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73
172화.
넌 누구지?
언젠가 왕세자에게 비슷한 물음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그때와 달랐다.
-케일, 너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구나. 과거도 2년 전부터 보이지 않아.
2년 전.
그때 김록수는 케일 헤니투스가 되었다.
-난 별것 아니지만 오래 살아왔다. 물론 수없이 죽고 살아나고를 반복했지. 그 덕에 조금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겼고.
세계수는 세계를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흐름들 중 일부를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세계수는 점점 보이는 것이 줄어들고 있었다.
-오랜 옛날.
세계수는 자신이 눈보라를 일으키며 북쪽을 장악할 수밖에 없었던 때를 떠올렸다.
기억이 존재한 이후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을 때였다.
-너처럼 미래도 과거도 잘 보이지 않는 인간들이 있었다. 너와 비슷하게 언뜻언뜻 가까운 미래의 흐름만 조금씩 보였지.
케일은 자신과 비슷한 이가 있었단 소리에 집중했다.
‘그 인간들도 빙의자인가?’
빙의자가 있다면 그들의 미래가 궁금했다.
그러나 세계수는 케일의 기대를 저버렸다. 전혀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고대의 힘을 지닌 인간들이 너와 같았어. 그들은 보이지가 않았다.
고대의 힘?
-방화범의 흐름도 보이지 않았고 돌머리도 그랬지.
…왠지 돌머리가 누군지 알 것 같은데.
케일은 무서운 짱돌의 주인을 떠올렸다.
동시에 고대의 힘을 지닌 이들이 활개를 치던 시대.
고대를 생각했다.
그 시대는 대륙에 어둠이 내리며 종식했다고 한다. 더불어 어둠이 사라지며 평화가 찾아왔다고 했다.
그러나 어디서도 그 어둠이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
“어둠이 무엇입니까?”
뜬금없는 케일의 질문에 이쪽을 보고 있던 사제와 라온이 의문을 드러냈다. 하지만 세계수는 케일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고 답해주었다.
-나는 세계의 허락을 받고 말해도 되는 것만 말해야 한다.
말할 수 없다는 답.
더불어 하나 더 있었다.
-또한 볼 수 없는 것도 말할 수 없지. 난 ‘어둠의 실체’를 예지할 수 없었어.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았던 나는 ‘어둠’을 보았지. 그리고 그건 말할 수 없는 부분이야.
케일은 배배 꼬인 대답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암’이라고 했던가? 나를 노리는 놈들이?
“그렇습니다.”
-난 ‘암’을 보지 못했어. 또한 요즘 점점 보는 것이 줄어들고 있지.
케일은 직감했다.
‘…더 난장판이 되나 보네.’
지금도 난장판이건만, 곧 다가올 미래는 더 난장판이란 소리였다. 세계수가 ‘암’의 정체를 모른다니, 케일로서는 아쉬운 답이었다.
-그리고 내가 흐름을 보지 못할 때마다 나에게 위기가 찾아왔어. 어쩌면 방관자가 아닌 나도 흐름에 속할 것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걸 수도 있고.
세계수는 짧게 결론을 냈다.
-그건 내 문제니, 이제 너로 돌아가도록 하지. 넌 누구지?
다시 한 번 이어진 질문. 케일은 차분하게 답했다.
“평범한 인간입니다만.”
눈을 감고 있던 케일의 귓가로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인간은 평범하지 않다! 그리고 약하다!”
뭔 소리야.
케일은 라온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그러나 세계수의 말은 흘려보낼 수 없었다.
-나는 오늘 내 가지 중 세 개를 버릴 생각이네.
가지? 나뭇가지?
제 안위를 엄청 챙길 것 같은 세계수가 한 말에 케일은 슬슬 불안감이 밀려왔다. 생각보다 작은 나무였지만 케일보다는 컸고, 나뭇가지도 꽤 두껍고 튼튼해 보였다.
그걸 왜 버리지?
케일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세계수가 먼저였다.
-하나.
세계수는 세계에 허락받지 않고 말하고자 했다.
세상에 어둠이 내렸을 때. 그때 수많은 생명체들이 서로 싸웠고 평화라는 단어 대신 끝없는 전쟁만이 펼쳐졌다.
어둠의 시대는 전쟁의 시대였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나와 다른 뜻을 지닌 자들을 죽이는 시대.
세계수는 첫 번째를 말했다.
-고대의 힘을 모으는 자는 고대의 힘을 총 세 개 소유했다.
케일은 멈칫했다.
세 개면 내가 아닌데?
고대의 힘을 모으는 사람이 있다고?
왜?
지금 사람들에게 그저 곁다리 힘으로만 알려진 게 고대의 힘이었다.
