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이왕 탈선할 거 확실히 탈선하는 게 어때 (3)
“인간이 손님이라니…….”
돌로레스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경멸이 깃들었다. 이렇게 노골적인 경멸은 또 오랜만이다. 공작이 된 이후 어디 가서 무시받은 적은 없었는데.
“야, 야, 어이. 너 말이야. 얘가 보통 인간인 줄 알아?”
아네모네가 돌연 불량배 같은 자세로 돌로레스 앞으로 나섰다.
“아잇! 아이, 참! 대장도! 그러지 마세요! 모를 수도 있죠! 용이라잖아요. 아, 모르는 게 죄는 아니죠. 좀 모를 수도 있죠. 배우면 되죠, 참.”
아젤은 한술 더 떠서 미묘하게 비꼬기 시작했다. 아네모네가 돌로레스에게 달려들 것처럼 자세를 취하면, 아젤이 호들갑스럽게 팔을 붙잡아 만류했다.
“아, 놔 봐! 놔 봐! 얘가 지금 우리 공작님을 못 알아본다잖아! 참나, 무식해도 참나, 정도가 있지!”
“아잇, 용이라잖아요! 용은 모를 수도 있죠. 용이라는데 뭐 어쩌겠어요. 용이라는데.”
인간이라면서 무시하던 말을 받아쳐 주려는 건지, 아젤은 몇 번이고 ‘용이라서 모른다’는 말을 반복했다.
“…….”
돌로레스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나랑 친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나서는 아네모네도 웃기고, 그런 아네모네에게 장단을 맞추는 아젤도 우습다. 그 앞에서 두 사람보다 한참 큰 돌로레스가 불편해하는 모습도 장관이었고.
웃음을 참느라 내 입에서는 풉, 풉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돌로레스가 자극받아 한 소리 하려는 듯 턱을 치켜들었다. 바로 그때.
“웩헥헥헥헥…….”
대형견 정도 크기일까. 녹색 빛의 가죽이 눈에 띄는 용 한 마리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말라가! 뭐 하는 거야!”
“헥헥헥헥헥……!”
말라가라고 불린 용은 아직 어린 개체인 듯했다. 비슷한 생김새의 다른 용들은 훨씬 커 보였으니까. 그리고 이놈과 달리 얌전해 보였고.
“이 녀석! 뒤로 가지 못해?”
아네모네를 향해 무작정 달려드는 말라가 때문에 돌로레스는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하지 못했다. 말라가는 옆에서 돌로레스가 말리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아네모네의 앞에서 배를 깔고 누웠다.
“헥헥헥헥!”
아네모네에게 아는 척을 열심히 하는 말라가. 돌로레스는 용족의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는지 영 반응이 안 좋았다. 어떻게든 말라가를 일으키려 했지만, 묵직한 용은 아랑곳하지 않고 누웠다. 꼬리는 또 어찌나 세게 흔드는지, 바닥의 모래가 흩날려 먼지바람을 일으켰다.
“아는 용이에요?”
아젤이 멍청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 아, 아니! 나한테 아는 용이 어디 있냐, 바보야.”
아네모네는 어울리지 않게 헛기침까지 하며 딴청을 피웠다.
“하지만 뭔가…….”
“글쎄 모른대두!”
아네모네가 아젤을 확 밀어냈다. 뭔가 켕기는 것이 있는 반응인 게 의심스러웠지만 당장 따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상황이 안 좋냐면 그건 아니었다. 말라가라는 녀석이 바보짓을 해준 덕분에 우리 쪽이 거드름을 피울 수 있게 됐거든.
“돌로레스 양. 그대 일행의 이 사교적인 용의 행동을 말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이건 용족의 관점에서도 인간의 관점에서도 그다지, 예의 바른 행동은 아닐 텐데요.”
“…….”
돌로레스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뒤에 있던 용 중 한 마리가 급히 다가와 말라가의 목덜미를 물고 끌어갔다. 말라가는 끌려가면서도 아네모네를 향해 앞발을 뻗었는데, 마치 잃어버린 가족을 다시 만난 듯 애절한 반응이었다.
나조차도 ‘아는 용이냐?’ 하고 다시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초대를 해주셨으니 응해드릴 수밖에 없겠지요. 그 전에…….”
나는 한걸음 비켜섰다.
“돌로레스.”
