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6
한제는 다시 이동했다. 맹타자의 모습을 한 요마가 빠른 속도로 쫓아오고 있음을 느낀 그는 영기가 깃든 액체를 크게 한 모금 마신 후 영력을 십분 활용해 빠르게 도망쳤다. 계산대로라면 상대가 따라잡기 전, 약 반 시진 후면 소용돌이가 있는 곳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맹타자의 몸에서 갑자기 붉은색 빛이 번쩍이더니 그는 전보다 몇 배는 빨라진 속도로 단숨에 거리를 좁혀왔다. 한제는 그 모습에 심장이 덜컥했다. 이대로는 2각 안에 상대에게 따라잡힐 것이 분명했다.
한제는 신식을 사방으로 펼쳐 유혼들을 통해 사방을 훑었다. 그의 눈빛이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닿았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잠시 망설이던 한제는 방향을 바꾸어 약간 비스듬한 방향으로 빠르게 질주했다.
★ ★ ★
육욕마군은 혼란스러웠다. 신식을 감히 넓게 퍼뜨릴 수도 없는 이곳에서 줄곧 출구를 찾고 있던 그는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출구가 서북쪽 방향에 있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사실 2년 전 그가 한 번 탐색한 적이 있던 방향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유혼이 너무 많아 접근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2년간 그는 대량의 유혼들을 흡수해 그것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면서 천천히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연히 속도는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대신 안전했다. 그가 대량의 유혼을 유인해 청년의 몸으로 제거하고 있던 그때였다.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그는 신식을 펼쳤다.
멀리까지는 펼치지 못하고 반경 1천 척 이내의 범위였다. 그 순간, 그의 신식 범위 밖에 있던 한 청년이 들어왔다. 육욕마군은 그 청년을 보고 흠칫 놀랐다가 곧 잔인하게 웃었다.
“제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오는구나!”
한제는 냉정한 눈으로 육욕마군을 주시하며 더욱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수많은 유혼이 마치 호위하듯 그를 감싸고 있었다.
육욕마군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제의 곁에 있는 그 유혼들을 바라보다가 흠칫 놀랐다. 그가 여태 조심조심 피해 다녔던 그 기이한 생물들이 눈앞의 녀석에게 피해를 입히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보호하다니,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그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차가운 눈으로 한제를 주시했다. 그는 한제가 대체 뭘 하는지 볼 생각이었다.
한제는 육욕마군의 1천 척 밖에서 우뚝 멈췄다. 그가 방금 유혼들로 자신의 주위를 감싼 것은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육욕마군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호였다. 아무래도 그 신호는 성공적으로 전달된 듯했다. 상대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한제는 한시름 내려놓았다. 유혼이 곁에 있는 이상 육욕마군이 겁나지는 않았지만 상대의 손에는 신기한 물건이 들려 있으니 괜히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때맞춰 출구로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제는 육욕마군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사실 속으로는 시간을 계산하고 있는 중이었다.
육욕마군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한제와 달리 유혼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요마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한제가 다가온 것이 의심스러웠지만 차갑게 웃었다.
한제의 곁에 그렇게 많은 유혼이 있지만 않았더라도 곧장 손을 썼을 것이었다. 하지만 괜히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저 고고하게 코웃음을 쳤다.
“일단 네 놈을 봐주지. 3초 줄 테니 썩 꺼져! 멀리 달아나는 게 좋을 게다.”
한제는 속으로 몇 초를 센 뒤 기괴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속으로 외쳤다.
‘지금이야!’
그는 곧장 고개를 들고 육욕마군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그는 곧장 몸을 훌쩍 날려 서북쪽 방향의 유혼 무리에게로 향했다.
육욕마군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보려던 순간, 피처럼 붉은 유성이 빠른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며 당황했다. 그 유성은 눈 깜짝할 사이에 육욕마군으로부터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렀다.
“매⋯⋯ 맹타자? 너⋯⋯ 영변단을 먹은 거야?”
육욕마군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상대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을 통해 그가 영변기에서 아주 약간 떨어지는 화신기 후기에 이르렀음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짧은 시간에 그 정도의 수준을 이루는 방법은 하나, 영변단을 먹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육욕마군은 곧바로 곁에 있던 청년의 시체를 가로로 들며 맹타자를 주시했다.
