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13
친해지길 바래 (2)
오후 첫 수업이 끝난 직후. 운이 좋게도 셋 다 공강이었기 때문에 적당한 카페에 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아 맞다, 너 저번에 그 뭐였지? 세계수 남편이 됐다고 했었나?”
“맞아. 그게 궁금했어.”
커피를 마시다가 자연스레 튀어나온 주제에 적당히 호응하자, 시우가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
“풉, 크흡! 콜록, 콜록, 아 그거? 맞긴 한데…… 별일은 아니야.”
“별일 아니라니? 기사에도 엄청 뜨던데. 이것 봐.”
달래가 내민 기사에는 훤칠하게 생긴 시우의 사진과 함께, 기자의 찬양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ㅇㅇ(152.44) : 아니 기자 이 새끼는 기사 쓰라고 보내놨더니 찬양하는 글을 써 내놓네 ㅋㅋㅋㅋㅋ
└ㅇㅇ : 아 세계수님 남편이잖아ㅋㅋㅋㅋ 욕하다가 잘릴 일 있음?
-ㅇㅇ : 또시우? 또시우야?
-시우오빠만세 : 오빠 잘생겼어요!
└ㅇㅇ : (덜-렁)
└시우오빠만세 : 뭐래ㅡㅡ 오빠 이말 믿지 말아요.
└ㅁ : 응~ 시우는 니 이름도 모름ㅋㅋ
아. 이 익숙한 감각.
인터넷 등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말투에 고향을 찾은 것 같아 가슴이 따스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맞긴 하거든? 진짜 별거 아니야.”
“어쩌다가 된 거야?”
“나도 몰라, 수련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번쩍 하더니 이상한 홀로그램? 그런 창이 나타나더라. 거기서 나더러 남편이 되라네.”
“아 맞아, 이번 남편들은 시스템을 쓴다고 했었지? 그럼 뭐야? 나중 가면 세계수님 볼 수 있어?”
“크흠, 큼, 난 그것보다 시헌이 가면이 더 궁금한데. 시헌아?”
갑자기 왜 이야기가 나한테 새는 건지. 모처럼 세계수 이야기나 쪽 빨아먹을 생각에 웃고 있던 얼굴이 굳어버렸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아티펙트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어서, 한참을 고민하다 답을 꺼냈다.
“별 건 아니고, 할아버지 유품이야 이거.”
“앗.”
변명신공 제1식. 탈룰라. 저번에도 써먹었던 방법이다.
변명이 통했는지 나를 바라보던 시우의 얼굴에 난처해하는 낯빛이 드리운다.
“그래서 시우야. 세계수 만났어?”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달래가 재빠르게 말을 돌리자, 시우가 입을 닫고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말하기 싫어하는 것 같은데 여기서 점수를 좀 따둬야 하나.
“그것보다 아까 정령술 잘 쓰던데, 언제 배웠어요?”
“어, 어어 그래 맞아. 너 정령술 잘 쓰잖아.”
슬쩍 시우에게 아이컨텍을 하자 사소한 배려에 감동을 받은 듯 시우가 씩 미소를 지어주었다.
곧바로 갱신되는 친구 창. 호감도도 42으로 불쑥 올랐다. 남자라 그런지 참 쉽낟.
이제 두 명 남았다.
“정령술이요? 어릴 적부터 재능이 있어서 배웠지. 어려운 건 아니에요.”
“정말? 아,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둘이 얘기하고 있어.”
옆자리에서 일어난 시우가 화장실에 들어가니, 청산유수 같았던 달래의 말이 뚝 끊기고 말았다.
‘얘 시우한테 관심 있는 거 같은데. 그걸로 한번 말이나 꺼내 볼까?’
사랑의 큐피트로 자연스레 접근해볼까. 아니 그보다 일단 이 빌어먹게 낮은 호감도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클럽에서 여자를 처음 만났을 때는 호적 조사보다는 외모 칭찬이 낫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칭찬도 못생긴 놈이 하면 스토커가 되고 범죄자가 되는 법.
“……저기, 무슨 할 말 있어요?”
눈치를 보고 있으니 진달래가 슬며시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어쩐지 데쟈뷰가 느껴진다.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분위기였다.
“그냥 되게 예쁘시구나 해서요.”
