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54
청수는 다소 어두워진 얼굴로 말없이 상황을 살폈고 머릿속으로는 어째서 이런 모순된 감정이 드는 것인지를 고민했다.
천역주(天逆珠)의 진동
한편, 라진은 뒤로 물러났다. 멸신인의 위력에 날카로운 뼈가 가시처럼 돋은 그의 오른팔에는 큰 균열이 일었지만 그의 표정은 오히려 전보다 흥분된 듯 보였다. 일견 한제를 대견하게 여기는 모습이었다.
한제의 몸 역시 뒤로 밀려난 상태였다. 멸신모는 거의 투명해진 상태였다. 한제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심신은 격렬하게 진동하는 중이었다.
방금 그 순간, 한제는 체내의 원신과 융합된 이래 단 한 번도 변화의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 천역주(天逆珠)가 가동되면서 급격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천역주에서는 기묘한 힘이 발산되어 전신으로 녹아들었고 이에 그의 두 눈에는 찰나의 순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의 남색 빛이 감돌았다.
뒤로 물러나면서 한제는 번쩍이는 그물 형태의 진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심신이 바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청수는 보지 못했지만 그의 눈에는 그물 아래로 어슴푸레한 빛이 보였다.
‘저건 대체 뭐지?’
표정을 보아하니 청수 역시 그 존재를 감지했음이 분명했다.
그때, 라진이 다시 달려들며 오른손을 들어 올려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의 미간에서 다섯 개의 반점이 급속도로 회전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팔을 타고 주먹에 이르렀다.
주먹의 끝에 이른 다섯 개의 반점은 끊임없이 회전하며 회오리를 형성했다. 라진이 주먹을 휘두르자 그 회오리는 거대한 폭풍을 일으켰다.
‘라진은 아직 이 상황을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군! 5성급 고신조차 발견하지 못한 것을 청수 사형이 감지하다니!’
그물 아래에서 드러난 어슴푸레한 두 갈래 빛은 한제의 경계심을 자극했다. 그 와중에 라진의 주먹이 날아들자 한제는 4성 왕족 고신의 힘을 이용해 방향을 바꿔 그 번쩍이는 그물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내가 저것을 발견한 건 천역주에서 피어오른 힘 덕분인데 청수 사형이 저것을 발견했다니, 놀랍군. 한데 대체 이 공간에는 뭐가 숨겨져 있는 거지?’
만약 우주에서 펼쳐졌다면 두 고신의 전투로 공간이 진즉 무너져 내렸겠지만 이곳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다시 한제와 라진 사이에서 주먹이 오갔다. 라진의 주먹에 깃든 고신의 반점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해 한제를 끌어당겼다.
한제의 눈빛이 변한 순간, 그의 미간에서도 고신의 반점이 급속도로 회전하더니 그의 오른손에 녹아들었다. 그 상태로 한제는 주먹을 휘둘렀다.
격렬한 충돌음과 함께 곧장 뒤로 물러난 한제는 라진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오는 흡인력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때 라진이 다시 달려들며 두 주먹을 휘둘렀다. 어느새 그의 온몸에 흉물스럽게 돋아난 뼈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화살처럼 발사됐다. 고신의 힘을 품은 뼈는 곧장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한제는 손에 쥔 멸신모를 휘둘렀고 고신의 언어로 주문을 외웠다.
“반고지력(返古之力), 차조신위(借祖神威)!”
그 순간, 한제의 앞에 고리 형태의 거대한 회오리가 나타났고 하늘을 뒤흔들 듯 요란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그 회오리는 한제에게로 날아들던 모든 뼈를 흡수했다.
이 모습을 보고 라진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오직 왕족 고신만이 발휘할 수 있는 반고차조(返古借祖)의 힘이라… 이 라진도 아주 오랜만에 보는군.”
말을 마친 그는 허공에 멈춘 채 전방으로 뻗은 두 손으로 원을 그렸다. 그러자 그의 정수리에서 고신의 별 하나가 허상으로 나타나더니 뒤를 이어 나머지 별들도 모여들었다. 이 다섯 개의 별은 라진이 두 팔을 휘두르자 부드러운 빛을 내뿜었다.
