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331
열일하는 과금 기사 330화
급전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대충……
12조 정도.
“……진심이군.”
현일이 새삼스럽게 눈을 동그랗게 뜬다. 당연한 반응이다.
‘황제 클래스는 노동하는 존재가 아니니까.’
그저 존재하는 순간.
손에 닿는 모든 것이 그의 것.
홀로 문명을 압도할 수 있는 신적인 존재에게는 재화라는 존재도 소유권이라는 개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가 기존의 시스템에 순응한다면, 그것은 그저 그의 자비일 뿐이겠지.
“물론 게임신이 지배하는 34지구의 경우는 좀 다르긴 하지만…… 황제 클래스면 대우주 어느 문명이든 가서 황제 노릇 할 수 있잖아?”
전쟁 중이거나 전화에 휩싸인 문명이라면, 황제 클래스가 군림하겠다고 다가와도 기쁘게 그 존재를 받아들일 것이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그래도 상관없다. 홀로 쳐들어가 정복하는 것도 가능하니까.
“여기가 좋아서요.”
“뭐 그렇다면 상관없지만 황제 클래스가 용병 일이라니 여러모로 특이하긴 하네. 광황 그 녀석하고 같은 경지의 강자가 용병…….”
뜻밖의 중얼거림에 묻는다.
“광황과 친분이 있으십니까?”
광황이라면 다수의 [지구]가 모여 만들어진 우주적인 세력, 레온하르트 제국의 초대 황제 레온하르트의 이명이다.
“당연히 알지. 내 친구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니까.”
과거를 추억하는 듯 생각에 잠겨 있던 현일이 이내 고개를 휘휘 젓더니 패드를 꺼낸다.
“일 자체야 당연히 있다. 솔직히 넘쳐흘러서 다 커버하지 못하는 수준이지. 하지만 괜찮겠어? 여기에 들어오는 의뢰는, 난이도도 보상도 황제가 할 만한 수준이 아냐. 하기야 애초에 황제급에게 맞는 비용이 얼마인지 책정도 안 되지만.”
당연한 말이다. 우주적 존재, 황제의 몸값이라는 건 돈 따위로 계산할 수 없는 수준의 것.
기존에 황제 클래스를 동원하는 경우, 돈보다는 권력, 권한, 혹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보물 따위가 대가로 지불되었다.
색황을 한 달 고용하느라 드래곤 하트 1천 개를 대가로 지불한 드래고니안이나 묘신(猫神)의 왼눈을 대가로 지불한 프라야나, 마도 황녀에게 만능신언(萬能神言)의 권리를 양보한 선계 모두 그런 경우에 속한다.
“줄 수 있는 만큼 달라고 해요. 받는 만큼 일하면 되니까. 그리고 일 많이 할 거니까 시간 최대한 절약할 수 있는 게 좋아요. 동시에 두세 건 처리할 수 있으면 더 좋고.”
내 말에 현일의 입이 벌어진다. 그의 날카로운 이빨이 보인다.
그는 드디어 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한 듯했다.
“……너 급전 필요하냐?”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로그인을 자제하고 있지만 언제 또 그랜드 게이트가 열릴지 모른다.
폼 잡으며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다.
“비슷합니다.”
“아니, 황제가 갑자기 그렇게 돈이 필요할 일이 뭐가 있어? 너 설마 도박해?”
잘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에 나도 모르게 쓰게 웃었다.
“그 또한…… 비슷하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 * *
[다음 역은 스텝 제국 미터 행성입니다. 다음 역에서 내리실 분들께서는 오른쪽 문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해 드립니다. 1시간 4분 51초 후 미터 행성에 도착합니다.]“저기 봐. 저 사람이 그 소문의…….”
“운이 좋군. 이런 곳에서 새로운 황제를 보게 될 줄이야.”
“아득해…… 이게 자연경의 무인인가.”
은하철도에 타는 고객들 중 평범한 이는 없다시피 할 테지만 그럼에도 황제 클래스는 드문 모양인지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검마왕 때랑은 다르군. 하긴 아무리 마족 같지 않은 성향을 가지고 있어도 마왕은 마왕이니.’
은하철도의 중앙 복도를 지나는 이들 중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이 꽤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방해 금지 요청을 켜고 할 일에 집중했다.
키잉!
상자를 오픈한다. 통칭 [여신의 보물 상자]라 불리는 물건 중 하나인 [전설 스킬(불괴지신) 상자]이다.
전설 스킬 상자를 까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캐시숍에서 은총 상자를 구매하고, 그 상자를 까면 은총이 1개에서 6개까지 [확률]로 떨어진다.
은총을 모아 스킬 상자를 제작한다.
당연히 영웅급보다는 전설급에, 전설급보다는 신화급에 들어가는 은총의 개수가 더 많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상자를 까면 그 안에서 지정한 스킬의 스킬 북이 [확률]로 떨어진다.
