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부우웅.
정두식이 끄는 차를 타고 촬영장으로 가는 길.
한성태는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음악에 고개를 까딱거렸다.
“형, 이거 노래 좋네요. 뭐예요?”
잔잔하면서 울림이 있는 게 조용히 연습하기에 너무 좋았다.
한성태의 물음에 정두식이 웃으며 답했다.
“괜찮지?”
“네, 너무 좋은데요?”
정두식이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에서 제작한 음악이라는 말에 한성태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PAN 엔터테인먼트의 가수팀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아 잘 몰랐다.
한성태는 작게 감탄하며 음악에 몸을 맡겼다.
오늘 촬영이 잘 될 거라는 걸 암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너무 좋은 음악이었다.
“아, 도착했다. 성태야, 내려.”
“오늘도 고마워요.”
정두식에게 웃으며 말한 한성태가 차에서 내렸다.
‘Underground King’의 촬영장은 전에도 그랬듯이, 오늘도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성태는 바로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어? 한!”
“오늘도 일찍 왔네요. 화보 봤어요. 너무 멋있었어요!”
“한! 화보도 화본데, 오늘 너무 느낌 좋은데요?”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한성태는 그들에게 일일이 답을 해주며 알 루에노가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알 루에노는 세트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그의 주위에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져 있는지, 사람들이 일정 반경 안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알 루에노만 힐끔힐끔 보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린 한성태가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알,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네, 한. 얼굴이 좋아 보이는군.”
“네, 잠을 푹 자서요.”
한성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멈칫거렸다.
알 루에노의 모습이 평소와 느낌이 살짝 달랐다.
평소에는 메로미스나, ‘D’사 브랜드를 즐겨 입던 알 루에노였는데.
“집에 있길래 꺼내 봤는데, 잘 어울리나?”
알 루에노의 말에 한성태가 웃음을 흘렸다.
그의 가슴팍에 달린 ‘M’ 로고가 보인다.
몽띠끄의 옷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그 로고에 한성태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려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괜찮은 거 같아서 꺼낸 옷인데.”
알 루에노가 감사할 거 없다며 손을 휘저었다.
“촬영에 집중하자고. 다들 자네의 연기만 보고 있어.”
“네, 열심히 할게요.”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 루에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를 부축하며 세트장으로 올라갔다.
―자자, 스탠바이 하시고.
벤자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촬영하면 할수록 그의 목소리가 점점 쉬고 있는 것만 같다.
―……액션!
촬영의 시작과 함께.
한성태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는 데릭이 되어 움직였다.
데릭이 뛰듯이 걸어갔다.
그는 기다란 복도를 지나, 델 하만이 있는 방문을 벌컥 열었다.
“…….”
그 안에 주치의가 있었고 변호사가 있었으며, 델 하만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자신의 건강이 건재하다고 말하는 노인네는 어디 가고.
다 죽어가는 병자가 호흡기를 단 채 쓰러져 있다.
그 모습을 보는 데릭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데릭.”
“이쪽으로 오시면 안 됩니다.”
“환자에게는 안정이…….”
별 괴상한 말을 지껄이는 사람들을 옆으로 밀쳐낸 채.
턱.
그가 델 하만이 누워 있는 침대의 난간을 붙잡았다.
난간을 잡은 그의 손에 강한 힘이 들어가면서 뿌드득 하는 소리를 낸다.
“후우…….”
데릭은 짙게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델.”
“…….”
“델 하만.”
“…….”
두 번이나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게 뭐야. 나랑 약속했잖아. 함께 호수 공원을 걷겠다고.”
“…….”
“복수가 끝나면 같이 여행도 가자고 했잖아.”
데릭이 한 마디 한 마디 씹어 삼키듯이 내뱉었다.
델 하만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굳게 닫힌 눈은 떠질 생각도 없어 보인다.
“못 들으실 겁니다.”
뒤에서 주치의가 말한다.
“지금 이렇게 버티고 계시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신 겁니다.”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고.
옆에서 자꾸만 떠들어대는 주치의의 말에 데릭이 닥치라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다음에 다시 올게.”
데릭이 침대에서 벗어났다.
안정이 필요하다고 했으니, 자신이 쉬는 데 방해하면 안 되겠지.
문 쪽으로 걸어가던 그의 발걸음은.
“……데릭.”
잔뜩 쉬어버린 델 하만의 목소리에 멈춰버렸다.
“사람 쉬지도 못하게 떠들어 놓고서는 어딜 가는 건가.”
“델.”
“와서 앉게. 우리에게도 못다 한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그 말에 데릭이 몸을 돌렸다.
델 하만이 다른 사람들을 전부 내보냈다.
주치의가 끝까지 남으려고 했지만, 데릭의 살벌한 눈빛에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로 와서 앉게.”
“응.”
데릭이 델 하만의 옆에 앉는다.
“요즘에는 뭐 하고 지내지?”
“그냥, 운동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녀.”
데릭은 자신이 복수가 끝나고 어떤 걸 하고 다니는지 차분하게 말했다.
그의 말을 듣는 델 하만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띠어졌다.
“그래. 잘살고 있군. 좋은 일이야.”
“델.”
“그럼 이제 대답할 수 있겠군. 복수가 끝나고 나서 어떻게 할 건지.”
델 하만의 물음에 데릭이 숨을 내쉬었다.
