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403)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403화
오망성 (1)
– 그러니까. 이 세상 어딘가에 ‘신들’이란 존재가 있고, 우리가 그들에게 선택받았다는 말일까요?
– 흐음, 글쎄요. 말은 선택이지만, 분명 메시지는 ‘베타 테스트’가 끝났다고 했습니다. ‘베타 테스트’란 무언갈 제대로 시작하기 전 이것저것 실험해 보는 것을 뜻하죠.
– 그러게요. 후, 마치 실험실 속 쥐라도 된 듯한 느낌이네요.
– 예, 그게 다수 중론입니다. 아마 그 신들이라는 존재에게 우린 체스판 위의 말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겁니다. 일종의 유흥 거리겠죠. 이는 자신을 공격하는 헌터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고래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여론과 커뮤니티가 떠들썩했다.
방송에는 온갖 전문가들이 튀어나와 이번 사태에 대해 의논을 나눴으며, 고래가 했던 말을 분석하고 추측했다.
– 리그전이 뭘까요? 스포츠나 게임이랑 비슷한 느낌일까요?
– 10개의 세계는요? 우리 같은 세계가 또 있는 걸까요?
– 그중, 절반은 멸망한다 했어요. 이러다가 정말 우리 다 죽는 거 아닙니까?
– 우선, 일주일 후에 있을 팀 나누기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순식간에 헌터들을 도살했던 고래는 아직도 평안하게 유영 중이었다.
하지만.
저게 핵폭탄 버튼과 다름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위험덩어리, 그 자체.
└ ㅆㅂ, ㅆㅂ 무서워. 진짜 튀어야 하는 거 아님?
└ 도망갈 데가 어디 있냐? 지하 벙커 같은 것도 의미 없어 보이는데.
└ 미친ㅠㅠㅠㅠ
└ 랭커들은 뭐 함? 이번에 능력 거둬간 거 랭커는 빗나갔다며! 제발 저 고래 좀 치워줘! 불안해서 잠을 못 자겠다고!
└ 별천지 공식 발표는 없음?
└ ㅇㅇ, 아직 없음.
└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어.
대다수 커뮤니티의 반응과 감정은 「불안」이었지만.
그래도 고래가 나름 신사적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 고래가 참을성이 있네. 쟤 눈에는 우리가 개미보다 못하게 보일 거임. 그런데도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잖아?
└ 신들이라는 표현을 썼으니, 신의 사자 아닐까?
└ 관리팀장이라는 말도 나왔었어.
└ 관리? 그럼 지금까지 미지의 신들이 우릴 관리하고 있었던 건가? 맞네, 고유 능력이 생겼던 것도 그렇고. 그걸 거둬가는 것까지. 딱 맞는데?
└ 하여튼 나도 앞서 말했던 사람 의견에는 동의함. 통제에만 따르면 고래가 우릴 멸망시킬 일은 없어 보임.
└ 통제에 안 따르면?
└ 그때는 모르지.
고래가 내린 통제는 하나다.
일주일 안에 랭커끼리 팀을 나누어 오망성의 끝부분에 위치할 것.
어느 방송사의 MC가 캐스터에게 물었다.
– 현재 랭커 소집령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죠?
– 예, 지금 하나둘 미국으로 입국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협회장 아이라는 전 랭커가 모였을 때, 집단 수뇌부들끼리의 회의로 팀을 가르겠다고 공표했는데요……! 이는 헌터 역사상 유례없는 소집 현장이 될 예정입니다!
인류를 생존의 길로 인도해야 할 1,000명의 랭커.
이제 고유 능력을 잃은 대중들은 그들을 믿고 응원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스킬 같은 것만 사라졌을 뿐, 힘이나 기운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진술들이 이어지고 있긴 했다.
그래도.
랭커 빼고는 지구의 전력이 약화되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사람들은 세계 협회의 회의 결과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 * *
세계 협회 소집령.
그곳에는 나도 참여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 고래는 나조차도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될 것 같은 존재였으니까.
이번 사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조심하게 움직여야 했다.
‘예전처럼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안 돼.’
원래의 나는.
강한 힘을 만나면 무작정 몸을 들이밀었다.
위험을 감수했고, 모험과 도전을 즐겼다.
그 결과.
결국, 세계 랭킹 1위라는 명예를 거머쥐었지.
‘하지만.’
지금은 느낌이 달랐다.
내 행동으로 인해 모든 인류가 위협을 받을 수도 있는 것.
나는 선한 사람도 아니었고, 숭고한 목적과 삶을 추구하는 영웅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만큼은 싫었다.
다행히도.
모든 랭커들의 마음이 일치했나 보다.
저벅, 저벅.
잘 정비된 협회 강당으로 들어서는 랭커 중에는.