“영변단이 아니군. 대체 뭘 먹었기에 그런 꼴이 된 거지?”
맹타자의 거대한 두 눈이 육욕마군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있는 그를 본 맹타자는 뭔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사실 고왕이나 단목극, 왕청월은 요마가 된 그의 머릿속에 아무런 인상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곧 그는 이런 감정을 뒤로 치워버리고 비릿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난 맹타자가 아니다. 나는 요신 서사다!”
말을 마친 그는 뾰족한 뼈가 잔뜩 돋은 손을 뻗어 허공을 그었다. 순간 거대한 공간의 균열이 나타났고 그 사이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곧이어 키가 1백 척에 달하는 붉은색 인영이 틈을 비집고 나왔다.
“이 녀석은 네게 맡긴다. 난 다른 녀석을 뒤쫓아야겠어!”
말을 마친 맹타자가 몸을 훌쩍 날렸다.
육욕마군은 멍한 눈으로 공간의 균열을 비집고 나온 사람을 바라본 채 중얼거렸다.
“사부님⋯⋯.”
그 사람은 온몸을 감싸는 어두운 보라색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갑옷 위에는 예리하고 뾰족한 뼈가 삐죽삐죽 돋아 있었다. 1백 척이 넘는 그는 음산하고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검은 머리가 뒤쪽으로 흩날렸다. 그 얼굴은 상당히 준수했으며 날이 잘 선 칼처럼 예리했지만 어딘지 사악하고 요사스러운 기운이 풍겼다. 특히 얄팍한 두 입술에서는 무정함이 묻어났다.
그는 암적색 빛이 번득이는 두 눈으로 육욕마군을 주시했다. 그러다 한참 후에서야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청, 아직 이 사부를 알아보는구나. 훌륭하다. 허나 이제 나의 이름은 요신 서사다.”
‘이청’ 하고 부르는 소리가 육욕마군의 귀에 닿은 순간 그의 마음은 바르르 떨렸다. 믿을 수 없었다. 눈앞의 상대가 외모만 닮았을 뿐 사부일 리가 없다고 여겼건만 극소수만 알고 있는 자신의 이름을 부른 순간 그런 믿음이 흔들렸다.
‘그런데 저 사람이 사부 천마산인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인가?’
육욕마군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상대를 주시한 채 말했다.
“당신은 사람입니까, 마혼입니까? 왜 맹타자와 똑같이 마혼처럼 변한 거죠? 게다가 1천 년 전 당신은 이미⋯⋯.”
천마산인은 눈을 살짝 감았다가 바로 번쩍 뜨더니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1천 년 전 죽었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지, 그걸 묻고 싶은 게로군?”
육욕마군은 여전히 경계하고 있었다. 맹타자가 나타난 것부터 그의 사부가 살아난 것까지, 모두 기이한 일이었다. 뭔가 거대한 비밀이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소위 고대 신의 땅이라는 이곳에서 알려진 것처럼 고대 신의 체내에 들어가기만 하면 끝도 없는 법보와 단약 등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들었다.
생각해보면 1천 년 전 고대 신의 땅과 관련된 전수품을 손에 넣은 후로 천마산인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 같았다.
“난 몸을 빼앗긴 것이 아니다!”
천마산인은 맹타자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육욕마군은 깜짝 놀랐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신중하게 사부를 주시하다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거기서 열 보만 더 움직이면 손을 쓸 것이다!”
천마산인은 육욕마군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그러자 육욕마군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었다.
“사부님,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 제자를 죽이시려거든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주기나 하십시오.”
천마산인은 고개를 돌려 육욕마군을 힐끗 보고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좋다. 네게 알린다 해도 문제없겠지. 그게⋯⋯.”
펑-!
육욕마군은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여태 쥐고 있었던 청년의 시체를 갑자기 폭파시켰다. 청년은 죽은 지 한참 지났지만 체내의 피는 마치 방금 죽은 것처럼 아직 응고되지 않은 상태였다.
사방으로 확산된 피 안개가 육욕마군을 감쌌다. 그는 이 순간, 핏속에 녹아든 듯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세 번째 관문의 출구 쪽을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욕념혈둔대법(欲念血遁大法)! 훌륭하다. 과연 내 제자라고 할 만하구나.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곧바로 도망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도주법이지. 잘했다!”
