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48
248화
녹림의 습격은 실패로 끝이 났다.
천휘의 활약에 녹림대제는 패퇴했고, 그는 꽁지가 빠져라 도망쳐야 했다.
그뿐이랴.
많은 녹림도가 죽음을 피하지 못해, 바닥에 사체가 되어 나뒹굴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녹림도들은…….
“항복하겠습니다!”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한 명도 빠짐없이 오체투지를 하면서 살려 달라고 호소해 댔다.
도망치려다가, 천휘가 날린 돌멩이에 당한 그들의 모습은 온전치 못했다.
뒤통수에 혹이 난 자도 있었고 엉덩이와 무릎, 등, 팔다리 등 여기저기 멍든 자들이 널려 있었다.
천휘가 그들을 내려다봤다.
무심하기 짝이 없는 눈빛을 마주한 녹림도들은 순간 칼날 위에 선 것만 같은 서늘함에 지배당하고 말았다
공포에 질린 그들을 보던 천휘가 시선을 거두면서, 옆에 서 있는 현상을 응시했다.
“그래서 이놈들을 살려 두자고요?”
확인하듯 물어본 천휘가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그 말을 이해해 보려고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적을 살려 둬? 왜?
그런 천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서 내상을 진정시킨 파리한 안색의 현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잃은 자들이다. 피를 더 흘릴 이유가 있겠느냐.”
현상의 말에 녹림도들의 표정에 순간 화색이 감돌았다.
하나 그건 오래가지 못했다.
“피라면 이미 흘렸는데요, 뭐. 한두 방울 추가된다고 달라지겠어요?”
천휘가 담담하게 말했다.
“괜히 후환 남기지 말고 죽이죠.”
섬뜩한 말에 녹림도들의 얼굴에서 재차 핏기가 사라졌다.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다시는 화산에 한 발자국도 들이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현상을 올라다보며, 처절하게 애원했다.
그러나.
“입 다물게.”
현상은 더없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노기가 어린 현상의 표정을 본 녹림도들의 얼굴이 그 상태로 굳었다.
“착각하지 말게나. 자네들을 위해서가 아닌 제자들을 위한 일이니.”
통보하듯이 차갑게 말한 현상은 의아해하는 천휘를 똑바로 응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정파인이다.”
현상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뒤이어 시선을 넘겨 치료를 받으면서 귀를 기울이는 화산파의 제자들과 사형제들을 훑어보며, 입을 달싹였다.
“내 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나 투항하겠다며 무릎을 꿇은 자들을 죽인다면 저자들과 우리가 다를 바가 무엇이겠느냐.”
현상의 눈이 침중해졌다.
그 또한 지금 심정으로는 당장 저 녹림도들의 목을 모조리 베어 내고 싶었다.
당한 제자들이 어디 한둘인가.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화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러면 할 말이 없어지는데?’
천휘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현상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화산은 이제 곧 비상하게 될 터인데, 악명을 쌓을 필요가 있겠는가.
없었다.
오히려 먼저 쳐들어온 적을 살려 두는 자비를 베풂으로써 화산파는 단단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쩝,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천휘가 시원스레 인정했다.
천마신교와 화산파는 달랐다.
그들이 지닌 위치도, 명성도.
그리고 세간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기에 대처 역시 달라야만 했다.
만약 천마신교에서 하던 대로 해 버리면 이곳은 화산파가 아니라, 제이의 천마신교가 되어 버릴 터이니.
“가, 감사합니다!”
“대협!”
생존이 결정된 녹림도들이 눈물을 질질 짰다.
선계와 명계를 오고 가는 상황에서 그들은 죽음의 공포에 물들어 있었다.
공포 끝에 이제 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
“그렇다고 이대로 살려 둘 건 아니죠?”
천휘는 이것만은 지지 않겠다는 듯이 힘을 주어서 말했다.
녹림도들의 안색이 굳었다.
현상이 고개를 묵묵히 주억였다.
그리고 몸을 돌리며,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저들의 단전을 폐하거라.”
녹림도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단전이라 함은 무인의 전부였다.
한데 그걸 폐하다니.
몇몇 이들은 벌떡 일어나서 항의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입을 열기만을 기다린다는 듯 천휘가 흉흉한 눈빛으로 그들을 둘러보고 있었기에.
‘어디 저항하는 놈 없나? 본보기로 삼아 처리하고 싶은데.’
그들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여기서 저 결정을 거부했다가는 단전이 아니라, 목이 달아날 것이었다.
녹림도들은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쩝, 한 명 정도는 나오지. 그러면 모두 다 정리하는 건데…….”
천휘가 매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그걸 들은 녹림도들은 등골에서 소름이 끼쳤다.
움찔거리는 녹림도들을 일별한 천휘가 현상에게 말을 건넸다.
