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19
519화
‘아벨?’
바닥에 떨어진 아벨은 마치 실이 끊긴 인형처럼 미동도 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지크가 경계하며 아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바닥에 엎어진 채 움직이지 않는 아벨의 몸에서는 일말의 생명력도 느낄 수가 없었다.
지크는 나락이 또 어떤 꿍꿍이를 펼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대한 주변을 경계하며 그림자로 아벨의 몸을 들어 올렸다.
그 상태로 시신을 살핀 지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없군.”
이미 아벨은 죽어 있었고, 그의 심장 부위는 끔찍하게 파여 있었다.
아벨은 과거 지멘스 아폴리온의 계약용이었던 광룡 제우스의 심장을 품고 있었고, 라몬 지멘스를 삼켜 흉신 아지타하카의 권능을 이어받았다.
그런 아벨 드레이커가 누군가에게 산 채로 심장을 뜯겨 죽어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지크는 이 상황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 아벨의 시신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폈다.
그러고 그는 용의 지혜를 사용해 과거의 정보를 읽으려 했다.
파지지지지직!
강한 반발력이 튀면서 지크의 손이 튕겨 나갔다.
지크는 아벨의 시신에 남아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곳에 얽혀 있는 카르마 데이터까지 모두 지우다니…….’
이곳에 침입한 존재가 카르마의 개념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상황에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눈앞에 있는 아벨의 시신이 가짜로 만든 시신이나 환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벨 드레이커는 진짜로 심장이 뜯겨서 죽었다.
지크는 아벨의 시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전생에서부터 쭉 이어 온 악연.
광기의 기사 아벨 드레이커는 명예도 힘도 잃은 채, 이곳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지크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부패의 권능을 일으켰다.
그에 따라 아벨의 시신이 점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아벨의 몸은 완전히 사그라들어서 녹아 없어졌다.
오랫동안 이어온 아벨과의 악연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리고 이제 지크의 머릿속에 남은 것은 하나의 의문이었다.
‘누가 아벨을 죽인 거지? 그리고 왜 심장을 뽑아 간 거고?’
아벨은 죽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크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조금이라도 남은 흔적이 있는지를 찾았다.
대부분 카르마 데이터들이 지워져 있어서 용의 지혜로도 과거의 정보를 읽을 수가 없었다.
슬슬 포기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그때 지크의 감각에 잡힌 것이 있었다.
‘이건……?’
새롭게 얻은 무한 돌파의 권능이 미세하게 남아 있는 흔적을 찾아낸 것이다.
지크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아주 작은 빛무리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빛무리가 없어지기 전에 용의 지혜를 발동시켰다.
우우우우웅!
카르마 데이터가 손상돼서 엄청난 노이즈가 지크의 머릿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크윽.’
그는 노이즈를 최대한 걸러 내며 아직 살아 있는 정보만을 선별해서 내용을 읽었다.
정보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제대로 읽는 것조차 어려웠다.
파지지지직―
강력한 스파크가 튀며 용의 지혜가 강제로 종료됐다.
지크는 그나마 남아 있는 카르마 데이터를 취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데이터를 정리하는 그때,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카르마 데이터의 손상이 심각합니다.] [정보를 읽기 위해서는 데이터의 복구가 필요합니다.]그나마 시스템의 힘으로 복구를 할 수 있다 하니 다행이었다.
“시스템, 복구 시작해.”
츠츠츠츠―
시스템이 손상된 데이터를 복구하자 그의 눈앞에 이미지 하나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이미지가 깨져 있어서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더 선명하게 안 돼?”
복구가 계속 진행되면서 조금씩 이미지가 선명해졌다.
몇 차례의 복구가 지나고 나서야 겨우 알아볼 정도가 됐다.
이미지 속에는 군청색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누군가가 서 있었다.
지크는 이미지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하지만 로브의 후드를 깊게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벨의 심장을 가져간 놈이라.’
지크는 시스템에게 말했다.
“시스템, 이 녀석의 얼굴이 제대로 나온 이미지는 없어?”
[데이터의 손상이 심각하여 제대로 복구 하지 못하였습니다. 완벽한 복구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어쨌든 복구하는 건 가능하다는 거네. 좋아,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꼭 복구해.”
지크는 시스템에게 명령을 내리고서 이미지를 다시 한 번 들여다봤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미지 속의 인물이 낯이 익었다.
한참 동안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지크의 품 안에서 거울이 강하게 진동을 일으켰다.
그가 거울을 꺼내 들었다.
“은자님?”
나부가 지크를 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지크! 젠장, 급하다! 빨리 미케네로 가라!”
