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52
약먹는 천재마법사 552화
과거의 괴물(4)
스스로의 가슴께를 찌른 올리비에라의 손이 거침없이 심장 가장 안쪽 두꺼운 근육을 파고든다.
동시에 다른 손으로는 품안에서 꺼낸 피가 담긴 혈청을 쥐어 부스러뜨렸다.
우득!!
심장의 가장 깊은 곳을 매만지는 것을 트리거로 삼아 아티팩트의 능력을 발동.
직후 터져나온 극번의 옥염이 그대로 올리비에라의 육신을 휩쓸고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콰아아아아!!!
발전소의 맑은 하늘을 잠깐 가릴 정도로 어두운 섬광의 폭풍.
머리 위 창공을 불태우고 사라진 흑색의 기둥이 소멸한 그 자리에, 놀랍게도 올리비에라는 여전히 서 있었다.
인형처럼 차가운 그녀의 얼굴 위로 균열이 일듯 금이 간 기묘한 외견.
육신을 타고 뻗어나온 균열은 단순히 그녀의 몸에서 그치지 않고 공간 사이로까지 퍼져 있었다.
“자기 희생을 술식의 조건으로 삼는 건 거의 대부분 주술의 영역이지.”
극번의 화력을 정면에서 허용하고도 서 있는 올리비에라의 모습을 보며 레녹이 말했다.
“순수마법을 사용하는 당신도 다른 술식체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건 아니었군.”
쩌적, 쩌저저적……!!
동시에 그녀가 선 공간 위에 새겨진 균열이 깊이를 더해가며 순식간에 갈라져 부서지고.
챙그랑!!
거울이 깨져나가는 듯한 괴이한 소음과 함께, 올리비에라의 육신이 통째로 박살 나 비산했다.
그 너머에서 재차 모습을 드러내는 새로운 올리비에라의 모습.
하지만 신기루를 사용하던 아까와는 달리 도포 앞섶은 피로 물들어 있고, 그 몸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린다.
“거울이 깨지는 환상이라…… 거울상 너머의 자신과 현실의 대가를 교환하는 술식인가? 그 정도라면 그만한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도 납득이 가.”
[…….]올리비에라는 대답하는 대신 말없이 마른기침을 몇 번 터트렸다.
그녀의 가슴팍이 붉게 물들어 피를 뚝뚝 떨구고 있지만, 여전히 올리비에라는 살아 있었다.
자성영역이 파훼당해 맨몸으로 극번의 화력에 휩쓸린 결정적인 순간.
올리비에라는 자신의 심장을 찔러 훼손시키는 것을 트리거로 하는 술식을 발동.
그 시점에서 자신의 영역을 통해 만들어진 거울의 이면세계 안쪽에서 레녹의 공격을 피해 버린 것이다.
자신의 거울상과 본신의 위치를 뒤바꾸어 찰나의 공격을 받아내는 극한의 심상극의.
올리비에라 본인 조차 저렇게 위험한 조건을 걸어서 사용해야 할 만큼 위험한 기술이 틀림없겠지.
자신의 심장을 직접 훼손시키는 정도의 표식이 아니라면, 거울상과 자기 자신을 구분할 수 없어진다거나.
그런 자기동일성에 대한 모순을 짊어지지 않고서는 결코 쉽게 사용할 수 없는 마법이다.
극번의 화력을 한번 피해내는 대가로 심장을 망가뜨린 올리비에라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린다.
하지만 레녹은 그런 올리비에라를 죽이기 위해 한 번 더 마법을 휘두르는 대신, 조용히 한 발 더 뒤로 물러섰다.
그녀를 죽이지 못한 그 순간에 또 다른 3자의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챙그랑!!
“거기까지.”
극번의 섬광이 바래어지는 찰나의 순간 들려오는 무기질적인 목소리.
공간층이 벗겨지는 듯한 환상과 함께, 올리비에라의 앞을 가로막고 선 철갑날개의 형상이 엿보였다.
강철의 날개 사이로 엿보이는 칙칙한 회색의 눈동자.
“그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위험한데.’
레녹은 마른 입술을 쓸어내며 생각했다.
올리비에라의 육신을 그 자리에서 증발시키고도 남을 [극번(極燔)]의 화력.
