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857
약먹는 천재마법사 857화
인수인계(25)
8레벨의 극위능력자들끼리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는 사령술사의 전언.
하지만 레녹은 그 말에 선뜻 대꾸하는 대신, 미심쩍은 기색으로 시체를 노려보았다.
극위능력자들이 회담을 가진다고 말했지만, 정작 이 전언을 전하는 사령술사는 위계를 초월한 술사로는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단순히 시체를 조작하고 있기에 수준을 짐작할 수 없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그들과 강하게 엮여 있는 것인지.
시체는 삽시간에 가라앉은 레녹의 싸늘한 시선에 양 손을 내저었다.
“어이쿠, 너무 날카롭게 굴지 마. 난 너와 싸우고 싶지 않거든. 나 같은 허접한 사령술사가 발칸에서 제일가는 워메이지와 상대가 될 리가 없잖나.”
“…….”
“혹시 내 본체를 찾을 생각이라면 포기하는 게 좋아. 난 이 도시에 없거든.”
시체가 음침한 웃음소리를 토해냈다.
“너 같은 괴물들은 어지간한 거리에는 구애받지 않을 테니까. 아예 도시 밖으로 자리를 옮겼지. 설령 내 술식을 파훼해서 위치를 알아내도, 난 이미 그곳에 없을 거야.”
사령술은 대부분이 술식이 죽은 시체를 대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다루는 시체의 상태에 따라 술식의 위력이 변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술식의 기본적인 효율과 소모에 있어서는 굉장히 자유로운 편이다.
지금 이 시체를 조작해서 목소리를 전달하는 사령술사는 아예 발칸 밖에서 영창을 하고 있을 만큼 먼 거리에서 술식을 조작하는 바.
사령술의 장점을 극한까지 활용해 거리를 벌리고서라도, 레녹에게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인가.
하지만 레녹은 시체의 말에도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지금 나와 말장난이라도 하자는 거냐?”
팟!!
손가락을 타고 새파란 전류 가닥이 회전한다.
무심하게 손을 내리그은 찰나, 허공을 도약한 전격의 파편이 시체의 앞에서 눈부시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츠츠츠……!!
플라스마처럼 흐릿한 빛과 함께 천천히 일그러지는 마력의 형상.
오래된 시체의 육신 따위는 삽시간에 소멸시켜 버리고도 남을 법한 화력이다.
흠칫 놀란 시체를 보며 레녹이 말했다.
“용건만 말해.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그러지 않아도 화신체 조작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쓸데없는 방해꾼이 끼어들어 거슬리는 상황.
고위 사령술사를 보는 것은 처음이라 내버려 두었지만, 자꾸 뜸을 들인다면 시체를 태워 사령술식을 짓뭉개버릴 생각이었다.
의념을 꽂아 넣고 사령술식을 비틀면, 아무리 시체를 다루는 매개술식이라 해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
“……음. 이쪽 산등성이에 사기(死氣)가 느껴지지 않는 걸 확인하고 네가 왔다는 사실을 알았지.”
그것을 눈치챈 사령술사가 순순히 대답했다.
“특히 이번 사태에 네가 굉장히 깊게 개입했다는 소식을, 의회로부터 전해 들어서 말이다.”
“…….”
“원래라면 내가 할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된 김에 이쪽의 입장을 전해두고 싶다.”
“입장?”
“조만간 발칸에 존재하는 모든 극위자를 상대로 전언이 도착할 거다.”
시체가 턱을 부딪치며 말했다.
“금제율령이 풀린 뒤로도 활동하지 않던 양지의 거인들이 움직이겠지.”
“…….”
“대부분은 시의회에 신분이 등록된 초인이겠지만, 너와 같이 경계에 걸친 이들에게도 연락이 갈 거라고 들었다.”
방위군의 반역으로 인해 발칸 전역에 걸려 있던 금제율령이 풀린지 벌써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음지에서만 활동하던 여러 초인들이 양지까지 활동반경을 넓히는 등 여러 소란이 있었으나.
정작 시의회의 금제를 받아 특혜를 구가했던 양지의 괴물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바.
투련문의 호법이었던 ‘결백’ 크로드 아즐란을 제외하곤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던 괴물들이, 이제 와 전면에 나설 생각이란 말인가.
그 말을 듣자마자 레녹이 반문했다.
“어느 쪽이지?”
“뭐가 말이냐?”
“진와의 타락과 요르타의 붕괴. 양지의 거인들이 나서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가 있을 텐데.”