“예?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계 공녀들이 미케네를 침공했단 말이다!”
지크는 나부의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나스타샤로 그들을 유인하려 했던 것은 맞지만 이렇게 대놓고 미케네를 침공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가 거울에 대고 다급히 말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은자님.”
거울을 집어넣은 지크는 곧장 미케네로 좌표를 설정했다.
거대한 빛무리와 함께 포탈이 지크의 몸을 삼켰다.
* * *
드르르르르―
굳게 닫혀 있던 남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도르래가 내려가자 그 뒤로 두꺼운 갑옷을 입은 바바리안 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쿵! 쿵! 쿵!
바바리안 부대들의 손에는 거대한 방패와 해머가 들려 있었다.
왕주먹을 필두로 미케네에 머물며 인간들의 전투법을 배운 바바리안 부대였다.
그들 앞에는 아드난과 보드미르도 함께 서 있었다.
아드난이 옆에 있는 왕주먹에게 말했다.
“나만 따라오면 됨.”
“알겠음. 근데 지크 형은 언제 옴?”
“버티다 보면 금방 올 거임.”
아드난이 쌍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먼저 달려 나갔다.
그는 남문의 측면으로 달려간 뒤 제로스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삐이이익―
신호를 받은 제로스가 삼지안 일족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쪽으로!”
티투스와 율리나를 중심으로 붙잡혀 온 삼지안 일족이 혈안의 힘을 일으켜 제로스가 가리킨 쪽 몬스터들의 정신을 제압했다.
츠츠츠츠츠―
혈안에 제압된 몬스터들의 눈빛이 붉게 물들었다.
크어어어어!
쿠아아아악!
흥분한 몬스터들이 옆에 있는 다른 몬스터들을 공격하며 대열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대열이 흐트러진 것을 보고 아드난이 왕주먹에게 말했다.
“저쪽임! 쟤들을 중앙으로 몰아야 함!”
그 말에 왕주먹이 해머를 훙훙 휘둘렀다.
“알겠음!”
목표가 정해지자 바바리안들이 몬스터들을 향해 무섭게 달려들었다.
콰콰쾅!
육중한 방패를 휘둘러 몸체를 날려 버린 후 쓰러진 몬스터의 머리를 해머로 내리쳤다.
퍼어억!
강인한 생명력과 회복력을 가진 마계의 몬스터도 바바리안의 무시무시한 근력을 따라오지는 못했다.
순식간에 측면의 몬스터 진형이 무너지면서 중앙 쪽으로 진군의 방향이 바뀌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아드난이 다시 신호를 보냈다.
삐이이이익!
이번에는 중앙 쪽 몬스터에게 혈안을 걸라는 신호였다.
제로스의 지시에 따라 삼지안 일족은 열심히 몬스터들을 제압해 서로 싸우도록 만들었다.
“크윽!”
혈안을 계속 써 대니 현기증이 났지만, 복종을 맹세한 지크의 눈빛이 떠오른 그들은 없는 정신력도 최대한 쥐어짰다.
크어어어어!
삼지안 일족의 힘에 의해 중앙 쪽에서 남문 쪽으로 몰려오던 몬스터들도 서로 싸우며 진열이 엉키고 말았다.
몇만이 넘는 군대를 이끌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보행이다.
조금이라도 방향이 엉키면 진로에 큰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마계 공녀의 명령에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진격을 하던 몬스터들은 앞에서 진열이 흐트러지자 이내 서로 엉키기 시작했다.
게다가 다른 문들과 달리 남문은 지형이 험하고 경사가 져 있어서, 다른 문들처럼 여러 방향에서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드난이 노린 것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쿠어어어어!
바바리안 부대는 아드난의 지시에 따라 몬스터들 사이를 누비며 적의 대가리를 깨부쉈다.
몬스터들 사이에 섞여 있으니 누가 몬스터고 누가 바바리안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왕주먹은 해머를 휘두르다가 가까이 다가오는 몬스터에게는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해머보다 주먹으로 친 몬스터가 더 곤죽이 되어 쓰러졌다.
전장의 상황을 읽고 있던 아드난이 어느 순간 바바리안 부대를 향해 말했다.
“됐음! 뒤로 빠지심!”
그러자 바바리안 부대가 방패를 휘두르며 몬스터들을 뚫고 퇴로를 만들었다.
후우우웅!
바바리안 부대가 빠져도 이미 엉켜서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한 몬스터들은 서로 자신들끼리 물어뜯고 싸워 댔다.
아드난과 보드미르, 바바리안 부대는 외각으로 빠져서 간혹 다른 방향으로 빠져나오는 놈들을 쳐 내기만 하면 됐다.