실제로 레녹은 현실의 올리비에라와 안면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과거의 그녀를 이 자리에서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진짜 과거의 시간이 아님을 알고 있는 이상, 여기서 올리비에라를 죽인다고 현실의 그녀에게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을 터.
어중간하게 손속을 두었다가는 되려 레녹을 죽여 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강자다.
레녹이 올리비에라가 전력을 발휘하는 순간을 노린 것은 그녀의 심상을 반드시 한번은 폭주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올리비에라는 결코 알 수 없는, 미래의 그녀 자신이 만들어낸 마안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와 과거의 간극에서 오는 정보와 능력의 우위를 통해 억지로 만들어낸 허점이 아니라면, 이런 기회는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터.
레녹은 사실상 이 발전소에서 가장 까다로운 상대를 손쉽게 처리할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다.
“보기 드물게 그 재능이 뛰어나 카이세를 한번 만나보기를 바랬건만, 헛된 기대였던 모양이군.”
길레온이 무기질적인 표정으로 철갑 날개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올리비에라 스스로 위기에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길레온이 남은 여파를 막아주지 않았다면 정말 목숨이 위험했을 터.
방금 레녹의 극번 일부를 받아내는 것으로 한쪽 날개가 거의 완전히 망가져 녹아내리고 있다.
맥퀸의 목숨을 구해주기 위해 억지로 무리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손상.
하지만 길레온 역시 그것을 감내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올리비에라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강력한 마법사가 어떻게든 기를 쓰고 이 자리에서 올리비에라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가 그만큼 상대에게 있어 위협적인 존재로서 느껴졌다는 증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카이세의 연구를 간접적으로 도와준 것으로 알고 있다. 여전히 그와 함께 할 생각은 없나?”
망가진 한쪽 날개를 자연스럽게 등 뒤로 감춘 길레온이 물었지만 레녹은 그 말에 싸늘한 조소를 날릴 뿐이었다.
“시간을 끌고 싶은 생각이라면 너무 하찮은 수작이군. 지금 이 상황에서 던질 질문이 고작 그것뿐인가?”
“…….”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방금 그녀를 죽이는 데 실패한 이상, 여기서 무슨 짓을 해봤자 헛수고일 뿐일 테니.”
레녹이 길레온의 등 뒤에 서 있는 올리비에라를 향해 눈짓했다.
“오히려 네 존재가 그녀에게 방해가 되지 않겠나?”
틀린 말은 아니다.
길레온이 두 마법사 간의 공방을 저 먼 상공에서 지켜보면서 개입하지 못했던 이유도 결국 그것 때문이었으니.
위계를 초월한 무력을 지닌 두 마법사가 내뻗는 공방에 섣불리 손을 보탰다가, 오히려 나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올리비에라가 압도하는 듯했던 공방이, 오히려 길레온의 존재를 계기로 삼아 뒤집히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
길레온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개입하기 위한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침묵하던 올리비에라가 힘없이 손을 들어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그녀의 손에는 직전에 부숴 박살 냈던 혈청 보관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스스로 심장을 망가뜨린 것 치고는 실로 멀쩡한 음색. 그 안에 담겨 있던 혈액을 이용해서 위기에서 벗어난 것일까.
다만, 고작 피 몇 방울을 수혈하는 것으로 해결될 부상이 아니었던 것을 생각하면 혈청 자체에 비밀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레녹이 생각에 잠긴 사이 그녀의 전성이 이어졌다.
[그건 그동안 내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이능의 한계와도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구나.]“…….”
[넌 누구지?]올리비에라가 물었다.
[너와 같은 위계와 이능을 동시에 보유한 마법사가 있었다면, 이 대륙에서 알려지지 않았을 리가 없어.]형형하게 빛나는 그녀의 마안이 나직하게 가라앉았다.
[카이세의 계획에 따르지 않으면서도 그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존재……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알고 있느냐?]“아니.”
레녹이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 이 대화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당신은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나?”
레녹이 비웃듯이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 아니라거나, 혹은 알 수 없는 기적이나 재해의 일종이라 말한다면 납득할 수 있을까?”
[……그렇군.]올리비에라는 레녹의 말을 이해한 듯, 작게 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아까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초월적인 마력이 터져 나와 사방을 회전하기 시작했다.