“…….”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레녹의 말에, 시체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뻣뻣한 몸짓으로 고개를 비틀던 사령술사가 중얼거렸다.
“완전히 맛이 가 있군…….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태연하게 물어볼 수 있단 말이냐?”
“위치는?”
“……중앙의회에서 보존 중인 금지된 의식장이 하나 있다. 특정한 의식을 시작하면 끝나기 전까지는 모든 자극이 밖으로 유출되지 않는 구조라, 고위계 초인들이 모이기엔 적합하겠지.”
사령술사가 물었다.
“참가할 텐가?”
“굳이 이 자리에서 결정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레녹이 웃었다.
“사령술사 주제에 의회의 편에 선 놈은 영 신뢰가 안 가기도 하고 말이다.”
“…….”
“네 말이 사실인지부터 확인하고, 시의회에 직접 대답을 주지.”
아까부터 애매하게 말을 하긴 하지만, 이 시체를 다루는 사령술사가 의회 소속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아니, 애초에 이런 모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시점에서 그 역시 소위 말하는 양지의 초인들 중 하나일 터.
시의회에 신분과 능력이 정식으로 등록이 된 것도 모자라, 지금까지는 금제율령의 비호를 받고 있던 이들 중 한 명이겠지.
“거대도시는 살기 좋은 곳이지.”
그런 레녹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시체의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이 순간 진해졌다.
“이렇게 광대하고 번잡한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금세 가치를 잃어버리거든. 금기, 윤리, 생명같은 것들도 말이야.”
“의회의 편에 붙은 이유치곤 구구절절하군.”
“그럴지도 모르지.”
시체가 수긍했다.
“하지만 네가 에반 바일런에게 걸고 있는 기대 역시, 그렇기에 이 도시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닌가?”
“…….”
“너 자신뿐만 아니라, 네가 관심을 두는 모든 것들이 관리와 경계의 대상이라는 걸 알아두는 게 좋을걸. 아마 그 이야기 역시 회담에서 실컷 들을 수 있을 거다…….”
레녹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기 시작했지만, 사령술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시체가 무너지며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회담 때 볼 수 있기를 바라지. 지금보다 조금 더 안전하게 말이야.”
풀썩!!
외마디 말과 함께 사령술이 끝나고, 시체가 쓰러졌다.
메마른 바람과 함께 쓸려나간 잿가루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시신을 지워 버렸다.
“관심의 대상까지도 경계의 대상이라…….”
레녹은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다, 피식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게 바로 내가 바라는 거야.”
바일런 연구소를 막 돌아 나온 에반이, 모두의 환대를 받으며 단상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 * *
알람을 꺼둔 휴대폰 위로 메시지가 쉴 새 없이 떠오른다.
대부분은 누군가가 의미없이 뉴스 기사 링크를 걸어 보내는, 하등 쓸모없는 스팸 메시지뿐이었다.
[(속보) 에반 바일런 교수, 바일런 연구소 소장직에 정식으로 취임.] [마브 라파엘 교수와 회동을 가지는 바일런 소장. 취임식에서 공용마법 연구와 확장에 힘쓸 것을 밝혀.] [공용마법체계는 도시 전체의 발전을 위한 연구자산이라 소개한 바일런 소장은, 교수로서의 책무 역시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을 약조하며 네 번째 공용마법의 발표를 미리-]우웅!!
휴대폰 화면 위로 떠오르는 메시지들이 다 사라지기도 전에 걸려오는 전화.
한참 바닥에 앉아 두루마리 위로 무언가를 써 내리던 레녹이 돌아보지도 않고 전화를 받았다.
딸깍.
-반!!
“듣고 있다.”
-이거 다 네가 한 일이야?!
전화기 너머로도 감추지 못할 만큼 흥분한 이벨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일런 연구소장이라니, 대체 언제 이런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어?
“미리 준비했던 일은 아니야.”
레녹이 그렇게 대꾸하며 들고 있던 펜으로 아주 천천히 두루마리 위에 글씨를 적어넣었다.
“도중에 내가 빼앗아 온 거지.”
-빼앗아왔다고?
“그럼 내 이름을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데 가만히 내버려 둘 줄 알았나?”
글씨를 다 적고, 그 위에 마력을 덧대 새로운 술법진을 그려낸다.
두루마리 위에 적힌 문구가 술법진 위로 고스란히 복사되며, 그대로 레녹의 눈앞에 떠올랐다.