“다들 치료하느라 바쁜 것 같은데, 제가 단전을 폐하죠.”
현상이 고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거라.”
현상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천휘가 곧바로 움직였다.
자리에서 단숨에 사라진 천휘는 어느새 무릎을 꿇고 있는 녹림도들의 앞에 나타나, 그들의 하단전을 발가락 끝으로 세게 걷어차기 시작했다.
퍼억! 퍼억!
“켁!”
“컥!”
북편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뒤늦은 신음 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현양과 현허.”
“부르셨습니까?”
“예, 장문인.”
“둘은 저자들을 뇌옥에 가두게나.”
현상의 명령에 현허와 현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녹림도들에게 향했다.
뇌옥으로 끌려가는 녹림도들을 보던 현상이 한숨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중천에 떠 있던 해는 어느새 산등성이에 걸쳐져, 반만 드러내고 있었다.
은은하게 퍼지고 있는 노을을 응시하던 현상은 쓴웃음을 지었다.
‘많이 변했구나.’
화산의 풍경은 하루 만에 크게 달라져 있었다.
여기저기 갈라진 땅바닥과 전각.
그뿐이랴.
많은 주검들이 있었고, 그들이 흘린 피가 흙바닥에 스며들고 있었다.
화산파의 역사 내 전례가 없던 상황에 그의 눈빛은 씁쓸함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그래도 하나.
화산파의 제자들은 모두 무사했다.
‘부상자가 있기는 하지만…….’
의약당으로 옮겨지는 제자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은 그가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은 화음현에서 약재를 구해 오거라.”
“알겠습니다.”
큰 상처를 입지 않은 제자들이 현상의 말에 지체 없이 땅을 박찼다.
그들을 보던 현상이 눈을 감았다.
“……참으로 긴 하루구나.”
* * *
모름지기 전쟁이란 싸우는 당시보다도 그 뒷수습이 오래 걸리는 법이었다.
부상자들과 포로들을 수습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가, 여기저기 파손된 곳들을 파악하고, 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그 때문일까.
제자들은 물론이고, 평소라면 꼼짝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았을 현자 배의 장로들도 뒤처리를 하기 위해서 바삐 움직여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의약당은 유례없이 바빴다.
수십의 침상은 환자들로 가득했고, 사방에서 신음 소리가 흘렀다.
“으으…… 사백님.”
의약당주 천고가 눈을 찡그렸다.
아직 어린 제자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본 그는 마음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조금만 참아라. 곧 나을 터니.”
부상을 입은 제자들을 만날 때마다 해 주었던 말을 건넨 천고는, 이내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의약당원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금창약을 더 챙겨 와라!”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옆의 신의는 쓰러진 제자들을 확인하고는 서둘러서 그들을 살폈다.
“쯧쯧, 제대로 베어졌군.”
가슴팍이 쩍 갈라진 상처를 본 신의가 옆에 놔두었던 약병을 들었다.
그러곤 약병 안 새하얀 물이 출렁거리는 것을 느끼며 뚜껑을 열었다.
독한 냄새가 사방에 퍼졌다.
부상자 또한 강렬한 그 냄새에 고통을 호소하는 것도 잊고 콧잔등을 찡그릴 때, 신의가 거침없이 약병을 기울였다.
부상자의 갈라진 상처에 피를 멎게 하는 약이 닿는 순간.
“끄아아악!”
인상을 일그러트린 부상자가 몸을 버둥거리려 했다.
“아파도 참아라!”
신의가 땀을 흘리며 소리쳤다.
동시에 그는 손가락을 매우 빠르게 움직이며, 단숨에 상처를 봉합했다.
놀랍도록 빠른 손재주였다.
“후우, 이제 괜찮을 거다.”
잠시 후, 상처를 모두 꿰맨 신의는 옆에 놓아둔 천을 들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다음 놈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의약당원이 재빠르게 상처를 봉합한 환자를 부축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
“사, 사숙님! 암향단만은……!”
다급한 목소리에 신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의 자리에서 천휘가 내상을 입은 적운을 보며, 웃고 있었다.
“닥치고 먹어.”
천휘는 말과 함께 옆에다 산처럼 쌓아 둔 암향단 중 하나를 집어서 입에 쑤셔 넣었다.
“읍! 읍!”
입에 들어왔지만, 반항하듯 삼키지 않으려는 것을 본 천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삼켜.”
“읍! 꿀꺽!”
압도당한 그가 결국 암향단을 삼켰다.
암향단이 목 뒤로 넘어가고 적운의 얼굴이 점점 새까맣게 물들어 갔다.
지독한 독기가 차오른 것이었다.
그때 천휘가 그의 등에 손을 갖다 대었다.
