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7)
77화
* * *
남궁 세가주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작지도 않았다. 연무장의 모두가 들었다는 뜻이었다.
남궁완이 혼자 곱씹듯 중얼거렸다.
“눈이 좋다?”
고개를 기울인 남궁완이 걱정스럽게 걸어가는 백리연을 보았다.
“자네 계속하게 둘 생각인가?
류청이 연이 몸 상태를 따져 봐 줄 만한 아이가 아닐세.”
“일단은······ 두고 보세. 남궁 세가주님께서도 생각이 있으신 것 같으니.”
백리의강이 애매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문득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아, 그런데 왜 연이가 남궁 세가주님을 할아버지라 부르는 게지?”
“아버님이 그리 부르라 하셨네.”
짤막한 대화를 나누는 새 다시 대련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전과 전혀 달랐다.
길어지는 승부를 지켜보던 남궁완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정말 쥐새끼 같······ 큼, 연이가 엄청 잘 피하는군.”
“······.”
“보법과 경신법이 꽤 익숙한데?
흠······.”
남궁류청은 대련이 꽤 웃기게 돌아간다 생각했다.
나는 두 번째 대련을 시작하자 마자 선공을 날렸다.
남궁류청은 놀라지 않고 내 힘을 가늠하려는 듯 침착하고 정직하게 공격을 막았다. 각오하고 휘둘렀음에도 목검끼리 부딪친 순간 검을 놓칠 뻔했다.
‘세 번? 네 번 정도?’
그 이상 검을 마주치면 놓칠 터였다.
후다닥 물러나는 내게 반격하듯 남굴류청이 공세를 찔러 넣었다.
그리고 나는 남궁류청의 검의 경로를 알 수 있었다.
거의 반쯤은 예지의 영역에 걸쳐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연달아 몰아치는 검격을 정신없이 피하며 물러났다.
‘이게······ 되네?’
나는 피하면서도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게 가능하게 만든 것은 꽤 여러 요소들이 섞여 있었다.
일단 최근 천산염제에게 이마를 두들겨맞으면서 눈으로 경로를 보는 수련 중이어서인지 남궁류청의 공격이 훨씬 잘 보였다.
그리고 위기에(?) 처하자 본능적으로 회귀 전 수백 번 연습한 백리 세가의 보법을 밟았다.
백리 세가의 검법과 보법은 공격을 흘려 내고 반격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잘 피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남궁류청과 서하령의 대련을 몇 번이고 지켜봤다.
남궁류청의 검법에 익숙했다.
거기에 이건 편법이었지만, 자연지기도 약간 끌어다 쓴 상태였다.
‘눈동자 색이 크게 변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조금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내공을 조금 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느새 연무장 한 바퀴를 뺑뺑이 돌았다. 남궁류청도 이쯤 되자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남궁류청은 정직하게 내공을 안쓰고 있으니 당연했다.
나는 흘끔 남궁 세가주와 남궁완 그리고 아버지를 보았다.
저 세 분은 아마도 내가 내공을, 자연지기를 쓰고 있다는 걸 아실 터였다.
‘아무 말도 없으신 거 보면······ 이 정도는 써도 된단 거겠지?’
남궁류청은 내가 내공 폐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 모를 터였고.
남궁류청이 숨을 가다듬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너······ 그만 도망가.”
“시럿!”
장난치지 말라고 정색하고 백리세가의 수준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들은 막말에 대한 울분, 몇 번의 성공적인 도주로 자신감을 얻은 내가 소리쳤다.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보든지!”
남궁류청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너무 약 올렸나?
나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휭. 내가 피한 자리에서 아주 무서운 소리가 들렸다.
소름이 오소소 들었다. 내머리가 있던 자리였다.
“미친, 날 죽일 셈이야?”
“피했잖아.”
“그래도!”
“시끄러워.”
남궁류청이 연달아 휘두르는 검을 피해 후다닥 물러났다. 그렇게 또 연무장 한 바퀴를 돌았다.
“······.”
“······.”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이고, 힘들어!’
잘 피했지만, 모든 검을 피할 수만은 없었다.
도망치는 사이 어쩔 수 없이 남궁류청의 검을 몇 번 막느라 이젠 손아귀에 힘이 남지 않았다.
들고 있는 목검이 거추장스러웠다.
그리고······.
슬슬 남궁류청도 내가 피하는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이 보였다.
‘거기다 화나서 살짝 눈이 돈 것 같은데······.’
이렇게 제대로 대련도 안 하고 피해 다니기만 하는 건 처음일 터였다.
가끔 남궁류청에게 유효한 타격을 줄 만한 경로가 보였지만 무제는 내 몸이었다.
