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475
00478 478화
태수와 박성민, 그리고 의료진들은 환자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만약에 각성제가 통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정말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사이 인공호흡기를 코로만 산소가 흡입되는 형태로 교체했다. 대화를 하려면 아무래도 입이 자유로워야 했다.
그렇게 조치를 마친 뒤 환자가 깨어나길 기다리던 중이었다.
삐익.
기계음이 울려 확인하니 ECG의 그래프가 미묘하게 변했다.
그리고.
“으으음.”
강성복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깨어나고 있다.
아직 안심할 수는 없지만 반응이 있단 것만으로도 희망이 있단 증거였다.
꽈악.
태수를 비롯한 모든 의료진이 동시에 모두가 주먹을 꽉 쥐었다.
환호?
아니다.
지금은 그저 깨어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태수가 먼저 환자의 얼굴 쪽으로 다가갔다. 동시에 희미하게 눈을 뜨는 강성복에게 작은 플래시로 눈을 비췄다.
동공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다.
그 순간.
“너…… 너무 밝군.”
강성복의 첫마디가 들려왔다.
의외로 침착한 목소리다.
놀란 태수가 얼른 플래시를 거두며 물었다.
“앞이 보이십니까?”
“누구…… 지?”
“전 최태수라고 합니다. 여긴 신속대응센터고요.”
태수가 빠르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자 강성복은 반쯤 뜬 눈만 좌우로 돌려 주변을 확인했다. 아직 목을 돌릴 기운은 없었다.
“병…… 원이군.”
“계룡산에서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음.”
눈을 감은 강성복은 대답 대신 자그마한 신음을 흘렸다.
어렴프시 기억이 나는 모양이었다.
태수는 환자를 더 이상 재촉하지 않고 ECG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불안한 그래프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급격한 변화는 없었단 점이다.
“흐음.”
또 한 번 흘러나오는 신음을 보아하니 다시 잠든 건 아닌 것 같았다.
태수는 차분하게 기다렸다.
그때 박성민이 다른 의료진들에게 눈짓했다.
눈치 빠른 의료진들이 조용히 커튼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박성민이 태수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게.”
“변호사분 먼저 들여보내 주십시오.”
“보호자들은?”
“그 다음에요.”
태수의 말에 박성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서서히 눈을 뜬 강성복이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떻게…… 된 거지? 발을 헛디뎠다는 거……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119를 통해서 병원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보다 변호사를…… 먼저 들여보내라는 게,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군.”
“글쎄요.”
“그래. 의사는…… 입이 무거워야 하지.”
강성복은 태수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 표정이었다.
태수는 더 지체하지 않고 말했다.
“지금 환자분의 상태부터 말씀을…….”
“아니야. 온몸에 감각이 없는…… 걸 보니까 대충 짐작이 가.”
“죄송합니다.”
태수는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러나 강성복은 별다른 감흥이 없는 표정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뭔가 세상에 달관한 분위기였다.
나이가 준 선물.
인생을 어느 정도 아는 노인이란 느낌이다.
가만히 보던 태수가 조용히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말하는 데…… 이상이 없으니 괜찮은 거겠지.”
“…….”
“당황하거나…… 용을 쓰지 않아서 이상한가?”
강성복의 말에 태수가 솔직하게 말했다.
“네. 사고를 당하신 다른 분들과 많이 달라서 놀라는 중입니다.”
“표정은…… 그렇게 놀라지 않은 거 같은데.”
“이 정도가 아주 놀란 표정입니다.”
태수의 넉살 좋은 말이 커튼 속 분위기를 좀 더 부드럽게 했다.
강성복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비밀이야.”
“무지하게 궁금한데 참아야겠습니다.”
“…….”
태수의 말에 환자의 입가에 힘겨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였다.
펄럭!
커튼이 크게 들썩이며 변호사가 들어왔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변호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혀, 형님.”
“이…… 사람.”
강성복이 변호사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그 모습에 변호사는 크게 울컥했다.