“고신수(古神獸)의 령!”
라진이 낮게 외치자 별로 이루어진 고리 안에서 무언가가 나타나더니 한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로 변했다.
온몸이 새까맣고 긴 털로 덮인 코끼리는 매서워 보였다. 특히 두 개의 상아에서는 서늘한 빛이 번득였고 두껍고 긴 코는 전방을 휘적거리며 포효했다.
녀석은 앞으로 다가오자 하늘을 뒤흔들 듯 콰르릉 하는 소리가 울렸고 거칠고 서늘한 기운이 끝없이 발산됐다.
고신족은 무너지는 하늘에도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할 뿐만 아니라 신통술 역시 뛰어났다.
이 수령술(獸靈術) 역시 고신의 신통술로 매우 강력한 술법이기 때문에 오직 5성급 이상의 고신만 그것도 오랜 시간 제련해야만 발휘할 수 있었다.
이 술법은 거의 모든 성년 고신이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기본적으로 고신이 성년이 된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자신의 수령(獸靈)을 제련하는 것이었다.
서사에게도 수령이 있었다. 당시 고신의 땅에서 끝없는 안개의 바다가 되어 탁삼이 기억의 유산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 바로 서사의 수령이었다.
라진의 수령술로 소환된 거대한 코끼리가 달려들자 반고차조의 힘으로 형성된 회오리가 변화하기 시작하더니 그 안에서 거대한 주먹이 쑥 빠져나왔다.
쾅!
푸른 피부로 덮인 주먹과 거대한 코끼리와 충돌하자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소리가 허무의 공간을 채우는 폭풍이 되어 사방으로 끝없이 퍼져나갔다.
“우오오오!”
거대한 코끼리는 성난 고함을 내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고 녀석의 두 상아 중 하나는 부러져 가루로 흩어졌다.
라진 역시 뒤로 밀려나갔는데 눈빛에 담긴 대견한 빛은 더욱 짙어졌다.
“쿨럭!”
한제는 피를 토해내며 뒤로 밀려났다.
“고신이 될 자격이 있구나!”
라진은 멀리 떨어진 한제를 바라보며 흐뭇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데 그 순간, 돌연 먼 곳에 있던 망월이 두 눈에서 요사스러운 빛을 뿜어내며 포효를 내질렀다. 그 소리에 라진은 몸을 바르르 떨었고 온몸에 경련이 일면서 얼굴에서는 푸른 정맥이 울툭불툭 돋아났다.
그는 맹렬히 몸을 돌려 망월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 망할 짐승아, 더는 나를 방해하지 마라!”
그 외침에 망월의 눈빛에 분노가 들어차더니 격렬하게 포효했다.
“크오오오!”
모종의 의지가 깃든 그 포효에 라진은 온몸을 덜덜 떨었고 표정은 고통으로 물들었다.
한데 바로 그때, 엄청난 변화가 발생했다. 망월의 근처에서 거대한 그물 형태의 진이 나타나더니 그 안쪽에서는 좀 전에 사라졌던 어스름한 빛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줄곧 그것에 신경을 쓰고 있던 청수는 두 눈을 번득이며 망월의 사방에 나타난 그물 형태의 존재를 응시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한편, 한제 역시 이 광경을 보고는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라진 또한 알 수 없는 불길한 조짐을 느꼈다.
그때, 분노로 포효하던 망월의 두 눈에서 멍한 빛과 두려움에 잠식된 빛이 교차되며 번득였다. 그리고 녀석은 몸을 날려 그곳에서 벗어나려 했다.
한데 돌연 그 그물 중 망월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 균열이 일더니 순식간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허무의 공간을 외부와 단절시켜 놓은 커다란 진의 벌어진 곳을 통해 두 갈래의 어슴푸레한 빛이 들이닥쳤다.
그 어슴푸레한 빛이 나타난 순간, 한제와 청수, 라진은 모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스승님!”
청수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탁삼!”
한제는 머리가 저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찬 숨을 들이마셨다.
“선조 어르신!”
라진 역시 경악한 듯 외쳤다.
