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73
272화 공명(共鳴)
연청운의 싸움을 보며 백설아는 크게 놀랐다.
연청운이 짧은 시간 사이에 크게 성장했음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완벽(完璧)했다.
전투에서 이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상대의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도록 억제하고, 자신의 역량을 모두 꺼내면 된다.
연청운은 시종일관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냈고, 적은 수세에 몰려 몸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그런 적을 연청운이 일방적으로 두들겨 수세를 깨고 승리를 거뒀다.
그 과정에서 연청운이 펼친 무공들 역시 놀랄만한 것들이었다.
소림의 연대구품을 펼친 것도 놀라웠지만, 연대구품을 통해 펼친 무공들은 하나하나가 절기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단순한 장법(掌法) 하나에도 치밀하게 함축된 무리(武理)가 느껴졌다.
천자산에서 연청운의 무공을 봤을 때도 쉽게 볼 수 없는 무공을 익혔다는 것을 익히 알았지만, 지금 보인 모습은 상정 외다.
잠시 못 보던 사이 무공의 색채 자체가 달라져 있다.
특히나 얼음 조각들을 움직인 무공.
이기어검을 떠올리게 한 그 무공은 백설아의 상식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의 영역에 닿아있었다.
‘초월적인 것이 느껴져.’
마치 무공이 아닌, 무공을 초월한 무언가로 보였다.
그렇기에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공은 기적(奇蹟)이 아니다.
기운을 가다듬어 추구하는 형태로 빚어내는 것이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으로 보일지라도, 그 근간에는 오랜 세월 쌓아온 수련의 결과물이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즉, 기(氣)라는 무형의 힘을 일정한 체계하에 다루어 만들어내는 힘인 것이다.
허나 지금 본 연청운의 무공은 백설아의 눈으로도 괴력난신의 영역으로 볼만한 부분들이 가득했다.
도술이나 선술이라 부르는 영역의 힘이 느껴졌다.
백설아의 눈에 그리 보일 정도라면 어지간한 고수들에게는 천외천(天外天: 하늘 밖의 하늘)으로 보일 것이다.
“대단해…….”
백설아는 연청운의 역량에 가슴 깊이 차오르는 뿌듯함을 느꼈다.
팔불출처럼 아무나 붙잡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성장하는 감정도 생겼다.
‘……저렇게 멋있으면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까?’
연청운의 명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자신만 알고 있던 특별함.
자신만 알아보았던 자상함.
연청운의 특별함을 알게 될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하니 묘한 감정이 끓어오른다.
‘나는 운이를 처음부터 알았는데…….’
나만의 것을 빼앗기는 느낌이 든다.
독점욕(獨占慾)이라 부르는 감정이 몸집을 키운다.
‘운이는 무공이 강해지기 전에도 멋있었다고!’
불쾌해진 감정이 손에 담겼다.
그 힘이 발악 중인 적에게 향했다.
콰앙!
“크흡!!”
일격을 받아낸 적의 입에서 하얀 서리와 함께 얼어붙은 피가 튀었다.
그제야 백설아의 차가운 시선이 적에게로 향했다.
“이걸 버티네?”
전력을 다한 공격은 아니라지만, 기분이 심히 상한다.
무림삼불기라 불리는 세 무맥.
소수신마의 후예들은 그중 대양무절기와 마라구천공을 익힌 이들과 오랜 세월 싸워왔다.
당연히 그들의 무공 특색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반쪽짜리 주제에.”
무림삼불기의 무공은 하나같이 기가 강하다.
인간의 육신이 감당할 수 없는 강한 기를 휘두른다.
불균형한 무공은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부작용을 누르기 위해 대양무절기를 익히는 자들은 사이한 수법으로 약점을 보완했고, 마라구천공을 익히는 자들은 그릇 자체를 담금질하여 길을 찾아냈다.
당연히 제대로 그릇을 키워내지 못한 상태로 마라구천공의 힘을 휘둘러봐야 금세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나를 막고 싶었다면 너희 주인이 왔어야지.”
