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4
그가 지금 가지고 있는 최고급 영석은 이전에 얻은 것까지 하면 총 스무 개가 넘었다. 이 정도라면 전송진을 가동시켜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이는 사실 그가 이 기린성으로 온 이유 중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수준은 이미 결단기 후기에 이르러 있었지만 원영을 맺을 때까지는 아주 힘든 과정이 남아 있었다. 원영을 맺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웠다.
교룡의 골수도 원영기에 이르는 가능성을 높여주는 단약도 모두 먹은 상태였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심지어 원영기에 이를 것 같은 증상이나 낌새조차도 없었다.
한제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극의 신식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극의 경계가 신식으로 진입한 순간, 극의 경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는 분명 최대 원영기 후기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같은 단계에서는 극의 경계를 가진 수련자가 제일 강하다고만 알고 있었다.
사실 극의 경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통일된 개념이 없었다. 기린성에 왔으니 극의 경계에 관련된 설명이 있는 고서를 찾는 것 역시 목표 중 하나였다.
한제는 저물대를 몇 개 꺼냈다. 그중에는 전신전의 신도술을 익히러 갔던 동굴에서 가져온 것과 고대 신의 땅에서 얻은 것도 있었다.
우선은 고왕의 저물대를 신식으로 살피려는 순간, 부드러운 힘이 그 안에서 뿜어져 나와 그의 진입을 막았다.
한제는 잠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고왕은 아직 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속으로 차게 웃으며 고왕의 저물대를 전신전의 동굴에서 얻은 그 저물대와 함께 두고 남아 있는 다른 저물대로 시선을 돌렸다.
그중 가장 그의 마음을 뛰게 만드는 것은 타목을 비롯한 수련자들의 법보가 들어있는 저물대였다. 한제가 손을 흔들자 그 저물대 안에 있는 것들이 하나하나 날아올랐다.
모두 열 개의 법보가 그의 앞에 떠있었다. 그중 빛을 번득이고 있는 초승달 모양의 검은색 칼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아홉 개는 모두 빛을 발하지 않았다.
오래된 거울과 금번(禁幡)
한제는 신식을 움직여 그 아홉 개의 법보를 감쌌다. 하지만 곧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아홉 개 법보 주인들은 이미 죽어서 빛을 발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 함유된 또 다른 신식이 한제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한제는 타목을 비롯한 열 명의 수련자 중 그 노인이 이 법보들을 그에게 줄 때 먼저 낙인을 찍었던 것을 떠올렸다.
한제는 신식을 다시 솟아오르게 해 그 아홉 개의 법보를 감싼 뒤 자세히 살폈다. 각각의 법보를 자세히 더듬어본 한제는 그 위에 깃든 신식의 파동을 확인했다.
…
한참 뒤 한제는 손바닥만 한 구리색 거울을 주시했다. 그가 관찰한 아홉 개의 법보 중 이 거울 외의 법보들에 걸려 있는 신식은 그의 수준으로 풀 수 없는 것이었다.
한제는 잠시 침묵하다가 불쑥 손을 뻗어 다른 법보들을 거두고 거울만 남겨두었다.
★ ★ ★
한 달 반이 지났다. 석실 밖으로 나온 한제의 표정은 평온했다. 한 달 전, 그는 이미 거울에 걸려 있던 신식을 거두고 그 위에 자신의 신식으로 낙인을 찍는 데 성공했다.
그 후 일주일의 정복 작업을 거쳐 거울을 기초적으로 조종할 수도 있게 됐다. 그리고 49일 만에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거울의 작용은 매우 신기했다. 쇄성란의 고리 안에 가득했던 신비한 힘과 비슷하게 분신과 관련이 있었다. 다만 한제로서는 이 물건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한제의 생각은 서사가 던져버린 그 사각형 솥으로 이어졌다. 그 솥의 이름은 현성정(玄星鼎)으로 봉인 작용을 했다. 기억에 의하면 그 솥은 세상의 그 어떤 것이든 봉인할 수 있었다. 별 하나도 통째로 봉인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진 물건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한제는 구리거울을 정복할 때를 제외하고 남는 시간에는 묵간석을 위주로 하여 금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금번을 만드는 재료가 필요할 때는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동안 운비에게 걸어둔 금제가 몇 차례 발동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에게 붙어 있는 두 번째 마혼이 그것을 풀어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체념한 운비는 심지어 약간 무뎌지기까지 했다.
사실 운비는 지난 며칠간 동굴을 몇 차례 떠나 수준 높은 수련자들을 찾아가 자신에게 걸려 있는 금제를 풀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번번이 실망만 했다.
그 금제를 본 수련자들은 미간을 구겼다. 그들이 확인한 그 금제는 지금의 신선계에서 사용하는 금제가 아니라 상고 시대의 금제에 더 가까웠다.