왜냐면 고대의 힘은 한계가 있으니까. 성장이 없는 힘으로는 높은 곳에 도달할 수 없었다.
케일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걸 왜 모으려고-”
하지만 그 질문은 이어질 수 없었다.
쿵!
케일은 귀를 따갑게 찌르는,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땅에 닿아 있는 발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뭔가가 떨어졌다.
케일은 눈을 뜨려고 했다.
-뜨지 마라.
세계수는 뜨지 말라고 했다.
동시에 어린 사제 아디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 세계수 님! 세상에!”
아디테는 비명을 내지르듯 세계수를 불렀다. 뒤이어 라온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이게 뭐냐? 세계수야, 네 나뭇가지 큰 거가 다 썩어서 떨어졌다! 세계수야, 다쳤나? 아픈가?”
“라온 님, 다가가시면 안 됩니다!”
어린 사제는 다가가려는 라온을 붙잡았다.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녀는 왜 잡냐는 듯 쳐다보는 라온에게 힘없이 말했다.
“세계수 님이, 세계수께서 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래? 알았다.”
라온은 별다른 말없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검은 용의 눈빛에 걱정이 어렸다. 그 시선이 닿아 있는 곳은 세계수의 시꺼먼 나뭇가지가 떨어진 바로 옆, 케일에게 닿아 있었다.
반면에 케일은 머릿속이 더 복잡해져 왔다.
-두 번째.
세계수는 힘없이, 하지만 다급하게 말했다.
-검은 용의 부모가 남긴 흔적을 찾거라.
라온의 부모?
언젠가 케일도 그 부분에 대해서 움직여야지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였다.
쿠웅.
커다란 나뭇가지가 또 하나 떨어졌다.
“어떡해, 어떡하지.”
어쩔 줄 몰라 하는 엘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케일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마지막.
하나가 아직 더 남았다.
-동대륙으로 도망간 심판자. 그녀를 찾아라.
…이건 또 뭔 소리야.
케일의 미간이 있는 대로 찌그러졌다.
그때였다.
콰직.
케일은 제 머리 위에서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그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억!”
웬 단단하고 동그란 돌덩이가 그의 몸을 밀어버렸다. 동시에 작고 동그란 앞발이 그의 등을 받쳤다.
쿵!
케일은 눈을 떴다.
자신이 있던 자리. 그곳에 시꺼멓게 변해 붉은 액체를 흘리는 커다란 나뭇가지가 보였다.
“인간, 괜찮나?”
케일은 자신을 튕겨 버리고 또 받쳐준 검은 용을 쳐다봤다. 라온은 케일의 등 뒤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케일은 차분하게 말했다.
“마법으로 떨어뜨렸으면 됐을 건데.”
그랬다면 케일은 돌덩이와 같은 라온의 머리와 부딪치는 충격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라온의 동공이 흔들렸다가 이내 제자리를 찾고 외쳤다.
“그래도 피했다!”
“그래, 그래.”
케일은 대충 칭찬을 하고는 다시 세계수에게 다가갔다.
뚜욱. 뚝.
세계수의 말에만 집중하느라 놓쳤던 작은 소리들이 눈을 뜨자 들려왔다. 부러진 세 개의 큰 나무줄기.
그 부러진 자리에서 사람의 피와 같은 붉은 액체가 떨어졌다.
‘평범한 줄 알았더니, 아니네.’
붉은 액체를 흘리는 나무는 처음 보았다. 케일은 천천히 세계수 기둥에 손을 대었다.
-후우.
힘없는 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열매는 여름이 지나야 줄 수 있겠구나. 이게 내가 너에게 알려줄 수 있는 한계란다.
세계수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넌 강해질 생각이 없지?
맞다.
케일은 더 강해질 생각이 그다지 없다.
세계수는 그간 흐름을 조금씩 엿보며 케일의 그런 생각을 눈치챌 수 있었다. 왜냐면 세계수 본인도 그러하니까.
세계수는 강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권력도, 명예욕도 없다.
그저 편안히 살아 있으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힘들어질 것이란 예감이 들면 그는 움직였다.
과거에 대륙 북부 전체를 뒤엎을 눈보라를 일으켰듯, 이번에는 가지 세 개를 버리고 ‘보이지 않는 인간’에게 몇 가지 조언을 던졌다.
과거에도 보이지 않는 인간들이 지켜냈으니까.
이번에도 그러하리라 그는 믿고 싶었다.
-…난 이제 쉬어야겠구나.
케일은 더 이상 세계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손을 떼어, 사제 아디테를 바라봤다. 어린 사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입을 열었다.
“세계수께서 한동안 잠드셔야 한다고 대화는 나중에, 열매와 함께하자고 하십니다.”