[카이세에게는 미안하게 됐지만, 아무래도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구나.]마안으로 빛나는 두 눈을 감고, 안광조차 가라앉힌 올리비에라가 조용히 전성을 터트렸다.
[지금 이 자리에서 너를 지워버리는 것으로 오늘 일을 마무리 짓겠다.]파아아아앗!!!
그녀의 말고 동시에, 다시 한번 발밑에서 터져 나오는 무채색의 파동.
레녹의 마안으로 자성영역 자체가 폭주해 파훼당한 직후 한 번 더 영역을 전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저력이다.
하지만 레녹은 그녀가 펼치는 영역이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사방을 뒤덮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침식형이 아니야……!’
현실의 일부를 침식해 들어가는 거울의 장벽이 아니다.
올리비에라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심상을 통째로 뒤집어씌워, 완전한 심상영역에 레녹을 던져넣으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 그녀의 영역 안에 진입한다면 아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술식들을 상대하게 되겠지.
하지만 레녹은 그것을 알면서도 올리비에라를 견제하는 대신, 힐끗 시선을 돌렸다.
마법사의 속임수라고 생각한 길레온이 눈짓을 무시하고 이능을 끌어올리려던 그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올리비에라의 머리 위에서부터 그녀를 내리찍어 버렸다.
꽈아아아아앙!!!!
육중한 해머의 단면 사이에 얽혀들어 간 짙은 흑색의 마력.
전투망치가 허공에서 무채색의 파동과 충동하며 천지를 떨쳐 울리는 굉음을 내뿜었다.
그 심상치 않은 마력의 도래에 올리비에라가 즉시 영역전개를 취소하고 뒤로 물러난 직후.
내리 찍힌 육중한 거체가 강렬한 충격파를 터트리며 휘몰아치는 마력을 모조리 바깥으로 밀어냈다.
쿠우우우웅!!!
“반!!”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에서 묵직하게 레녹을 부르는 목소리.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 새머리거인이 어느새 레녹의 앞에 우뚝 서 다른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너무 늦었군. 미안하다……!!”
맥퀸을 만나기 직전 알 수 없는 현상으로 떨어졌던 펠릭스가, 마침내 발전소 전투에 참전했던 것이다.
* * *
“아니, 딱 맞췄다.”
레녹이 그렇게 대꾸하며 피식 웃었다.
“오히려 지금이 아니라면 타이밍을 잡을 수 없었을 거야. 도움이 됐군.”
“…….”
그 의미심장한 말의 의미를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펠릭스나 올리비에라가 아니라, 길레온이었다.
길레온이 하늘의 감시를 포기하고 올리비에라를 돕기 위해 내려왔기 때문에, 펠릭스가 발전소 안으로 들어올 기회가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
문제는 펠릭스의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후우, 후우……!!”
발전소에 오기까지 어떤 격전을 치렀는지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하고, 피멍이 들지 않은 곳을 찾기가 어렵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그 모습은 방금 올리비에라를 기습한 것만으로 소모되었다기에는 과할 정도.
아마 펠릭스 역시 단순히 길을 잃었다기보다는, 늦을 수밖에 없던 사정이 있었던 것일 터.
그렇다면 결백 역시 비슷한 이유로 인해 아직도 도착하지 못한 것일까.
‘이쪽의 합류가 너무 느려. 오히려 저쪽의 증원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군.’
레녹이 무리해가며 시간을 끌던 것은 다비의 해킹에 기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차하면 결백과 펠릭스의 합류를 통해 상황을 한 번에 정리해버릴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생각했기 때문.
8레벨의 창사인 결백이 합류하는 것만으로 전장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이대로 계속해서 끌린다면 카이세의 편에 선 다른 과거의 초인들도 발전소로 돌아오게 될 터.
그 시점에서 레녹이 카이세의 신병을 확보하거나, 프로젝트의 비밀을 알아낼 기회는 사라지게 된다.
‘발전소 안에서도 이리야가 움직이고 있지만, 카이세와 맥퀸을 상대하는 한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내기는 어렵겠지.’
레녹조차 카이세의 능력이 정확하게 어디까지 시간을 건드리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이리야의 역량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라 해도 까다로운 술사 둘을 상대로 목적을 이루기는 힘들겠지.
