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24
00827 827화
이제야 모든 상황이 머릿속에 정리가 되었는지 고석범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내 이 새끼들을!”
“그럼요. 이렇게 넘어갈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다리몽둥이를 죄다 분질러 버려, 말아?”
고석범은 피곤함도 잊은 듯이 불같이 분노를 쏟아 냈다.
태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리고 절대 순순히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태수가 고석범에게 물었다.
“암이라고 진단 내린 의사가 누굽니까?”
“양시광이라 하던데.”
“제가 먼저 통화해도 되겠습니까?”
태수가 정중하게 묻자 고석범이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같은 의사라고 적당히 넘어가려는 건 아니겠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내 앞에서 해.”
“얼마든지요.”
태수는 기세 좋게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정관영이 번호를 찾아준 인성종합병원 외과 간호사실로 전화했다.
“외과입니다.”
“여기 방동의원입니다. 양시광 선생님 통화 가능하십니까?”
“또 무슨 일이신데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종합병원 간호사라고 나름 콧대가 높은 모양이다. 그러나 태수는 그런 간호사의 목소리에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고석범 환자분 일로 전화드렸다고 하시면 알 겁니다.”
“아까도 전화 주셨잖아요. 좌우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간호사의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끝으로 잠시 통화가 멈췄다.
옆에서 고석범의 재촉이 들려왔다.
“왜, 왜 조용한 건데?”
“연결 중입니다.”
“알았어.”
말은 그랬지만 뻗친 열이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었다. 태수도 그 마음과 같았지만 억지로 진정하며 기다렸다.
곧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지금 바쁘셔서 통화 힘드실 거 같은데요.”
“지금 안 받으면 오진으로 조만간 병원 뒤집어진다고 꼭 전해 주십시오.”
“네? 오진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쪽이 진단 내린 의사십니까?”
“아, 아니요. 잠시만요.”
간호사의 식겁한 목소리가 멀어지고 통화 연결음이 들려오더니 이번에는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시광입니다. 갑자기 전화해서 오진이라니요? 정 원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셔도 되는 겁니까?”
“전 정관영 원장님은 아닙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군데?”
양시광의 목소리가 삐딱했지만 태수는 처음이라 조용히 이야기했다.
“최태수라고 합니다.”
“최…… 태수?”
“여기저기 기사가 많이 났는데, 신문 잘 안 보시나 봅니다.”
태수 또한 이미 기분이 상한 터라 삐딱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양시광의 동요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럼 정말 그 최태수란 말입니까?”
“기사 보셨나 보네.”
“진짜 최태수 선생이라고요?”
양시광이 확인차 묻자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사칭하고 다니면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죠. 예를 들면 사기나 명예훼손이라든지, 뭐 그런 거 말입니다.”
“그러네요. 이렇게 통화화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도 엄청 반갑습니다.”
태수가 사정없이 비꼬아 말하자 양시광의 목소리에서 잔떨림이 느껴졌다.
“간호사에게 들었는데 오진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신지요?”
“고석범 환자, 암이라고 확진 내리셨습니까?”
“그렇습니다만.”
“제가 그쪽 MRI 영상을 지금 보고 있는데, 이 영상으로 진짜 암이라고 확진하신 게 맞습니까?”
태수가 다그쳐 묻자 양시광의 위축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문제라도…….”
“어떻게 암이라는 진단을 내리신 겁니까?”
“거기 MRI 보시면 간에 손가락 여섯 마디만 한 종양이 있잖습니까.”
“종양이 있으면 뭐든지 암이라고 하십니까?”
태수의 물음에 양시광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건 아닙니다만, 제가 확인한 바로는 암이 맞습니다.”
“우선 제가 오늘 새로 촬영한 MRI 영상을 보냈으니까 확인 한번 해 주시겠습니까?”
“뭘 또 새로 촬영을…….”
“일단 확인해 주십시오.”
태수는 그때까지는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속이 끓고 있지만 상대가 자료를 확인도 하지 않았는데 무턱대고 몰아칠 순 없던 탓이다.
1분이나 지났을까?
