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122
열일하는 과금 기사 121화
인간이.
이렇게나 간사하다.
“에휴. 과금이나 하자…….”
6,000만 원의 수수료를 빼고 들어온 2억 4천만 원을 몽땅 과금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근력이 171포인트 상승하였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생명력이 85포인트 상승하였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본신 능력치와 레벨 업 보너스는 거의 완전히 복구되었다.
보너스 스텟들은 아직 미미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이능력자로 활동하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겐 스텟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차크라 능력이 있지 않던가?
“흠. 이 정도면 다시 시합에 나갈 만하겠다.”
과금력이 마이너스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격투기 시합도, 검투 시합도 취소해야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프로 경기에 나가야 하는데 한 번 취소한 탓에, 다시 아마추어 대회부터 시작해야 했다.
“체다. 취소했던 경기들 다시 잡아 줘. 가급적 평일 걸로.”
“한명일보 배 검술 대회와 배틀엔젤 마탑 배 무제한 영능전이 있습니다. 신청하시겠습니까?”
“무술 대회가 아니라 무제한 영능전이라……. 뭐 상관없겠지. 신청해.”
그렇게 대회를 잡고 자동 사냥을 하고 있던 캐릭터의 인벤토리를 비울 때였다.
[마도지존님께서 암흑대성검(전설)을 획득하셨습니다!] [마도지존님께서 쉐도우 트와이스(전설)을 획득하셨습니다!]화면 상단에 채팅창에 난리가 난다.
⤷과금아씨 : 아니, 미친 전설 검도 어이가 없는데 전설 스킬 북 완제라고요?
⤷뉴비조아 : 아니 대체 뭘 잡았길래 한 명이 전설 템 두 개를 다 먹음? 설마…… 신화 레이드?
⤷차노아 : 으아. 말 많고 탈 많던 마족공 레이드 성공했나 보네…… 신화급이 많아지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핫바디 : 이거 조만간 천원(天元)도 공략 성공하는 거 아님?
쏟아지는 채팅에 휘파람을 분다.
“올, 신화 레이드. 그러고 보니 마계 백작인가 뭔가 하는 놈 레이드도 그 과정 중 하나였던가.”
짐작하기로, 아마 아레스 길드도 그 레이드에 참여했을 것이다. 아레스는 랭킹 5위의 길드니 당연한 일이겠지.
“아.”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얼마 전 현실에서 정모를 한다던 게…… 바로 이 신화 레이드 관련이었겠구나.”
나는 언급조차 못 받았던 일이다. 신화 레이드를 위해 길드들 사이에서 피 튀기는 정보전과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 내 캐릭터들은 바람막이 고원에서 멧돼지만 잡고 있었다.
물론 누군가는 의아해 할 수 있다. 지금 내 캐릭터, 킬리언스의 전력은 리벤지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하다. 남도 아니고 같은 길드인데 상식적으로 신화급 레이드를 하는 데 안 데려갈 이유가 있나?
나는 대답할 수 있다.
‘있다.’
그렇다. 있다. 아니, 거꾸로 말하자면 데려갈 이유가 없다.
아레스 길드에 가입했다 해도 내가 아레스 길드원들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갔다고 할 수 없다. 내 캐릭터는 강력하지만 그래 봐야 길드에서 나는 주변인에 불과하다.
내 무력이 월등히 강할 수 있는 어쭙잖은 길드라면 또 몰라도 아레스는 리벤지에서도 5위의 대형 길드가 아니던가?
‘인간관계를 좀 신경 써야겠는데.’
리벤지는 사회적인 게임이다.
또 정치적인 게임이기도 했다.
만나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를 믿고 전쟁을 하는 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가상 세계에서의 얄팍한 인연은 원하면 언제든 벗어던질 수 있다. 물론 게임 커뮤니티란 게 원래 딱 그 정도 인연으로 수행하는 것이지만 리벤지는 다르다. 보통의 게임에서는 상상도 못할 자본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약 6년 전.
어떤 길드가 화점을 차지하기 위해 공성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많은 돈을 써 공성 오브젝트를 제작하고 길드원을 모았다. 과금을 하고 레벨 업과 파밍을 진행했다.
그때 신규 가입자가 있었다.
보통 신규 길드원은 겉돌기 마련이지만 놀라울 정도의 친화력과 싹싹함을 가지고 있던 그는 삽시간에 모든 길드원들과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현실에서 만나 술과 밥을 먹고 자신의 집에 길드원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고레벨의 랭커이기도 했기에 순식간에 길드의 중추가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공성전 당일.
