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51)
51화
우는 아이도 뚝 그치게 한다는 표현은 종종 들어 봤지만.
설마 우는 하늘을 그치게 하는 게 가능한 일인 줄은 몰랐다.
창문을 열고, 몸을 밖으로 빼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우리 집을 중심으로 먹구름이 원을 그리며 흩어지고 있었다.
맑고 푸른 하늘이 드러나며 햇살이 쏟아졌다.
“비 그쳤어요!”
설아는 천진하게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초롱초롱한 눈동자에는 기대가 가득했다.
‘이건 도대체.’
설아가 강한 건 알고 있다.
직접 그 힘을 두 눈으로 확인한 바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직 다섯 살의 어린애다.
“이제 놀러 가요?”
말하는 걸 보면, 뭘 했는지 자각하고 있는 눈치도 아니었다.
이 정도 마법은 언제든지 구사할 수 있다는 걸까.
가늠조차 제대로 안 되는 수준의 힘이었다.
‘이번 마법도 관측되거나 하진 않겠지?’
저번과 달리 설아가 마나 부족으로 쓰러지지도 않았다.
이번 마법은 ‘아이스크림 곰 아빠’에 비해 확실히 여유가 있었다.
이 정도라면 관측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애초에 균열과 마나로 인한 기상이변은 종종 있는 일이니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빨리 자리를 뜨는 편이 좋겠어.’
설아의 첫 번째 불행은 아직 진행 중이다.
윌리엄 테일러, 그 인간이 아직도 한국에 남아 있다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는 편이 좋다.
“그래. 가자.”
* * *
서울대공원 입구.
나와 은혜는 설아의 손을 잡고 그 앞에 섰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진 않네.”
“평일이라 그런 거 아니야?”
은혜의 말마따나 한적한 편이었다.
주말이면 미어터진다고 들었는데.
아마 평일 낮이었던 게 한몫한 것 같았다.
그래도 아이들이 조금씩 보였다.
우리는 곧장 패키지 매표소로 향했다.
“어른 둘에, 유아 하나요.”
몰랐는데, 36개월부터 5세까지는 유아 취급이었다.
어린이는 6세부터 12세까지.
즉.
“설아는 유아네?”
“아니에요! 어린이예요!”
“여기 봐 봐. 뭐라고 쓰여 있어?”
“어어.”
잘 안 보이는지, 설아는 고개를 위로 들었다.
은혜가 설아의 눈높이에 맞도록 안아 들어 줬다.
그제야 설아는 글씨를 읽을 수 있었다.
“유아. 36개월, 5세, 4,700원!”
“우리 설아, 똑똑해요.”
“에헴. 그렇죠?”
다섯 살이면 이제 막 한글을 배우기 시작할 나이다.
설아는 책을 읽을 때부터 한글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은혜가 조금씩 가르쳤는데, 불과 한 달 만에 익혀 버렸다고 한다.
영어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고, 심지어 간단한 계산까지 할 수 있다고 들었다.
‘역시 설아는 천재가 아닐까?’
설아는 같은 나이대의 아이보다 말을 또렷하게 한다.
좀처럼 어물거리지도 않고, 제 의견을 확실히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존댓말도 꼬박꼬박하고 있었다.
‘은혜가 참 잘 가르친 것도 있지만.’
은혜는 설아에게 존댓말을 한다.
존댓말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라고 들었다.
그리고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설아는 곧잘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럼, 설아는 몇 살?”
“다섯 살!”
“다섯 살은 뭐야?”
“유아요…….”
설아는 매표소 가격표를 보더니, 시무룩 고개를 떨어트렸다.
어린아이는 일찍 크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유아보다는 어린이가 되고 싶은 모양이었다.
은혜가 큭큭 웃으며 말을 돌렸다.
“설아, 코끼리 열차 타러 갈까요?”
“코끼리 열차요?”
“네.”
“조아요!”
금세 기분이 풀린 모양이었다.
설아는 서울대공원에 온 적이 없다고 했다.
아마 코끼리 열차가 뭔지도 모를 거다.
계단을 올라가, 도로 앞에서 멈췄다.
설아는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폈다.
