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567
02570 2570화
NGO의 일이라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었다.
태수와 박성민이 관심을 보이자 브레드 김이 빈 잔을 슬쩍 들어 보였다.
“목이 말라서 말을 못하겠네.”
“자, 자요. 여기! 아주 그냥 꽉꽉 채워 드릴게. 얼른 쭉 드시고 말씀하셔.”
박성민이 서둘러 술을 채워 줬다.
얼마나 급했는지 술이 넘쳐 손을 적셨지만, 브레드 김은 가볍게 털어 내고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탁.
그렇게 빈 잔을 내려놓은 브레드 김이 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캡틴, 아주 흥미진진하고 손에 땀을 쥘 소식이 될 거야.”
“어디 전쟁터에서 극적으로 사람을 구한 일입니까?”
“생각하는 거 하고는. NGO라고 매번 총알 날아다니는 전쟁터만 다니나?”
“그건 아니지만 손에 땀을 쥐려면 그 정도 되어야죠.”
태수가 대답하자 박성민이 끼어들었다.
“도대체 무슨 소식인데 이렇게까지 뜸을 들이실까. 그러다가 떡밥 되면 어떻게 책임지시려고.”
“그 전에 솥뚜껑 열 겁니다.”
“저 양반이 구사하는 단어들만 들어 보면 은근히 토종 한국인이라니까.”
“계속 브레이크 거실 거면 아예 시동 끄고요.”
“에헤이! 이제 막 주유했는데 시동 끄는 건 반칙이고. 내가 추가로 주유할 테니까 이제 말해 봐요.”
박성민이 애가 타는지 술병까지 들고 얼른 꼬리를 내렸다.
그런 그들의 투덕거림을 들으며 태수가 여유롭게 술잔을 기울였다.
그때 브레드 김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NGO 의사들의 선망인 드라이플라워와 스마일 비치에 대한 소식입니다.”
“푸욱!”
태수가 급히 고개 돌려 술을 내뿜었다.
그 모습에 엄수찬 차관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최 팀장도 알아?”
“뭐, 쓰읍. 하하.”
태수는 입가에 흘러내린 소주를 닦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태수에게 엄수찬 차관이 이어서 말했다.
“나도 브레드 김에게 조금 들었는데…….”
“드, 들으셨다고요?”
“그래. 듣자하니 어떤 의사를 두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사모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말이야.”
엄수찬 차관의 말과 동시였다.
옆에서 억눌려 숨넘어갈 것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으, 큭큭.”
“박 팀장은 또 왜 그래?”
“아, 아닙니……. 크흐, 크.”
박성민은 얼른 팔로 입을 틀어막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삼켰다.
엄수찬 차관은 더 깊은 내용은 모르는지 어리둥절해했다.
반면 태수의 시선은 비수와 같이 브레드 김에게로 향했다.
“왜 하필이면 그 소식이실까요.”
“재밌는 일이라서. 궁금하지 않아? 두 사람이 사모하는 그 상대가 바로 캡…….”
“크흐흡!”
브레드 김이 짓궂은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하자 태수가 얼른 헛기침으로 무마시켰다.
안 그래도 낯 뜨거운데 엄수찬 차관에게까지 광고하고 싶지 않은 탓이다.
태수는 브레드 김이 이름으로 협박하기 전에 얼른 선수를 쳤다.
“그래서 뭐가 그렇게 재밌는 일입니까?”
“이건 재밌기도 하지만 놀라도 될 일이야.”
“그러니까 뭐가요.”
“드디어 드라이플라워하고 스마일 비치가 한 의료팀에서 만났단 소식이지.”
그 소리에 태수가 눈을 끔뻑이며 입을 열었다.
“데리……. 흠흠.”
슬쩍 엄수찬 차관의 눈치를 본 태수가 정정해 다시 말했다.
“드라이플라워와 스마일 비치가 한 팀이에요?”
“그래. 몽골에서 티베트까지 소수민족을 주요 타깃으로 구성된 의료팀에서 만났다고.”
“이번이 처음입니까?”
“처음이지. 그래서 각국 NGO 지부들이 죄다 라디오 주파수를 그쪽으로 돌렸는데.”
“뭐 그렇게까지…….”
태수가 말꼬리를 흐리며 얼버무렸다.
그런데 그때 엄수찬 차관이 슬쩍 질문을 건넸다.
“김 팀장은 흥미롭다 하고, 최 팀장은 아니라고 하면 난 누굴 더 신뢰해야 하나?”
“브레드요.”
“박 팀장의 중재가 딱 좋았어. 그럼 김 팀장, 계속해 봐.”
가재는 게 편이라고 박성민이 끼어들자 엄수찬 차관은 바로 자기 입장을 명확하게 밝혔다.
브레드 김의 짓궂은 시선이 태수에게로 향했다.