고작 반년 만에 길드의 임원이 된 그는 길드의 총력을 투자해 만든 공성 오브젝트, 인급 기가스 링컨에 탑승하게 되고.
그걸로 아군을 학살해 전혀 다른 길드에 성을 떠먹여 주었다.
그 한 순간만을 위해 반년 동안 길드에서 활동하던 스파이였던 것이다.
‘무슨 게임에서 이렇게까지 하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게임이 바로 리벤지다.’
리벤지에서 움직이는 자본은 다른 게임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6개월은 긴 시간이지만 누가 2~3억쯤 찔러 준다면 못할 것도 없다. 일종의 파견이라고 생각하면 그만 아닌가?
계정이야, 사고 파는 건 물론 대여까지 가능하니 더더욱 문제가 없다.
‘책임도 물 수 없지.’
길드 마스터는 눈이 뒤집혀 그를 찾았지만, 그는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연락처는 모두 바뀌었으며 초대했던 집은 빌린 집이었다.
진실신이 있는데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부길마는 거짓을 말한 적이 없다.
애초에 공성전을 파투 내기 위해 투입된 스파이냐고 물어본 이도 없지 않은가? 물론 서로 간에 대화가 많은 게임 내에서는 그런 언급이 나온 적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게임이다.’
게임에서 진실과 정의의 판정은 현실과 다르게 적용된다.
당연한 일이다.
극단적인 말이지만 PK를 살인과 동등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살인은커녕 폭행으로 판정해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
게임은 게임이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그 모든 일은 게임의 과정이다.
속이고, 배신하고, 훔치고 죽이는 모든 것이 플레이의 일환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얼마든지 있다.
“흠. 정모 나가 봐야 하나.”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얼굴 까고 들어오는 스파이도 있는 마당에 게임상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믿겠는가?
길드 사이에서 기자와 탐정, 심지어 정보계 능력자까지 동원하는 리벤지에서 지금 같은 아싸식 플레이로는 제대로 된 길드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 게임으로 사람 만나는 거 별로인데…….”
투덜거렸지만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단순히 과금한 돈으로 구매한 아이템에 과금력이 깎인다는 걸 안 지금, 상위 등급의 아이템을 드랍으로 얻을 수 있는 신화급 레이드를 포기할 수는 없다.
“뭐, 일단 멧돼지 고기가 그만 필요한 상황이 되어야겠다. 로그인.”
그대로 아르데니아로 넘어간다.
턱. 턱. 턱.
지금까지 그러했듯 고기를 내려놓는다. 주변은 꽤 소란스러웠다.
짐을 챙기는 드워프, 훈제를 하는 수인, 장비를 챙기고 있는 엘프들까지 다들 꽤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나저나.”
나는 고기를 다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비록 고기로 이루어진 관계지만 이제 충분히 친해졌으니 물어도 되리라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몬스터들이 왜 너희를 살려 두고 있는 거야?”
“역시…… 짐작했구나.”
“그래. 아무리 그래도 10만 명은 너무 많지.”
티타니움 광산이 거대한 규모인 건 사실이다. 지하 100미터에 길을 뚫던 랜드웜이 일부러 찾아간 것도 아닌데 마주칠 정도의 규모.
무려 1만 명이 거주할 정도의 규모라면 지하라 하더라도 입구가 잘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평소에 준비하고 있었다면, 아주 빠르게 그 안으로 숨어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
그러나.
‘말이 안 되는 소리지. 몬스터들이 장님도 아니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려 10만 명의 인파가 지하로 숨어드는 데 몬스터 놈들이 그걸 눈치 못 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당장 브론즈 소드 남작령에 모습을 드러냈던 오크들만 해도 피난 가던 우리를 수십 킬로미터 이상 추격해 왔지 않았던가?
물론 오크와 이곳 몬스터의 습성이 같지는 않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바로 아래 있는 10만 명을 모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헬라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설명했다.
“벌써 1년도 훨씬 전이네…….”
게이트가 열린 날.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엘프들은 크리스털 연맹을 박살 냈다.
그러나 젊은 인간 여성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닥치는 대로 죽였던 오크와 달리 그들은 적극적으로 아인족들을 해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죽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쪽에 가까웠지.”
녀석들은 저항이 심한 자들만 상처를 입혀 쓰러트린 후 납치하고 겁먹은 자들은 마치 양을 몰 듯 몰아넣었다고 한다.
