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755
02758 2758화
그러고 난 후 엄수찬 차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유선이의 휴대폰에 1번은 엄마, 2번은 저희 아버지, 3번은 저희 큰형…… 이렇게 저장되어 있답니다.”
“음, 그래…….”
“그리고 유선이는 항상 친구들에게 말한답니다. 어디가 아프면 의사 할아버지하고 의사 삼촌한테 가야 한다고요.”
박성민의 말에 엄수찬 차관 입이 꾹 다물렸다.
“…….”
“조금 괴롭고 힘들어도 그분들은 낫게 해 주신다고 얘기하나 봅니다. 유선이 본인도 조금만 컨디션이 안 좋으면 바로 연락하고요.”
박성민이 잠깐 말을 멈췄다.
하지만 근간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늘어놓은 말이 아니었다.
그걸 알기에 다들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박성민도 가볍게 숨을 고르고 이어서 말했다.
“그렇게 유선이가 아버지와 저희 혜민병원을 믿어 주는 마음이 바로 믿음이라고 전 확신합니다.”
“그렇지.”
“유선이는 여기 최 팀장이 총집도해서 알지만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박성민의 말에 태수가 짧게 덧붙여 말했다.
“주기적으로 검사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확률이 무척이나 높죠. 문제는 착하고 선한 아이지만 병원을 썩 좋아하지 않는단 거겠죠.”
그 말이 끝나자 박성민은 엄수찬 차관을 향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 아이가 때가 되면 엄마 손을 이끌고 병원에 찾아옵니다. 그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곳에 스스로 말입니다.”
“음.”
“그게 믿음이겠죠. 철이 없다고 생각도 없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아이라서 감정에 더 솔직하겠죠.”
“그런데 스스로 찾아온다면 말 다 한 거겠지.”
엄수찬 차관의 말에 박성민 눈빛이 번뜩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희망 병원은 찾아 주시는 모두에게 유선이와 같은 신뢰를 줄 겁니다. 어떻게 그걸 확신하냐고요?”
“…….”
엄수찬 차관은 가만히 지켜만 봤다.
그런 그와 시선을 마주한 박성민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릉.
그리고 이 안에 자리한 모두를 넓게 손짓하며 말했다.
“이 훌륭하고 멋진 사람들과 함께하는데, 어떻게 환자한테 신뢰를 받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
“그리고 그 선두엔 태수가 설 겁니다.”
당차게 말한 박성민이 태수를 눈짓했다.
화살이 갑자기 날아오자 멈칫한 태수는 이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이내 그가 엄수찬 차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선두에 선답니다.”
“……풋. 이 사람, 엉뚱하긴.”
엄수찬 차관이 황당한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리더니 바로 구박했다.
그러나 은은하게 미소 지은 태수의 표정은 여전했다.
“저도 지금 이렇게까지 깊은 대화가 오갈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습니다.”
“뭔가?”
“희망 병원…… 그 이름값은 차고 넘치게 할 겁니다.”
태수는 짧고 굵게 강단을 보였다.
엄수찬 차관은 그런 태수를 시작으로 박성민, 그리고 브레드 김과 자리한 모두를 한 번 더 크게 둘러봤다.
다들 입을 다문 채 강렬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각오는 이미 다졌단 의미다.
그걸 확인한 엄수찬 차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최 팀장도 박 팀장도, 그리고 모두의 뜻은 알았고, 이젠 내가 답을 줘야 할 차례겠지?”
“…….”
“그런데 당장 줄 답은 없어.”
“네?”
반전의 말에 다들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하지만 엄수찬 차관은 개의치 않은 다부진 표정으로 이어서 말했다.
“나도 국장이나 실장들과 상의할 시간은 있어야지.”
“아…….”
“대신 최대한 빨리 지원 방향을 수립해서 알려 주지.”
“감사합니다.”
태수가 인사하자 모두가 한목소리로 후창했다.
“감사합니다!”
엄수찬 차관의 약속이면 믿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빙그레 미소 지었다.
반면, 엄수찬 차관은 골치가 아픈 표정으로 변했다.
“내 장관 임용 축하 자리라면서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몰라.”
“하하.”
“웃기겠지. 그런데 난 지금 머리가 아주 지끈지끈해.”
절레절레.
엄수찬 차관은 괜한 엄살만은 아닌지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흔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번복하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장고에 빠져들었다.
태수와 박성민은?
테이블 밑에서 현란하게 손을 부딪쳤다.
딱, 타닥. 척!
마지막으로 가볍게 윙크하는 게 전부였다.
고맙단 인사도, 격려나 응원도 하지 않았다.