‘이게 게임이냐. 사이버 도박장이지.’
참고로 스킬 상자에서 전설급 스킬이 떨어질 확률은 10%다.
리벤지답지 않게 높은 확률이지만…… 문제는 1회 시도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두웅…….
[여신의 상자가 공허 속으로 사라집니다.] [여신의 상자가 공허 속으로 사라집니다.] [여신의 상자가 공허 속으로 사라집니다.]“아니, 드래곤 하트는 줘야지. 억 단위를 붓고 있는데 결과가 이게 뭐야?”
전설 스킬 북 하나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약 180만 원.
전설 스킬 북이 아닌 스킬 상자를 제작하는데 180만!
10%확률에 1회 시도에 180만원이니 전설 스킬의 [정가]는 1,800만 원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신화 상자는 싼 편이지.’
고작 5,000만 원밖에 안 한다.
어차피 신화 클래스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 스킬이라 그런 모양이다.
[여신의 상자가 공허 속으로 사라집니다.]“아니, 확률이…….”
내 행운은 999포인트지만 리벤지에서 먹히지 않게 되었다. 네메시스 소프트의 덩치가 커지고 리벤지에서 움직이는 결제 규모가 커지자 네메시스가 리전과의 기술 협약으로 신기술을 적용시켰기 때문이다.
이름하야 운명 독립!
리벤지 서버에 ‘독립성’이 추가되며 플레이어의 행운이나 확률 조작 능력은 먹히지 않게 되었다.
[킬리언스님께서 불괴지신(전설)을 획득하셨습니다!]“아, 떴네.”
물론 그게 내게 큰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과금력.
뽑기가 성공하면 물론 좋지만, 실패한다고 해도 그리 큰 피해는 아니다.
뽑기에 실패해도 과금력은 충전되니 나는 그저 끊임없이 과금할 뿐이다.
“아, 다 왔군. 에드워드.”
“크릉.”
이름을 부르자 내 앞에 엎드려 등판을 제공하고 있던 하양이가 몸을 푸르르 턴다.
굳이 자리를 정리하지도, 좌석을 하차 처리하지도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쉬이익.
소형화하고 있던 에드워드의 몸이 삽시간에 확장해 거대한 백호로 변한다.
“저거…… 리전이죠? 영력이 느껴지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좀 다른데. 기계에 인간의 영혼을 깃들인 느낌이야. 네크로맨시인가. 그것도 초월자급 영혼을 다룰 정도면…….”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임무들에 대해 생각한다.
‘요번에 받은 임무가 7개…… 보상은 한 건에 3천만 게럴트에서 1억 게럴트까지.’
즉, 900억 원에서 3,000억 원이다.
‘거의 한계치의 돈이지. 더 주고 싶어도 다들 돈이 없어 못 준다.’
돈 말고 다른 걸로 대금을 치르겠다는 제안들이 많았다.
다른 행성의 땅, 기업, 건물, 작위나 권한, 심지어 충분히 개발된 위성까지.
어찌 생각하면 한 줌의 게럴트보다 가치 있는 물건들이다. 우주 공용 화폐인 게럴트의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해 있고 실물 자산의 가치는 쓰레기처럼 폭락해 있으니 더욱 그렇다.
대우주가 지금의 고난을 이겨 내고 안정을 되찾는다면 10배, 100배의 가치를 지니게 될 물건들.
마치 외환 위기를 마주한 국가와 같다.
알토란 같은 땅. 미래가 창창한 인재. 견실한 회사 등을 가지고 있어도 정작 우주에 통용되는 게럴트는 없는 상황.
실질적인 힘과 재화를 가진 나라면 잠깐 힘을 쓰는 것만으로 마치 쇼핑하듯 그것을 쓸어 담을 수 있겠지.
그러나.
‘다 필요 없어.’
그래, 다 필요 없다.
머나먼 외계 행성의 땅으로 과금을 할 수는 없으니까.
게럴트, 아니면 34지구의 원(₩)이 필요하다.
[이번 역은 스텝 제국 미터 행성입니다. 이번 역에서 내리실 분들께서는 오른쪽 문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해 드립니다. 10초 후 미터 행성에 도착합니다.]안내를 들으며 시스템 UI를 조작한다.
[올 마스터(All master). 기동.]“천신의 가호. 오버 소울. 레전더리 포스. 천상천하. 후예사일…….”
실전으로 효과를 증명한 특성과 직업 스킬을 장착한다.
“로그인.”
아르데니아의 던전을 돌아 치명타 스택을 채우고.
“로그아웃.”
현실로 돌아온다.
[워프를 시작합니다. 3. 2. 1…… ]팟!
공간을 넘는다. 행성에 설치된 [역]에 도착한다.
“우주 용병! 우주 용병이 왔습니다!”
“제길 너무 늦잖아! 그 큰 금액을 걸었…… 한 명? 왜 한 명이야?”