다비의 해킹을 통해 시공간 고정 장치의 작동을 완전히 멈추는 것, 카이세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
잘못 판단했다가는 이 자리에서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목숨이 위험해진다.
[그 모습, 어디선가 한번 봤던 것 같은데……]레녹이 생각에 잠긴 사이 올리비에라가 펠릭스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려는 것처럼, 새머리거인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그녀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렇군, 생각났다. 대전쟁이 끝나고 순례길에 오른 용병들 중 한 명이었군.]“…….”
펠릭스는 그 말에 희미하게 어깨를 꿈틀거렸지만, 대답하지는 않았다.
올리비에라는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분명 그 정도 역량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저 마법사와 손을 잡고 발칸으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이냐.]“펠릭스.”
“알고 있다, 반.”
레녹의 말에 펠릭스가 무거운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도 보았어. 입을 조심하지.”
“…….’
펠릭스 역시 지금 이 폐쇄구역에 있는 사람들이, 과거의 시공간에 남겨진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발전소까지 오는 길에 마주쳤던 적들 중에서 그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줄 누군가를 마주치기라도 했던 걸까.
레녹은 그 말에 곧바로 태도를 바꿔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카이세가 눈치를 챘다.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의 능력이 필요해.”
“카이세라…… 그리운 이름이군.”
펠릭스는 그 말에 흠칫 놀란 것처럼 중얼거리다, 이내 피식 웃었다.
“그래,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이런 일에 손을 댈 만한 광인이 당시에도 많았던 건 아니니까.”
올리비에라는 그런 펠릭스의 반응을 조용히 바라보며 마안을 번뜩였다.
펠릭스가 천천히 무거운 전투망치를 고쳐잡으며 물었다.
“위치는?”
“마지막으로 확인한 건 발전소 지하 동력실.”
“지금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군.”
“방향을 조정하는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정확한 좌표는 신경 쓰지 마. 속도를 내는 데만 집중해라.”
철컥, 철컥!!
품 안에서 샷건을 비롯한 다양한 총화기를 꺼내 정비하기 시작한 레녹의 모습에, 길레온의 눈동자가 가늘게 변했다.
마나공명 소이탄 다섯 발을 꺼내 세로로 세워놓고 예열상태로 돌려놓은 레녹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카이세는 시간을 직접 조작하는 힘이 있고, 술식을 빌려 그 힘을 통제하고 있다. 그를 상대할 때는 조심해야 할 거야.”
“이해했다.”
눈앞에 길레온과 올리비에라라는 강적을 두고도, 레녹이 카이세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이유.
펠릭스가 그 말의 의도를 깨닫지 못할 리 없다.
전투망치를 움켜쥔 새머리거인이 진중한 기색으로 숨을 고르기 시작하고, 레녹이 곧바로 손가락을 튕겼다.
“바로 시작하지. 준비해.”
딱!
레녹의 신호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발아래 가지런히 도열해 둔 마나공명 소이탄 다섯 발이 그대로 폭발.
그 화력을 고스란히 네 사람이 밟고 있는 지면 아래로 터트리며 지반을 통째로 가라앉혔다.
콰아아아아앙!!
지면을 용암처럼 녹이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통째로 증발시키고 가라앉힐 정도의 파괴력.
그 갑작스러운 이변에 다른 이들이 놀라기도 전에 펠릭스가 움직였다.
레녹의 실드와 온갖 보호마법을 그 거대한 육신에 두른 채, 아직 열기가 남아 있는 지반 아래쪽을 거침없이 파고든다.
발아래서 터져 나온 폭발에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단지 레녹이 폭발에서 자신을 보호해 줄 거라 믿고 그대로 무너져가는 지반 아래로 몸을 던질 뿐.
사방에서 갈라져 균열이 일어난 크레바스 사이로 펠릭스의 모습이 사라지고, 거의 동시에 길레온이 움직였다.
끼이익!!
무너진 지반의 싱크홀 사이에 나타나 펠릭스의 앞을 가로막는 길레온의 모습.
“맨땅을 무너뜨리고 지하로 향하는 길을 찾을 생각인가.”
“…….”