백설아의 일장이 상대의 머리를 쪼갤 기세로 떨어졌다.
콰앙!
퍼어엉!
폭음과 함께 적이 수면 아래로 숨어들었다.
도주를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물 아래서 기회를 엿보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짜증 나기는 매한가지다.
개인적인 감정과 가문의 은원이 얽힌 감정이 뒤섞인 가운데 화풀이가 되어줘야 할 대상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백설아의 몸에서 위험한 기운이 치솟았다.
“나와!”
가까이에 있는 연청운에게 닿을까 드러내지 않았던 진심의 일각.
그 편린의 하나가 백설아의 발아래로 투사되었다.
콰드드드드드!!
격랑이 치는 장강에 얼음길을 만들어냈던 힘!
백설아를 중심으로 거대한 빙산이 만들어졌다.
기와집 수십 채를 겹쳐놓은 듯한 거대한 빙산을 움켜쥔 백설아가 그것을 뽑아 허공으로 던졌다.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도 수면 아래에 있는 것을 뽑아 올렸다.
콰카카칵!
“허억! 허억……!”
허공에 떠오른 빙산을 깨부수고 튀어나온 상대의 눈에 경악과 암담함이 어렸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당혹스럽기 그지없긴 할 것이다.
장강을 빙산으로 만들어낸 힘에 닿았음에도 몸을 지켜낼 수준은 되었던 것 같지만, 온몸이 파리해진 것을 보면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
“어린 계집이 맥주(脈主)를 보는 듯하구나.”
일맥(一脈)의 주인. 남궁세가 가주를 패퇴시킨 고수를 말함이다.
그런 고수와 비교할 정도로 상대의 얼굴에는 일말의 감탄이 섞여 있다.
그리고 그 감탄은 이내 짖은 각오(覺悟)로 돌변했다.
“같이 죽자!”
생명력을 포함한 모든 힘을 뽑아낸 상대가 목숨을 걸고 마지막 이빨을 드러냈다.
***
지금 보인 것은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걸 끌어낸 결과다.
그래 봐야 혈마와 싸울 때보다는 약하겠지만.
미흡하게나마 오행신력을 완성했을 때와 비교를 한다는 것부터가 무리긴 하다.
그래도 나름 최선을 뽑아냈다고 자부했다.
“어?”
그런 가운데 거슬리는 것이 보인다.
단숨에 몰아붙여 압살해버린 상대가 쓰러지면서 날카로운 것이 허공에 비산했다.
미세한 세빙(細氷)이 반짝이는 틈 사이에서 이전에 본 적 있는 암기들이 번뜩였다.
허공에 떠 있는 것을 낚아채 자세히 살펴보자 이걸 어디에서 보았는지 확실히 떠올릴 수 있었다.
“영릉에서 본 수적…….”
장인이라 부를 만한 솜씨가 엿보였던, 사천당가와 견줄 만한 위험해 보이던 암기들.
“이자들이 이런 것을 품고 있다는 건…….”
암기의 무서움은 의외성이다.
사용법만 잘 익힌다면 하수가 사용해도 위협적이지만, 고수가 사용하게 된다면 더욱 위협적이다.
혹시나 싶어 뒤를 돌아보자 걱정했던 마음이 깔끔하게 사그라들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집채만 한 빙산을 만들고, 그것을 뽑아내던지는 신위를 보이는 설아 누나다.
“이게 뭔…….”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는 건지 싶게 만드는 광경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작은 산 정도는 일격에 깨부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림에 떠도는 이야기 중에는 산을 부수고 땅을 가른다는 표현이 종종 있었지만, 정말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사람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런 가운데 위험한 각오가 담긴 외침이 울린다.
“같이 죽자!”
위험하다고 느낀 예리함이 허공에서 쏟아졌다.
앞서 본 무위가 있음에도 절로 몸이 움직였다.
파파팡!
물 위를 박차며 튀어 나간다.
“어?”
그렇게 설아 누나를 보호하기 위해 앞을 가로막는 순간 몸 안에서 기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힘이 있다.
