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167)
아이스 프린스 박예준의 문자를 본 건우는 슬쩍 현관문을 나섰다. 그러자 대문 밖에 서 있는 두 남녀와 한 정령을 볼 수 있었다.
박예준과 불의 꽃 박예란, 빙닭이었다.
뺙!
셋 중에 빙닭이 가장 먼저 날개를 들어 올리면서 건우에게 인사했다. 빙닭은 박예준의 머리 위에서 하와를 찾다가, 없음을 깨닫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박예준과 박예란이 건우에게 고개 숙여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건우 형님!”
“안녕하세요. 이건우 선배님.”
그 인사에 건우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손을 들어 올려 인사를 받아 주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복장부터 확인했다.
‘제대로 차려입었구나.’
박예준과 박예란은 평소에 자주 입고 다니던 트레이닝복을 벗어 버리고, 한껏 치장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레버랜드에 가는 걸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러면 오늘 놀이공원 일정이 취소됐다고 말하기 더 미안해지는데…….’
건우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박예준이 천천히 다가오면서 환하게 웃었다.
“오늘, 참 놀기 좋은 날씨 아닙니까, 형님?”
그 말에 건우가 슬쩍 하늘을 올려다봤다. 박예준의 말대로 구름 한 점 없는 것이, 참 놀기 좋은 날씨였다.
‘구름이라도 많았으면 덜 미안했을 텐데…….’
건우가 그러면서 몰래 한숨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박예란이 살짝 들떠서 말을 걸었다.
“선배님, 그거 아세요? 오늘 레버랜드에서 좀비 런이라는 이벤트한대요. 좀비로 분장도 시켜 주고요.”
그리 말하는 그녀는 벌써부터 좀비 아포칼립스에 뛰어든 것처럼, 분위기를 잡고 있었다.
보아하니, 박예준보다 박예란이 더 기대에 찬 모양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건우의 부담감이 배로 늘어났다.
‘이런 아이들한테 일정이 취소됐다고 말해야 한다니…… 역시, 우리끼리라도 가야 하나?’
건우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현관문이 슬쩍 열리면서 누군가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누가 왔나요?”
무녀 라일라였다.
건우가 그녀를 돌아보면서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네. 근처에 사는 동생들이 왔어요. 오늘 놀이공원에 같이 가기로 했던 애들이에요.”
그는 그러고서 다시 박예준과 박예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얘들이 왜 이래?’
바짝 얼은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마치 번개에 맞은 것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박예준과 경악하는 박예란.
라일라의 얼굴이 주는 파급력은 두 사람의 사고를 정지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라일라 씨 외모가 엄청나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닐 텐데?’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뜩 라일라가 고개만 내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력을 갉아먹던 10등신의 2m 장신이 안 보이니,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건우가 라일라에게 가볍게 손짓하면서 말했다.
“거기서 그러지 말고, 나와서 인사 나누세요.”
그 말에 현관문을 완전히 열고 나오는 라일라.
그제야 박예준과 박예란의 정신이 돌아왔다. 라일라의 장신과 비율이 드러나면서, 그만큼 매력이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일라의 외모는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완, 완전 내 스타일이야.’
‘사람이 저렇게 예뻐도 되나? 반칙 아니야?’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는 박예준과 나름대로 자신 있었던 미모에 자신감을 급격히 잃은 박예란.
두 사람이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 사이, 라일라가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라일라라고 해요. 이건우 님하고는 각성 학원 동기생이에요.”
그 소개에 박예준이 재빨리 나서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아이스 프린스라고 불리는 박예준입니다. 장차 아이스라인 길드를 이끌어 갈 차세대 길드장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이명과 배경까지 말하면서 자신을 포장하기에 급급했다.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라일라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라일라는 아이스 프린스라는 이명도, 장차 아이스라인 길드를 이끌 배경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아이스 프린스니, 아이스라인 길드니 하는 것들의 가치를 조금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예준의 호의는 충분히 느꼈는지, 라일라가 은은하게 웃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 저야말로 만나서 영광입니다!”
그렇게 외치는 박예준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아이스 프린스라는 이명이 안 어울릴 정도로 그는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뒤로 라일라는 박예란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 인사에 박예란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네, 안녕하세요. 박예란이라고 해요.”
그녀의 소개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평소 자신감 넘치고 당당했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그저 소심한 소녀만 있을 뿐이었다.
그때, 인사를 마친 라일라가 건우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건우 님, 저는 이제 돌아가 볼게요.”
그 말에 건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벌써요?”
“네. 이미 할 일은 전부 마쳤으니까요.”
“음, 아쉽네요.”
“저도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찔한 눈웃음을 짓는 라일라.
건우는 면역이 생겼기에 별 느낌이 없었지만, 그 모습을 본 박예준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 심장이 멈출 뻔했어.’
박예준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건우가 말을 이었다.
“제가 바래다 드릴까요?”
“아뇨. 길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혼자 갈게요. 손님들도 오셨잖아요.”
“알겠어요. 조심히 가세요.”
“네. 나중에 뵐게요.”
라일라는 그렇게 담백한 작별 인사만 남기고, 자리를 벗어났다.
박예준과 박예란은 그런 라일라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건우를 돌아봤다.
그러고는 잔뜩 흥분해서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건우 형님! 방금 그 라일라라는 분은 뭐 하시는 분입니까?”
“이건우 선배님, 각성 학원 동기면 그분도 초인이신가요?”
“건우 형님, 일생의 소원입니다. 라일라 씨,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이건우 선배님, 혹시 그분한테 피부 관리법 좀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런 정신없는 질문 세례에 건우는 한동안 난처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 * *
한동안 이어진 박예준과 박예란의 질문 세례를 멈추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하와였다.
