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963
01966 1966화
“소문은 그냥 생겨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진실이 바탕이 되죠.”
“당연히 그렇지.”
“그런데 그 진실조차 축소된 거라면요?”
이정민 교수의 물음에 모두의 눈빛이 흔들렸다.
“진실이 축소돼?”
“언론에 발표된 게 전부가 아니란 말인가?”
“어허, 이런.”
진위 여부에 복잡해하는 그들을 향해 이정민 교수가 약간의 힌트를 줬다.
“최 팀장이나 도 선생의 진짜 실력은 안 보는 게 좋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다들 열의에 불타오르는데 기름을 부어 주진 못할망정.”
“그 모습을 보려면 그만한 환자가 와야 합니다. 정말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응급 환자 말입니다.”
“음.”
다들 탄성을 흘리자 이정민 교수가 덧붙여 말했다.
“만약 그런 환자가 저희 병원에 찾아온다면…… 그땐 최 팀장이 그들을 부를 겁니다.”
“그들?”
“최 팀장을 받쳐 줄 팀원들. 환자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죠.”
“차라리 초대를 하면 어떤가? 기다리지 말고.”
“누구 하나 순순한 이들이 없어서요. 최 팀장이 가장 수더분한 성격입니다.”
이정민 교수가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수술실에서는 호랑이지만 평소에는 온화한 성격이다.
그런 그가 인상을 찌푸릴 정도라면?
자리한 모든 의사들이 순간 눈을 굴렸다.
“……보고 싶긴 한데, 안 보는 게 좋을 거 같기도 하고.”
“가급적이면 안 보는 게 좋을 겁니다. 병원이 뒤집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 정도야? 이 교수가 헛소리할 사람은 아닌데.”
“제 말이 허풍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이정민 교수는 느긋하게 여유를 부렸다.
그러자 오히려 다들 눈을 끔뻑이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다.
이정민 교수는 그들을 보며 남몰래 미소 지었다.
태수의 수술팀?
한마디로 정의하면 문제아 집단이다.
사실이지만, 그걸 믿고 안 믿고는 저들의 몫이었다.
후학들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초대해야겠지만, 순순히 말을 들을 인물이 하나도 없었다.
이정민 교수도 이렇게 말하는 게 최선이었다.
같은 시각.
태수는 집에서 특강 준비에 한창이었다.
예상 강의 시간은 3시간.
작년보다 1시간 늘었다.
태수도 휴가 중이었고, 아이들도 방학이라 조금 여유롭게 진행하기로 했다.
할 말이야 무한했다.
하지만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일관성 있게 전달하는지가 중요한 문제였다.
그에 대해 노트북에 하나씩 정리하고, 또 관련된 PPT 자료도 만들어야 했다.
그런 작업들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빠라밤.
휴대폰 소리에 모니터를 바라보던 태수가 힐끔 시선을 돌렸다.
무심하던 표정으로 상대를 확인한 태수의 얼굴이 곧 부드럽고 밝게 변했다.
김성국 기자였다.
태수는 휴대폰을 들고 반갑게 인사부터 건넸다.
“형님, 안녕하셨습니까.”
“야, 진짜 너무한다. 함흥차사도 이쯤 되면 한 번씩 연락했겠다.”
김성국 기자의 첫 마디부터 한방 먹임에 태수가 유연하게 대처했다.
“얼마 전에 새해라고 인사 갔잖습니까. 제가 조카들한테 세뱃돈도 많이 줬는데요.”
“……시간이 좀 지났잖아.”
“형님도 참. 아이고.”
태수가 노트북에서 벗어나며 뻣뻣한 몸을 펴자 자신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로 김성국 기자의 질문이 들려왔다.
“왜 그래?”
“아, 2시간 만에 일어나려니까 몸이 뻐근해서요.”
“혹시 자고 있었어?”
“아니요. 사실 여기가…….”
태수가 말하기 전에 김성국 기자가 먼저 말을 건넸다.
“충선대에 있는 건 알고 있어.”
“역시 형님이세요. 내일 특별 강의를 하기로 해서요, 그거 준비하는 중입니다.”
“작년에 꽤 반응이 좋았다지?”
“그냥 얼굴 알려진 선배니까 대우해 주는 거죠.”