다시 입을 열어 말하려고 하는데.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가 자신에게 기회를 달라고 말합니다.]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가 당신에게 미안해하며 손을 뻗습니다.]대사를 치려던 한성태가 몸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느낌에 멈칫거렸다.
그가 당황하고 있는 중에도 한성태의 몸은 계속 움직였다.
“그래.”
한성태를 바라보는 알 루에노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와 연기하고 있었기에, 알 루에노는 그 누구보다 한성태의 변화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러 생각을 했었지.”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가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고 말합니다.]새로운 데릭이 중절모를 벗었다.
그의 행동을 델 하만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벗은 중절모를 가슴에 댄 데릭이 말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이제는 내 자리가 없을 것 같아.”
“이제 이후의 일은 후대에 맡기려고.”
“…….”
자신의 입에서 나온 대사에 한성태의 생각도 많아졌다.
과연 저 말은 데릭이 한 말이 맞을까, 아니면…….
“허허허. 그래. 그렇군.”
델 하만이 웃는다.
“자네를 만나 즐거웠네. 나의 하나뿐인 친구여.”
그가 눈을 감았다.
“나도 그래. 자네를 만날 수 있어서. 자네의 순간들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네. 이제 편안히 가게.”
데릭이 말하고, 동시에 ‘삐이이’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델!”
“오, 맙소사!”
그 소리에 밖에 있던 사람들이 황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의 손에 뒤로 밀려난 데릭은 볼 수 있었다.
델 하만이 웃고 있다는 것과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가 당신에게 감사를 표합니다.]‘컷’이라는 소리에 한성태는 눈을 감았다.
방금까지 몸에 가득하던 감정의 여운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한성태가 감정을 정리하고 있을 때, 그에게 알 루에노가 다가왔다.
“……고맙네.”
알 루에노의 말에 한성태가 눈을 깜빡거렸다.
갑작스럽게 감사를 표현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 말을 하는 알 루에노의 모습이 어딘가 후련해 보였다.
* * *
촬영이 끝이 나고, 한성태는 로저스를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로저스가 있는 곳은 촬영장에서 세 시간 거리에 있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한!”
“로저스, 오랜만이야.”
“그러니까. 이게 얼마 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잘 지냈지. 로저스는?”
한성태의 말에 로저스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잘 지냈지. 그런데, 한.”
“응?”
“몽띠끄의 앰버서더가 되었다고 너무 힘을 준 거 아니야?”
“아.”
한성태가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몽띠끄에서 협찬해준 대로 옷을 입고 있다 보니, 가끔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패션이 만들어질 때가 있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지금 당신은 멋이라는 게 폭발하고 있다고 말합니다.]한성태가 웃고 있을 때, 로저스가 말을 이었다.
“잘 어울려. 너랑 딱 맞는 브랜드를 찾았네.”
“고마워.”
“고마운 건 나지. 내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여기까지 와줬는데.”
로저스의 말에 한성태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가자. 내가 사람들 소개해줄게.”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로저스를 따라 움직였다.
“한, 로저스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폭주도 너무 잘 봤고요.”
피디의 말에 한성태가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자리를 이동한 한성태는 자신의 옆에 앉은 로저스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촬영은 언제부터 시작하는데?”
“지금 하고 있는데?”
“응?”
“저기 봐봐.”
로저스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본 한성태의 표정이 묘해졌다.
입구에서 보였던 카메라가 그를 찍는 중이었다.
“내가 올 때부터 찍었다고?”
“응, 지금 이 대화도 녹화되고 있을걸.”
“……대단하네.”
한성태의 말에 로저스가 히히,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한성태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나 이제 뭐 하면 되는데?”
“영화 찍을 거야. 5분짜리 단편영화.”
“장르는?”
“뭘 물어. 당연히 액션이지.”
씨익, 웃으며 말하는 로저스의 모습에 한성태가 헛웃음을 흘렸다.
역시, 로저스답다고 해야 할까.
한성태는 카메라를 힐끔 보고는 로저스와 대화를 이어갔다.
“이번 미션이 ‘자신이 데려온 게스트와 영화를 찍어라’거든. 한, 네가 나랑 싸우는 강도 역할을 해주면 될 것 같아.”
“강도?”
“응. 아, 여기 대본.”
로저스가 한성태에게 대본을 하나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 들어 살피던 한성태가 그만 웃음을 흘렸다.
그 대본은 수작업으로 되어 있었다.
글씨체가 아무리 봐도 로저스의 것이었고.
대본의 내용이 딱 로저스가 좋아할 만한 것이었다.
“운전 신은 당연히 들어갈 거고. 너랑 나랑 액션도 많이 들어갈 거야.”
“응, 그런 거 같네.”
“연습하는 데 시간 많이 필요해?”
한성태가 대본을 빠르게 훑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어.”
“역시 한이라니까. 그럼 옷부터 갈아입고 오자.”
한성태가 로저스를 따라 움직였다.
탈의실에 들어온 로저스가 윗옷을 벗더니 한성태에게 자랑했다.
“한, 보여? 너 없는 동안 내가 얼마나 운동했는지 알아? 이제 너한테 안 될…….”
한성태에게 몸을 자랑하던 그가 멈칫거렸다.
방금 막 윗옷을 벗은 한성태의 몸이 보였다.
장인이 섬세하게 깎아낸 것 같은 한성태의 몸을 보며, 로저스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몸을 가렸다.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옷을 챙겨 자리를 피하는 로저스의 뒷모습을 보며 한성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