같은 마음으로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굳이 말로 전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심포지엄 준비실은 오늘도 발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틀간 여유를 가져서 그런지 타이핑 소리부터가 힘찼다.
타다닥.
자글자글한 키보드 소리가 계속 울리고, 인쇄물이 끝없이 출력되는 등 준비실이 안정적으로 돌아갔다.
그들 중 태수와 박성민, 서영우가 한데 모여 있었다.
머리를 맞댄 세 사람은 주변과 관계없이 휴대폰 화면에 온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특히 태수는 발표가 코앞이라 발표문을 한 손에 들고 있기까지 했다.
그 중요한 일도 마다하고 집중하고 있는 휴대폰 화면 속엔 국회 방송이 실시간 중계되고 있었다.
그 밑의 자막은?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 엄수찬 인사 청문회.
이렇게 적혀 있었다.
화면 속 엄수찬은 자그마한 발언대에 서 있었고, 그런 그를 향해 국회의원들의 질문이 계속되고 있었다.
-엄수찬 장관 내정자께선 앞선 대형 참사 현장에…….
-현장으로 향한 이유는, 응급의료대의 총책임자로서 비통함을 안고…….
-일부 의견이지만 보여 주기 위한 행정적…….
-보여 주기 위해 그 위험한 청화대교의 무너진 상판에…….
그렇게 엄수찬 차관, 아니 장관과 국회의원들의 공방이 엎치락뒤치락 오갔다.
심각하게 화면을 지켜보는 세 사람 중 박성민의 진지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진지하기만 한 게 아니라 예민해지기까지 했다.
얼마나 예민해졌는지 실시간 중계 화면을 보던 박성민이 갑자기 날카로운 눈빛으로 앞을 노려보며 경고했다.
“그쪽, 간식 먹는 건 좋은데, 소리는 내지 말자.”
뜬금없는 소리였다.
그런데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저 앞에선 양정한이 에너지 바 하나를 입에 물고 있었다. 에너지 바의 특성상 먹는다고 큰소리가 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성민은 그걸 잡아챘다. 그 정도로 예민해진 신경만큼 노려보는 눈빛이 살벌, 그 자체였다.
그 시선을 마주한 양정한은 바로 사레가 들렸다.
“히끅, 컥컥! 네. 크흑.”
턱. 턱.
가슴까지 치며 괴로워하자 옆에서 남선우가 얼른 음료수를 조용히 챙겨 줬다.
양정한은 속이 답답한데도 음료수를 벌컥벌컥은커녕 눈치를 보며 조심히 마셨다.
“컥…..윽.”
조심스럽게 가슴을 두드리던 양정한의 얼굴에는 억울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심포지엄 준비실 내부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키보드 두드리는 것조차도 멈춘 상태였다.
“…….”
그런 적막의 본거지는 역시나 박성민이 내보이는 예민함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만큼 예민해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오죽하면 김혁권도 지금은 박성민에게 한마디도 따지지 않았다.
그 후로 조금 더 고요한 시간이 지났다.
인사 청문회는 이곳 상황과 반대로 점점 질문들이 날카로워져 갔다. 지켜보는 긴장감도 고조되어 갈 무렵이었다.
“태수야, 끄자.”
박성민의 뜬금없는 소리에 태수가 힐끔 쳐다봤다.
“끕니까?”
“그래. 꺼. ……아이고, 우리 서 선생님, 얼마나 집중하셨는지 어깨가 다 뭉치셨네요.”
박성민은 돌연 넉살을 부리며 괜스레 서영우의 어깨를 주물렀다.
서영우는 무슨 마음인지 눈치챘는지 수더분하게 물었다.
“계속 봐 봐야 머리만 아프겠죠?”
“아무래도 그렇죠. 이미 다 끝난 게임인데요. 저기서 아무리 떠들어 봐야 바뀌는 것도 없을 거고요.”
“그래도 실시간 댓글 반응은 좋았습니다. 차관…… 흠흠, 장관님이 한 일들도 많이 기억해 주는 거 같고요.”
서영우는 직책에 관한 실수를 얼른 얼버무리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박성민도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답했다.
“그건 저도 좀 의외긴 했습니다……. 아, 더 떠들고 싶은데 이상하게 그럴 기분이 안 나네요.”
“충분히 이해하고 말고요.”
“감사합니다. 다들 괜히 긴장하면서 내 눈치 봐 준 것도 고맙고 그러네요.”
박성민은 준비실이 왜 조용한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오히려 알고 있어 태수에게 중계 영상을 그만 보자고 한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사이 휴대폰을 갈무리하고 모두에게 말했다.