피하는 건 아슬아슬하게 가능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파훼법이 보이더라도 이를 공략할 엄두가 안 났다.
‘하, 이 방법뿐이네.’
쥐고 있던 목검을 바라보던 난······ 그대로 남궁류청을 향해 검을 집어 던졌다.
어차피 제대로 휘두를 수 없는 수단.
거치적거릴 뿐이었다.
“······!”
깜짝 놀란 남궁류청이 내 목검을 쳐 내는 틈에 바짝 붙었다.
남궁류청이 검을 쥐지 않은 좌수를 내게 뻗었다. 최근 수도 없이 맞은 천산염제의 손에 비하면 훨씬 느렸다.
나는 몸을 틀어 좌수를 피하며 팔을 팔뚝으로 밀쳐 냈다.
남궁류청의 확장된 눈동자와 정돈된 숨결이 닿는 게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다.
나는 그대로 목검을 쥔 남궁류청 손목의 혈을 내리쳤다.
퍽! 꽤 큰 소리가 들렸고, 나는 탄식했다.
“아······.”
공격은 제대로 먹혔다. 하지만 힘이 부족했다.
남궁류청의 손에 힘이 살짝 빠졌으나 끝내 검을 떨어트리진 않았다.
당연히 놓치지 않은 목검은 내 목을 겨누고 있었다.
목덜미에 닿는 목검의 감촉이 차가웠고, 남궁류청의 부릅뜬 눈동자는 인상적이었다.
“음, 졌습니다.”
“너······.”
크게 숨을 들이쉰 난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 앉았다.
“아, 힘들어.”
머리가 핑핑 도는 느낌이었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남궁류청을 올려다보았다.
“류청.”
“이름을 왜 멋대로······”
나는 남궁류청의 의문을 자르며 말했다.
“검을 쥔 건 사람이야.”
“······?”
“소중한 걸 만들어. 그래야 네 벽을 넘을 수 있을 거야.”
어느새 아버지가 내 곁에 다가왔다.
“연아, 졌구나.”
“네.”
“공자, 좋은 대련이었네.”
“······아닙니다.”
“원래 좀 더 지도 대련을 이어가려 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게 어떠한가? 생각할 것이 많아 보이는데.”
아버지와 남궁류청이 아야기하는 사이 바닥에서 일어나던 난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힘이 하나도 들어가질 않았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아버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허엉, 아버지, 저 못 일어나겠어요.”
아버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내 팔을 잡고 번쩍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팔로 오금을 받쳐 들었다.
그런 부녀의 모습을 남궁류청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 *
남궁류청은 전각의 돌계단을 기계적으로 밟아 올라갔다.
사람을 봐라. 소중한 걸 만들어라.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남궁류청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고민을 알지도 못하면서.
웃기지도 않은 훈계따위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백리연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분명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걱정이었다.
누가 누굴 걱정한단 말인가?
비무 조금 하였다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걱정하는 눈빛이라니.
‘그러고 보니 눈 색이 좀 밝았던 것 같기도 하고. 원래 그런 빛이었나?’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착각이겠지. 설사 착각이 아니더라도 눈 색이 밝아지든 말든 자신과 무슨 상관인가?
‘이건 내가 진 거야.’
패배. 이기긴 하였지만 이건 진거나 마찬가지였다.
서하령 소저와 대련과는 정반대였다.
목검이 부러졌다 한들 대련을 계속 이어 나갔다면 부러진 검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반대로 백리 소저와 하였던 대련은.
검은 놓치지 않았지만, 손목을 내려치던 손에 담긴 힘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내려치는 것보단 혈도에 내공을 찌르고 꺾는 게 더 좋았을 ······아, 내공을 쓰지 않기로 했지. 그러면 내려치는 게 최선이었겠군. 하지만 일단 파고들게 만든 것부터 실수였어. 거기서 검을 던져 버릴 줄이야. 검을 쳐내지 말고 몸을 틀어서 피하면······.’
남궁류청은 어느새 계단을 오르던 걸음도 멈췄다. 그리고 돌계단 하가운데서 무아지경으로 대련을 복기했다.
한참 대련을 복기하던 남궁류청은 다시 떠오른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검기.
다시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 이상했다.
주변에 조언을 구해 보아도 다들 한번 만들어 내면 강렬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했다. 뇌리에 새겨지듯 감각이 남는다고.
본능적으로 검기를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어 설명할 수 있는 감각이 아니라고 할 뿐이었다.
숨을 쉬는 방법, 눈을 깜빡이는 방법을 알려 달라는 것과 같다 하였다.
모두가 그리 말하는데.
가슴에서 불길이 치솟는 듯 화가 솟구치고 눈앞이 흐려졌다.
‘나는······.’
아득해지는 정신에 먼 곳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