내 뒤에서 라스가 돌로레스를 향해 걸어 나왔다. 우리를 맞이할 때 입고 있던 옷보다 더욱 화려했다. 그렇다고 우리를 덜 환대했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유스카 쪽에 얕보이지 않기 위해 더욱 요란을 떤 모양이었다.
“마그타로스의 수치까지.”
돌로레스는 라스의 앞에서도 건방진 태도를 보였다.
“지금 레후아 님을 모시는 성자이자 용의 허리를 다스리는 사람은 나다. 합당한 예를 표해야 해.”
“유스카 님의 변덕 덕분에 왕좌에 앉은 애송이 주제에. 유스카 님께서는 곧 제자리를 찾으실 거다.”
돌로레스와 라스의 동공이 찢어졌다. 둘의 피부가 울룩불룩 용의 가죽으로 변하려 하고 있었다. 둘의 기 싸움에 용족들이 물러서며 침을 삼켰다. 언제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눈치 없는 말라가만 저 멀리서 낑낑거리며 아네모네에게 다가오려 하고 있었다.
아네모네한테 특별한 간식이라도 들려 있는 건가? 간식이 있다고 용을 유혹할 수 있는 게 말이 되나…….
“……음?”
무의식적으로 아네모네를 쳐다봤는데, 아네모네가 입고 있는 바지 모양이 이상했다. 종아리에 나무토막 같은 걸 묶어둔 것처럼 보이는데…….
내가 유심히 쳐다보는 걸 알아차렸는지, 아네모네가 흠칫하며 다리를 꼬았다.
‘저 자식 뭔가 숨기고 있군. 그것도 내가 알면 화낼 만한 걸.’
유스카의 저택에 가서 사고를 치기 전에 말려야지 싶어서 다가가려는데, 누군가 내 옷자락을 잡았다. 코카였다.
“…….”
코카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눈알만 대각선 위를 향해 굴렸다. 녀석의 어색한 수신호를 따라 고개를 옮겼던 나는 크게 후회했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까.
멀지 않은 곳. 성전의 건물과 건물을 잇는 다리 부분의 창문. 그 유리에 바짝 붙은 찹쌀떡은 내가 잘 아는 볼때기였다. 그 옆에 다닥다닥 붙은 까만 도마뱀 네 마리도 이젠 익숙하고.
‘달리아 저 녀석이……!’
자신만 두고 놀러 간다고 생각한 걸까. 달리아가 심술 맞은 표정으로 유리에 볼을 대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거리가 멀지 않아서 누구든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장소였다.
안 그래도 인간을 무시하는 녀석들인데, 저렇게 장난스럽고 조금 바보 같은 모습을 들킨다면 더 얕보일 것이다.
나는 정제된 손짓으로 달리아에게 신호를 보냈다.
‘유리창에서 떨어져! 떨어져!’
손바닥만 내저으며, 라스와 돌로레스의 기 싸움을 눈치껏 살폈다. 저 둘이 기 싸움을 벌이는 동안 달리아를 어디론가 숨겼으면 싶었다.
‘피핀은 뭐 하는 거야, 저걸 내버려 두고……!’
피핀이 스위트피를 신경 쓰는 동안 도망쳤나? 술래잡기를 하자고 속인 건가?
머릿속에 별생각이 다 들었다. 상상 속에서 피핀의 정강이를 발로 열 번쯤 때렸을 때였다. 달리아의 사도들이 풍선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뭐, 뭐 하는 거야? 떨어지라니까! 유리창에서 떨어지라니까!’
내 손짓이 빨라질수록 도마뱀이 부풀어 오르는 속도도 빨라졌다. 이윽고 유리창은 네 마리의 도마뱀이 다 차지하고 말았다. 그러고도 놈들은 부풀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코카.”
“네…….”
내가 보는 광경을 곁눈질하고 있던 코카가 침울하게 응답했다.
“1순위는 달리아의 안전이고, 2순위는 우리의 품격이다.”
“네.”
“힘내보자.”
“네…….”
와장창!
결국 유리창이 깨졌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모두의 시선이 뒤쪽을 향했다.
나는 코카와 함께 쏟아지는 네 덩어리를 향해 무작정 달려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리창에서 뭔가 하나 더 떨어져 내렸다. 안 봐도 알겠다. 저건 피핀이었다.
“오라버니!”
크고 검은 덩어리 하나가 나를 향해 농구공처럼 튀며 다가왔다. 덩어리는 곧 바람 빠진 풍선처럼 빠르게 작아지더니, 풍성한 치마를 입은 꼬맹이의 품에 쏙 안겨버렸다.