“아…… 예.”
늘어지는 목소리에 담긴 황당에 나는 입을 꾹 닫았다.
혹시나가 역시나. 미친놈 취급받았다.
어쭙잖게 호감도 올려보겠다고 지랄하는 것보단 그냥 툭 까놓고 이야기해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시우랑 되게 친하네요. 원래부터 아는 사이였어요?”
“네 그렇죠. 왜요?”
“별건 아니고, 계속 존대하는 게 좀 불편해서요. 앞으로도 계속 볼 사이인데 말 편하게 하는 게 어때요?”
“하고 싶으면 하세요. 저는 존대가 편하거든요.”
“시우랑은 잘만 하시던데.”
“……”
내가 말하는 거지만 참 끈질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어쩌겠나. 가장 가깝다는 친구가 이 여자인데.
진달래는 한참을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음료를 쭉 들이켰다.
“이런 말 하는 건 죄송하지만… 이러시면 조금 불편해요.”
난처해 보이는 분홍색의 눈동자.
안쪽 꽉 찬 돌직구가 날아온다.
어쩔 수 없나.
하긴 첫술에 배부르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었다.
“죄송하네요.”
그리 운을 띄우고, 짐짓 진지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 마음만 앞섰나 봐요.”
“……”
그리 변명을 하고 있자니 불현듯 솟구친 억울한 감정이 가슴에 뒤엉킨다.
진짜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내 주제는 내가 잘 알지만, 이 망할 세계수가 자꾸만 주제를 넘으라고 말하지 않는가.
-저벅저벅.
마침 시우가 돌아오고 있었다.
“왔어?”
살짝 지친 기색의 진달래를 본 시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으응 별거 아냐~”
하며 나를 보는 달래. 장단을 맞춰줄 것을 바라는 모양이다.
“맞아. 별거 아냐.”
한순간이나마 오늘 잘 풀려서 친구가 되는 꿈을 상상했었다.
염병.
*****
“왜 이리 죽상이야?”
“나무가 절 꼴 받게 해서요.”
수업이 끝난 저녁, 이세영을 불러내어 적당한 호프집을 찾았다.
여기 와서 술을 마신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마시지 않고 버틸 수가 없었다.
시발 거기서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 마음만 앞섰나 봐요’라니 무슨 망발이야. 스윗중남도 아니고.
저질러 버린 일에 대한 자괴감이 푹푹 솟아난다.
“아니 그런데 부른다고 오네요?”
“너 친구 없잖아. 선생님이 이런 건 케어해 주는 거지.”
“아… 예.”
식당 주인이 건네준 생맥주 한 잔을 통으로 들이켰다. 오랜만에 술을 마시니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다.
“넌 둘이 만나는데도 가면을 쓰냐?”
“항상 쓰고 있어야 하거든요.”
“어휴 강간범 아니랄까 봐, 신변 보호는 오지게 신경 쓰네. 선생님한테도 그럴 거야?”
“예. 아니 근데 얼마나 봤다고 친한 척이세요?”
“……뭐래. 지가 불렀으면서.”
투덜거린 세영이 입안에 갓 튀긴 따근따끈한 치킨을 가져다 넣었다.
오물오물,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문득 그날 내가 그녀를 겁탈했던 때의 얼굴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그때 너무 좋아하더라.
나는 그녀와 담소를 나누다가, 중간에 소주로 갈아탔다.
마시다 보니 턱 막혔던 말도 술술 튀어나왔다.
“야 강간범. 취했냐?”
“아이씨. 여기서 강간범이라 부르지 마요, 자기도 강간 판타지 있으면서.”
“무, 뭐, 뭐, 뭐래. 그딴 판타지를 누가 가져?”
“여기 있네…… 큭큭큭.”
알딸딸하니 기분이 좋았다. 억누르고 살던 게 지금 와서 터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찐따라고 팩폭을 맞아 자존감이 곤두박질쳤던지라 더 그랬던 것 같다.
“뭐라는 거야 진짜.”
짐짓 화난 얼굴을 한 세영이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정말 아니에요?”
“뭐가.”
“강간당하는 거 좋아하는 거.”
“무슨 개소리야.”
“……확인해볼까?”
어이없다는 듯 비웃은 세영이 코앞에 놓인 맥주를 마시더니 기운차게 후! 숨을 뱉었다.