인간과 닮았지만 피부가 마치 양서류의 그것과 같은, 굳이 말하자면 개구리 인간에 가까운 외계인들이 보인다. 나는 옆의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협상해. 46초 내로 이 행성을 떠난다.”
[네, 폐하.]“아니 잠깐! 뭐야, 너 왜 혼자지? 지금 상황을…….”
쾅!
솟구친다. 말 한마디 나눌 시간이 없다.
우웅!
초월적인 지각 능력에 억 단위의 인구가 머무는 거대 도시가 인식된다.
그리고 그 도시를 공격하는 천만 단위의 중상급 몬스터와 2명의 초월급 몬스터까지.
“후.”
심호흡한다.
그리고.
대기만성(大器晩成). 고유식.
무극대참격(武極大斬擊).
극대심검(極大心劍).
오직 하나의 목표를 위해 갈고닦은 권능기가 발동하고.
[천검-백인참(百人斬)]. [천지를 가르는 검].재앙과도 같은 보정이 붙는다.
훅!
심검이 휘둘러진다. 공간 지배자 녀석처럼 권능의 영역에 도달한 보호 능력을 가지지 못한 이상 회피도 방어도 불가능.
마음이 이는 순간 이미 거기에 있는 것이 바로 마음의 검이다.
쩍.
비명과 폭음이 난무하던 도시가 단숨에 정적으로 물든다. 도시 안에서 시작된 극대심검이 도시 안에 있던 모든 몬스터를 죽이고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녀석들까지 공평하게 썰어 버린다.
전멸은 아니다. 천지검 콤보는 데미지가 무한히 증식하는 개념이 아니라 아주 커다란 데미지를 나눠서 뿌리는 방식이니 자잘한 몬스터가 너무 많으면 효율이 떨어지는 편이었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반경 1,500킬로미터 안에 있던 몬스터 중 절반 이상이 죽었고 데미지의 시작이 도시 한가운데였기에 적어도 도시 근방에 남은 몬스터는 없다.
“여기까지 11초.”
근력을 이용해 날아오른다. 하늘을 가득히 메우고 있는 우주전함, 혹은 비행형 몬스터들이 보인다.
쿠아아!
검강이 솟구친다. 너비만 해도 수백, 길이는 수 킬로미터가 넘는 검강이 하늘에 길게 늘어진다.
피핑!
하늘을 마구 휘젓는다. 그 거대하고 압도적인 검강이 하늘을 휘저을 때마다 전함이 잘려 나가고 비행형 몬스터들이 터져 나간다.
쿠쿠쿠!
콰콰쾅!
폭음을 뒤로하고 출발 지점으로 떨어진다.
수십 명의 개구리 인간들이 그 큰 눈이 찢어져라 뜨고 있다.
탕.
속도를 줄여 내려서자 에드워드가 보고한다.
“크릉! 전달할 것 다 전달하고 설치 완료했습니다.”
“자, 자,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당신은 누구십니까?”
아까는 자리에 없던 초월자 하나가 나를 붙잡는다. 극대심검과 초대형 검강 때문인지 완전히 기가 죽은 모습.
나는 짧게 답했다.
“우주 용병. 자주 이용 부탁해.”
“아, 아니 그런.”
당황하는 녀석을 두고 관사 한쪽에 위치한 역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에드워드가 그 위에 겹치듯 설치한 크리스털 구조물에 손을 올렸다.
‘양산형 초월병기 스타 체이서(Star chaser).’
효율이 좋지 않고 이동 거리도 짧지만 이래 봬도 스타 게이트와 같은 계열의 보물이다.
천현일 청장, 정확히는 용병청에서 뜯어 왔다.
훅!
권능 신맥까지 사용해 내공을 대량으로 주입하자 차원의 균열이 나와 에드워드를 감싼다. 에드워드는 이미 소형화한 상태.
“자, 잠깐! 가는 겁니까? 이대로?”
“싹 치웠으니 충분히 감당 가능할 거야. 그럼.”
[워프를 시작합니다. 3. 2. 1…… ]팟!
공간을 뛰어넘어 은하철도로 돌아온다.
“어, 한재연…….”
“……뭐야? 아까 하차한 거 아니에요?”
“어? 그러게요. 어라? 분명 하차했는데.”
다른 좌석의, 그리고 아직 다 흩어지지도 않았던 공용 복도의 승객들이 당황한다.
“아니 지금 설마…… 하차하고 다시 탑승한 건가?”
“뭔 소리를 하는 거예요? 이건 은하철도예요! 잠깐이면 광년 단위로 이동하는데!”
수군거리는 승객들을 무시한 채 내 자리에 다시 앉는다.
스타 체이서가 빨아들인 내공이 얼마나 막대한지 머리가 다 띵할 정도.
그러나 절로 미소가 나온다.
“세이프.”
첫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더라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알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