유려한 마력광으로 번뜩이는 글씨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레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장직을 맡긴 했지만 대부분의 권한은 라파엘에게 위임할 생각이다. 공용마법체계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야. 꾸준하게 단서만 주면 오래지 않아 성과를 내기 시작할 거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이벨린이 다시 목소리를 높여서 항의했다.
-바일런 연구소, 뉴스 보니까 이지스 쪽 애들이 관리하고 있던데. 연구소 호위는 당연히 에이전트에게 맡겼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문제였나?”
레녹이 황당한 기색으로 고개를 젓다가 말했다.
“이지스는 내가 연구소를 찾을 때부터 이미 그쪽을 관할하고 있었다. 별로 신경 써본 적은 없어. 애초에 넌 이제 에이전트 소속도 아니잖아?”
-아니,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지.
이벨린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레타 그 여자를 상대로 에이전트를 다시 빼앗아 올 거라고.
“그래, 그때가 되면 경호인력을 물갈이하는 것도 생각해 보지.”
-대충 대답하지 말고! 그것보다 할 말이 있어.
이벨린은 투덜거리면서도 곧바로 화제를 바꿨다.
레녹이 에반의 신분으로 연구소장이 된 것과는 별개로, 그녀 역시 할 말이 있어서 전화를 건 것이겠지.
-저번에 말했던 라피스의 일. 시의회와 합의가 끝났어. 구체적인 사항은 직접 만나서 조정할 것 같아.
“…….”
-조만간 발칸에 도착할 예정이고,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중앙의회와 만나러 중심구역으로 이동하겠지. 할 거야?
“글세…….”
라피스가 이번 일에 한해 주시자 에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협조할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등대지기가 직접 거대도시로 찾아와 의식을 벌여야 할 정도로 중대한 용무.
그것도 천견의 공능을 모두 회수하기 위해서라면, 필경 레녹에게도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레녹 역시 이 도시에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에반 바일런의 신분으로 대학의 강의와 공용마법 연구를 병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카이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외겁도시 쿤다라로 진입할 단서를 찾는 일도, 사령술사가 언급한 양지의 ‘회담’ 역시 무시할 수는 없는 일.
라피스가 하는 일에 잠깐 손을 거들어주는 형태라면 어렵지 않겠지만, 그녀의 곁에서 의식이 진행되는 사이 경호를 맡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지금 이벨린의 말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라고 한다면-
“의식이 진행되는 장소가 어디라고 했었지?”
-폐쇄구역으로 지정된 19구역.
이벨린이 답했다.
-발칸에서 지정된 모든 폐쇄구역들 중에서도, 가장 비밀에 싸여 있는 세 곳 중 하나야.
“…….”
-라피스가 중앙의회와 거래를 하는 이유가, 사실상 이 19구역에 들어갈 출입권한을 얻기 위해서기도 하고.
폐쇄구역으로 지정된 19구역.
발칸에서도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을 뿐, 여태껏 단 한 번도 세간에 공개된 적 없는 금단의 비처.
그리고 바일런 연구소에서 습득한 보고서에 적혀 있던, ‘인조인간’의 연구가 진행된 장소.
라피스를 도와 경호에 나선다면, 꽤 손쉽게 19구역 안에 들어갈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라피스가 중앙의회와 구체적인 사항을 합의하지 못한다면, 별다른 의미 없이 시간만 낭비하게 되겠지.
찰칵!!
펜을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난 레녹이 물었다.
“언제까지 결정해야 하지?”
[내일까지는 답을 줘야 해. 네 참가에 따라 라피스가 데려올 수행원을 결정할 생각이라 하더라.]“……알았다. 다시 연락하지.”
레녹은 그 뒤로 이벨린과의 통화를 끊고, 전화기를 던져둔 채 걸음을 옮겼다.
두루마리를 통해 복제해둔 술법진을 손 위에 띄워 올린 채, 너른 흑색의 로비를 홀로 걷는다.
발소리가 사방으로 오랫동안 울려 퍼질 만큼 광활한 지하 공동.
그 중심에는 금이 간 알이 레녹을 향해 몸을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덩실덩실)
레녹을 알아보고 반갑다는 듯 알껍질을 인사하듯 흔들어주는 거대한 알의 모습.
“그래. 오랜만이다.”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던 레녹이 웃으며 알껍질 위로 들어 올린 술법진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이제 네가 누군지 직접 얼굴을 보고 인사해도 될 것 같군.”
군령도시 요르타에서, 에단 바쥬르의 유령견문록을 통해 습득한 부활의 술.