나는 은근슬쩍 세영의 옆자리에 옮겨 앉았다.
마침 마지막 생도 손님이 밖을 나갔다.
“못하는 게 말만 청산유수야 아주. 선생님이 그때 한 번 당해주니까 기고만장해서는- 읍!”
그때 그랬던 것처럼, 가면만을 살짝 들어 올려 입술을 훔쳤다.
“어때?”
“개, 개싫어.”
깜짝 놀라 눈이 왕구슬만 해진 세영이 욕짓거리를 뱉어온다.
심각한 분위기와는 달리 살짝 굽힌 양 손가락이 긴장에 굳어 살살 떨리고 있었다.
“알았어. 그쪽 취향 아니구나?”
“다, 당연하지 대체 누굴 뭘로 보고-”
“근데 난 너 마음에 들어서 따먹고 싶은데.”
“-헤읍”
슬쩍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중얼거렸다.
“따라 나와.”
“너…… 가만 안 둬.”
뭘 가만 안 둬. 저번에도 그 소리 해놓고선.
애초에 나랑 세영은 시작부터 틀어졌던 관계였다. 그녀를 따먹지 않으면 나는 죽어야 했고, 운 좋게 그녀의 취향이 그쪽이라 기이하게 연결고리가 맺어진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을 계산하고, 밖에 나와 아직 찬 밤공기를 들이켰다.
‘후, 친구를 구하라고? 그럼 섹프도 프렌드지. 시발.’
조르르 따라 나온 세영은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었다.
눈동자가 살살 떨리고 시선을 어느 한 곳에 고정하지 못하는 것이 꼭 무언가를 부탁하기 직전의 어린아이 같았다.
어디를 가야 할까, 모텔? 아니다.
“들어가.”
“여긴……”
내 발은 공원의 남자 화장실에 멈춰섰다.
“너, 너 미쳤어? 빨리 술 좀 깨……”
“들어가라고.”
어깨를 꽉 쥐고 강제로 화장실 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잠금쇠를 걸었다.
-쿵!
깨끗하게 정돈이 되어있는 1인 화장실.
한 발자국 세영에게 다가서자 그녀가 뒤로 물러서며 새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 마! 지, 지금이면 멈출 수 있어.”
이런 플레이는 해본 적 없지만, 대충 야동에서 본 기억을 끄집어 내어 행동했다.
세영의 머리채를 가볍게 휘어잡고 내게 끌어당긴다.
“…안 돼.”
힘을 별로 주지도 않았는데 짧게 소리를 지른 세영을 등 뒤에서 껴안은 채 입술을 빼앗았다.
두 사람의 혀가 서로의 입안을 휩쓴다.
손톱자국이 남지 않게 꽉 쥔 세영의 목에서 수줍게 울리는 심장의 고동이 느껴진다.
“하… 하읍. 으읍”
거친 숨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갔다.
두 손을 뻗어 와이셔츠를 확 뜯어내자, 단추가 튀어나갔다.
“으읏!”
가볍게 몸을 떠는 그녀의 반항을 무시하고 커다란 가슴을 터질 것처럼 쥐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새하얀 살결이 튀어나왔다.
“아파… 조금만 살살.”
“존대로 해야지?”
“살살 해주세요…”
“해달라면 해줘야지. 그런데 성의가 있어야지?”
“……네헷?”
가볍게 다리를 걸자 풀썩 넘어진 세영의 눈을 보니 탁하게 풀려있었다.
벗겨진 와이셔츠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배꼽 위의 새하얀 피부를 전부 드러냈다.
-잘그락.
바지를 풀어내리자, 세영의 동공이 커졌다.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자지에 시선이 고정된 세영의 눈이 한 차례 떨리더니, 그녀는 곧 쥐구명에 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알, 알고 있어.”
너무한 거 아닌가.
아니 뭐 대딸 정도야 할 수 있지.
한쪽 손으로 가슴을 가린 세영은 점점 다가오더니 내게 한 번 쏘아붙였다.
“나쁜 새끼.”
그리고 그녀는 입을 크게 벌려 내 자지를 머금었다.
뒤이어 짜릿한 쾌감이 물밀 듯 몰려왔다.
상상도 못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