열매.
케일이 세계수에게 얻어가야 할 물건이었다. 그는 세계수의 열매가 지닌 효능을 아직 몰랐다. 다만 에르하벤이 라온에게 주려는 것으로 보아 좋은 물건이라 예측할 뿐이었다.
엘프는 검게 물든 나뭇가지들을 슬픈 눈으로 쓰다듬으며 이어 말했다.
“그리고 라온 님과 대화를 하지 못해 아쉽지만, 그 대화 또한 다음으로 미루자고 하십니다.”
“나도 아쉽지만, 괜찮다! 세계수야, 도울 건 없나?”
라온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세계수에게 다가갔다. 어린 사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회복 또한 세계수께서 알아서 하실 일. 그저 기다리면 됩니다.”
스스스-
케일은 다시 한번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고대의 힘을 세 개 모았고 더 모으려는 자.
라온의 부모가 남긴 흔적.
동대륙으로 도망간 심판자.
케일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언제쯤 쉴 수 있을까.
조금 슬퍼졌다.
***
하지만 그 기분은 며칠 뒤 조금 나아질 수 있었다.
톡. 톡. 케일은 호수 위 서슬 퍼런 추위와 달리 따뜻한 호수 아래 엘프 마을에서 앵두를 하나씩 떼어 먹었다.
“…눌러앉을까?”
케일이 나직이 내뱉은 말에 라온이 반응했다.
“안 된다! 우리 집이 제일 좋다!”
그건 그렇지.
케일은 라온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어느 때보다도 안락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광경을 파세톤은 멍하니 바라봤다.
케일 곁에는 파세톤과 라온뿐이었다.
그들이 있는 장소는 참 등을 기대기 좋게 생긴 앵두나무 밑으로, 주변에는 과일과 음료들이 자리했고 케일이 앉은 방석은 상당히 포근해 보였다.
엘프 마을에서 케일은 귀빈 대접을 받았다.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파세톤은 그저 신기했다.
하지만 곧 그는 느긋하게 지시를 내리는 케일의 말에 일어서야 했다.
“다 모아와.”
“네.”
케일은 일행을 데리러 가는 파세톤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로잘린은 어제까지 라온과 함께 방어 마법진 보수를 끝내었고, 오늘은 제대로 시행이 되는지 최한과 함께 확인 중이었다.
그리고 온과 홍은 아치와 함께 눈보라 속을 신이 나서 뒹구는 중이었다.
“인간, 이제 떠나는 건가?”
케일은 라온의 물음에 대답 대신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한 며칠간 세계수가 던져준 문제들을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지었다.
케일은 저 멀리 뛰어오는 사제 아디테가 보였다. 어린 엘프는 치렁치렁한 사제복을 번거로워하며 뛰어왔다.
그리고 케일 앞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헉, 케일 님!”
“그래.”
“세계수께서 방금 전에 말씀을 하나 남기고 다시 잠드셨습니다!”
말씀?
케일은 어서 말하라는 듯 사제를 응시했고, 사제는 멈칫하다가 이내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고대의 힘을 지닌 것들은 다 미친놈들이었지. 네 멋대로 해라.”
세계수의 이런 거친 표현은 처음이었던지라, 사제 아디테는 말하고 나서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때,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알았대?”
“네?”
아디테는 눈을 떠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걱정 말라고 해. 난 내 마음대로 할 거니까.”
그는 남의 말을 들었다고 남의 말대로 살 생각은 없었다. 라온이 다가와 물었다.
“인간, 그러면 우리 이제 불내러 가나?”
사제가 흠칫했다. 그리고 때마침 로잘린과 최한이 파세톤과 함께 다가왔다. 그들도 라온의 물음에 케일을 쳐다봤다.
반면에 케일은 한 존재를 떠올렸다.
신의 눈물.
존재하는지도 안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존재.
어느 누구도 소유하지 못했던, 주인 없는 신비로운 물.
어떠한 병이든 치료해 준다는 경이로운 존재.
‘케일, 그 전설을 믿나?’
에르하벤은 케일의 말에 웃으며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했다.
“인간, 왜 대답을 안 해주나? 불 말고 다른 거 하나?”
“어. 겸사겸사 훔치러 가게.”
훔친다는 말에 듣고 있던 엘프 사제가 당황했다.
라온이 입을 열었다.
“또냐?”
엘프 사제는 이전보다 더 크게 움찔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갸웃거리는 라온에게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내 안에 도둑이 있거든.”
일행의 표정이 해괴해졌지만 케일은 신경 쓰지 않고 웃었다.
신의 눈물이 정말로 ‘신’의 눈물이라면.
알아서 자신에게로 굴러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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