“혼자 거길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이거 보세요. 이 꼴이 뭡니까.”
“크륵. 끝까지 내 걱정만…… 시켜서 미안해.”
“끝이라니요. 여기 의사 선생님이 어떻게든 해 주실 겁니다. 저에게 약속했습니다.”
“변호사가…… 거짓말을 하면 쓰나.”
강성복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자 변호사가 멈칫했다.
“혀, 형님.”
하지만 환자는 시선을 천장으로 돌리며 혼잣말같이 중얼거렸다.
“잠깐이지만 내 앞에는 아무것도…… 없더군, 아무것도.”
“네?”
“그보다 그 두 녀석…… 도 혹시 와 있나?”
“그럼요. 밖에 있습니다.”
변호사의 말에 환자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들어오…… 라고 해.”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 아니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강성복의 말을 대번에 이해했는지 변호사가 태수에게 부탁했다.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좀…….”
“지키고 있겠습니다.”
“그럼.”
변호사가 빠르게 커튼 밖으로 나갔다.
다시 둘이 된 순간이다.
강성복이 나지막이 태수에게 물었다.
“동요가 없는…… 얼굴이야.”
“저 의사입니다. 어르신을 보살피는 것만 해도 숨 가쁩니다.”
“그래도 그렇게…… 태연한 걸 보니까 이런…… 순간이 많았던 모양이지.”
“…….”
태수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는지 강성복이 힘겹게 미소를 그렸다.
“그랬…… 군.”
“더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이야기하자고.”
강성복은 그 후 입을 다물었다.
태수는 그런 강성복을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커튼이 다시 펄럭거리며 변호사와 두 아들들이 들어왔다.
강성복이 태수에게 눈짓했다.
무슨 뜻인지는 듣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끄덕.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태수가 몸을 돌려 커튼 밖으로 나왔다.
태수는 커튼 밖에 서 있었다.
지금은 여기서 멀어질 수 없었다.
언제 어떻게 환자의 상황이 급변할지 모르는 탓이다. 돌아보니 박성민과 다른 의료진은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괜찮아?”
박성민의 말에 태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솔직한 심정은 마음이 정말 무거웠다.
강성복 환자.
우연의 일치일지는 몰라도 카프레네와 비슷한 경우였고 다른 건 보다 더욱 심한 증상이란 사실이다.
같은 증상이라 해도 살린다는 보장이 아직 없는데, 더 중상이기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젠장.”
자신도 모르게 거친 말이 입에서 터져나왔다.
커튼 안에서는 조용조용히 대화를 나누는지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태수도 저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관심 없었다.
삶과 죽음을 초연한 듯한 강성복의 눈빛이 어떤 의미인지 깊게 생각해 볼 뿐이었다.
그때 커튼 안에서 흥분이 억눌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말씀이세요? 재, 재산을 다 기부하신다고요? 아버지, 어떻게 그러실 수가…….”
“니들…… 몫은 남겨 둔다고…… 했잖아.”
“아버지.”
“니들도 언젠가…… 알게 되겠지. 내 마지막 유언장은…… 이렇게 마무리 지어…… 주시게.”
강성복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버지.”
“그…… 만…… 해…… 라……. 니 애비…… 힘들어…….”
본의 아니게 듣게 된 태수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아들들의 대화를 들어 보면 강성복의 재산이 상당한 것 같았다.
그런데 대부분을 기부한단다.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가 이해되지 않았다.
잠시 후였다.
펄럭.
커튼이 걷히더니 두 아들이 나왔다.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듯 멍한 얼굴들이다.
그런 보호자들은 태수를 보자 갑자기 인상을 구겼다.
태수 앞으로 다가온 두 아들 중 형이 나지막이 으르렁거렸다.
“도대체 아버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태수가 반문하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동생이 태수의 멱살을 와락 움켜쥐었다.
“왜 정신을 혼미하시게 만들어서 일을 이 지경으로!”
