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mmoned a max level demon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274
제273화
273화
게임에서 ‘시안’을 파멸시키는 원인은 여러 가지 꼽을 수 있다.
자잘한 악행부터 수많은 이들을 위험에 빠트린 행패들.
“그리고 이 망할 책…….”
게임 시나리오에서는 흑서를 파기하지 않는다.
파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도 망설이다가 파기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단, 쓰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맹세하며.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그리고 ‘시안’은 흑서를 손에 넣고자 계획을 꾸민다.
온갖 치졸한 짓거리의 끝에 얻게 되지만, 바로 그게 ‘시안’을 처형해도 되는 근거가 되어 버리고 말았지.
“자업자득이군.”
그 시안이 되고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단 말이지.
본래 이딴 것은 얻어 봐야 화근만 되는 종류의 물건이잖아?
그야말로 죽음의 아이템이 아닌가.
“그러니 이딴 쓰레기는 없애 버리자.”
게임에서의 일방적인 선택과 달리 내 주도하에 파기해 버릴 생각이다.
《흑서를 파기하겠습니까?》
《해당 아이템은 영구적으로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파기 즉시 해당 아이템의 관련 능력이 소실됩니다.》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필요 없어.”
쓸데없는 개소리로 유혹하지 마라.
“없앤다.”
그 순간, 흑서는 검은 모래처럼 바스러지며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흑서를 파기하였습니다.》
《해당 아이템의 영구적인 파괴로 관련 능력이 소실됩니다.》
응, 안 아까워.
(정말로 없앴네.)
“이게 나아……. 이런 건 가져 봐야 화근밖에 안 돼.”
굳은 의지를 갖고 악용하지 않겠다?
하하, 웃기는 개소리지.
꾹 누르면 죽이는 능력밖에 없는 물건은 악용이고 나발이고 남겨둘 필요가 없다.
“그리고 황제는 선택이라고 하였지.”
흑서를 완전히 포기하는 선택.
과연 그것이 잃기만 하는 것일까.
“제대로 알려 주면 어디 덧나느냐고.”
그리고 선택하게 되면 얻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흑서의 파기를 선택하였습니다.》
《파기된 흑서에 깃들어진 기능이 발휘됩니다.》
《선택에 의한 대가를 획득합니다.》
《패시브 스킬 – 선흑(善黑)의 의지를 획득합니다.》
흑마법 계열 상위의 패시브 스킬.
정신 오염 방지계의 최고 스킬이라고 꼽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가진 자는 사사로운 것 따위에 현혹되지 않으니까.
자신의 레벨 기준으로 10레벨까지의 정신 계통 공격에 면역이 발생한다.
“역시…….”
확신이 있으므로 고른 것이다.
정확히는 게임에서 암시되고 있는 선택.
게임에서 흑서의 파기는 언급만 되지만, 정작 그 선택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강제적인 루트의 선택.
하지만 게임의 데이터를 뜯었을 때는 미완성된 그 선택지와 얻게 되는 보상에 관한 데이터가 존재했다.
‘본래는 이것을 고르게 하는 이벤트를 고려했지만, 게임에서는 넣지 못했던건가?’
……혹은 일부러 넣지 않았던가.
뭐, 미완성된 몬스터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선택지가 유효하다는 사실도 확신했다는 뜻이다.
쓸모도 없는 흑마법사의 생살여탈권보다는.
강력한 스킬 몇 개가 더 도움이 된다는 것.
“일단 이걸로 걱정거리 하나는 줄였군.”
내 명줄을 위협할 거리가 이렇게 하나 줄어든다.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고말고.
* * *
필로스 아카데미 제83기생.
이제는 단순히 신입생이라고 부르기에도 뭐한 소년 소녀들은 현재 본관 강당에 모인 채 학장 필레프 팔레네우스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에타니올 제국의 건국 이래 많은 위협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학장이 지금 이 자리에 선 이유는 하나.
83기생 사고뭉치들이 벌인 일에 대해 적당한 대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위협에는 늘 그것에 맞서는 용기 있는 자들이 있었다고 하지. 이번에는 이곳에 있는 자네들이 그 역할을 하였다고 하더군.”
83기생의 금악룡 토벌 사건.
그것을 묵과하기에는 어떤 식으로든 아카데미는 이 아이들의 행동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했다.
당연히 책망은 어리석은 짓.
해야 할 것은 대대적인 극찬.
“훌륭하다.”
누구도 토벌전에 출전하라고 명령한 적은 없었다. 애초에 햇병아리들은 대기하라는 게 규칙이었으니까.