수더분하게 넘어가려는 태수에게 김성국 기자가 태클을 걸었다.
“또 하려는 거 보니까 최 팀장도 재미있었나 본데.”
“그야 뭐.”
태수는 싫단 말은 하지 않았다.
사실 좋았다.
풋풋한 후배들과 소탈하게 대화를 나누는 게 즐겁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분비외과 한규민이나 외과 추인성 등.
여러 후배 의사들이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기고 있으니 더 좋은 말을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 마음을 모두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생략된 태수의 말을 김성국 기자가 금방 눈치챘다.
“하기 싫으면 안 했겠지.”
“하하.”
“차 한잔할 시간은 있지?”
“차요? 형님 어디신데요?”
태수가 흠칫해 묻자 김성국 기자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정문 근처.”
“하여간 형님도. 거기서 후문으로 나오세요. 그리고 세 번째 건물 보시면 커피숍 있습니다. 저도 바로 나가겠습니다.”
태수는 위치까지 자세하게 알려 주고야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잠시 후.
태수는 약속을 정한 커피숍에서 김성국 기자와 만났다.
방금 나온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신 김성국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역시. 최 팀장이 이곳을 고른 이유가 있었어.”
“향이 괜찮죠?”
“대학가에서 이 정도 맛이면 학기 중엔 미어터지겠는데?”
“그런 경향이 있죠.”
태수가 빙글빙글 미소 지으며 바라봤다.
그 시선이 의아했는지 김성국 기자가 물었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요.”
“그럼 옷에 뭐가 묻었나?”
그가 입고 있던 옷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사이 태수가 말했다.
“그런 거 아니고요. 형님 옷차림이 많이 깔끔해지셔서요.”
“난 또 뭐라고.”
“처음 뵀을 때는 후줄근한 셔츠에 면바지 차림이셨습니다.”
태수 말에 김성국 기자가 얼른 받아쳤다.
“나 원래 스타일이야.”
“그러셨습니까?”
태수가 오히려 놀라 묻자 김성국 기자가 뚱하니 말했다.
“생긴대로 살면 돼.”
“아, 그렇죠.”
“차려입긴 뭘 차려입어. 기자회견이 아니면 대충 아무거나 입고 다니면 되지.”
“그럼 지금은…….”
태수가 말꼬리를 흐렸다.
김성국 기자는 눈치 좋게 유추해 바로 대답했다.
“의학 전문 기자 할 머리는 안 되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다니니까 옷에 신경 좀 쓰기 시작했지.”
“그렇구나.”
“네 형수가 제일 좋아해.”
“하하.”
태수가 웃자 김성국 기자가 흘겨봤다.
“생각해 보니까 열 받네. 이 형님한테 너무 관심 없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요. 지금 관심이 생겨서 여쭌 겁니다.”
태수의 순발력에 김성구 기자가 혀를 찼다.
“하여간 말대답은.”
“그런데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엄 차관님 잠깐 만나러 세종 갔다가 들었지.”
김성국 기자의 말에 커피 잔을 들던 태수의 손이 멈칫했다.
“저 여기 있는 거 아십니까?”
“다 알고 있던데.”
“말한 적이 없는데요.”
“그러면 모르나. 그분 사위가 누군데.”
김성국 기자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는 이쪽 사정을 생각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응급의료대가 출범하기 전, 태수가 정민수와 김혁권과 함께 등대에 고립됐을 때 헬기까지 동원해 촬영 온 적이 있다.
그를 부른 사람이 엄수찬 차관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가끔 응급의료대 일이 끝나고 술 한잔할 때 같이 어울리기도 했다.
그래서 팀원들의 관계나 사정에 꽤 밝았다.
태수는 그의 말에 오히려 질문을 건넸다.
“박 선배는 어디 계시는데요?”
“스키장 다녀온 후로는 연락 안 해 봤어?”
“그것도 알고 계십니까?”
태수가 놀랐으나 김성국 기자는 개의치않았다.
“박 팀장이랑 며칠 전에 술 마셨거든. 그때 아주 재밌는 일이 많았다면서.”
“선배는 그다지 좋지 않은 기억이었을 텐데요.”
태수의 말에 김성국 기자가 웃었다.
“하하. 그러게 말이야. 얼굴 뻘게져서 이젠 놀지도 못한다고 얼마나 흥분하던지.”
