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543)
543화 고스트 (1)
매더킨 릴그리암스.
‘설마 이 녀석일 줄은 몰랐는데…….’
얼굴을 마주한 순간 든 감정은 반가움도, 의문도 아니었다.
그저 당황스러웠다.
“넌… 촌장에게 죽었을 텐데?”
“예……?”
내 중얼거림을 들은 녀석이 이해하지 못한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말을 이었다.
“촌장에게 죽다니… 그게 무슨 말씀—.”
“너희 클랜의 문양이 각인된 단검을 그놈들의 대장간에서 봤다.”
“아…….”
“그 단검이 왜 거기에 있던 거지?”
“그…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섬을 떠나기 전에 단원들이 주민들과 거래를 한 적이 있습니다. 크게 쓸모없는 물건을 넘기고, 과할 정도로 많은 마석을 받았지요.”
이 의혹에 대해 촌장이 말했던 답변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증언.
덕분에 더욱더 혼란스러워졌다.
‘…촌장이 무죄였다고?’
그럼 내가 마을을 탈출하며 한 짓은 뭐지?
단순히 쌩쇼를 했을 뿐인 건가?
불현듯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털어냈다.
판단은 모든 얘기를 듣고 내려도 늦지 않았다.
“말해봐라. 우리가 그 섬을 떠나고 너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예? 아… 예! 알겠습니다!”
우리를 보자마자 ‘구하러 오셨군요!’ 하는 얼굴로 달려오기도 잠시, 내가 차갑게 반응하며 이것저것 취조하듯 캐묻자 녀석도 바짝 얼어붙은 채 묻는 말에 답했다.
“우선 저희가 그 섬을 떠난 건 남작님께서 떠나고 이틀 뒤였습니다.”
사실 이 녀석의 이야기는 별거 없었다.
뭔가 해봐야겠다 싶어서 섬을 나가긴 했는데, 한 번 그 일을 겪고 나니 무서워져서 그나마 만만한 도서관섬으로 향했다던가?
파밍을 위해 다시 이곳을 찾은 우리처럼, 녀석도 우선 단원들을 성장시킬 필요성을 느낀 모양이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개체였습니다. 흉측하게 생긴 날개가 달렸고, 몸체는 슬라임과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몸에는 온갖 기괴한 팔다리가 돋아나 있었지요.”
내 데이터 베이스에도 없는 신종 몬스터.
그것에 의해 은사자 클랜은 전멸했고, 타고 있던 배마저 박살이 났다. 그러나 물에 빠진 채 정신을 잃으며 죽었다고 생각한 찰나.
매더킨은 도서관섬에서 눈을 떴다.
바위에 배낭이 걸려 겨우 숨을 쉬는 상태였다.
“그 후로는… 밖은 너무 위험하다 생각해 일단 이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홀로 기다렸지요. 누군가 이곳을 다시 찾을 때까지…….”
혹시 모른단 생각으로 갖고 있던 식량을 최대한 아끼면서, 몬스터가 아닌 외로움과 싸우며 홀로 버티고 버텼다.
정리하자면 그런 이야기였는데…….
“그렇군.”
딱히 슬픈 이야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들어보니까 전멸 판단이 서자마자 단원들을 다 버리고 바다로 뛰어든 거 같은데.
‘그럴듯한 이야기란 말이지.’
매더킨 릴그리암스.
내가 지켜본 이 녀석이라면 충분히 그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내릴 만했다.
하지만…….
‘정보 수집은 여기까지.’
이야기는 잘 들었다.
그러니 이제 이야기의 진위를 확인해 볼 시간이다.
따라서…….
“베르실.”
마법사에게 지시를 내려 검증 마법을 사용했다.
애석하게도 항마력이 꽤 되는지 검증 마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지만, 나는 미련을 갖지 않고 아공간에서 한 물건을 꺼냈다.
‘이제 한 번 남은 걸 여기서 쓰는 건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단 말이지.
“매더킨 릴그리암스.”
“예?”
“지금부터 네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 볼 생각이다.”
괜찮겠느냐는 식의 양해는 구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놈한테 선택권은 없으니까.
딸깍-
즉시 ‘어긋난 신뢰’를 작동시켰다.
이거면 뭔가 숨기고 있었더라도 전부 알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자, 그럼 간단한 질문부터 시작해보지.”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일까.
“말해봐라. 네 이름이 뭐지?”
도플갱어 숲에서도 그러했듯, 물건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간단한 테스트형 질문.
“…….”
“…….”
근데 이 새끼는 왜 대답을 못 하는 거야?
***
째깍, 째깍.
나침반 형태의 원판.
