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
3화. 게임 중 느껴지는 전율, 그거 감전일지도 (3)
예전에 배달 알바를 하다 만난 형님이 그랬다. 배달 시각을 지키는 건 고객을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소식 없이 상대를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 없는 짓이라고 했다.
‘그놈의 예의. 지금부터 없는 걸로 하지.’
나는 황실 사람들을 존중할 생각이 없으니, 시각도 지키지 않을 것이다. 그 형님은 내가 그 명언을 이렇게 써먹을 줄 몰랐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
기선제압.
새로운 시에라는 만만하지 않다는 걸 놈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앞으로 찾아올 산사태 같은 재난을 피하기 위해서!
“달리아, 잠깐 산책이라도 할까? 꽃이 피었나 볼까? 꽃 좋아해?”
나는 달리아를 안아 올린 뒤, 방향을 틀어 꽃밭으로 향했다. 집사장이 허둥지둥하며 나를 뒤쫓았다.
“공작님! 곧 장례식을 시작해야 합니다.”
“안 돼. 시작하지 마.”
집사장의 눈은 나와 교회의 정문을 번갈아 쳐다보느라 바빴다. 나는 능청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이 장례식의 주최자가 누구지?”
“다, 당연히 공작님이시지요!”
“맞아. 내가 여는 행사지. 그렇다면 내가 도착하고 나서 시작하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황실 사람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
집사장이 내 뜻을 깨달은 듯 어깨를 움찔 떨었다. 콧수염이 파들파들 떨리는 걸 보니 동요하는 듯했다.
“시에라 공작님답지 않은 행동입니다. 공작님은 항상 타인을 배려하시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이번엔 황실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만도 하다. 게임 속 시에라 공작은 의기소침한 범생이였다. 성격은 좋았다.
아니, 착해 빠졌다고 해야 할까.
황태자와의 권력 다툼에서 밀리고, 돈도 친척에게 다 뺏기면서도 허허 웃는 멍청이였으니까.
그걸 매력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기는 했으니, 바로 여주인공이다.
여주인공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애정결핍 시에라는 점점 당당하고 거침없는 성격으로 변한다. 덕분에 공작으로서 입지를 단단히 다지게 된다… 는 것이, 시에라 공략 엔딩.
소신 발언 하나 하자.
시에라는 애초에 성격만 당당했다면 처음부터 꿀릴 것 하나 없었다.
글러토니 공작가는 황제에 버금가는 지위를 가진 집안이었다. 누울 자리 보고 눕는다는 말이 있다. 시에라는 누울 자리로 치자면 산업단지를 세워도 될 정도로 넓었다. 내키는 대로 뻗대도 괜찮았다.
지금 몇몇 귀족이 우리를 얕보고 있지만, 그건 기억해뒀다 복수하면 그만이다. 원금에 이자, 이자를 초 단위 복리로 계산해서도 복수할 수 있다.
시에라의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무슨 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이는지는 이미 다 파악하고 있다. 잠꽃이라는 이 이상한 미연시를 수도 없이 플레이했으니까.
내게 방해되는 자는 자금줄을 막고, 그 자식들을 인질로 삼고, 땅을 저당 잡으면 된다.
과거 동정을 사는 법을 배웠듯이 악독하게 구는 법도 알았다. 흥신소에서 일할 때 주인장 아저씨가 가르쳐준 비법들이 많다.
이미 한 번 죽어본 나는 거리낄 게 없었다.
“집사장 당신이 마차에서 내게 이렇게 말했지. 이럴 때일수록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고.”
“…제가 말씀을 그렇게 드렸던가요? 단지 멀끔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30분 뒤에 들어간다. 장례식은 내가 들어갈 때까지 시작하지 마. 핑계는 아무거나 대도 좋아. 단, 달리아와 관련되지 않은 핑계로.”
“알겠습니다.”
집사장은 못마땅함을 숨기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나는 완전히 확신할 수 있었다.
‘내 맘대로 해도 되겠다.’
아니었다면 집사장이 벌써 내 다리를 붙잡고 말렸을 것이다. 집사장은 악녀 달리아가 내치는 충신 캐릭터였다. 소신 있는 충언을 아끼지 않는 영감님이 내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조금만 더 망나니처럼 나가볼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한 가지 수를 더 추가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 달리아가 입을 새 드레스를 가져와. 화사한 걸로. 달리아, 너는 어떤 색이 좋아?”