세 사람에 눈에 비친 것은 각기 달랐다.
망월 근처에 나타난 균열에서는 일곱 빛깔 안개가 발산되고 있었다. 매우 짙은 이 안개는 순식간에 망월의 거대한 몸을 감싸더니 균열 바깥쪽으로 힘차게 밀어냈다.
망월은 몸부림치며 포효했지만 그 거대한 몸은 조금도 저항 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그 균열 바깥쪽으로 밀려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균열은 빠르게 벌어졌다.
이때 일목자와 무동선 역시 화들짝 놀란 상태였다. 망월의 체내를 질주하던 그들은 그 공간이 순간 일곱 빛깔 안개로 가득 차는 것과 그로 인해 체내에서 원력이 사라지는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허공의 균열에서 분출된 대량의 일곱 빛깔 안개는 세 갈래로 나뉘어 곧장 한제와 라진, 그리고 청수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망월과 동화된 라진은 녀석의 통증을 같이 느꼈다. 이에 곧장 몸을 날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콰르릉!
라진의 이번 주먹질은 한제의 전투 때보다 몇 배나 더 강렬했다. 게다가 그 주먹에는 허상으로 나타난 수령(獸靈) 코끼리도 한 줄기 검은 빛이 되어 깃든 상태였다. 그 주먹은 전방의 일곱 빛깔 안개로 돌진했다.
펑!
거대한 소리와 함께 강력한 파문이 사방을 메웠다. 일곱 빛깔 안개는 멈칫했지만 이내 더욱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한편, 청수는 자신에게 접근한 안개가 용솟음치는 순간 왼쪽 눈으로 서늘한 빛을 번득이며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미간에서 튀어나온 한 줄기 자홍색 실이 그의 손에서 호 형태로 번득였다. 그것을 보고 번개가 스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청수가 크게 외쳤다.
“난 일평생 수련을 통해 극의 경계의 뿌리 일곱 개를 제련해내 선군(仙君)이 됐으며, 그동안 죽인 사람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천도(天道)에 저항해본 적은 없지!”
자홍색 호 형태의 얇은 실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사방에서 치직 하는 소리와 함께 극단적인 힘이 그 실로부터 발산됐다.
“천도?”
낮고 장중한 목소리가 균열 안에서 흘러나왔고 가벼운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노인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너희 봉계(封界) 사람들은 나를 천도로 여길 수도 있겠지! 망월과 두 고신, 그리고 극의 경계를 가진 너, 천도가 있는 곳으로 나를 따라오너라. 이는 너희들에게 주는 상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청수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다가 일곱 빛깔 안개가 훅 끼쳐온 순간 몸을 날렸다. 그의 손에 들린 자홍색 실은 그 안개를 관통하며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한제 역시 그 안개가 가까워진 순간, 그 안에 무궁무진한 봉인력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에 그는 두 눈에 살기를 담은 채 멸신모를 휘두르며 낮게 외쳤다.
“붕괴!”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길이가 1천 척에 달하는 창의 앞부분 1백 척 정도가 무너져 내리며 폭풍이 되더니 일곱 빛깔 기운을 향해 휘몰아쳤다.
망월은 더욱 격렬하게 포효하며 끊임없이 몸부림쳤고 어느덧 일곱 빛깔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날카로운 비명이 이어졌다.
망월의 거대한 몸은 이미 반쯤 균열 안으로 들어간 상태로 점점 그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미 망월은 저항력을 잃은 상태였고 힘겨운 몸부림에서는 두려움과 절망감이 느껴졌다.
망월의 비명은 라진의 폐부를 찔렀다. 이미 망월과 동화된 그의 미간에서 회전하던 다섯 개의 반점 중 하나가 펑 하고 무너져 내렸다.
고신의 쇄성(碎星)!
이렇게 무너져 내린 반점은 광기 어린 힘을 허공으로 폭발시켰다. 라진은 고신의 반점이 자폭하면서 발휘한 강력한 힘을 남김없이 들이마셨다.
“크아아악!”
라진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른 순간, 그의 몸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7천 척이 넘었다. 마치 천신(天神) 같은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