“가당치도 않은 발상이군. 이 넓은 발전소 부지에서 어떻게 위치를 찍어 맞추겠다는 거지?”
철컥!!
아직 멀쩡한 한쪽 철갑날개의 형상이 다섯 갈래 손가락처럼 갈라지며, 묵직한 시동음을 흩뿌렸다.
동시에 펠릭스의 눈앞에서 희미하게 깨져나가기 시작하는 공간박리의 현상.
길레온이 그대로 펠릭스의 몸을 공간박리 안에 담아 균열째로 깨부수려 한 그 순간.
터엉!!
길레온의 눈앞에 길쭉한 유리관 안에 담긴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무심코 시선을 위로 돌린 길레온의 시선에, 이쪽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레녹의 모습이 보였다.
“한 발 더 간다.”
“……!!”
콰아아아앙!!!
공명소이탄의 폭발과 동시에 지반을 무너뜨려 구덩이를 파내는 공용마법 싱크 홀을 난사.
순식간에 발전소의 부지 한쪽이 수십 미터 넘게 무너져내리며 지반 안쪽의 금속 단면을 드러낸다.
우연에 기댄 행동이라기엔 지나치게 정밀한 폭격. 단 한 번의 시행착오도 없이 발전소 지하시설을 찾아내는 성과.
마치 처음부터 카이세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처럼 작정하고 밀고 들어오는 상대의 행동.
그제서야 레녹의 의중을 파악한 길레온이 이를 악물고 몸을 뒹굴어 일으켜 세웠다.
“당했다. 설마 처음부터……!!”
레녹은 펠릭스가 카이세를 찾을 때까지 무작정 땅을 파고 들어갈 생각이 아니었다.
카이세의 위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그의 신병을 손에 넣기 위해 펠릭스의 조력이 필요했을 뿐.
동력실에서 카이세와 함께 연구를 하며 추적마법을 걸어두었고, 그를 통해 레녹은 이리야마저 놓쳐버린 카이세의 위치를 처음부터 특정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간다……!!”
펠릭스가 이를 악물고 마력을 끌어올린 순간, 그의 본신마력과는 다른 새카만 마력이 해머 사이로 섞여들어 가기 시작했다.
도래의 마력이 담긴 전투망치를 다루며 체내에 축적되었던 폐해.
펠릭스는 병상에서 그 후유증을 털고 일어난 뒤로, 그 몸에 남은 도래의 마력을 일시적으로 끌어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크로켄 아실러스에게 그 해머를 빼앗긴 뒤로, 굳이 비슷한 형상의 둔기를 찾아 들고 다니던 이유.
우드득……!!
해머의 형상 전면부가 마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지반 사이로 엿보이는 강철의 장벽이 폭발했다.
갑작스레 무너져내린 발전소 지하 복도 균열. 그 끝에 살짝 놀란 표정으로 멈춰선 카이세의 모습.
그런 카이세의 등 뒤에는 알 수 없는 유리병 수십 개가 담긴 카트가 희미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쿠우웅!!
그런 카이세의 정면 복도 앞에 거칠게 착지하는 육중한 새머리거인의 형상.
펠릭스의 굵직한 눈썹은 외려 카이세보다도 동요한 것처럼 씰룩이고 있었다.
“믿을 수 없군. 이 광활한 입자발전소의 부지에서 어떻게 한 번에……!!”
레녹의 말을 믿고 무작정 땅 아래를 파고들기만 했는데도 카이세의 바로 앞에 내려앉은 지금 이 상황.
카이세의 위치를 특정한 것은 물론이고, 펠릭스의 동선에 맞춰 정확하게 지반을 무너뜨려 방향을 조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기예.
즉석에서 시도한 작전인데도, 마치 처음부터 이 순간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해둔 것만 같은 절묘한 구도.
“……그렇군.”
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카이세가 무너지는 지반 사이로 레녹을 보며 피식 웃었다.
“우연일 리는 없겠지. 이미 내게 추적기를 달아두었던 거냐?”
“시공간 고정 연구를 도와준 대가, 아직 고르지 못했었지.”
레녹도 카이세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보냈다.
“방금 뭘 받을지 정했다.”
“카이세……!!”
두꺼운 부리 사이로 새카만 마력을 토해낸 펠릭스가 그대로 카이세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