마왕군도, 천마신교도, 마탑도 있었다.
또한 아직도 작게나마 유지하고 있는 소형 길드와 개인 랭커들도 전부 참석했다.
항상 보는 거지만, 강당은 거대했다.
이번엔 중앙에 높게 솟아 있는 바닥이 있었고, 그곳에 집단 수장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으며.
그 외 바깥쪽에, 수장이 아닌 랭커들의 자리가 1,000여 개 깔려 있었다.
“……길마님.”
예외적으로 랭커가 아님에도 따라온 김진아가 날 올려다봤다.
두렵거나 긴장한 표정이 아닌, 무언가 결연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정말 제가 올라가요?”
“예, 부길마.”
이미 팀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속으로 정해뒀다.
‘별천지는 별천지끼리. 나머지는 알아서.’
결과를 정해뒀으니, 나머지는 부길마가 알아서 하면 될 일이다.
솔직히.
‘시간이 아깝거든.’
고래의 등장은 나에게 크나큰 충격이었다.
거성(巨星)을 달성했음에도, 녀석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지조차 못했다.
‘나는.’
지구라는 우물 속에 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와중에도, 훈련에 임해야 했다.
강당.
가장 끝부분 구석 의자에 별천지 멤버들과 자리한 나는.
팔짱을 낀 채, 사색에 잠겼다.
사색을 빙자한 훈련이었다.
당연히 내 옆에는 나만의 경험치 토템, 배지민을 앉혔다.
* * *
“다 모였네요.”
중앙,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협회장 아이라가 중얼거렸다.
솔직히 모일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게 무색할 만큼.
1,000명의 랭커들은 통제에 잘 따라주었다.
“출석 체크는 따로 안 해도 되겠어요.”
집단 수장 자리에는 나름 많은 랭커들이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명궁(名弓) 기파랑을 비롯해,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길드들은 제법 많았다.
“어떻게 된 거죠?”
“혹시 대중에 밝혀지지 않은 다른 정보가 있습니까?”
몇몇 소형 길드의 수장들이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런 건 없어요.”
아이라가 고개를 저었다.
동시에 질문을 자제해 달라는 듯.
오른손을 부드럽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저도 모르고, 델라일라 님도 모릅니다. 심지어, 종말을 예언했던 별천지도 모르는 사실이에요.”
“……!”
“…….”
좌중에 침묵이 돌았다.
아이라의 목소리에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긴장이 가득 껴 있었으며, 그 막강하다는 빅3의 수장들조차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다만, 확실한 건. 우리가 앞으로 6일 안에 팀을 나눠야 한다는 거죠.”
하늘에 떠 있는 고래.
지금은 얌전하지만, 또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일.
“……다 같이 싸우는 방안은 고려하지 않는 건가?”
마왕.
잭 스미스가 은근슬쩍 물었다.
“그건 안 돼요.”
마왕에게 답한 것은 아이라가 아니었다.
옆에 앉아 있던 델라일라였다.
“전 인류의 목숨을 걸고 베팅할 수는 없는 법이에요. 지금 제일 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생존입니다.”
“팀을 나눈다고 우리가 생존할 거란 보장은 없잖는가.”
“그렇지만.”
델라일라가 힐끗 눈길을 돌렸다.
저 아래.
눈을 감고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 주동훈에게.
“그가 제게 따로 전달했어요.”
여기서 말하는 ‘그’.
그게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천마(天魔) 하세라가 고개를 끄덕였고, 마탑주 소피아가 옅은 미소를 띠었다.
“여기 있는 랭커 1,000명. 모두가 덤벼도 저 고래를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
랭커들이 눈을 부릅떴다.
세계 랭킹 1위.
현 인류 최강자가 그렇게 평할 정도면…….
“크흠.”
마왕이 불편하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런데도 인정은 했다.
‘강한 건 강한 거니까.’
사소한 질투에 분위기를 그르칠 만큼 마왕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팀은 어떻게 나누려 하는가?”
마왕이 다시 물을 때였다.
“별천지 측에서 말했던 것처럼, 다섯 집단을 축으로 나누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저 끝에 자리했던 누군가가 일어났다.
“아, 폭풍검(暴風劍) 아론이라 합니다. 폭풍 길드를 이끌고 있죠.”
“아.”
“폭풍검.”
랭커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세계 랭킹 66위에 올라선 신성(新星)으로 제법 빠른 성장으로 유명한 자였다.
“일어난 김에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론이 당당하게 고개를 돌려, 김진아를 바라봤다.
“솔직히 저희 길드는 별천지 쪽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
그의 선포에.
다른 소형 길드의 수장들이 눈썹을 치켜떴다.
‘아니……. 뭔.’
