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흑색 기사?”
라몬의 말에 회의장에 모은 모든 이들이 웅성거렸다.
칼리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라몬을 바라봤다.
그가 가주인 아서 드레이커를 보며 말했다.
“아벨 드레이커의 흑색 기사 승급이 증명되면 대륙 최연소 흑색 기사가 되는 셈이오. 이는 드레이커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은 물론 드레이커 가문에 소속된 흑색 기사가 한 명 더 늘어난다는 뜻이 아니겠소. 과거 흑색 기사였던 듀크 드레이커가 임무 실패 이후 흑색 기사의 경지를 잃은 뒤 십여 년 만에 나타난 쾌거라 할 수 있지.”
듀크 드레이커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원로 중 몇몇이 헛기침을 했다.
그에 대한 언급을 불편해하는 원로들은 과거 듀크 드레이커의 재판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를 했던 이들이었다.
드레이커 가문의 치부 중 하나로 쉬쉬하며 묻어 온 듀크 드레이커의 일을 라몬이 먼저 꺼내자 불편한 기색을 보인 것이었다.
아서는 라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라몬 경의 말대로 만약 아벨 드레이커가 흑색 기사로 승급을 했다면 수호 기사 위를 받을 자격은 충분하오.”
순간 아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의 몸에서 무형의 기운이 뿜어졌다. 대회의장의 공기 자체가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칼리는 아서 드레이커의 아스트랄 소드가 이 영역 전체를 겨누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숨쉬기조차 버겁다.’
진정한 흑색 기사의 능력이라면 한순간에 이 회의장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뜻대로 죽을 수도 있을 터였다.
아서 드레이커가 라몬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만약 흑색 기사를 사칭한 것이라면 응당 그에 맞는 대가를 치러야겠지.”
라몬과 아서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
칼리는 그런 가주의 태도를 보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아버지께서도 승부수를 건 것이구나.’
아벨 드레이커의 흑색 기사 승급을 빌미로 수호 기사 위를 내걸어서 틀어박혀 있던 라몬 지멘스를 바깥으로 끌어낸 것이었다.
만약 아벨 드레이커가 흑색 기사로 승급된 것이 아님에도 이를 사칭한 거라면, 더 이상 뒤에서 일을 꾸미지 못하도록 아예 못을 박아 놓을 셈이었다.
‘설사 아벨이 진짜 흑색 기사로 승급했다면 그것 또한 드레이커 가문으로서는 득이 되는 일. 아버지의 심계는 어디까지인지 따라갈 수가 없구나.’
그때 임명식이 모두 준비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서가 아스트랄 소드를 거두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그럼 가 봅시다. 정말 새로운 흑색 기사가 탄생할지 기대가 되는군.”
* * *
아텀펠의 홀은 새로운 수호 기사 위의 임명을 위해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홀 안에는 주요 기사단의 단장과 부단장들을 비롯해서 혈맹의 주요 인사들까지 모여 있었다.
드레이커 가문은 중앙 대륙을 이끄는 중심이었다.
그런 드레이커 가문 권력의 중추에 있는 수호 기사이다 보니, 당연히 모든 혈맹 가문과 중앙 대륙의 왕국들은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쿠궁!
문이 열리고 가주인 아서 드레이커를 비롯해 대회의의 참여 인원들이 홀로 들어왔다.
드레이커의 실세 중 실세들이 이 모두 모인 셈이었다.
칼리는 홀에 마련된 수호 기사위의 자리에 앉아 화려하게 꾸며진 임명식 행사장을 둘러봤다.
만약 여기서 아벨 드레이커가 흑색 기사로 승급한 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망신만 당할 뿐 아니라 그의 명예와 지멘스 가문의 명예까지 땅에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만약 아벨이 진짜 흑색 기사로 승급했다면……?’
칼리의 상식으로는 말이 되지 않았다.
그녀나 아벨 둘 다 드레이커의 순혈 각성자로서 그 누구보다 빠르게 청색 기사로 승급을 했고, 적색 기사의 단계로 올랐다.
하지만 흑색 기사는 이와는 차원이 다른 경지였다.
일평생 검에 목숨을 건 유명 기사들 중에서도 흑색 기사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역사상 가장 빠르게 흑색 기사로 승급한 사람이 바로 현 드레이커의 가주인 아서 드레이커였고, 그런 아서조차 40대가 넘어서야 흑색 기사로 승급을 했다.