양시광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게 어떻게…….”
당황하는 걸 보아하니 깨끗한 MRI 영상에 촬영된 종양을 확인한 모양이다.
간암과 간혈관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종양 내에 혈관이 있는지 없는지였다.
깨끗한 영상으로는 종양 내에 이상을 일으킨 혈관이 확인된다. 하지만 흐릿한 영상으로는 그게 정확하게 확인이 되지 않는다.
태수는 그 점을 꼬집어 물었다.
“이제 제대로 확인이 되십니까?”
“이게 아닌데. 전 분명히 확인을 했습니다.”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모습에 누르고 있던 화가 결국 폭발했다.
“당신 눈이 요새 잘 안 보이십니까?”
“갑자기 말씀이…….”
“이 흐릿한 MRI로 암이라 확진을 했다면서요. 그게 가능한지 다른 의사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요?”
“…….”
“조직 검사 결과도 안 나왔는데, 말도 안 되게 흐릿한 영상 가지고 무슨 재주로 암이라고 확진을 내리십니까?”
태수가 몰아치자 양시광도 할 말이 있는지 따지고 들었다.
“간혈관종이라면 다행인 거 아닙니까?”
“뭐요?”
“다행이라고요.”
그 말에 태수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당신은 한 번 내뱉으면 그만이지만, 오진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는 거 모르십니까?”
“…….”
“저는 그렇다 치고, 환자분이 가만 안 계실 겁니다. 지금 친척 총동원해서 그 병원으로 몰려간다는 거 간신히 막고 있습니다. 알아서 판단하세요. 이만 끊습니다.”
탁!
태수는 거칠게 통화를 끊었다.
그때 옆에 있던 고석범의 얼굴이 통쾌함으로 물들었다.
“멋져. 아주 잘했어.”
“조금 약했나요?”
“아니야. 나야 내일이라도 찾아가서 뒤집어 놓으면 돼.”
의사인 태수가 조목조목 따져서 그런지 고석범은 정말 속 시원한 표정이었다.
태수는 진한 미소를 내보이며 말했다.
“그러시다면 내일까지 기다리실 일도 없을 겁니다.”
“그건 왜?”
“아마 식겁한 양시광 선생이 지금쯤이면 차에 시동 걸었을 테니까요.”
“무슨 소리야?”
고석범이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이 정관영이 얼른 끼어들어 물었다.
“그러니까 양시광 선생이 지금 이쪽으로 올 거라고?”
“와야죠. 무마하려면.”
“뭘 어떻게 하려는 건데?”
“곧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태수는 뭔가 생각이 있는지 끝까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에 정관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일부러 그렇게 화를 낸 거야?”
“아니요. 화를 낸 건 진심이었습니다.”
“난 네가 뭘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결국 정관영이 두 손을 들었다.
태수는 그런 정관영과 옆에 있는 고석범을 차례로 바라보며 미소 지을 뿐이었다.
잠시 후.
“원장님 좀 뵙겠다니까요!”
“글쎄, 지금 진료 중이시라니까요!”
“나도 안다니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곧 진료실 문이 열렸다.
들어오는 건 의외로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40대 초반,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50대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고석범은 40대 초반에 쭉 찢어진 눈을 가진 남자를 발견하더니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네 이놈!”
기운이 없던 고석범이 번개같이 일어나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양시광은 각오했던지 흩날리는 연처럼 고석범의 손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50대의 두꺼비 같은 인상을 한 남자가 만류했다.
“아니, 저기, 이러시면.”
“넌 또 뭐야?”
휙!
어디서 힘이 났는지 고석범은 상대를 밀쳤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 단련된 몸이라 그런지 순간적인 힘이 엄청났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한 50대 남자는 떠밀려 갔다.
“어이쿠.”
그가 쓰러진 걸 본 순간 태수와 정관영이 일어섰다.
눈짓으로 서로 어디로 가야 할지 신호를 보내고, 태수는 고석범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서 태수는 외려 고석범의 손을 꽉 쥐었다.
태수의 힘까지 더해지자 양시광은 숨이 턱턱 막혔다.