계속해도 되냔 눈빛이었다.
태수 입장에선 고민할 것도 없었다. 지금 멈추게 하면 그게 더 의심 받을 상황이라 대충 손을 휘저었다.
휙휙.
그 손짓을 보고야 브레드 김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출발한 지는 좀 됐고, 지금은 몽골의 중앙 지역을 통과한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불모지는 NGO야. 그런데 그 두 의사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그간 몇 차례 크고 작은 다툼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툼?”
엄수찬 차관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브레드 김이 얼른 설명에 나섰다.
“환자를 치료하거나 응급처치하는 순서가 맞지 않았던 거겠죠.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고요.”
“저런.”
엄수찬 차관이 걱정을 보이자 브레드 김이 이어서 말했다.
“물론 환자에게 문제 된 적은 없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지금 NGO는 두 사람이 다툰 환자의 증상을 두고 아주 치열한 의견이 오가는 중입니다. 홈페이지 게시판이 시끌시끌할 정도로요.”
“그래? 그래서 누가 더 환자에게 나은 결정을 했다고 결론이 났나?”
엄수찬 차관도 묘하게 관심이 가는 눈치였다.
그에 대해선 브레드 김도 슬쩍 어깨를 들썩였다.
“아직 진행 중입니다. 처음에는 임상 사례로 시작해서 지금은 화젯거리로 부상했다던데요.”
“오호, 규모가 커지고 있는 모양이야.”
“네. 엎치락뒤치락하는 글들을 읽어 보면 더 재밌지만 그건 여기서까지 얘기할 건 아닌 거 같고요.”
“그래. 어려운 얘기 해 봐야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나저나 NGO의 의사들이 그녀들에게 관심이 많기는 한 모양이야.”
엄수찬 차관의 평가에 브레드 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많습니다. 함께하는 의사들이 소식을 올려 주길 눈 빠지게 기다릴 정도로요.”
“그렇게 만인의 사랑을 받는다면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이성의 감정도 있겠죠. 하지만 그보다 이상향이란 의미가 더 큽니다. 당파를 나눠 싸우는 이들 중에 여자들도 상당합니다.”
“같은 성별인데도?”
엄수찬 차관이 놀라자 브레드 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질투의 대상이라기보다 오지와 산천을 오가는 진취적인 성격이 더 강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NGO의 남성들을 두고 경쟁하지 않아서 응원하나 봅니다.”
“설마 그런 걸로 질투를 할까. 전자인 NGO를 대표하는 훌륭한 여성 의사들이란 의미가 더 크겠지.”
“아무튼 그녀들이 보여 주는 혁신적인 행보가 좋은 여론을 많이 형성하는 건 사실입니다.”
브레드 김의 대답에 엄수찬 차관이 관심을 계속 이끌어 갔다.
“그래서 그런 멋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의사에 대해선 아직도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나?”
“쿨럭!”
“최 팀장 천천히 마셔야지. 물을 뭘 그렇게 급하게 마셔.”
“크흠! 조심해야죠.”
태수는 꽉 잠긴 목소리로 간신히 답했다.
그렇게 태수를 진정시킨 엄수찬 차관은 다시 브레드 김에게 물었다.
“그래서 신원 파악이 아직도 안 됐다고?”
“뭐, 아는 사람만 안다고 들은 거 같습니다.”
“이 중에는 그 의사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나? 나도 슬슬 궁금해지려고 하는데.”
엄수찬 차관의 관심이 짙어지자 태수가 나섰다.
“뭘 그렇게까지요. 가끔은 비밀이라 더 흥미로울 때가 있잖습니까.”
“그런 비밀은 밝혀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기도 하잖아. 최 팀장은 궁금하지 않아?”
“하, 하하. 뭐 궁금까지야…….”
태수가 어색하게 웃자 엄수찬 차관이 슬쩍 바라봤다.
“뭐 아는 거 있으면 얼른 말하고.”
“그냥 소문에는……. 네, 뭐. 엄청 멋지고 잘생긴 의사라고 들어 본 거 같습니다.”
태수가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답했다.
그 순간 표정을 주체 못한 박성민이 재빨리 팔뚝을 물었다.
“푸흐흐, 흐흐!”
“박 팀장은 또 왜 그래?”
“가…… 간지러워서요.”
“그럼 긁지, 물면 쓰나.”
“크흐, 흡! 자극적인 게 좋을 거 같아서……. 풋!”
박성민이 결국 억눌린 웃음을 터트리자 엄수찬 차관이 야릇한 시선으로 변했다.
“어째 다들 알고 나만 모르는 느낌이야.”
“크흠! 흠!”
박성민은 답하지 않고 얼른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그때 태수가 슬그머니 나서서 엄수찬의 불쾌함을 풀어 줬다.
“저희가 전부터 소식을 접해서 좀 오버했습니다.”