이대로라면 몬스터들이 자신들끼리 싸우다가 자멸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우우웅!
상공에 게이트 하나가 열렸다.
후우우우!
동시에 주변에 강한 눈보라가 일어났다.
아드난이 고개를 들고 게이트에서 나온 존재를 봤다.
머리카락부터 입고 있는 옷을 비롯해 모든 것이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공중에 떠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눈보라가 더 강하게 불어닥쳤다.
아드난은 그 존재의 정체를 알아챘다.
‘마족이다. 그것도 상급.’
게이트에서 나온 상급 마족은 엉망이 된 몬스터들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더니 들고 있던 하얀 스태프를 몬스터들에게로 겨누었다.
주아아아앙―
하얀빛이 스태프에서 튀어나오더니 서로 싸우고 있는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쿠구구구―
혼란스럽던 진형이 고요하게 바뀌었다.
성벽 위에서 몬스터들을 조종하던 삼지안 일족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눈을 감은 채 가장 큰 힘을 쓰고 있던 티투스와 율리나 역시 몬스터와의 연결이 끊기자 눈을 떴다.
“갑자기 연결이 끊겼어?”
성벽 앞은 아까보다 더 강한 눈보라가 몰아치며 앞을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밑에서 눈보라 폭풍에 휘말린 아드난과 바바리안 부대는 옴짝달싹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아드난은 설마 상급 마족이 이렇게 일찍 개입할 줄은 몰랐기에 당혹스러웠다.
‘다시 퇴로를 뚫어야 한다.’
상급 마족이 혈안에 걸린 몬스터들을 모두 얼리는 바람에 자연적인 얼음벽이 형성되어 있었다.
뒤에 있는 몬스터 웨이브가 그 벽들을 뚫고 올라오기 전에 다시 성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보드미르와 아드난이 바바리안 부대와 함께 뒤로 빠지려 할 때였다.
쿵! 쿵! 쿵!
그들을 향해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아드난은 숨을 멈췄다.
‘아이스 골렘?’
크기가 4미터는 될 법한 아이스 골램 수십 기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얼음벽을 깨고 오는 동안 아이스 골렘을 먼저 전진 배치한 것이었다.
보드미르가 이를 보며 말했다.
“쉽게 가기는 틀렸네.”
아드난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쌍검을 뽑아 들었다.
그때 뒤에 있던 왕주먹이 방패를 버리고 양손으로 해머를 들었다.
“누가 더 빨리 부수는지 내기하심?”
뒤에 있던 바바리안들도 마찬가지로 해머를 들었다.
“좋음.”
“내가 이길 거임.”
“꺼지셈. 내가 이김.”
아웅다웅하던 바바리안들이 해머를 들고는 곧장 아이스 골렘을 향해 달려갔다.
후우우웅!
그러고는 다짜고짜 해머로 아이스 골렘을 후려쳤다.
쩌저저저적!
놀랍게도 한 방에 아이스 골렘의 표면에 금이 갔다.
왕주먹이 킬킬대며 웃었다.
“봤음? 한 방임.”
그러자 다른 한 명이 해머를 휘둘러 이번엔 아이스 골렘의 다리 하나를 박살 내 버렸다.
이를 본 아드난과 보드미르가 입을 쩍 벌렸다.
바바리안들의 전투 능력이 그들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던 것이다.
수십 기의 아이스 골렘도 바바리안들이 달려드니 얼마 가지 못하고 얼음덩이가 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왕주먹이 쓰러진 아이스 골렘 위에 발을 척 올리며 말했다.
“내가 일등임.”
그러자 다른 바바리안이 소리쳤다.
“아님, 내가 일등임!”
아드난은 서로 이겼다며 떠드는 바바리안들을 보며 신호를 보냈다.
“그만하고 어서 오셈!”
바바리안들이 투덜대며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주아아아앙―
눈보라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나와 바바리안 중 한 명에게 꽂혔다.
콰드드드드―
빛에 맞은 바바리안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방금까지 해머로 아이스 골렘을 때려 부수던 바바리안이 순식간에 얼음 동상이 되어 버린 것을 보고 아드난과 보드미르가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절규하듯 외쳤다.
“피해라!”
주아아아앙―
눈보라 너머에서 사방으로 빛줄기가 쏘아졌다.
아드난과 보드미르는 부서진 아이스 골렘의 잔해 뒤로 숨어서 겨우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빛이 닿은 자리마다 거대한 얼음 기둥이 생겨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미친…….’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아드난이 숨을 죽이며 눈보라 너머를 바라봤다.
세차게 불어닥치는 눈발 사이로 아까 등장했던 순백색의 상급 마족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