“달리아!”
허공에서 떨어지는 달리아를 받기 위해 팔을 뻗었다. 달리아는 어느 순간 용을 매정하게 내치더니, 나를 향해 날다람쥐처럼 달려들었다.
“어억!”
“나도 데려가!”
남다르게 무거운 날다람쥐 한 마리가 내 머리통으로 떨어졌다. 머리가 떨어지는 줄 알았으나 어떻게든 달리아를 받아내기는 했다.
“아가씨!”
피핀이 당혹감을 숨기지 못한 채 따라왔다. 나는 달리아를 내 얼굴에서 떼어낸 뒤, 바닥에 내려놓았다.
“안…….”
“나도 데려가요!”
“안 돼.”
“왜요?”
“오라버니는 놀러 가는 게 아니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번에는 꽤 엄하게 말했다.
“공작가 영애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 법이야.”
“왜요?”
“그건 품위 없는 짓이기 때문이지.”
“왜요?”
“그 이유는 집에 갔을 때 혼나면서 들어.”
“왜요?”
“피핀.”
달리아는 연신 “왜요? 왜요! 왜요!”를 외치며 피핀에게 붙들려 갔다. 달리아의 주변으로 네 마리의 용이 달라붙어 피핀을 위협했다. 쉭쉭 소리를 내는 게 뱀과 고양이 사이의 울음소리 같았다.
“저게 뭐죠?”
인간 귀족들의 귀족답지 못한 행위를 목격한 돌로레스가 충격받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도 묻고 싶었다. 저게 뭐냐고.
도대체 달리아는 어쩌다가 유리창을 깨고 뛰어내리는 정신 나간 모험가가 된 걸까? 환각의 사도가 된 도마뱀 네 마리는 앞으로 달리아가 칠 사고의 스케일을 더 키워줄 작정인가? 우리집은 얼마나 더 요란스러워질까?
머릿속에 많은 질문과 한탄이 스쳐 지나갔는데, 무엇 하나 이 상황을 타개해줄 만한 해법이 아니었다.
“저건, 저건…….”
돌로레스는 충격을 받다 못해 호기심이 일었는지, 성큼성큼 달리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잠깐!”
나는 돌로레스가 혹여 달리아에게 해를 끼칠까 봐, 무례함을 무릅쓰고 팔을 붙들었다.
“어딜 쫓아가는 거지? 내 동생에게 가까이 간다면 가만두지 않겠어.”
진심을 담아 엄포를 놓자, 돌로레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니, 내 엄포 때문에 흔들린 게 맞나?
돌로레스는 갑자기 짐승이라도 된 듯 킁킁거렸다. 그러고 나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달리아 쪽을 쳐다봤다.
“흥.”
내 팔을 뿌리친 뒤에 그녀는 달리아에게 붙어 있는 네 마리 용을 자세히 살폈다. 환각의 사도가 된 네 마리의 페임스는 돌로레스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날개도 활짝 펴며 적극적으로 위협했다.
“설마…….”
돌로레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코를 찡긋거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용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라기아.”
전쟁이라는 거,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지금 경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맹수 같은 게 우리 달리아에게 다가가고 있는 상황이다. 돌로레스가 나름대로 용족의 높은 분인 건 알겠는데, 내 알 바 아니다. 우리 동생한테 지금 거대 파충류인지 뭔지가 입을 벌린 채 다가가고 있잖아!
라기아의 칼날을 세우고 돌로레스의 몸을 찍어버리려는 순간이었다.
돌로레스가 돌연 고개를 숙이며 몸을 납작 엎드렸다. 달리아가 입을 벙긋하려는 순간, 피핀이 눈치 빠르게 달리아를 확 안아 올려서 뒤를 돌게 만들었다.
“무슨……. 네 동생과 돌로레스가 서로 아는 사이야?”
뒤늦게 따라온 라스가 내게 물었다.
“그럴 리가요.”
“아잇, 아가, 아가씨!”
달리아가 몸부림치며 피핀에게서 벗어나더니, 돌로레스의 머리에 올라타 매달렸다.
“출발!”
“…….”
“…….”
황당한 광경에 모두 말을 잃은 가운데, 돌로레스만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걸음을 옮겼다.
뽈뽈뽈뽈 네 마리의 환각의 사도는 폴짝 뛰어올라서 달리아의 온몸에 매달렸다.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야?”
라스가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저도 모릅니다.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