그 가운데 달린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천천히, 일정하게 반복되는 정적. 고요한 시간이 이어질수록 공기의 밀도가 올라가는 듯한 감각이 등줄기에 내려앉는다.
하지만…….
스으윽.
내가 가진 전사의 육신은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행동을 침착하게 수행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어느새 내 손은 자연스럽게 등에 맨 망치 자루에 향해 있었다.
철저하게 본능에 의거한 무의식적인 행동.
후…….
그래도 무기를 만지니 좀 차분해지네.
“말해라, 릴그리암스.”
나는 다시금 물었다.
“네 이름이 뭐지?”
그 질문에 녀석은 시선을 피했다.
과할 정도로 오른쪽으로 쏠린 눈동자는 수상한 걸 넘어 기이하고 기괴한 이질감마저 풍겼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묻겠다.”
무기에 손을 올려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제는 아예 대놓고 무기를 꺼내 들며 다시금 묻는다.
“네 이름이 뭐지?”
“…….”
그래, 묵비권 행사를 하겠다 이거지?
‘혹시 모르니까 일단 팔다리부터 다 부러뜨리고 시작하자.’
머릿속으로 정리가 끝난 즉시, 망치를 쥔 손아귀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막 휘두르려던 찰나.
“……아.”
녀석이 오랜 침묵을 깨고서 입을 열었다.
“들, 켰, 다…….”
짧은 한 마디였으나, 어째선지 말투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은 실제로도 틀리지 않았다.
“들켰다. 들켰다. 들켰다. 들켰다. 들켰다. 들켰다. 들켰다. 들켰다. 들켰다. 들켰다. 들켰다. 들켰다.”
렉 걸린 오디오 기기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놈의 눈은 시도 때도 없이 흔들렸으며, 목소리에서는 초조와 불안이 여실하게 묻어났다.
마치 패닉 상태에 빠진듯.
놈은 명백하게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들켰다. 들켰다. 들켰다. 들켰다. 들켰—.”
“……너 뭐야?”
이내 한쪽 손을 뻗어 녀석의 모가지를 틀어잡은 뒤 들어 올리자, 놈이 내뱉는 말이 달라졌다.
“어떡하지?”
“……?”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분명 모가지를 잡고 들어 올린 건 나인데, 왜 내가 이렇게 찝찝한 기분이 들어야 하는 걸까.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
그때 녀석이 돌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아.”
조용히 턱을 들어 올리며 나를 보았다.
기이할 정도로 오른쪽으로 향해 있던 동공은 어느샌가 정면에서 나를 응시하는 상태였다.
이내 그 상태로 녀석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알겠다.”
마치 이제야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목소리.
이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며 망치를 위로 쳐든 순간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말을 끝으로.
퍼어어어엉-!
손에 잡혀 있던 놈의 몸이 폭발했다.
***
폭발력 자체는 그리 대단할 게 없었다.
모가지를 틀어잡느라 밀착해 있던 손아귀가 살짝 따끔했던 정도?
그마저도 생채기가 났다기보다는 알러지 반응처럼 조금 가려운 느낌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폭발은 누군가의 살점을 수천 조각으로 찢어발기고, 뼛조각을 비산시키기에 충분했다.
“신관… 은 의미가 없겠군.”
핏물과 살점을 뒤집어쓴 채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잠시.
사태 파악을 끝난 나는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에헤이, 조졌네 이거.’
변명거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패배의 요인은 내 상상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항상 최악을 염두에 두고자 했으면서.
고작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걸 어떻게 알아.’
물론 자책하는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알기도 어려웠을뿐더러, 안다고 해서 저지하는 게 가능하기는 했을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그도 그럴 게, 비상 탈출을 어떻게 막아?
비상 탈출은 대응법이 없는 스킬이다.
신이 아닌 이상에서야 죽은 놈을 붙잡아올 수는 없으니까.
이론상으로는 최고의 도주기인 셈인데…….
그 사기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만큼, 시전 대가는 자기 자신의 목숨—.
‘쓸데없는 생각은 됐고, 정리부터 하자.’
“얀델……!”
“괜찮으니 호들갑 떨지 마라. 아, 잠깐 생각할 게 있으니 내버려 두고.”
걱정하며 달려오는 동료들을 안심시킨 뒤, 우선 상황을 다시 한번 복기하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결과만 말하자면, 짧게는 한 문장으로 압축하는 것도 가능했다.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매더킨 릴그라임스인 척 연기를 했다.’
하면, 범인은 누구일까.
짚이는 용의자는 하나였다.
‘촌장.’
아니, 정확히는 촌장이 보낸 놈이라고 해야 하나?
촌장이 저렇게 허술하게 들키자마자 패닉에 빠졌을 거 같진 않거든.