‘저렇게 선수를 친다고?’
‘아, 나도 먼저 말해야 하나?’
여기 있는 수장 중.
별천지와 함께 하는 게 가장 안전하고 매력적이라는 걸 모르는 자는 없었다.
“자중하시오, 폭풍검! 그렇게 막무가내로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맞아요. 별천지와 어울리는 건 저희 시즈 길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파랑도 별천지와 인연이 깊지.”
심지어.
세계 랭킹 37위, 명궁(名弓) 기파랑까지 나설 정도였으니.
모든 수장이 팀 나누기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법한 순간이었다.
“그만요.”
그때.
김진아가 오른 손바닥을 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비랭커인 그녀.
그런데도 여기 있는 1,000명의 랭커 중 아무도 불만을 가지는 자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그녀에게 시비를 턴다?
그 말은.
저기 아래.
주동훈과 장대웅, 플로아를 포함한 별천지 멤버들에게 시비를 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요즘 핫한 세계 최강의 정예를 상대로 말이다.
“죄송하지만, 우리 별천지는 다른 팀과 함께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그녀의 단호한 거절.
“타 길드의 갈등 조장을 막기 위해서라는 건……. 음. 예, 솔직히 핑계입니다. 다른 길드에는 실례되는 발언일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사실을 말씀드릴게요.”
김진아가 힐끗 아이라를 바라봤다.
아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라는 제스처.
“길드 내부에서 판단하길, 저희 길드 마스터님의 전력은…….”
고개를 돌린 김진아가.
마왕, 천마, 그리고 마탑주와 한 번씩 눈을 마주쳤다.
“현재 빅3라 불리는 집단 모두를 합친 것을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
마왕의 눈썹이 구겨졌다.
하세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마탑주가 키득 웃었다.
세계 최고의 집단.
빅3 수장들은 그저 그렇게 반응할 뿐, 별다른 말을 첨언하지 않았다.
그 말은.
‘인정한다는 뜻인가?’
‘정말?’
‘하긴, 주동훈 혼자도 대단한데, 그 수하들도 진짜 넘사벽이잖아.’
충격이었다.
실제로 아래서 지켜보는 수많은 랭커들이 술렁거렸다.
과연.
이게 세계 랭킹 1위의 위엄인 것인가!
김진아가 계속 말을 이었다.
“즉,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길마님 혼자로도 충분히 위력을 낼 수 있는 상황이니까요.”
“광오하군.”
마왕이 픽 웃었다.
“고래가 말했지. 향후 팀을 바꾸거나 늘리고 싶어도 그 기회가 없을 거라고. 한 번 정해진 팀은 영원하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도 괜찮다는 건가?”
“예.”
“너희는 수가 적어. 힘으로는 우세할 수 있으나, 수적으로 불리한 순간이 올 수도 있을 텐데 괜찮겠나?”
“글쎄요.”
마왕이 제법 압박하며 말했음에도, 김진아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전 길마님 직업 특성상, 수적으로도 그 누구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서요.”
이제.
그가 가용할 수 있는 스켈레톤만 백만이 넘는다.
“……그런가?”
사실.
마왕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인정해야 했다.
별천지의 오기로, 전 인류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
“저는 그 제안. 괜찮다고 봐요.”
델라일라가 나선 것은 그때였다.
“이건 개인적인 감정이지만, 사실 별천지보단 다른 길드가 더 걱정되거든요.”
그래.
마왕군이나 천마신교까지는 그렇다 쳐도.
마탑이나 세계 협회 쪽은 상당히 많이 불안했다.
질적으로 딸리니, 양으로라도 보완해야 하는 마당에.
별천지가 이렇게 말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큼, 그것도 맞는 말이지. 밸런스를 고려해야 한다면, 우리 마왕군도 다른 팀과 함께하지 않겠다.”
씩.
웃은 마왕이 커다란 주먹을 탁자 위에 올리며 중얼거렸다.
“다른 랭커들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합이 맞지 않으면, 없느니만 못하거든.”
스릉!
– 우리도.
슬쩍 칼을 뽑은 하세라도 허공에 글자를 적었다.
우리끼리 감당할 수 있어. 랭커들을 세계 협회 쪽으로 모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는 일종의 자존심이자 의리였다.
생존 판 의리 게임에서, 세 길드가 각자의 술잔을 비워낸 것이다.
“뭐, 좋아요.”
델라일라가 싱긋 웃었다.
“그럼 팀은 밸런스를 고려해서 협회장님과 마탑주님. 그리고 저 델라일라가 주체적으로 배치할 생각인데, 혹시 이견 있는 분 계십니까? 있으시면 손 들어주세요.”
다행히도.
그 누구도 손을 드는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