일순간 천휘의 손에서 매화신공의 내력이 흐르더니, 적운을 감쌌다.
그 기운으로 인해 삼켜진 암향단은 빠르게 분해됐다. 그리고 그 기운은 단숨에 하단전을 파고들더니, 내상을 빠르게 감싸기 시작했다.
“자, 끝났어.”
천휘가 손을 떼자.
“으으윽!”
적운이 배를 움켜쥐었다.
배를 찌릿하게 울리는 복통에 적운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져 갔다.
벌떡!
곧 다급히 일어난 적운은 양발을 어정쩡하게 모은 자세로 후다닥 의약당을 나섰다.
“저러다가 중간에 싸겠네.”
천휘는 헐레벌떡 밖으로 나가는 적운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걸 본 신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의술이 어떤지 좀 보려 했건만.’
의약당에 인원이 부족한 김에 천휘를 부른 신의는, 이 기회에 그의 실력이나 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본 것이라고는.
“자, 삼켜요. 에이, 먹지 않고 뭐 해요. 이거 만병통치약이라니까, 만병통치약. 먹으면 싹 나아.”
찾아오는 제자들마다 암향단을 억지로 입안에다 쑤셔 넣은 뒤, 등에 손을 갖다 대는 모습뿐이었다.
‘어떤 의술을 익힌 것인지 보기는 글러 먹었군.’
의술과는 상관없는 내력 운용에 신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다닥―
황급히 달려가는 이대제자를 마지막으로 천휘는 손을 털고 일어났다.
“벌써 가려는 거냐?”
그때 막 치료를 끝마친 신의가 물었다.
“이제 끝났으니까요.”
천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럼 이만 먼저 가…….”
“잠시만 기다려라.”
그런데 신의가 떠나려는 천휘를 잡았다.
“의술이라면 나중에 배우죠.”
천휘는 평소와 같이 의술을 배우라고 할 줄 알고, 곧장 거절의 말을 내뱉었다.
“어차피 배울 생각도 없지 않냐.”
그러자 신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더니 손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이리로 와라. 네 상태나 봐주마.”
“제 상태요?”
천휘가 어깨를 으쓱였다.
“별 다친 데는 없는데.”
“알고 있다. 하지만 네놈을 걱정하는 놈이 한둘이 아니어서 말이다.”
신의는 자신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그 와중에도 천휘를 걱정하던 이들을 떠올렸다.
‘저런 놈이 뭐가 좋다고.’
신의는 불만스럽게 생각하다, 피식 웃었다.
‘나도 마찬가지인가.’
그렇게 투덜거리기엔, 자신 또한 의술을 배우겠다고 하면 혹시 다친 곳은 없을까, 그 부분부터 걱정했을 터였다.
“손이나 내밀어라.”
천휘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떠날까 고민하다, 결국 신의 가까이로 가 손을 내밀었다.
‘괜히 갔다가 더 귀찮아지겠지.’
신의가 천휘의 맥을 짚었다.
역시나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한데…….
“……기연이라도 얻은 거냐?”
신의의 눈이 찡그려졌다.
전번에 맥을 짚었을 때보다 더한 기운이 천휘의 몸에 흐르고 있었다.
“기연은 아니고, 조금 얻긴 했죠.”
천휘는 평안하게 말했다.
하나 그걸 듣는 신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달싹였다.
“말세군, 말세야. 네 나이에 그때보다 더 높은 경지라니.”
신의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무인의 경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천휘가 지고에 경지에 오른 것을.
그도 그럴 것이 딱 맥을 짚는 순간 그가 봐 온 어떤 자들의 것보다 순수하고, 강렬한 기운이 쏟아졌으니까.
마치 기운으로 가득 찬 대해에 빠진 것만 같은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한데 아직 불안정한 것 같군.”
천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의 깨달음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것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지금 얻으려고요.”
천휘가 씩 웃었다.
“쯧. 알았다.”
신의가 맥을 짚던 손을 놓았다.
천휘는 걷어진 소매를 내리더니 손을 가볍게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뒤는 부탁하죠.”
“네가 말 안 해도 그럴 거다.”
신의는 핀잔을 내뱉듯 말했다.
천휘는 그런 그에게 고개를 까딱해 주고는 몸을 돌려 의약당 밖으로 빠져나왔다.
치료가 거의 끝난 것 같더니, 모두 지쳐서 잠에 들기라도 한 것일까.
온갖 신음 소리가 난무했던 의약당은 어느새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그사이 밖에는 어둠이 드리워진 상태.
“그럼 얻은 것 좀 수습해 볼까.”
들뜬 표정으로 속닥이던 천휘는 고개를 들어 어둠 사이로 빛을 비추는 달빛을 보다, 다시금 발을 옮겼다.
그의 거처, 낙안봉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