“뭐 그런 의미라면.”
엄수찬 차관은 뭔가 찝찝하지만 대충 넘어갔다.
그때 브레드 김이 엄수찬 차관에게 말했다.
“어쩌면 차관님의 궁금증을 모두 풀어 드릴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티베트까지 여정이 끝난 후에 해당 팀원들 전원 휴가를 주기로 본부에서 결정했답니다.”
“그들이 휴가를 받는데 내 궁금증이 풀려?”
엄수찬 차관이 호기심을 보이자 브레드 김이 더더욱 말을 비비 꽜다.
“혹시 모르는 거 아닙니까. 드라이플라워나 스마일 비치가 한국에 입성할지요.”
“온다고 결정이 났다면 모를까, 뜬구름은 잡고 싶지 않아.”
“그러시다면.”
브레드 김이 적당한 선에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때를 노린 태수가 얼른 두 사람에게 술을 권했다.
“자자, 너무 쉬었습니다. 좀 드셔야죠.”
“너무 마시는 거 아니야?”
“전혀요. 조금 더 마시고 들어가면 푹 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더 마셔야지.”
엄수찬 차관이 다시 술잔으로 향하자 박성민이 만류했다.
“아버님, 지금이 딱 좋은 거 같습니다.”
“집이 코앞인데 뭔 상관이야. 그리고 이 정도에 끄덕할 내가 아니라고.”
“그럼 조금만 더 드시는 겁니다.”
“알았다니까. 딸 눈치 안 보고 사나 했더니 이젠 사위 눈치를 봐야 하니. 자, 들자고.”
엄수찬 차관은 앓는 소리를 했지만 박성민이 관심을 보이는 게 기분 좋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친 모두는 다시 술잔을 들었다.
늦은 밤.
엄수찬 차관과 박성민은 먼저 떠나갔다.
태수와 브레드 김도 택시가 다니는 대로까지 느릿느릿 걸어갔다.
그러던 중 태수가 브레드 김에게 물었다.
“아까 그게 무슨 말씀이셨습니까?”
“뭐가?”
“데리야하고 은영이가 한국으로 올지도 모른다고 하셨잖습니까.”
태수가 묻은 대화를 다시 끄집어냈다.
브레드 김이 슬쩍 흘겨보며 물었다.
“은근히 신경 쓰이나 봐?”
“아는 사람이 온다면 당연히 신경이 쓰이죠.”
“그래. 그게 딱 캡틴다운 말이지. 별건 아니고 그때쯤에 한국에서 큰 규모의 심포지엄이 열릴 예정이라고 해.”
“심포지엄이요?”
태수는 금시초문이었다.
그런 반응이 당연한지 브레드 김이 이어서 말했다.
“매년 하는 행사 알잖아. 그걸 이번엔 한국에서 하려는 모양이야.”
“좋은 소식이긴 하네요.”
“아무래도 그땐 세계적인 의사들이 대거 입국하겠지. 심포지엄은 최소 일주일 일정으로 진행되고.”
“그러니까 올 가능성이 있다?”
태수가 말꼬리를 올려 묻자 브레드 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 토프락 박사님이 부탄에 계시고, 네팔을 돌아서 티베트로 향할 예정이라고 해.”
“데리야 마중 나가시는 건가 봅니다.”
태수가 심드렁하게 생각을 말하자 브레드 김이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제임스 박사님도 네팔에서 합류하신단 소문이 있는데, 그건 정확하지 않고.”
“음.”
“좌우간 이번 심포지엄의 주제가 정확하게 정해지면 더 확실해지겠지만, 가능성도 있다는 거지.”
브레드 김의 말에 태수가 방긋 미소 지었다.
“기왕이면 들어왔으면 싶네요.”
“어?”
“토프락 박사님도 제임스도 오랜만에 보는 건데 다 같이 맛있는 거 먹으면 좋잖습니까.”
태수의 해맑은 목소리와 눈빛에 전혀 다른 속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태수를 빤히 바라보던 브레드 김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야 캡틴다운데, 이상하게 매번 들을 때마다 적응이 안 돼.”
“친구들입니다. 생사를 오간 현장의 전우, 그리고 좀 얌전해진 줄 알았는데 더 드세진 말괄량이.”
태수는 명확하게 정의를 내려 버렸다.
그러나 브레드 김은 그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건 막상 닥쳤을 때 생각해 보고.”
“…….”
“그 문제는 급한 게 아니잖아. 마더는 정말 괜찮은 거지?”
브레드 김도 김선미를 어머니라 불렀다.
어쩌면 누구보다 더 진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한국은 고향이지만 타국이었다. 그 외로움을 김선미가 보듬어 줬단 걸 전부터 알고 있었다.
정에 약한 브레드 김이라 더 마음이 쓰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