“파란색.”
“노란색으로 하자. 그게 더 눈에 띄니까. 가능한 화려한 노란색 드레스면 좋겠어.”
화려한 노란색 드레스는 검은 상복 사이에서 확실히 눈에 띌 것이다. 게다가 이 제국에서 노란색은 꽤 특별한 색으로 통했다. 황실의 사람들이 눈부신 금발을 가진 탓이었다.
검은색이 슬픔과 죽음의 상징이었다면, 노란색은 기쁨과 제국의 번영을 상징했다.
나는 장례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음가짐을, 달리아의 옷차림으로 보여줄 생각이었다.
황태자에게 얕보이지 않겠다는, 글러토니 공작의 강한 의지를 말이다.
“정말 예쁘겠지? 동태눈깔을 한 귀족들 사이에서, 우리 달리아만 노란 꽃처럼 빛난다면 말이야.”
달리아꽃은 노란색이 드물다. 그러나 나의 달리아는 그 어떤 꽃보다 화려한 노란색으로 빛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죽은 사람 말고, 우리 남매가 장례식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는 거야.
***
집사장을 기다리며, 나는 교회 뒤편에서 시간을 죽이기로 했다. 벤치에 앉으려는데 달리아가 불퉁한 표정으로 내 멱살을 잡았다. 쪼그만 손인데 악력이 엄청났다.
“파란색.”
“다, 달리아?”
달리아가 나를 노려봤다. 다섯 살인데 기백이 장난 아니었다.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눈빛에서 살기가 흘렀다. 목소리에 높낮이가 없어 더 살벌한 느낌이었다.
“저는 파란색이 좋습니다.”
주관이 뚜렷한 것으로 보아, 큰 인물이 될 듯하다. 하지만,
“그래? 달리아, 빨간색은 어때? 좋아? 좋지?”
키즈 카페에서 일했던 나의 상대가 될 순 없을 것이다.
“달리아, 분홍색도 좋지?”
꼬맹이는 조금 망설이다가,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녀석은 내 유도신문에 완전히 걸려들었다.
“노란색은? 노란색도 좋아?”
이번에도 끄덕.
“그럼 문제가 없는 거잖아. 달리아가 좋아하는 노란색 드레스 입을 거야.”
“!”
달리아는 속았다는 걸 깨달았지만, 나의 은근한 속임수에 명확히 반박하기에는 조금 어렸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달리아는 꽃 보면서 놀고 있어.”
“그, 그건…….”
“왜? 노란색 좋다며? 노란색 드레스, 싫어? 노란색이 좋으면 파란색도 싫겠네?”
“…….”
나의 말도 안 되는 논리에 달리아는 패배했다.
“옳지. 혼자 놀고 있으렴.”
이 오라버니는 바쁘니까.
오늘 화려하게 장례식을 마친 다음에, 공작성에 돌아가서 내 마법 재능을 확인해야 한다. 내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다음 계획을 세울 테니까.
곧 있을 마수 토벌대에 대비하는 게 우선이겠지? 내 마법 실력이 좋다면 직접 싸울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마법 실력이 엄청 대단하지 않더라도 싸울 수는 있어.’
파견 경호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되살려 차근차근 마수를 때려잡으면 되겠지.
정 안되면 다른 수를 쓰면 된다. 머리를 써서 나보다 강하되 충성스러운 대타를 내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타로 쓸 만한 인재라면…….
‘후보로 삼을 만한 녀석들은 제법 많은 편인데…….’
게임 속에서 활약했던 전사 캐릭터를 몇 명 떠올려봤다. 음, 가장 쓸 만한 놈은 남주인공 중 한 명인 피핀인데, 놈을 차지하는 건 꽤 까다로운 일이 될 테니.
‘차라리 돈을 써서 용병을 고용하는 게 빠르고 간단하겠지.’
이번 마수 토벌대의 1위는 우리 가문이 차지해야 하니까 말이야.
나는 그 대단하신 황태자가 있는 황실을 차근차근 이겨 먹을 생각이었다.
왜냐. 이유는 명확하다.