“그게 억울하실 분이죠. 그보다…….”
“아, 아버지 병원에 출근하고 있대. 쉴 때 집안일을 좀 도와야 한다나 뭐라나. 정민수 선생, 유병태 선생, 아! 서영우 선생도 거기 있고.”
김성국 기자가 소식을 전하자 태수가 이해 간다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아, 거기요.”
“김혁권 간호사하고 이선정 간호사 등등 간호사들도 거기서 같이 수술하고 그러더라고.”
김성국 기자를 통해 팀원들 소식을 듣자 감회가 조금 새로웠다.
“정작 저는 처음 듣는 소식이네요.”
“다들 충선대에 있는 거 알던데. 원래 너무 친하면 좀 무심해지잖아.”
“저도 그래서 그냥 내려온 것도 있죠.”
“물가에 내놓은 애들도 아니고, 그냥 이래저래 지내다가 다시 가동하면 모이고 그러면 되지.”
그의 말속에서 뭔가 힌트를 얻은 태수가 조심스레 물었다.
“곧 재가동된답니까?”
“응?”
“차관님 만나고 오셨다면서요.”
태수가 핵심을 푹 찌르고 들어오자 김성국 기자가 황당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이거 뭔 말을 못하겠네.”
“중요한 일인 거 아시잖습니까.”
“음, 이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오프 더 레코드 하겠습니다.”
태수의 눈빛이 비장했다.
반면 그 말을 들은 순간 김성국 기자는 빵 터졌다.
“푸하하! 뭐? 오프 더 레코드? 하하하!”
“형님.”
“그 말이 최 팀장 입에서 나오니까 난 황당하다고. 하하.”
“…….”
태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웃던 김성국 기자도 곧 미소를 지웠다.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그런 변화가 어색하지 않은 사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김성국 기자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비밀이야. 지켜 줄 수 있지?”
“먼저 비밀로 하겠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흥분하지도 말고.”
“그 정도 문제입니까?”
“대답부터 제대로 해. 아니면 한마디도 안 할 거니까.”
김성국 기자는 진심인지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요구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 엄수.”
“오케이. 어디서부터 얘기할까.”
“…….”
“그래. 우선 응급의료대 재가동 문제.”
“네.”
태수가 대답했지만 그건 어서 말하란 재촉이었다.
그걸 눈치챈 김성국 기자는 미간을 가볍게 좁히며 말했다.
“불투명해.”
“3월까지 두 달도 안 남았는데요?”
“의학계 반발이 생각보다 심해. 송 선생 죽음을 계속 물고 늘어지고 있어.”
“…….”
“의사가 왜 위험을 자초해야 하냐, 안전과 위생이 생명인데 그것부터 지켜지지 않는다, 이런 말들이 계속 나오나 봐.”
김성국 기자의 말에 태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게 말이 됩니까?”
“모든 의사들이 반대하는 건 아니야. 그런데 영향력 있는 원로들 입김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어.”
“음.”
“아직도 가끔 칼럼으로 비난 기사가 올라오고 있고.”
“안 봐서 모릅니다.”
태수의 대답에 김성국 기자가 가볍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아주 잘하고 있어.”
“그보다 그게 보건복지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윗대가리들은 상관이 있는 모양이야. 보건복지부 안에서도 찬반이 갈려서 계속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고.”
김성국 기자 말에 태수가 처음으로 심하게 반발했다.
“그러는 사이에 정작 사람들이 고통받는 건 생각 안 한답니까?”
“그게 사실이라 해도 가시화되지 않았으니까.”
김성국 기자가 무겁게 대답을 마무리 지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태수가 한 가지 질문을 건넸다.
“반대하는 의사들이 누굽니까?”
“알면 가서 설득하게?”
“협박이라도 해야죠.”
“최 팀장을 만나 주려나 모르겠는데. 이렇게 말하면 누군지 한 명은 떠오를 거야. 그렇지?”
그 의미심장한 질문과 동시에 태수의 머릿속에 한 인물이 스쳐 지나갔다.
“박종혁 교수입니까?”
“그건 노코멘트하자고.”
“다 말씀하셨는데요.”
“난 직접 언급한 적 없어.”
기자답게 민감한 대답을 피해 가는 요령이 상당했다.
하지만 부정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