“자자, 모두 분위기 풀고 어깨 돌리세요. 목소리 잘 나오는지도 확인하시고요.”
태수가 나서서 분위기를 풀어 주자 다들 힐끔거리며 굳은 몸을 가볍게 풀었다.
그중 정민수는 슬쩍 유병태에게 몸을 기울여 중얼거렸다.
“나 말이야, 선배가 저렇게까지 분위기 잡는 건 처음 봤어.”
“네가 처음이면 우리는 오죽하겠냐? 후하! 박 팀장님이 신경 곤두세우니까 태수보다 더 긴장되더라. 이제 숨이 쉬어지네.”
두 사람의 속삭임에 도성민이 슬쩍 가세했다.
“나도 막 몸이 굳어지더라니까.”
“……도끼야, 넌 그렇게 말하면 양심에 찔리지 않냐?”
“너 또 나 놀리냐?”
도성민이 째려보자 유병태가 어깨를 들썩였다.
“상식적으로, 아주 이성적으로 비교해 보자고……. 자, 저기 박 선배님 한 번 보고, 이제 여기 거울 속 네 얼굴 봐 봐. 어때?”
“내가 오버한 거 같아.”
“그렇지. 바로 그거지.”
“나도 알긴 아는데, 이상하게 네가 말하면 왠지 더 열 받아…… 이 자식아.”
꽈악.
도성민이 굵직한 팔로 유병태의 목을 걸어 압박했다. 순순히 당할 유병태가 아닌지라 얼른 몸부림쳐 반박했다.
“우씨, 안 놔? 놓으라고 했다. 하나, 둘…… 셋, 넷. 큭! 야, 반칙…….”
“시끄러워.”
“내가 곱게 당할 성싶으냐!”
우당탕.
유병태와 도성민의 몸부림에 주변이 바로 어수선하게 변했다.
그 둘의 장난은 의외로 속 깊은 행동이었다.
준비실에서 서열상 가운데에 위치하는 이들인 탓이다. 그들의 장난과 어수선함은 아직 남아 있던 긴장감을 완화시켜 줬다.
“또 시작이시네.”
“항상이지, 뭐.”
간호사들과 레지던트들이 한숨부터 쉬었다.
그럴 정도로 준비실 분위기는 쥐도 새도 모르게 부드럽고 느긋하게 변해 갔다.
유병태와 도성민이 유독 투덕거리는 이유가 이거였다.
너무도 가볍게 보이기만 하는 모습 속에 모두를 생각하는 배려가 가득 담겨 있었다.
굳이 알아주길 바라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은 한가지 마음뿐이다. 어이없는 시선을 받는다 해도 무거운 분위기를 지우는 역할에 충실했다.
그렇게 자신이 망가지더라도 팀을 더 중시하는 성격들이었다.
팀원들도 계속된 그들의 배려를 모르지 않았다.
VWD 수술 팀원이 아닌 이들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뒤로한 태수는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박성민에게 말했다.
“잘 마무리될 겁니다.”
“넌 가끔 너무도 당연한 말을 진지하게 하는 경향이 있더라. 그렇게 무게 잡고 그러면 막 목이 아프고 뻐근하고 그러지 않아?”
박성민이 평소와 같이 장황하게 말했다. 특히나 언제 심각했냔 눈빛은 위로한 태수를 황당하게 했다.
“……그냥 조용히 있겠습니다.”
“우리 태수, 삐져쪄?”
“아니요.”
“아구구! 우리 태수, 섭섭해쪄?”
박성민이 평소보다 더 오버해 놀리자 태수가 뚱한 얼굴로 변해 손에 쥔 종이를 내보였다.
펄럭.
“전혀 섭섭하지 않았고요. 이제 저도 준비해야 되니까 실례하겠습니다.”
“뭘 거창하게 준비씩이나. 그리고 넌 머릿속에 다 있는 내용들이잖아. 나랑 좀 더 놀자.”
“머릿속에 있어도 입으로 뱉어내려면 그만한 노력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딱딱하기는. 그럼 난 누구랑 놀지?”
박성민이 이상한 고민을 하자 김혁권이 멀리서 한 소리 했다.
“놀긴 뭘 놀아요. 캡틴 발표할 때 토론석에 앉아 있어야 할 분이 놀 시간이 어디 있다고.”
“태수가 알아서 하겠죠.”
“발표해 본 사람이 왜 저래. 닥터 박 발표할 때 생각해 봐요. 닥터 박한테만 물었나.”
“앗, 그건 아니었……. 잠깐만, 아저씨 그때 없었는데 어떻게 알아요?”
박성민이 의아하게 묻자 의외로 김혁권이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