“억, 윽!”
“이거 어쩌나. 숨도 제대로 못 쉬시네.”
말은 그랬지만 태수는 고석범을 계속 도왔다.
고석범도 바보가 아닌 이상 태수가 지금 자신의 분노를 같이 풀어 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최 선생, 나 말리지 마!”
“안 된다니까요. 이러지 마세요.”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척하며 숨통을 조이자 양시광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컥컥! 숨, 숨 좀.”
그러나 두 사람은 쉽게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는 태수가 먼저 말했다.
“사람 죽어요.”
“죽여 버릴 거야. 감히, 감히 나를!”
“조금만 진정하세요. 너무 흥분하시면 간혈관종이 터집니다.”
태수는 만류하는 척하며 고석범에게 사인을 보냈다.
상대가 숨도 못 쉴 정도로 괴로워하는 게 조금 속이 시원했는지 고석범도 그제야 손을 놓았다.
“헉헉, 네 이놈을 진짜.”
“숨 크게 들이쉬시고요. 괜찮습니다. 아직 괜찮으니까 천천히 진정하세요.”
태수는 양시광의 괴로움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고석범에게만 집중했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지켜보던 정관영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필사적으로 웃음을 삼켜야 했다.
이내 다섯 명의 남자가 진료실 소파에 자리했다.
정관영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석범에게 상석을 내어주고 태수와 나란히 자리해 있었다. 고석범은 아직 제대로 분이 안 풀렸는지 연신 씩씩거렸다.
반대편에는 아직도 얼굴이 뻘건 양시광과 50대 남자가 자리한 상태였다.
50대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양 선생의…….”
“내 앞에서 저 인간을 의사 선생이라 부르지 마쇼!”
고석범이 발끈해 소리치자 50대 남자가 얼른 정정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 사람의 실수를 대신 정중히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양시광도 이어서 사과했지만 고석범의 분노에 찬 눈빛은 여전했다. 누가 고석범의 입장이라도 똑같은 반응이 나올 것이다.
상황을 지켜보던 정관영이 상대에게 물었다.
“전 이 병원 원장 정관영입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인성종합병원 외과장입니다.”
외과장은 고석범을 대할 때와 태도가 달랐다. 상황상 공손하게 대답은 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이 상황을 만든 데 대한 불만이 느껴졌다.
태수는 그 눈빛을 확실하게 봤다.
애초부터 용서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젠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다.
태수의 눈빛이 착 가라앉는 사이 정관영의 소개가 이어졌다.
“이쪽은 아까 양시광 씨와 통화한 최태수 선생입니다.”
정관영이 이름으로 부르자 양시광과 외과장 모두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따지고 들 입장이 아니었다.
외과장은 태수를 보더니 살짝 움찔했다. 여러 매체를 통해 그도 태수의 얼굴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억지로 부드러운 표정을 지은 외과장이 태수에게 말했다.
“외과장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나게 되어 참 유감입니다.”
“저도 이런 상황은 진짜 안 좋아합니다.”
“끙. 그렇죠. 그보다 최태수 선생이 직접 전화를 주셨다고요.”
외과장이 본론으로 들어가자 태수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기 제 선배님이신 정관영 원장님께서 직접 확인한 부분이고요. 증거라면 얼마든지 다시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음.”
“아무래도 믿지 못하시는 거 같으니까 보여 드리죠.”
태수는 이미 영상을 옮겨 둔 자신의 노트북을 내보였다.
흐릿한 MRI와 선명한 MRI이 반반 놓인 화면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선명한 MRI에는 간혈관종이라는 증거로 종양 내부에 확장된 혈관이 명확하게 보였다.
그런 반면 흐릿한 MRI로는 그걸 확인할 수가 없었다.
태수는 확실한 증거를 내보이며 이어서 말했다.
“이걸 보시고도 저희가 잘못 진단했다고 말씀하신다면 정말 할 말이 없을 거 같습니다.”
“아닙니다. 제 눈에도 명확하게 보이네요.”
“외과장님은 대화가 조금 통하십니다.”
태수는 사정없이 비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