달리아가 가장 불행했던 건 여주인공의 황태자 공략 엔딩에서였으니까.
황태자의 약혼녀였던 달리아는 황비가 되지 못하고, 여주인공을 괴롭혔다는 죄목으로 귀양을 떠나 수도원에 버려진다.
마치 내 동생이 친척들에게 버려져, 쓸모없는 오빠의 간호를 받다가 외롭게 병원에서 죽어야 했던 것처럼.
지난 생의 나는 실패자였다. 동생을 지키지 못했고, 울면서 게임 하다가 감전사나 당했다.
어쩌면 달리아가 내 동생의 환생일지도 모른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오빠로서, 하나뿐인 가족으로서 나는 이번 생에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어.”
나는 결의를 다지며 교회의 높은 건물을 올려다봤다. 교회의 창은 비단벌레의 날개처럼 방향에 따라 빛을 바꿨다.
달리아는 나를 따라 교회의 창을 올려다보더니, OK 사인을 만들어 눈가에 댔다.
“오라버니.”
“왜?”
갈색의 두 눈동자는 색색의 유리창보다 더 날카롭게 반짝였다.
“오라버니도 보이시나요? 글씨가 있는 창문. 마음의 눈을 열면 보입니다.”
“글씨가 있는 창문……?”
“하지만 달리아는 못 읽어요. 글씨, 잘 모르니까.”
그녀는 당당했다.
***
따각, 따각, 따각. 단단한 구두 굽이 대리석을 짓밟는 소리가 선명했다.
나는 닫혀 있던 예배당의 문을 양손으로 확 열어젖혔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를 향했다. 계획한 대로 달리아를 먼저 입장시켰다.
달리아는 노란색의 화려한 드레스를 펄럭이며 결혼식의 화동처럼 붉은 카펫 위를 걸어 나갔다.
“고, 공작님이 오셨습니다! 장례식을 시작합니다!”
입구 옆에 서 있던 사제가 허둥지둥하더니 버럭 소리쳤다. 그 소리에 덩달아 놀란 지휘자가 어깨를 흔들며 허겁지겁 손을 휘저었다. 우중충한 장례식 음악이 다시 시작됐다.
나는 집사장에게 들어 지휘자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조나단!”
지휘자의 팔이 멈췄다. 그는 두 팔을 올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예, 예?”
“나와 달리아의 어머니이신 공작 부인께서는 연회 때마다 자네의 음악대를 부르셨어.”
“예, 맞습니다. 영광입니다.”
조나단은 내 쪽으로 몸을 틀어 꾸벅 인사했다. 예배당은 고요한 듯했지만, 박쥐의 날갯짓만큼 작은 술렁거림이 시작됐다.
“그러니 자네는 어머니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셨는지 기억하겠지.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곡 중 가장 밝은 음악을 연주해 줘.”
“예?”
“당장.”
내 명령에 지휘자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멀찍이 선 집사장이 고개를 메트로놈처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지휘자는 집사장의 신호를 알아들은 뒤, 울상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새로운 음악이 시작됐다. 음이 높은 현악기가 빠르고 변칙적인 선율을 냈다. 경쾌하지만 더럽게 정신 사나웠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기괴한 등장에 조문객과 사제들 중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들은 달리아를 빤히 쳐다보다가 뒤따라 들어오는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부러 당당한 척 걸었다. 발소리도 얌전히 죽이지 않았다.
교회 정원에 도착했을 때와 확연히 다른 눈빛이 쏟아졌다.
그때는 무시였다면, 이번엔 경악이었다. 무시와 경악이 섞여 있을 수도 있지만, 뭐 괜찮다. 내가 조문객 리스트를 확인한 후엔 그 표정이 또 달라져 있을 테니까.
나는 느긋한 척 예배당을 둘러봤다. 다행히 황실에서 온 사람들이 누구인지 곧장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새카만 상복 위에 황실을 상징하는 케이프를 두르고 있었다.
색은 달리아의 드레스처럼 노란색. 내가 얼마나 도발적인 시도를 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화려한 금장에 황실을 상징하는 세계수가 새겨져 있었다. 뺏어서 달리아의 장난감으로 주면 딱 좋을 것 같아 보였다.
“…맙소사. 저, 저, 저 무슨 무엄한……!”
황실 대리인의 반응은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