“하와앙!”
자다가 일어난 하와는, 건우가 보이질 않자 울먹이면서 집 밖까지 나온 것이다.
건우는 그런 하와를 안아 올려서 조심스럽게 달래 주었다.
“아이고, 우리 하와. 자다가 깼는데 내가 없어서 무서웠어?”
“하와.”
건우의 말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하와.
건우가 그 모습을 보고서 아빠 미소를 지었다.
“우리 하와, 알고 보니까 완전 울보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하와의 눈물을 훔쳐 주었다. 그리고 하와를 품에 꼭 껴안고서 한동안 체온을 나눴다.
그 덕에 하와가 빠르게 진정되어 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예준과 박예란은 흥분을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다. 울먹이는 어린아이 앞에서 계속 추태를 부릴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잠시 후, 건우는 진정된 하와를 내려 주었다. 그러자 빙닭이 기다렸다는 듯이 하와의 품에 안겼다.
뺙!
“하와!”
언제 울먹였냐는 듯이 밝게 웃으면서 빙닭을 안아 드는 하와.
건우는 그런 하와의 등허리를 토닥이면서 말했다.
“하와야, 빙닭이하고 같이 들어가 있어. 애들하고 옷 갈아입고 기다려.”
“하와!”
그에 힘차게 대답한 하와는 빙닭과 함께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건우가 그윽한 미소를 지었다.
‘가끔씩 어른스럽기도 하고, 완전 애 같기도 하고…….’
건우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박예준이 갑자기 건우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건우 형님. 라일라 씨가 너무 제 이상형이라서 오버했습니다.”
자신이 부린 추태에 대한 사과였다.
그에 건우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사과를 받아 주었다.
“아니야, 괜찮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사실 나도 라일라 씨를 처음 봤을 때, 첫사랑이 바뀔 뻔했거든.”
그 말에 박예준이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그러더니 불안한 표정으로 건우를 바라봤다.
“혹시 라일라 씨가 형수님이신 건…….”
그 말에 건우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아니야. 그냥 동기야, 동기. 첫사랑이 바뀔 뻔했다는 건 장난이고.”
“아, 그렇군요.”
박예준은 건우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박예란이 고개를 숙였다.
“저도 죄송해요, 선배님. 저도 모르게 추태를 부렸어요. 순간 그분 미모가 너무 부러워서…… 그렇게 백옥 같은 피부는 처음 봤거든요.”
그 말에 건우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괜찮아. 나도 라일라 씨 피부를 처음 보고 눈이 멀 뻔했으니까.”
그 말에 박예란이 풋! 하고 웃어 버렸다. 하지만 곧 표정을 관리하면서 물었다.
“그런데 그런 분은 어디서 만나신 건가요?”
그 물음에 옆에 있던 박예준이 귀를 쫑긋 세웠다. 아무래도 라일라에게 단단히 반한 모양이었다.
그런 박예준의 모습을 본 건우가 잠시 안타까운 눈빛을 보였다.
‘플라토닉 사랑을 원한다면, 다리를 놔 줄 수도 있긴 한데…….’
그는 그러면서 박예란의 질문에 대답했다.
“동기라고 했잖아. 당연히 각성 학원에서 만났지.”
그 대답에 박예준이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서 메모를 했다.
“각성 학원…… 동기…… 로맨스…… 성공적.”
건우는 박예준의 중얼거림을 듣고,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가 마침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오늘 일정이 취소됐다는 이야기를 비교적 편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건우가 그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있는데…… 오늘 놀이공원은 못 가게 됐어.”
그가 그렇게 말하자, 박예준과 박예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예상치 못한 말에 깜짝 놀란 것이다.
그에 건우는 한동안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두 사람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핵폐기물 폐기 프로젝트…… 딱 들어 봐도 중요해 보이는 일인 것 같네요. 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래요. 솔직히 기대를 많이 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죠. 나중에 같이 가도 상관없어요. 레버랜드가 갑자기 사라질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 둘의 대답에 건우는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감추려고 했던 자신의 실수를 이실직고하기로 했다.
놀이공원이 취소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어제였고, 깜빡해서 미리 알려 주지 못했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그 말은 들은 박예준, 박예란은 흔쾌히 건우의 실수를 용서해 주었다. 하지만 기운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박예란이 어깨를 살짝 늘어뜨리면서 말했다.
“어쩌다 보니, 비는 시간이 생겼네요. 이건우 선배님은 이제부터 뭘 할 생각이세요?”
그 물음에 건우가 당연하다는 듯이 즉답했다.
“농사지어야지.”
그 말에 박예준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역시 대단하시네요. 저는 기운이 빠져서, 원래 하던 수련도 할 힘이 안 나는데…….”
그 말에 건우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어제부터 알아서 미리 할 일을 정해 둔 거지.”
“저는 어제부터 알았어도, 힘이 없었을 거예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건우 형님.”
박예준이 계속 그렇게 건우의 얼굴에 금칠을 하자, 건우는 민망한 듯 웃기만 했다.
그러던 중에 건우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오늘 갑자기 일정이 잡혔다면서, 놀이공원에 갈 수 없다고 건우에게 알렸던 초인 쉐프 정수찬이었다.
건우가 잠시 박예준, 박예란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건우 씨. 저 정수찬입니다.
“네, 수찬 씨. 이렇게 이른 아침에 무슨 일이세요?”
-음, 사실 갑자기 부탁드릴 일이 생겨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오늘 시간 되십니까?
그 물음에 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네. 마침 오늘 시간이 비긴 해요.”
-오, 그렇습니까? 그럼 혹시, 오늘 하루 요리 심사 위원으로 나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네? 요리 심사 위원이요?”
건우는 예상치 못한 부탁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