그런 아이들이 누군가의 선동 때문이라고 해도 그 괴물을 때려잡는 데 일조했다.
자주적인 영웅적 행동이라고 포장하는 편이 무난히 수습된다는 뜻이겠지.
‘참 귀가 얇은 애들이라 걱정이라니까~.’
(시안 네가 꼬드긴 거면서.)
‘뭐, 쭉 이용하여야겠지만.’
참 부려 먹기 좋은 애들인 걸 어쩌겠냐.
‘하여튼 아카데미도 이 애송이들의 행동에 대해 입장은 밝혀야 하니까.’
다시 말하지만, 질책은 아니다.
오히려 칭찬.
현재 학장은 83기생의 행동을 용기 있는 것이라고 포장하며 몇 번이고 극찬했다.
“그대들이 본 아카데미의 가르침을 절대 잊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언제 가르쳤수?
그리고 용기 아니거든요?
학점 때문이지.
실상은 어찌 되었든 이렇게 대외적으로 포장해 두어야 외부에서 그 일을 갖고 왈가왈부할 수 없게 되니까.
나름의 책임인가.
‘어디까지나 아카데미가 가르친 대로 행동했다. 뭐 그런 핑계인가.’
따질 거면 그걸 가르친 이곳에 따지란 소리군.
“말뿐인 극찬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칭송도 중요하다만, 역시 말뿐이라면 그저 허울만 좋다고 느껴질 뿐이지 않겠나.”
농담이라도 하듯 학장은 화제를 바꾸었다.
조금이지만, 학생들이 긴장한다. 그들이 기다렸던 것이니.
“업적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명예든 보상이든 자네들이 한 일은 틀림없이 영웅적인 것이니 그에 걸맞은 포상이 있어야 한다.”
뭐, 여기서 학점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모양이 살지 않으니.
그것은 암묵적인 동의로 얻은 보상이고, 이미 학점 처리는 되었음을 확인했다.
“직접 황제 폐하께 타진하여 자네들에게 적절한 대가를 주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폐하께서도 동의하셨지.”
별개로 무언가 준다.
당연하리라.
“그날 토벌에 참여한 이들 전원에게 그 공을 기리는 훈장이 주어질 것이다.”
단순한 명예뿐인 포상이나 충분히 기뻐하고도 남는다.
정식으로 공로를 인정하고 그것을 증거로 남긴다.
이곳에 입학한 학생의 목적은 결국 자신의 가치 혹은 그들이 속한 가문이나 뒷배의 체면을 세우는 것.
당연히 명예 또한 가치가 있으리라.
“그리고 공로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가 머지않아 열릴 것이다.”
황제가 직접 주관하는 자리를 만들어서 그것을 축하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거리가 되고도 남겠지.
“마지막으로 자네들을 이끈 자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마.”
누굴까?
뭐, 뻔하지. 나지막하게 한숨이 나오려는 순간, 당연하게도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시안 알케우스.”
네~ 네~.
역시 부르지 않을 리가 없었다.
딱히 미리 들은 것은 없었지만, 당황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호명되자마자 여유롭게 단상 위로 올랐다.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모범을 보였다고 하더군.”
뻔히 알면서.
뭐, 네놈이 애들 선동해서 용 잡으러 갔지? 하고 묻는 것도 멋이 없으니.
“……예.”
“가장 큰 활약을 보였다고 들었네.”
막타는 내가 넣었으니.
거기다 금악룡의 최종 페이즈는 나 외에는 클리어가 어려웠을 테니.
그럼 내가 다 잡은 셈 쳐도 되는 거 아닐까.
“자네에게도 그에 걸맞은 영광과 대가가 약속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아카데미의 가르침을 잊지 말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보이길 바라네. ……하지만 자네도, 다른 아이들도 아직은 배울 것이 많은 학생임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군.”
“기억해 두겠습니다.”
하는 짓은 잘했으나 너무 무모한 짓은 하지 말아 달라는 에두른 부탁일까.
응. 고려만 할게요.
시안은 말 안 듣는 아이니까요.
나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웃으며 거짓말.
그야 더 무모한 짓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요.
* * *
“느닷없이 83기생 아이들을 동원하여 금악룡을 토벌하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는 내 귀를 의심했지.”
“학장님께서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셨기에 허가하신 게 아닙니까.”
이후 나를 학장실로 불러낸 뒤 학장은 공적인 칭찬이 아닌 개인적인 화제를 꺼냈다.
“무모한 선은 넘지 않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지.”