그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금제 자체가 신선계에서도 소수의 문파만이 다루는 것이라 캐묻는 사람은 없었다. 또한 운비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금제는 풀지도 못하고 한제의 정체를 폭로하게 되면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다.
사실 한제는 운비의 행동 하나하나를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에 숨어 있는 두 번째 마혼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한제는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시가지에 볼 일이 있어 한제가 막 석실 밖으로 나왔을 때, 동굴의 문이 열리더니 운비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안으로 들어왔다. 한제가 손으로 결인을 하자 그의 몸이 순간 사라졌다.
여인은 동굴 안으로 들어온 뒤 한제가 머물던 석실을 힐긋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 저 밑바닥에는 원한이 서려 있었다.
한제는 모습을 숨긴 채 여인을 주시했다. 그는 최근 여인의 행동에 이미 살의를 느끼고 있었다.
상대가 석실로 들어가는 것을 본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동굴 밖으로 나갔다. 기린의 등을 따라 움직인 한제는 기린성 안으로 향했다.
기린성 내부는 매우 넓었고 각종 점포들이 널려 있었다. 한제는 그 점포들을 훑어보며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살폈다.
그러는 동안에도 두 번째 마혼을 통해 자신이 동굴을 떠난 뒤 운비가 석실 내 한 구석에서 돌판 하나를 열고 그 안에서 단로를 꺼내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운비는 단로를 제자리에 가져다놓고 그 옆에 앉아 고민에 빠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던 한제는 속으로 냉소했다. 여인의 목숨은 이미 자신의 손에 들려 있었다. 때문에 급할 것도 없었다.
기린성 안에 자신의 금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고 싶기도 했고 그를 통해 자신의 금제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기린성 곳곳을 돌아다니던 한제의 눈이 어느 점포에 닿았다. 다섯 개 층으로 이루어진 그 점포에는 용과 봉황이 조각되어 있었으며 영기가 흘러넘치는 듯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백옥 간판이 걸려 있었는데 그 위에는 멋들어진 서체로 세 글자가 조각되어 있었다.
연기각(煉器閣)
한제의 입가에 기이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당시 남투성에서 교룡의 가죽으로 단로를 교환할 때 그 상황을 훔쳐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쫓겨 수마해 안에서 한 차례 피바람을 일으켰던 것이 기억났다.
그 상황의 사단이 된 단로는 결국 이모완에게 넘겼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한제의 머릿속에 저도 모르게 그 연약한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모완이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었음을 한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피에 젖은 복수의 굴레에 갇힌 그로서는 근심거리를 늘릴 수 없었다. 잘못했다가는 그녀까지 이 끔찍한 일에 말려들 것이다.
그런 일들을 겪은 후 한제의 마음은 냉혹하게 변했다. 그는 무력하게 가족을 잃은 그런 일을 또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그로부터 2백 년도 더 지났으니 이모완이 어찌됐을지 누가 알겠는가?
머릿속에 떠오른 그녀의 모습을 억지로 떨쳐버린 한제의 눈빛이 다시 서늘해졌다. 그는 걸음을 옮겨 연기각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의 연기각은 남투성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하나의 층이 더 있다는 것만이 달랐다. 안으로 들어선 한제는 사방을 한 번 둘러본 뒤 두 번째 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두 번째 층에 진입한 그 순간 걸음을 우뚝 멈춘 그는 좌측 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벽에는 거대한 교룡의 가죽이 한 장 걸려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교룡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완전한 가죽이었다.
연기각의 2층에는 푸른 옷을 입은 소녀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연기종 특유의 신통력으로 한제를 살핀 뒤 그의 수준이 이미 결단기 후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파악했다.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교룡 가죽은 우리 연기종이 가진 것 중 가장 완전한 가죽입니다. 판매하는 물건이 아니에요. 같은 가치를 지닌 물건을 가지고 있다면야 교환할 수 있겠지만요.”
그 교룡 가죽은 매우 낯이 익었다. 특히 접합부를 처리한 방식이 당초 그가 단로와 바꿨던 그 교룡의 가죽과 상당히 비슷했다.
“이건 어디에서 얻은 거지?”
한제가 불쑥 물었다.
만약 그가 결단기 초기 수준이기만 했어도 답을 하지 않았겠지만 그는 지금 결단기 후기, 그것도 거의 절정에 이른 수준의 수련자였다. 그 정도 수준이라면 답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소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완전한 교룡의 가죽을 얻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지요. 게다가 척 보기에도 교룡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벗겨낸 가죽이니까요.”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교룡의 가죽에서 소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소녀는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그 물건을 누구에게서 얻은 것인지 저는 모릅니다. 2백 년 전 수마해 외곽 지역의 남투성 지부에서 단로와 맞바꾸었다더군요. 그 교룡의 가죽을 가지고 있던 수련자는 2백 년 전 수마해 외곽 지역에서 상당한 명망을 떨쳤답니다.