“최선을 다해 달라고 하신 건 두 분이셨습니다.”
“…….”
“문제 삼지 않는다고도 말씀하셨고요.”
태수의 말은 사실이다.
두 아들들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에 부정하게 된다면 아버지를 살리지 말라고 한, 천인공노할 패륜아밖에 되지 않는다.
더 따지고 들 수가 없는 상황이다.
스르륵.
동생이 손아귀에 힘을 쭉 빼며 태수의 멱살을 풀었다. 더 이야기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인정한 모양이다.
두 아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멀어져 갔다.
반면, 돌아선 태수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기부라.’
이유야 어찌 되었든 괜찮은 생각이다.
태수는 다시 커튼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강성복의 바이탈은 안 좋게 변해 가고 있었다.
격한 감정 변화가 상태를 악화시킨 모양이다.
강성복이 조금 풀린 눈빛으로 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곤혹을…… 치른 모양이야. 내가 대신…… 사과하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어려서는…… 저러지 않았는데.”
강성복이 쓸쓸하고 공허한 눈빛을 보였다.
멈칫한 변호사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태수에게 말했다.
“옛날에 형님이 지금 공주법원 쪽에 땅을 많이 사 놓으셨습니다. 별로 쓸모도 없고 토지 구분도 애매한 땅이었죠.”
“그러셨군요.”
“친구분들이 미련하다고 욕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형님은 그런 건 한 귀로 흘리시고 묵묵히 밭으로 바꿔 가셨고요.”
“…….”
태수가 가만히 듣고 있자 변호사가 이어서 말했다.
“어느 날 그 땅이 개발되면서 땅값이 수십 배로 치솟았습니다. 벼락부자가 되신 거죠.”
“행복하셨겠습니다.”
태수의 말에 대한 대답은 강성복에게서 들려왔다.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지.”
“돈이 많으면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꼭 그렇…… 지도 않아.”
강성복의 목소리가 힘겨워지자 얼른 변호사가 이어서 말했다.
“여기저기에서 사업 제안도 들어오고, 투자 제안도 많이 받으셨다고 하네요. 그때 몇 번 사기를 당하시면서 절 만났고요.”
“아…….”
“그건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저 아들들이죠. 어려서는 찢어지게 가난했는데 갑자기 부자가 되니까 흥청망청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형님의 재산 때문에 형제간이 원수처럼 됐습니다.”
변호사가 간략하게 지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조용해진 가운데 강성복이 태수에게 말했다.
“나도 저 녀석…… 들에게 당연히 재산을…… 남겨 줘야 한다고 생각했지.”
“…….”
“하나 묻지. 최 선생은……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 줄…… 건가? 물고기 낚는 방법…… 을 알려 줄 건가?”
태수는 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라면 낚싯줄 던져 주고 물고기를 어떻게 낚는 건지 옆에서 차분하게 알려 주겠습니다.”
“나도…… 그렇게 했어야 했지.”
“음.”
“그래서 지금이라도…… 그렇게 하려고 하니까…… 저렇게 반발을 하는군.”
강성복의 간단한 설명에 변호사가 나섰다.
“공평하게 재산의 20퍼센트씩 나눠 주고 나머지는 모두 기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충분하지 않나요?”
“평생 아버지 재산만 보고 살아온 두 아들에게는 충격일 겁니다.”
변호사의 말에 강성복이 한마디 했다.
“그것만 해도…… 평생 먹고사는 데 지장 없어.”
“그거야 그렇긴 합니다.”
“그리고 죽으면…… 10원 한 장…… 가져갈 수 없는데 더…… 바라는 게 욕심이야.”
강성복의 말에 태수가 멈칫했다.
죽으면 10원짜리 하나 가져갈 수 없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했다.
태수는 뭔가 느낌이 오는지 심오한 미소를 보였다.
“그거 명언이십니다.”
“나중에…… 써먹어도 좋아.”
“무단 도용은 썩 좋아하지 않는데,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도용은… 도용이니까 내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