그중에는 영맥을 벗어난 도시에 격리된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인족들은 그보다 조금 더 고립되고 밀폐된 곳에 갇히게 되었다.
티타니움 광산은 그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였다.
“우린…… 갇혀 있던 거야. 탈출하려고 몇 번이나 힘을 모아 공격해 나갔지만…… 아무리 죽여도 녀석들의 수가 줄지 않아. 납치되는 인원만 점점 많아졌지…….”
그녀의 말에 생각이 정리된다.
‘그렇군. 몬스터들은 크리스털 연맹을 흡수하고 있다.’
몬스터들이 세력을 키우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다른 착점을 차지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그뿐인 것은 아니다.
당장 오크들만 해도 늑대 마수를 길들여 타고 다녔고, 에드워드 역시 코끼리 마수를 키웠다.
특히나 에드워드 녀석은 인간 포로를 아주 잘 이용했는데, 천신교의 화점을 박살 낸 후 주변에 잡혀 있던 포로들에게 습득한 정보는 꽤 충격적이었다.
‘그리 복잡한 방법도 아니지.’
에드워드는 리젠 시간이 비교적 짧은 천신교 전사(고급)를 인간 포로들이 죽이게 만들어 드랍 아이템을 확보했다.
플레이어가 아니기에, 더불어 여신의 가호가 없기에 드랍률이 형편없지만, 그거야 규모가 커지면 해결될 문제다.
전투가 아니라 그냥 목을 내민 상대를 베어 죽이는, 마치 공장과도 같은 형태의 아이템 생산.
심지어 그는 그렇게 죽은 천신교 전사를 마수들에게 먹였다.
몬스터의 시체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마수화의 핵심인 뇌를 먹는 데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 무슨 몬스터가 아이템 공장을 돌려. 어이가 없다 정말…….’
아마 스페셜 보스 세계수와 그 휘하의 엘프족들 역시 크리스털 연맹의 세력을 이용하기 위해 그들을 살려 놓았으리라.
“그럼 일단 그들부터 구해야겠군.”
여상한 대꾸에 헬라인이 할 말을 잃고 머뭇거린다. 어린아이의 외향을 가진 그녀가 그러니 선생님에게 혼나는 중학생 같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 괴물들이 얼마나 많고 무시무시한데…….”
“하지만 봐. 저분은 우리 10만 명이 먹을 고기를 주셨어! 어떤 기적을 일으키실지 모른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 엘프들의 핸드 캐논은…….”
웅성거리는 아인족.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이 정도면 오래 있었지. 지나가던 길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다.’
굳이 설득하고 싶지 않다. 딱히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더더욱 그러하다.
“나와라.”
때문에 말했다.
“랜드웜.”
쿠구궁…….
묵직한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리자 소란스럽던 지하 도시가 단번에 침묵에 잠겼다.
그들은 의문을 표할 시간도 없었다.
콰앙!
음식을 나눠 주던 뒤편 벽이 통째로 무너지며 랜드웜이 모습을 드러낸다.
원래 사방으로 튀어야 할 돌 조각과 흙먼지는 강대한 대지 속성력에 붙잡혀 통로로 굳어진다.
“억……!”
“히이익……!”
“저게 뭐야!? 저게 뭐냐고!”
내가 분명 랜드웜에 대한 이야기를 했음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하긴 말로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다.
‘이제 익숙해질 법한데…… 진짜 크긴 크다.’
랜드웜의 크기는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다.
기어 다니는 고층 빌딩 같은.
굽이굽이 이어진 언덕길 같은.
생명체가 아니라 지형이나 배경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압도적인 존재감.
그저 [모습을 드러냈다]고 가볍게 평가했지만, 녀석의 등장에서는 어떤 객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 이상이다.
지형이 변하는, 마치 자연 현상에 더 가까운 느낌.
자주 본 나도 이런데 느닷없이 그 모습을 본 아인들의 충격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쿵.
가볍게 땅을 박차 그대로 수십 미터를 날아오른다. 랜드웜이 고개를 움직여 나를 받아 든다.
쿠오오오!
녀석이 고개를 움직인 것만으로도 지하 도시에 광풍이 불어 닥쳤다. 나는 바닥을 뒹굴거나 자세를 낮추는 아인들을 보며 말했다.
“먼저 가지. 천천히 따라와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쿠콰콰쾅!
랜드웜이 지상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