이제 삼십 대에 들어선 아벨이 흑색 기사로 승급했다는 것은 대륙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때였다.
쿵!
아텀펠 홀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드레이커의 정복을 입고 적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들어오는 사내.
사자검으로 불리는 아벨 드레이커였다.
그가 당당한 걸음으로 홀을 가로질러 아서 드레이커가 앉아 있는 용의 옥좌로 다가왔다.
용의 뼈와 가죽으로 만든 용의 옥좌는 용살자 가문인 드레이커의 가주를 상징했다.
아서 드레이커는 용의 옥좌에 앉은 채 아벨을 맞이했다.
아벨이 가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드레이커 가문의 가주이자, 미들랜드의 중심지인 아틀라스 영지의 주인, 기사 중의 기사인 용살자의…….”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아서 드레이커가 손을 들고 아벨의 말을 막았다.
“됐다. 평소 같으면 그런 공치사도 즐겁게 들었을 테지만 오늘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아서 드레이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홀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말했다.
“오늘 갑작스러운 수호 기사 위의 임명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셨을 것 같소!”
아서 드레이커의 목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모두가 그의 말에 집중했다.
아서 드레이커가 말을 이었다.
“수호 기사 위는 드레이커 가문을 대표하는 기사를 의미하는 자리라 할 수 있소. 그렇기에 그 자격을 엄격하게 검증하고, 많은 현인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결정해 온 게 사실이오! 하지만!”
아서 드레이커가 목소리를 높였다.
“내 앞에 있는 아벨 드레이커가! 흑색 기사로 승급을 했다면 그 모든 절차를 뛰어넘고, 수호 기사 위를 받을 자격이 된다고 나는 생각하오!”
아서 드레이커의 말에 홀에 모인 모든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흐, 흑색 기사?”
“맙소사, 사자검이 정말로?”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아서가 손뼉을 쳤다.
홀을 울리는 그의 손뼉 소리에 금세 장내가 조용해졌다.
아서가 아벨을 바라봤다.
“아벨 드레이커. 이 자리에서 네가 진정한 흑색 기사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겠느냐.”
그러자 아벨이 아서와 눈을 마주치고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아벨이 용의 옥좌를 향해 있던 몸을 돌려서 홀에 모인 이들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모여 있는 자들 중 하나를 지목했다.
“추살대장께 청을 드리겠습니다.”
추살대장 드리탄 투른은 아벨의 지목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투른가의 기사답게 그의 체구는 일반 기사들보다 훨씬 컸다.
부리부리한 눈빛에 얼굴 가득한 흉터를 꿈틀대며 그가 아벨을 노려봤다.
“무슨 청 말이오.”
아벨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전부터 추살대장과 검을 겨루고 싶었습니다. 오늘 그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아벨의 말에 드리탄이 눈썹이 꿈틀거렸다.
정중한 듯했지만 결국 자신의 승급을 증명하기 위한 들러리가 되어 달라는 뜻이었다.
침묵하던 드리탄이 몸을 일으켰다.
쿵!
드리탄이 움직이자 홀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드리탄 투른은 투른 가문의 기사 중에서도 강하고 강직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이였다.
더불어 그는 드레이커의 적색 기사 중 하나로, 만약 그가 드레이커의 성을 받았다면 수호 기사 위를 받은 가레스 드레이커와 쌍벽을 이루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신 드리탄은 투른 가문이 대대로 맡아 온 추살대의 대장직을 십 년째 유지해 오고 있었다.
그런 드리탄이었기에 일부러 아벨에게 져 주거나 할 일은 결코 없었다.
드리탄이 등에 메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후웅!
검이라기보다는 몽둥이에 가까운 크고 투박한 대검이었다.
드리탄이 아벨을 보며 말했다.
“사자검의 요청이니 진심으로 가겠소.”
그러자 아벨이 씨익 웃으며 적룡검을 뽑아 들었다.
아텀펠 홀의 한가운데서 드리탄과 아벨이 검을 들고 서로를 겨누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드리탄이었다.
훙!
투른식 용살법을 쓰는 드리탄의 공격은 간결하고 호쾌했다.
투박해 보이는 대검을 완벽하게 다루며 짧은 검격이 연속해서 아벨을 향해 날아갔다.
파칭! 파칭!
아벨이 적룡검을 휘둘러 드리탄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 냈다.
드리탄은 자신의 검격을 막아 내는 아벨의 검이 상당히 묵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다시 검을 잡고 앞으로 돌진했다.
