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175)
“기분 탓입니다.”
포식자 민서린의 질문에 건우가 한 대답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기분 탓이라고 그냥 넘기기에는 상황이 묘하긴 했지만, 민서린은 건우의 엉성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태어난 여왕바위벌이 사람한테 인사를 건넨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흐음, 분명 인사를 한 것 같은데…….”
민서린은 그렇게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으면서, 새로 태어난 여왕바위벌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다른 여왕바위벌들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
“이 아이, 너무 침착한데요?”
그 물음에 건우가 움찔거리면서 되물었다.
“무슨 뜻인가요?”
“보통 이제 막 태어난 여왕바위벌들은 자신을 보호해 줄 바위벌들부터 찾기 마련이거든요.”
그 말에 건우는 자연스레 던전 농지 여왕바위벌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녀석은 부화하자마자 당황하면서 동족들부터 찾았었다.
그러는 사이, 민서린이 말을 이었다.
“여왕바위벌은 꿀 채취 능력이 없어요. 그리고 막 부화를 마친 이 시기는, 에너지 소모가 극대화돼서 배가 무척 고플 때죠. 그래서 다른 바위벌부터 찾는 거예요. 그들에게 꿀을 받아먹지 못하면 죽으니까요. 그런데 이 아이는 그런 게 없어요. 너무 느긋하고 여유로워요. 흐음, 이거 참. 신기하네요.”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한참 동안 여왕바위벌을 빤히 바라봤다. 평소의 그녀가 보여 주던 모습과는 다르게, 학구열이 넘쳐 나는 모습이었다.
‘설명하는 모습을 보니, 교수님 같은 느낌도 나네.’
건우가 그리 생각할 때였다.
여왕바위벌이 애절한 눈빛으로 건우를 올려다봤다.
비비이-
직역하자면, ‘밥 주세요, 주인님.’ 정도였다.
건우는 그 뜻을 알아차리고 민서린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그런데 밥 좀 줘야 되지 않을까요? 부화하면 배고픈 상태라면서요?”
그 말에 민서린이 정신을 퍼뜩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정신 좀 봐. 제가 딴 데 정신이 팔려서…… 빨리 먹이부터 줘야겠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재빨리 찬장을 뒤졌다. 그곳에는 미리 준비해 둔 바위벌꿀이 들어 있었다.
민서린이 그것을 시험용 유리 막대로 살짝 찍어서 여왕바위벌에게 가져다 댔다.
비-
꼼지락거리면서 바위벌꿀을 조금씩 빨아 먹기 시작하는 여왕바위벌.
녀석은 몇 번 맛을 보더니, 이내 유리 막대를 앞발로 꽉 고정시켜서 제대로 바위벌꿀을 빨아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하와와 엘, 소아, 가온, 돌쇠가 다 같이 입맛을 다셨다.
“하와~.”
“맛있게 먹는답니다.”
“쩝, 고기 먹고 싶어.”
갸웅!
냐아-
그만큼 여왕바위벌의 먹이 먹는 모습은 묘하게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때, 여왕바위벌에게 무섭도록 집중하고 있던 민서린이 건우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건우 씨, 죄송하지만 이 모습 좀 촬영해 주시겠어요? 연구에 필요해서요.”
“네. 어렵지 않죠.”
그렇게 대답한 건우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여왕바위벌의 먹이 먹는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여왕바위벌이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유리 막대를 슬쩍 밀어냈다.
민서린이 그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얼마 안 먹은 것 같은데…….”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비-비이-
여왕바위벌은 음식 투정을 하기 시작했다. 바위벌꿀이 아니라 가공된 바위벌꿀이 먹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 순간, 건우는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까, 이 녀석도 원래는 일반 바위벌이었지.’
바위벌은 성충으로 성장한 후에, 특별한 몇몇이 여왕바위벌과 병정바위벌로 변태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즉, 이미 이 여왕바위벌은 가공된 바위벌꿀 맛에 길들여진 상태라는 뜻이었다.
‘이거 참, 그냥 분양만 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신경 쓸게 많네.’
건우는 그러면서, 민서린에게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음, 제가 한 가지 알려 드리지 못한 것이 있는데요. 사실 제가 키우는 바위벌들은 다른 바위벌꿀을 먹고 자랐거든요.”
“다른 바위벌꿀이요?”
“네. 조금 특별한 가공을 거친 바위벌꿀이에요. 아마 이 녀석은 지금, 그 바위벌꿀을 찾는 걸 거예요.”
그 말에 민서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호하는 바위벌꿀이 따로 있다는 건가요?”
“네. 굳이 따지자면 그렇죠.”
“오, 그건 또 새로운 사실이네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묻는 그녀의 두 눈은 마치 별처럼 반짝반짝거렸다.
그에 건우가 난처한 듯 볼을 긁적이면서 입을 열었다.
“그건 나중에 하고, 일단 먹이부터 먹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 말에 민서린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들떠 가지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건우바라기가 된 듯이 건우만 바라보고 있는 여왕바위벌을 바라봤다.
녀석은 건우가 가져다줄 먹이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서린이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 같네요. 아무튼 먹이를 빨리 가져다줘야겠어요. 어미 새님,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 물음에 건우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어미 새는 잠깐 집에 다녀올게요. 아이들 좀 봐주세요.”
그러고서 민서린의 집을 나섰다.
* * *
건우는 집으로 향하지 않고, 던전 농지에 들러서 가공된 바위벌꿀을 하나 꺼내 왔다. 그러면서 앞서 있던 일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했다.