“엄마. 코끼리 어딨어요?”
“응. 좀 기다리면 올 거예요.”
머지않아, 길 끝에서 코끼리 열차가 들어왔다.
앞에 달린 만화 캐릭터 같은 코끼리가 보였다.
설아의 눈이 반짝거렸다.
“코끼리다!”
우리는 코끼리 열차에 탔다.
사방이 탁 트여 있었는데, 조경이 상당히 잘되어 있어 볼 게 많았다.
무엇보다 한번 비가 왔다가 그친 탓인지, 날씨가 정말로 좋았다.
머리 위로 리프트가 지나갔다.
“빨라요!”
“승차감이 이랬던가?”
설아는 신난 듯 몸을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며 경치를 구경했다.
은혜는 행여나 떨어지진 않을까 설아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게 기분 좋긴 했다.
그리고 마침내.
“동물원!”
우리는 동물원에 도착했다.
포토존으로 보이는 곳이 여러 군데 있었다.
당연히 여기서 사진을 안 찍을 수는 없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설아야. 엄마랑 저기로 가 봐. 사진 찍게.”
“아빠는요?”
“아빠가 사진 찍어야지.”
일단 꽃밭 앞에 은혜와 설아를 세웠다.
은혜는 그래도 놀러 나온다고, 평소보다 조금 꾸민 상태였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새삼스럽게 예쁘긴 했다.
그 옆에 있는 설아야 말할 것도 없었다.
“자, 자! 좀 더 바짝 붙어 봐.”
“아빠! 거기 지지예요!”
“괜찮아! 거기 예쁜 아가씨! 그래, 은혜 너! 좀 더 웃어! 그렇지!”
“서준이 너, 원래 이렇게 사진을 열정적으로 찍었던가……?”
나는 솔직히 사진을 찍을 줄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든 좋은 각도를 찾아 몸을 휘적였다.
저 둘은 대충 찍어도 본판이 사기라 예쁘게 나오겠지만.
이왕 찍는 거, 제일 예쁘게 찍는 편이 좋지 않은가.
“하나, 둘, 셋!”
사진을 찍었다.
나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봤다.
이럴 거면, 아예 카메라를 사 올 걸 그랬나.
시간이 없었던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은혜가 다가왔다.
“좋아. 이번엔 내가 찍어 줄게.”
나는 냉큼 설아 쪽으로 갔다.
설아와 사진을 찍다니 옛날이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렇게 또 사진을 찍고, 이번에는 설아와 함께 사진을 확인했다.
“어? 설아, 머리에 뿔 났네?”
“이서준. 네가 애냐……?”
사진에는 나와 해맑게 웃는 설아가 있었다.
나는 슬쩍 설아의 머리 뒤로 손을 가져가, 검지를 들고 있었다.
그 결과, 설아의 정수리 위로 내 손가락이 뿅 튀어나오게 됐다.
눈을 동그랗게 뜬 설아가 자신의 머리를 더듬었다.
울상이 된 채 은혜를 본다.
“엄마, 설아 머리에 뿔 났어요?”
“아니야. 아빠가 장난친 거예요.”
“아빠!”
나는 모른 척 휘파람을 불었다.
설아는 휴,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가 애예요?”
“뭐?”
“풉.”
“설아가 한 번만 봐줄게요.”
“허.”
“우리 설아. 착해요.”
설아는 선심 쓴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은혜를 따라 한 것 같았다.
이런 반응은 예상도 못 했다.
다섯 살짜리 애한테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그러게 왜 맨날 장난을 쳐.”
“아니. 귀여우면 장난치고 싶잖아.”
“너 진짜 초등학생이야?”
은혜는 내게 핀잔을 주다가, 고개를 돌렸다.
설아가 은혜의 옷자락을 붙잡고 살짝 잡아당긴 것이다.
“엄마, 설아 주세요.”
“응?”
“주세요.”
설아는 두 손을 공손히 내밀었다.
은혜는 영문도 모르고 핸드폰을 넘겨줬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설아가 우리를 올려다봤다.
“사진은 어떻게 찍어요?”
“어, 이거 누르면 돼요.”
“이거요?”
“응.”