후웅!
드리탄의 대검이 아벨의 허리를 노리고 들어갔다.
대검을 휘둘렀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검초가 펼쳐졌다.
휘익!
그때 아벨이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드리탄의 대검 위에 올라탔다.
묘기와 같은 아벨의 모습에 홀에 있는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
대부분이 기사인 이들인 만큼 장내에 있는 자들은 드리탄의 검초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고 있었기에 그 검초를 완전히 파훼해서 검 위에 올라탄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벨이 대검 위에서 돌진하며 드리탄을 향해 적룡검을 휘둘렀다.
후웅!
드리탄이 빠르게 대검을 휘두르며 아벨을 떨쳐 내고 몸을 굴려 적룡검을 피했다.
“후우.”
바닥을 구른 드리탄이 다시 자세를 잡고 대검을 들었다.
맞은편에 선 아벨은 전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드리탄을 여유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드리탄에게 말했다.
“추살대장의 진정한 실력을 보고 싶군요.”
아벨의 도발에 드리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다시 자세를 잡은 뒤 검을 쥐고 투른식 용살법의 기수식을 취했다.
미련할 정도로 투박하고 강직한 성격을 지닌 드리탄은 언제나 기본에 충실하려 했다.
렉스 투른은 그것을 두고 드리탄의 최대 장점이라며 항상 칭찬하고는 했다.
그런 드리탄을 보며 순간 아벨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쿠구구구구!
아벨의 몸에서 오러와는 다른 기운이 일어났다.
홀에 있는 모든 이들은 마치 수 천 개의 바늘이 자신의 피부를 찌르는 듯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아벨의 기운을 정면으로 받은 드리탄은 꼿꼿하게 검을 들고는 있었지만, 무형의 기운이 주는 압박감에 온몸이 짓눌려 있었다.
‘이 기운은 마치…….’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렉스 투른이 흑색 기사의 힘을 발휘했을 때 느꼈던 그 압박감과 똑같았다.
아벨이 적룡검을 들고 서서히 드리탄에게 다가왔다.
보통 기사였다면 그 압박감만으로 무릎을 꿇었을 테지만 드리탄은 일반적인 기사와 달랐다.
그는 오히려 압박감을 떨쳐 내고 검을 들어 앞으로 나섰다.
“하아아아앗!”
기합을 내지르며 압박감을 떨친 드리탄이 아벨을 향해 투른가의 절기를 펼쳤다.
후우우웅!
거대한 황소가 거침없이 들이박듯 앞에 존재하는 것을 일도양단할 듯한 기운을 담은 대검이 아벨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키잉!
그 순간 날카로운 소리가 홀에 있는 모든 이의 귀를 울렸다.
“뭐, 뭐지?”
다른 이들이 날카로운 소리에 시선을 놓친 순간 아벨이 드리탄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드리탄의 대검이 잘려서 떨어지고 어느새 그의 몸 곳곳에 난 자상에서 피가 솟구쳤다.
쿵!
드리탄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대장님!”
추살대원들이 뛰쳐나와 쓰러진 드리탄의 상처를 살핀 뒤, 그를 끌고 홀 밖으로 나갔다.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다는 추살대의 대장이 아벨의 일검에 손도 쓰지 못하고 쓰러진 것에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적룡검을 납검한 아벨이 몸을 돌려 용의 옥좌에 앉은 아서를 바라봤다.
하지만 아서는 굳은 표정으로 옥좌에 앉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아벨이 천천히 아서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아벨을 향해 입을 열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수호 기사 위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서가 승급을 인정하기도 전에 아벨이 먼저 선수를 친 것이었다.
아서가 용의 옥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가 홀에 모인 이들을 향해 말했다.
“드레이커 가문에 여섯 번째 흑색 기사가 탄생했소!”
아서 드레이커의 말에 홀에 있는 이들이 경악했다.
가주가 직접 흑색 기사의 경지라는 것을 인정했기에 아벨 드레이커는 공식적으로 대륙의 흑색 기사로 공인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서가 말을 이었다.
“드레이커의 여섯 번째 흑색 기사인 아벨 드레이커에게 드레이커 수호 기사 위를 내리고 이에 임명하도록 한다.”
아서는 직접 아벨의 정복에 황금 패를 달아 주었다.
짝! 짝!
앉아 있던 라몬이 먼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박수 소리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곧 홀 전체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아벨은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아벨을 바라보는 칼리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