에단의 힘으로 만들어진 일회성 소모 술식을, 레녹은 연구 끝에 어느 정도 수준으로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무간의 성소에서 탈태의 저주를 소멸시킨 지금, 수호령수의 진체를 드러내고 능력을 일깨우기엔 더할 나위 없는 기회.
(……?)
영문을 모르고 몸을 흔드는 알덩이 위로 양손을 내려놓은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눈을 감았다.
“의식연결이 준비되면 바로 진입한다. 다비, 전처럼 경계 부탁할게.”
[준비됐어요!]어깨 위로 폴짝 뛰어오른 정령의 대답을 뒤로하고 레녹이 곧바로 마안을 개안했다.
탈태의 저주가 완전히 소멸했는지 확인한 뒤, 부활의 술을 이용해 수호령수를 알에서 꺼낸다.
기본적인 목적과 행동의 골자는 당연히 수호령수를 위한 것이지만-
‘편람을 만나는 것이 먼저다.’
수호령수의 의식세계 안에 존재하는 우물을 지키는 뱀, 승천자 편람의 잠재의식.
승천에 도전할 마음을 굳힌 레녹으로선, 먼저 아홉 번째 위계에 다다른 초월자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 있는 바.
편람, 파드메 키에사가 어떤 식으로 자격을 얻었는지를 들을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며 곧바로 가능성의 마안과 계시의 공능을 겹쳐, 수호령수의 의식 아래로 파고들었다.
파앗!!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의식세계 저편. 그 외곽에 자리한 이제는 잊혀진 고대 문명의 도시 한복판.
거대한 뱀이 똬리를 튼 채로 잠들어 있었던 도시 정중앙의 제단.
하지만 레녹은 그곳에 내려서자마자 강한 위화감을 느끼고 시선을 치켜들었다.
“바람이…….”
잠들어 있던 뱀의 숨결만으로 의식세계 전체를 휩쓸던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의식세계 어디에서도 편람의 의식이 지닌 강대한 기척을 찾을 수 없었던 것.
레녹이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퍼뜩 제단 쪽으로 시선을 돌린 그 순간.
“파드메의 기억을 대신해 문을 연 애송이가 너였군.”
군청색의 머리칼을 질끈 동여맨, 훤칠한 체격의 여성이 제단 정상에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레녹과 같이 의식세계에 위치한 제단 끝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심드렁하게 말을 내뱉는 모습.
하지만 그런 여성의 목소리는 레녹의 귓가에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통로가 제멋대로 열리는 바람에 이쪽에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어. 하여간 마법사란 하나같이 골치 아픈 놈들밖에 없는 건가?”
“누구지?”
“너야말로, 무슨 권능과 권한을 그렇게 덕지덕지 붙이고 이곳에 들어온 거지?”
휙 고개를 돌린 여성이 짜증스레 레녹을 내려다본다.
정갈하면서도 선이 굵은 이목구비. 한번 보고 나면 쉽게 잊기 어려울 만큼 강렬한 외모.
풍성한 군청색의 머리칼을 뒤로 젖히며 관자놀이를 문지른 그녀가 말했다.
“진둔의 후예인 줄 알았는데 교단의 권한은 물론이고, 잊혀진 고대마법과 중앙의 술식까지 들고 있군.”
“……뭐?”
“외해의 마력을 수혈해 기척까지 뒤틀어 버린 데다, 내 눈으로 보이지 않는 심상까지 갖추고 있다니…… 내가 살던 시대에는 너 같은 변절자가 없었을 텐데.”
레녹이 그간 손에 넣은 여러 권한과 공능을 단번에 꿰뚫어 보고, 그 내력까지 일부 간파하는 섬뜩한 설명.
하지만 무엇보다 레녹을 놀라게 만든 것은, 레녹이 숨긴 비밀이 들켰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어딘가 눈에 익은 푸른 빛의 머리칼. 다소 고압적인 초월자의 말투.
레녹이 지닌 비밀들을 직접 ‘들여다본 것처럼’ 읽어내는 그 태도.
그런 존재가, 하필 편람의 부재를 대신해 여기 와 있다는 것은 분명-
“……마드레아 팔시어?”
“뭐야.”
확신하지 못하듯, 미심쩍은 기색으로 중얼거린 레녹의 말에 여성이 씩 웃으며 시선을 치켜들었다.
“너 내가 누구인지 아는 건가?”
“…….”
그제서야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확신한 레녹이 입을 다물었다.
승천자 편람의 잠재의식을 만나기 위해 침입했던 수호령수의 의식세계.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편람이 아닌 젊은 날의 마드레아 팔시어, 승천자 천견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