아무튼, 용의자가 나왔으니 다음 단계는 간단하다.
추리의 기본 요소 중 하나.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무슨 이유, 그리고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 이런 짓을 하였는가. 수많은 가정을 하고서 고민해 봤지만, 이것만큼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알아낼 수가 없었다.
‘결백하다고 나를 속이기 위해서? 아니, 어쩌면 단지 옆에서 나를 감시하고 싶었던 걸 수도…….’
뭐가 목적이었는지도 아직 확실하지 않을뿐더러.
‘대체 뭘 해야 이런 게 가능하지?’
추측이 되는 정수도 없다.
타인의 몸을 빼앗는 스킬이 몇 가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이런 느낌과 전혀 다르니까.
대부분 시전자가 근처에만 있어야 하며, 몸을 빼앗은 후에도 실 같은 게 연결되며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그래, 그러니까…….
‘정수가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악령.’
오히려 ‘악령’과 더욱 형태가 비슷할 것이다.
그리 생각하고 나니 손에 식은땀이 가득 맺혔다.
다만 이후로도 한참 동안 시간을 갖고, 때로는 동료들과 상의를 하며 추측을 이어나갔지만, 결국 더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었다.
아직 근거가 부실한 가설일 뿐이지만.
‘촌장은 악령처럼 타인의 몸을 빼앗을 수단이 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을 테니까.
***
릴그리암스의 비상 탈출 소동이 있은 후.
찝찝하게나마 어느 정도 사건이 마무리된 즉시, 무리를 이끌고 도서관의 조사를 나섰다.
일단 우리가 떠난 사이 동안의 변화는 두 가지였다.
‘책이… 다시 생겼네.’
이미 사용된 소환책들이 충전됐다.
떠날 때를 기준으로 책장들 아래쪽은 거의 비어 있는 수준이었건만. 대충 난잡하게 흩뿌려 던져 둔 책들도 전부 정리가 되어 바닥도 깔끔했다.
그리고…….
‘계단도 초기화가 됐구나.’
열심히 소환책을 소모하며 3등급 몬스터가 나오는 상층 책장까지 계단을 이었지만, 다시 돌아온 도서관은 처음 왔을 때 그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흐음, 그럼 초기화 기준이 뭐지? 시간인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왠지 우기가 그 기준점이지 않을까도 싶지만, 아직 확실하게 확인된 부분은 아니다.
“얀델, 그래도 잘 됐군. 이렇게 되면 훨씬 더 여유롭게 정수를 구할 수 있을 테니.”
“아……. 그건 그렇지.”
일단 아멜리아의 말대로 긍정적인 상황이었다.
계단이 리셋된 건 마음이 아프지만, 파밍 자체는 이론상 무한대로 가능해졌단 뜻이니까.
뭐, 그렇다고 부정적인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도중에 초기화가 되면 단순 노가다로 책장 꼭대기까지 가는 건 어렵겠네.’
안 그래도 난이도가 높은 도서관섬 클리어에 시간제한 조건까지 붙어 버렸다.
하나 이에 대한 불평은 나중에 클리어를 목표로 할 때 해도 늦지 않을 터.
‘리셋되는 것도 알았는데, 시간 낭비는 여기까지만 하자.’
나는 모든 고민과 번뇌를 집어 던지고 이곳에 온 이유에만 집중했다.
사실 나는 노가다형 게임과 잘 맞는 편이었다.
그냥 멍하니 하고 있으면 온갖 잡념들이 사라지거든.
「서리늑대를 처치했습니다.」
「스톤골렘을 처치했습니다.」
「홉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아이스 오크 전사를 처치했습니다.」
「예티를 처치했습니다.」
「뤼투레 부적술사를 처치했습니다.」
「…….」
이후로는 좋은 사냥감이 담긴 책을 찾는 조와 전투조로 인원을 분배해 미친 듯이 노가다를 이어나갔다.
9등급, 8등급, 7등급…….
올라갈 수 있는 책장 높이가 높아질수록 난이도는 점점 올랐고, 4등급 이상의 몬스터가 출현하기 시작한 때부터는 ‘특정 몬스터’를 찾아서 소환하는 것에 집중했다.
마석이 나왔고.
경험치가 쌓인다.
그리고…….
“정수다!”
아직 아나바다 멤버에게 먹일 정수는 나오지 않았지만, 정수도 하루에 몇 개씩이나 나오며 내가 이끄는 집단이 전체적으로 조금씩 성장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만하면 됐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 테니 다들 쉬어라!”
미궁 진입 85일 차.
「캐릭터의 영혼이 공명하며 특정 세계로 이끌립니다.」
그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