‘나무의 신력?’
물을 갈구하는 나무가 수원을 향해 뿌리를 뻗어내는 것처럼.
불완전한 것이 완전함을 갈구하는 것처럼.
시원함을 감도는 힘이 몰려왔다.
마치 처음으로 이화의 신력을 받아들였을 때와 같다.
‘신력?’
힘이 공명한다.
멈춰있던 수레바퀴가 구르기 시작한다.
오행신력이 움직인다.
“어?”
“읏……?!”
스스로 멈출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힘이 설아 누나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콰아아아아아아!
나와 설아 누나 사이에서 탄생한 힘이 거센 힘을 뿜어냈다.
바닥이 얼어붙고 하얀 세빙(細氷)이 별빛처럼 뿌려졌다.
하늘의 구름이 열리고 빛이 들어온다.
격랑이 치던 거친 장강의 물결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얼어붙었다.
사방 눈이 닿는 모든 곳이 얼어붙는다.
나와 설아 누나 사이에 공명한 힘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 이게…….”
내 힘이라기보단 설아 누나의 힘이 작용한 쪽으로 보인다.
오행신력이 완성되었다고 한다면 이렇게 극단적인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고 하는 것은 말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라면 내 오행신력이 설아 누나의 힘을 증폭시켰다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문득 이전에 장삼풍 사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방법이 아예 없진 않지. 요는 충돌을 없애는 거니까. 충돌이 일어나도 보듬어 안아 다스리면 되는 거다.]설아 누나가 익힌 무공의 부작용으로 힘들어할 때 내가 개입하려는 것을 막으며 장삼풍 사부가 주셨던 조언이다.
삼재일기공의 성취가 깊어지면 설아 누나가 겪는 부작용을 완화시킬 것이라 하셨다.
하지만 지금 내가 움직이는 힘은 삼재일기공이 아니다.
천지만물과 소통하여 다스리는 대라조화심결이다.
그 차이가 지금과 같은 결과를 만든 것인가?
‘아니, 그것보다… 오행신력이 반응했다고?’
지금 설아 누나의 몸에 담겨있는 힘의 근원이 무공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리 생각하니 오늘 설아 누나를 만났을 때 익숙하다고 느낀 감각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것 같다.
청조.
물의 신력을 가지고 있었던 영물.
잠깐이지만 청조의 허락하에 공명했던 감각이 이와 같았다.
‘잠깐…… 영물?’
사람이 어찌 영물이 될 수 있는 것이지?
[……현천궁?]“……사부?”
[아니, 아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내 좀 알아봐야 할 것 같다.]납득할 수 없는 대답에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장삼풍 사부의 대답은 더 이상 없었다.
캐묻고 싶지만, 들려온 목소리는 차가운 선을 그어 더 이상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누나라고 불러야지.”
“아…….”
무엇보다 지근거리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되돌렸다.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추가로 이어진 말에 현재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설아 누나를 양팔로 떠받치듯 끌어안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공주님 안기다.
순간 너무 놀라 화들짝 내던질 뻔했지만, 간신히 이성을 유지하고 다소곳이 설아 누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남아있었기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괜찮은데?”
설아 누나가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오히려 상쾌해진 기분이랄까?”
“정말요?”
“응. 뭔가 뻑뻑한 게 없어진 것 같아.”
이런 힘을 뿜어내고도 괜찮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나를 생각해서 괜히 무리하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설아 누나가 환하게 웃으며 만족스러워했다.
“운아가 누나 걱정 많이 해주네?”
“그야 당연히…… 하죠.”
“괜찮아. 정말로 좋아.”
설아 누나가 기분 좋게 웃으며 살며시 다가왔다.
그리고 이마에 부드러운 느낌이 닿았다.
“고마워. 걱정해줘서.”
가까운 지인끼리의 인사라기엔 무겁고, 남녀 간의 인사라기엔 가벼운.
눈꽃처럼 웃는 설아 누나의 얼굴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