축기 후기에 불과했던 그는 남투성의 연기각을 떠난 뒤 수많은 결단기 수련자에게 쫓겼는데 도리어 그 결단기 수련자들의 추격 속에서 축기를 돌파해 결단기에 이르더니 자신을 뒤쫓던 자들을 모두 죽였다더군요. 심지어 그 결단기 중기의 수련자가 만마백일주살을 사용했는데도 말이에요!”
한제는 미동도 없이 소녀의 말을 끝까지 듣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연기각을 한 바퀴 둘러본 한제는 중금 영석 서른 개로 재료들을 구매하고 또 몇 개의 영석으로 오래된 전송진이 기록된 옥패를 산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교룡 가죽은 여전히 2층 벽에 얌전히 걸려 있었다.
한제는 구매한 재료들이 퍽 만족스러웠다. 금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재료를 다 갖춘 상태였다. 사실 묵간석 외의 재료들은 상당히 흔한 것이라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전송진이 기록된 옥패를 살피던 한제는 적잖이 실망했다. 연기각 안에 신비롭고 오래된 전송진에 관한 자료는 많지 않았으며 이 옥패에 기록된 것도 그저 부스러기 같은 몇 개의 정보에 불과했다.
극의 경계에 관한 옥패도 있는지 물어도 보고 찾아도 보았으나 수확은 없었다.
다시 동굴로 돌아왔을 때 운비는 자신의 석실 안에 있었다. 한제는 그녀를 힐긋 보고 석실로 돌아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금번 제작을 준비했다. 운비는 그가 드나들어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한제는 고대 신의 땅 두 번째 관문에서 얻은 금번 제작 방법이 기록된 옥패를 다시 자세히 살핀 뒤 그것을 부숴버렸다.
그 후 영력을 이용해 묵간석에 촉매 작용을 일으킨 뒤 금번 제작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하나씩 꺼내 순서대로 섞었다. 그리고 옥패에 기록되어 있던 방법에 따라 정혈의 영기를 불어넣어 제련하기 시작했다.
옥패의 기록에 따르면 이 과정을 양기(養器)라고 한다. 양기에 걸리는 시간은 길 수도 짧을 수도 있으며, 최초 금번의 요구에 따라 증가했다.
금번은 네 개의 품질로 나뉘는데 그 품질에 따라 집어넣을 수 있는 금제의 수가 각각 999개, 9999개, 99999개, 그리고 999999개로 구분된다. 한제의 첫 번째 목표는 999개의 금제를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날 밤,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 두 손으로 끊임없이 결인을 했다. 그의 앞에는 하얀색 작은 깃발이 하나 떠 있었다. 그 깃발에는 81개의 검은 반점이 있었다.
한제는 신중한 표정으로 두 손을 한참 동안 움직여가며 결인을 그린 뒤 그 깃발을 가리켰다. 두 손에서 떠오른 잔영의 원이 하얀색 깃발을 때렸다.
이 금제는 막 그 깃발에 닿은 순간 무너져 내리더니 흩어져 사라지면서 하나의 검은 반점이 되어 깃발에 달라붙었다.
이제 그 깃발에는 총 82개의 반점이 생겨났다. 이 검은 반점의 수가 999개에 이르면 가장 낮은 등급의 금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였다.
여러 차례의 시도를 거친 뒤, 한제는 같은 금제는 이 금번에 최대 아홉 번만 흡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동일한 금제를 열 개 이상 찍으면 그 전의 아홉 개도 사라져버렸다.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막 열세 번째 종류의 금제를 만들어내려던 순간, 한제는 불쑥 고개를 들어 운비가 있는 석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서늘하게 번득였다.
두 번째 마혼을 통해 그는 운비가 방 안에서 돌판을 열고 단로를 꺼내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 단로는 굉장히 오래된 듯했고 그 위에는 미약한 빛을 발하는 노란색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여인의 얼굴에 다시 망설이는 빛이 어렸다. 하지만 곧 그녀는 이를 악물고 그 단로를 품에 끌어안은 채 조심스레 석실 밖으로 나왔다.
한제의 석실 앞에 이른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눈에 어린 원한의 빛을 재빨리 지우더니 한제의 석실 앞에 서서 공손하게 말했다.
“선배님, 계십니까?”
말을 마친 그녀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서 얌전히 기다렸다.
약 2각 후, 여인이 다시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선배님, 일이 있어 나가보려 합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느릿한 보폭으로 동굴 입구에 이를 때까지 한제의 석실에서는 어떤 기척도 없었다.
여인은 눈을 살짝 번득이며 오른손으로 동굴의 돌벽을 살짝 때렸다. 그리고 몸을 뒤로 훌쩍 날려 동굴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