토벌에 실패할 거 같으면 잽싸게 애들을 데리고 튈 거라고 여긴 걸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만일 성공하면 아카데미의 위신도 크게 높아질 거라고 생각하신 게 아닐까 싶은데요.”
“흐, 흐흠…….”
조금 난처한 주제인 듯 필레프 학장은 헛기침을 하였다.
아카데미의 존재 이념이건 뭐건 중요한 건 실력이다.
극소수의 인재가 두각을 드러내도 전체적으로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면 그것을 쪼아 대는 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 기수의 인원을 총동원하여 공을 세웠으니 당분간 아카데미의 존재 의의를 걸고넘어질 일은 없겠죠.”
“……괜한 참견을 하는군.”
말은 그렇게 해도 이 노인의 기분은 꽤 좋아 보였다.
아마 이번 공로를 가지고 꽤 으스대고 다녔겠지.
“그런데 말씀하신 축하의 자리란 건 무엇입니까?”
“흠? 듣지 못했나?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네. 폐하께서도 이번 일을 대대적으로 이용…… 아니, 칭송해야 한다고 여기셨지.”
“이용이라니…….”
왠지 불길한 예감밖에 안 드는 단어인데요.
학장은 걱정 말라고 별거 아니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단순한 연회라네. 자네를 포함해서 토벌에 참여한 이들은 참석하기만 하면 될 뿐이지.”
“축하연…….”
“왜 그러지?”
“아니,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데, 저희끼리만 있는 것입니까?”
“듣자 하니 제국 내의 귀족들 외에도 타국의 손님도 흥미를 느끼시는 듯하니 초대할 것 같더군.”
“아하~ 외국에도 자랑하시겠다?”
“그렇게도 말하는가?”
학장의 모호한 태도가 확실하게 가르쳐 준다.
타국의 손님들을 불러 모아 우리 애송이들은 드래곤도 때려잡는 실력자라고 광고라도 할 셈인가.
‘……역시 이 경우에는 이게 핑계가 되는구나.’
짐작 가는 게 있었다.
이유는 다르지만, 게임 시나리오 전에도 비슷한 핑계로 축하연이 열렸지.
메인 시나리오 6장의 전야제.
정확히는 메인 시나리오 6장이 시작되기 전에 일어날 일을 암시하기 위한 파트.
“그런 자리가 거북한가?”
“거북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흥미가 없는 것도 아니니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겠네요.”
“잘됐군. 혹여 자네가 빠질까 걱정하던 참이었지.”
실은 빠지고 싶은데요.
아마 그러면 큰일 날 거라서 빠지지 못하는 것뿐이랍니다. 그 말을 꾹꾹 눌러 담는다.
“빠지지도 않을 것이고, 사고도 뭐 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불길한 말은 하지 말게나.”
“그것보다 결국 이래저래 이번 활약 덕에 어른들은 여러 가지로 체면이 섰단 뜻이 아닌가요?”
화제를 돌린다.
내 용건은 허울 좋은 축하연 따위보다는 당장에 얻을 수 있는 것.
“바라는 게 있나?”
“앞으로의 활약을 기원하시면서 선물 정도를 주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냥 달라고 하게. ……갈수록 영악해지는군.”
학장은 혀를 차며 속내를 바로 밝힐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줄 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은데.”
“……별건 아닙니다. 딱히 학장님이나 아카데미에 부담되는 것도 아닐 테고요.”
부담을 줄 대가를 요구할 정도로 후안무치하지도 않으니.
“아카데미의 보관 창고에서 바라는 물품을 고를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4종 창고.”
“보관 창고? 그것도 4종 창고?! 그건 그거대로 기이한 부탁이군. 왜 하필 그것이지?”
학장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묻는다.
차라리 클래스별 가용 가능한 예산이라든가 개인적인 포상을 원할 거라고 예상한 것일까.
“확실히 4종 창고의 물건이라면 아카데미의 재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네만.”
“거기 있는 것은 단순히 처치 불가능한 아이템만을 보관해 놓은 것들뿐이니까요.”
아카데미에는 몇 종류의 창고가 있다.
그중에서 내가 개방을 바라는 것은 어떤 것들을 보관해 놓은 곳.
교수나 역대 졸업생들이 자신들이 만든 성과들 중 아카데미에 헌납하기에 적합하다고 여긴 것을 보관해 놓는 곳이다.
일종의 아카데미에서 배운 성과의 증거가 되는 장소인 셈.
학장은 신중하게 고민했다.
내가 허투루 요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고작 그런 것이면 되겠는가?”
“충분합니다.”
허가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