‘이번에 부화한 여왕바위벌은 뭔가 이상했어.’
그는 그러면서 두 번째로 얻었던 여왕바위벌에 대해서 떠올렸다.
녀석도 건우의 교육을 받았던 바위벌 출신인 만큼, 평범하지는 않았다. 막 부화했음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고, 차분하게 건우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변 바위벌들을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인 후, 건우가 준비해 둔 바위에 둥지를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 부화한 여왕바위벌은 그보다 더 독특했다.
‘감정 표현이 묘하게 사람 같단 말이지.’
세 번째 여왕바위벌은 좀 더 고도화된 방법으로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배고픔을 절제한 채로 건우에게 인사부터 건넸고, 차분하게 먹이를 요구하는 것만 봐도 본능을 이성으로 억누른 채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잘 모르겠네.’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바위벌 양봉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일로, 다른 사람에게 여왕바위벌 고치를 그저 분양만 해 주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처음 바위벌을 키우는 농가가 당황하지 않게 최소한의 정보는 제공해 줘야겠어. 몇몇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품들도 구해다 줘야겠고…….’
그는 그렇게 좀 더 바위벌 분양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고민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어느새 민서린의 집 앞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건우가 현관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서린 씨! 저 이건우입니다. 문 열어 주세요.”
“네! 금방 나갈게요.”
건우의 요청에 열리는 현관문.
건우는 민서린이 나오자, 가공된 바위벌꿀을 먼저 보여 주었다.
“이게 특별하게 가공한 바위벌꿀이에요.”
“음, 색이 좀 다르네요? 진해졌다고 해야 하나?”
그 말에 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아마 다른 바위벌꿀하고 헷갈릴 일은 없을 거예요. 받으세요.”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민서린에게 바위벌꿀 병을 건넸다.
민서린이 그것을 받아 들고, 잠시 뚜껑을 열어 보려고 했다.
그때, 건우는 재빨리 주의 사항을 알려 주었다.
“참고로 사람은 절대로 먹으면 안 돼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그 말에 조금 맛을 보려던 민서린이 움찔거렸다.
“부작용이요?”
“네. 수염이 나거나, 골격이 조금 이상해지거나…… 뭐, 그러고 싶으시면 말리지는 않을게요.”
그 말에 민서린이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부작용이네요?”
“네. 그러니까 반드시 바위벌한테만 주세요.”
그렇게 건우는 다시 한 번 민서린에게 주의 사항을 알려 주고는, 그녀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하와~ 하와~”
비이- 비이-
흥얼거리는 하와가 나란히 펼친 손바닥 위에서, 여왕바위벌이 둠칫둠칫 리듬을 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나머지 아이들도 은근히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절로 흥겨워지는 광경이었다.
건우가 황당한 표정으로 민서린을 돌아봤다.
“이,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죠?”
그 물음에 민서린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제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잠깐 화장실 갔다 나온 사이에 저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노래에 맞춰서 춤추는 여왕바위벌이라니…… 해외 토픽감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더니, 진지한 눈빛으로 건우를 바라봤다.
“건우 씨,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건우 씨가 여왕바위벌을 저렇게 만들어 놓은 건가요?”
그 물음에 건우는 우물쭈물했다. 솔직히 말해서, 자기도 여왕바위벌이 왜 저렇게 된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민서린은 그 모습을 보면서, 건우가 대답하길 꺼려 한다고 착각했다.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자세한 사항까지는 바라지 않을게요. 일종의 노하우일 테니까요. 그러니까 그냥 건우 씨가 저렇게 한 게 맞는지만 알려 주세요.”
그 질문에 건우가 좀 더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어요.”
“네?”
“제가 한 것이라고는, 사람을 공격하지 말라고 가르친 것밖에는 없거든요.”
“바위벌을…… 가르쳤다고요?”
순간, 민서린의 두 눈이 번뜩였다. 묘한 욕심이 번들거리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런 눈빛은 금세 지워졌다. 자신이 탐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서린이 흥분된 감정을 가볍게 가라앉히면서 입을 열었다.
“바위벌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이 노하우인가 보네요?”
“네. 맞아요. 저만의 노하우죠.”
“음, 그럼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을게요. 그런데 그 노하우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바위벌이 변화했다는 건가요?”
그 물음에 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보기엔 그런 것 같아요. 집에 다녀오면서 계속 생각해 봤는데, 바위벌들이 점점 똑똑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똑똑해진다니…… 바위벌이 말이에요?”
“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확실한 건 아니지만…….”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에 민서린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몬스터가 똑똑해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건우도 덩달아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바위벌이 건우에게 호의적인 존재이긴 했지만, 몬스터가 똑똑해진다는 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 때문에 위험한 몬스터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문뜩 하와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우가 정신을 차리자, 하와가 바로 코앞에 와 있었다.
“하와~”
자신의 손 위에서 춤을 추는 바위벌이 잘 보이도록 건우에게 들이미는 하와.
비~비~
여왕바위벌은 건우가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더 격한 춤사위를 보여 주었다.
묘하게 절도 있는 여왕바위벌의 춤사위.
‘여왕바위벌이 각기를 한다고?’
건우는 황당해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풋! 하고 웃어 버렸다.
‘그래. 괜한 걱정은 하지 말자.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 건 아니니까.’
그는 그렇게 마음속에 생기려고 하던 불안감을 떨쳐 냈다.
그렇게 건우의 오묘한 첫 번째 바위벌 분양이 마무리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