“이제 설아가 찍어 줄게요!”
핸드폰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나와 은혜의 시선이 마주쳤다.
설아도 내심 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엄마 아빠, 빨리요.”
“아, 응. 우리가 찍히는 거구나?”
나와 은혜는 엉거주춤 포토존으로 갔다.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어색했다.
일단 설아의 부모긴 하지만.
우리 둘은 관계가 조금 애매했으니까.
설아는 핸드폰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자! 자! 좀 더 바짝 붙어 보세요!”
“큭. 이번에는 너 따라 하는 것 같은데?”
“하아. 귀엽다. 치유된다.”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인간성이 회복되었다는 알림음이 들려왔다.
은혜는 좀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애매한 간격으로 나란히 선 상태였다.
나는 그런 은혜의 옆으로 바짝 붙어 섰다.
“크흠.”
“너무 가까운 거 아니야?”
“뭐 어때.”
“그런가?”
은혜는 다행히 그냥 넘어갔다.
불편하다는 듯 떨어졌다면 상처받았을 거다.
마음을 놓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확인한 은혜는 질렸다는 듯 나를 봤다.
“야.”
“왜.”
“이거, 뿔 뭔데.”
“방심하지 말았어야지.”
* * *
우리는 본격적으로 동물원 구경을 시작했다.
동물원은 상당히 넓은 편이었고, 안내도에 따르면 동물도 꽤 많았다.
어렸을 때는 생각 없이 부모님을 따라다녔던 것 같은데.
이걸 빠지지 않고 다 보려면 동선을 잘 짜야 했다.
“분홍 새다!”
“홍학이라고 하는 거예요.”
“홍학!”
처음으로 본 동물은 홍학이었다.
무리를 지어서 물가에 서 있었는데, 내 기억보다 조금 더 컸다.
아마 설아보다 더 키가 클 것 같았다.
유명한 동물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설아야. 저건 뭐야?”
“기린!”
“맞네. 기린이네? 어떻게 알았어?”
“목이 길면 기린이에요!”
설아와 놀아 준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오랜만에 온 동물원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동물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무엇보다.
‘가족끼리 놀러 온 것 같네.’
회귀 전에는 한 번도 누려 본 적 없는 소소한 행복이었다.
이런 감정이 제대로 느껴지는 걸 보면.
설아 테라피가 확실히 효과가 있긴 한 것 같았다.
코끼리나 사자같이 인기 있는 동물도 봤다.
확실히 인기 많은 동물 쪽에는 사람이 많았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설아도 즐거운지 동요를 흥얼거렸다.
그 탓인지, 동물 구경을 하던 사람 몇 명이 이쪽으로 눈을 돌렸다.
설아를 보자마자 넋을 놓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저기 봐. 애기.”
“헉. 엄청 예쁘게 생겼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커플이 수군거렸다.
길을 지나가다 보면 흔하게 듣는 이야기다.
설아는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눈에 띄게 사랑스러웠으니까.
“엄마 아빠랑 같이 왔나 봐.”
“언니 오빠가 아니라?”
입꼬리가 안 올라가려야 안 올라갈 수 없었다.
조금 선심을 써서, 설아에게 속삭였다.
“설아야.”
“네?”
“저기 언니 오빠 보이지?”
“네!”
“설아 보고 있는데, 안녕 하고 인사해 줄까?”
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학생 커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즉시 커플의 입가로 미소가 떠올랐다.
“저거 봐. 인사한다!”
“허억. 안녕!”
화답하듯 손을 흔들어 주자, 설아가 방싯 웃었다.
심장을 노린 묵직한 공격.
커플이 심장을 부여잡았다.
은혜가 나와 설아를 바라봤다.
“뭐 해?”
“스타 놀이?”
“아. 저기요.”
은혜는 대뜸 커플에게 다가갔다.
“네?”
“사진 좀 찍어 주실래요?”
은혜는 정중하게 부탁하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커플 중 여자가 냉큼 받았다.
“사진은 앞에서 많이 찍었잖아.”
내 의문에, 은혜가 대답했다.
내 질문이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그래도 셋이 같이 찍은 사진은 하나 있는 게 좋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