알겠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들어 보겠습니다.”
사무엘 중대장이 한발 물러서자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 절 쏘시든지, 지금 절 막사 밖으로 내보내시든지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십시오.”
“…….”
“제 대답은 그겁니다.”
그리고 태수는 입을 다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를 사무엘 중대장이 아니었다.
울컥했는지 책상에 올려진 양손이 꽉 쥐어졌다.
이마까지 찡그린 그였지만 억지로 인내심을 쥐어짜 차분하게 말했다.
“그 인물에 대한 정보가 정부군과 PKO군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 지역의 긴장 상태를 완화시킬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총을 안 드신 거 보니까 나가란 의미겠습니다.”
“닥터 최.”
“가 보겠습니다. 다음에도 같은 문제로 절 찾으신다면 그땐 얼굴도 뵙지 않을 거 같네요. 그럼.”
태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 밖으로 나갔다.
쾅!
뒤에서 책상을 거칠게 후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게 태수의 걸음을 막을 순 없었다.
태수가 밖으로 나오자 사이먼 기자가 따라 나왔다.
“같이 가지. 밥 먹으러 갈 건데.”
“얼마든지. 그런데 너도 말하지 않았어?”
“누구? 아, 그 부지부장?”
끄덕.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이먼 기자가 진하게 미소 지었다.
“영상도 안 보여 줬어. 특종은 원래 혼자 안고 있는 거거든.”
“그럼 드레코와의 인터뷰는?”
“너하고 처음에 말다툼하던 그 부분만 보여 줬지.”
“철저하네.”
“종군기자 우습게 보지 마. 우리가 독해지면 그때는 진짜 답이 없으니까.”
사이먼 기자가 싱글거렸다.
그런 그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반군 캠프에 도착하기 전부터 어떤 협박에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은 인물이다.
옆에서 봤기에 그 배짱이 허풍이 아니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태수가 물었다.
“사무엘 중대장이 닦달하지 않았어?”
“그래서 어쩔 건데. 종군기자를 일개 중대장이 어쩐다고?”
사이먼 기자의 말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보다 가자고. 다른 의료진들도 같이 밥 먹는 거지?”
“그건 왜?”
“밥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 좀 하려고. 그쪽 도착하고 나서 나도 외출하고 돌아오느라 아직 제대로 인사도 못했다고.”
턱.
사이먼 기자가 넉살 좋게 대답하며 태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태수는 그런 그를 어이없는 얼굴로 쳐다봤다.
하지만 스킨십이 어색하거나 불쾌하진 않았다.
역시 함께 사선을 넘었다는 건 서로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마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