천마산인은 육욕마군이 도망친 방향을 보고 입가에 대견하다는 듯 웃었다.
육욕마군의 모든 공법은 그가 직접 가르친 것으로 그가 수련한 공법의 이름은 현천마욕결(玄天魔欲訣)이었다. 사람에게는 선천적으로 여섯 가지의 욕념이 있는데 이 공법은 자신의 욕념을 단련함으로써 그 욕념으로 다른 사람의 욕념을 이끌어내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수련하는 데에는 자신의 욕념이 가장 중요했다. 만약 네 가지의 욕념을 단련한다면 화신기 수준에 이를 수 있고 여섯 가지의 욕념을 모두 단련하면 곧장 영변기에 이를 수 있었다.
육욕마군은 이미 다섯 가지의 욕념을 단련해 마지막 하나, 집욕(執欲)만을 남겨둔 상태였지만 그것은 어떤 노력을 들여도 잘 단련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집욕은 곧 집념이었다.
육욕마군이 유일하게 집착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의 수준이었다. 그는 수마해에 발을 들여놓은 그날부터 꼭 영변기의 수련자가 되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이는 그의 꿈이자 평생의 목표였다. 당시 천마산인은 이 집욕이 육욕마군 생애 최대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 했고 정말 그랬다.
욕념혈둔대법은 현천마욕결에 기록된, 일종의 목숨 보전을 위한 수단으로 절대 쉽게 사용해서는 안 됐다. 이 공법은 하나의 욕념을 추진력으로 삼는 방법으로 그 순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육욕마군은 과감한 사람이었다. 사부인 천마산인이 나타난 순간부터 미묘한 예감을 느꼈고 이에 이를 악물고 이런 방법까지 사용한 것이었다.
혈해(血海)의 주인
한편, 한제는 빠른 속도로 세 번째 관문의 출구를 향해 질주했다. 그곳으로 향하는 동안 마주친 유혼들은 자연스레 옆으로 길을 내주었다.
그의 몸은 별똥별처럼 긴 잔영을 남기며 움직였고 세 번째 관문과의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육욕마군의 생사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이 중요했다.
허나 안타깝게도 유혼들을 통해 한제는 육욕마군과 그의 사부 천마산인이 만나는 장면과 동시에 맹타자가 곧장 자신을 뒤쫓는 것을 보았다.
“휴…”
깊은 숨을 들이마신 한제는 다시 영기가 깃든 액체를 마신 뒤 오른손을 흔들었다. 순간 파란색의 얼음 화염이 그의 손에서 피어올랐다. 이어 저물대를 두드리자 독검이 서슬 퍼런 빛을 내뿜으며 나타났다.
한제는 양손으로 결인을 하고 뒤쪽을 가리켰다. 그의 몸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지만 얼음 화염과 비검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 맹타자 쪽으로 향했다.
요마가 된 맹타자는 한제를 뒤쫓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지금 뒤쫓고 있는 자는 그가 느끼기에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그 수련자였다. 허나 맹타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저 자를 붙잡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불쑥 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자에게 탄복했다. 그 자의 수준은 결단기 중기에 불과했지만 그런 것치고는 매우 교활했다. 더구나 유혼들이 그 자에게는 어떤 공격성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다.
자신이 유혼들의 공격을 받지 않는 것은 주인이 준, 탄혼의 기운이 담긴 법보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저 자는 대체 어떻게 유혼들의 공격을 받지 않는 걸까?’
맹타자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발을 박차며 더욱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얼마 움직이지 못한 그때, 그의 전방에 나타난 한 덩어리의 푸른색 화염이 그를 기습했다. 맹타자는 피식 비웃으며 더욱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거의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피할 생각도 않고 그 푸른 화염을 향해 곧장 달려가 부딪혔다.
펑.
얼음 화염은 몇 번 깜빡이더니 그 자리에서 터졌고 불꽃이 되어 사방으로 퍼졌다.
차게 웃으며 계속해서 속도를 높이던 맹타자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갔다. 얼음 화염의 불꽃은 천천히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그것에 부딪힌 그의 가슴팍은 어느 순간 짙은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한 층의 짙푸른 얼음 결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그 얼음 결정은 빠르게 확산되어 곧 전신으로 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