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56
그 덥고 습한 공기에 익숙해질 무렵엔 항상 익숙한 두 명의 뒷모습이 보였다. 유일은 매번 그 둘의 뒷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그게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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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은 힘주어 문고리를 열었다.
“유일아.”
이모의 얼굴을 보자마자 한유일은 문고리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줬다.
‘다행이다.’
민우진과 차를 타고 오는 동안, 그는 조금 안정이 된 상태였다.
소식을 들은 장재현 대표는 곧바로 일인실을 잡았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연락했다. 장재이 실장도 유일을 따라 함께 차를 타고 병원에 왔다.
정작 진하영은 수많은 얼굴들에 머쓱한 얼굴이었다.
“바쁘신데 이렇게 오셔서 어떡해요···”
유일이 들은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퇴근한 진하영이 문을 열려고 했을 때 이미 문이 열려 있었다. 이상함을 느껴 신고를 하던 찰나, 누군가가 튀어나왔다고 한다. 진하영은 그 바람에 놀라서 넘어졌다고.
혹시 몰라 가능한 검사는 모두 했는데, 다행히 가벼운 찰과상이었다.
“유일아, 나 정말 괜찮아~”
진하영은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휙 뛰어가길래 내가 곧바로 가방을 던졌는데 빗나갔지 뭐니! 이래봬도 내가 여고 시절 피구왕이었는데.”
“···이모.”
부러 쾌활하게 말하는 진하영을 바라보던 유일은 입을 다물었다.
“유일아, 괜찮아. 아이구, 손 찬 것 봐.”
요즘 들어 집 주변을 배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티를 내진 않았지만, 민우진도 집까지 일부러 돌아가느라 힘들어 보였고.
하지만 이런 일까지 생길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낡은 빌라인데다가 다세대 주택인 탓에 주변 경비가 삼엄하지 않은 탓이 컸다.
‘안일했어.’
진하영은 당장 퇴원하고 싶다며 유일과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다 수액만 맞고 퇴원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한편, 범인은 금방 잡혔다. 주변 cctv기록이 남아 있던 덕이었다.
범인은 유일의 집에서 30km나 떨어진 곳에서 살던 20대였다.
“진작 숙소를 따로 잡아줬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유일 씨.”
장재이는 착잡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주거침입이 분명한 범죄이긴 해도, 그리 형량이 크지 않아요. 게다가 초범이라 고소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벌금형에서 끝날 거라고 하네요.”
“···네. 알고 있습니다.”
민우진도 평소보다 축 처진 눈으로 얼굴로 유일을 바라보았다.
“유일아. 그 사람··· 경찰서에 있다는데, 직접 갈 거야? 실장님도 말씀하셨지만 꼭 만나지 않아도 괜찮고···”
“전 괜찮아요.”
‘직접 말해야만 하는 것도 있고.’
*
“한유일 씨··· 맞죠?”
유일의 얼굴을 본 경찰관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안내했다.
“저기, 왼쪽에 앉아있는 머리 긴 사람입니다.”
남의 집에 무단침입한 혐의로 조사를 당하는 중에도, 긴 머리는 당황하거나 무서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아··· 유일이다.”
유일은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긴 머리에게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주변에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당신 맞죠?”
유일의 핸드폰에 떠 있던 건 블루챗 계정이었다.
유일의 핸드폰을 본 긴 머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 이걸··· 어떻게.”
“제가 좀 인맥이 좋은 편이라서요.”
놀라는 걸 보니 역시 블루챗 계정의 주인을 찾아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정확히는 ‘인맥’이 아닙니다만.】
유일은 브윈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오늘까지 포함해서 총 열흘. 저희 집 주변을 돌아다니셨더라고요. cctv 기록에 다 남아있어요.”
그 말에 긴 머리는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유일의 말에 담긴 함의를 눈치 챈 것이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생각입니다. 하지만 다음 번에는 절대 선처는 없을 거예요.”
유일의 말에 긴 머리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복잡한 심정이었다.
‘처음엔 그냥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을 테지만.’
하지만···
‘만약 이모가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판단할 수 있었을까.
유일은 확신할 수 없었다.
“···유일 씨, 원한다면 회사 측에서 고소장 접수할 수 있어요. 사생도 팬이니까 이해하라는 건 2000년대 이야기고. 다른 것보다 유일 씨랑 유일 씨 가족 안전 문제잖아요.”
장재이의 말에 유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은요.”
‘시끄러워봤자 좋을 것도 없고.’
무엇보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이와 비슷한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기분 탓인지 브윈 역시 침울한 말투였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장재현 대표는 직접 유일을 찾아왔다.
– 이건 명백한 회사 불찰입니다.
소속 배우의 사생활 보호를 지키지 못했으며, 당장 새로운 집을 얻어주겠다는 장 대표의 말에 유일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의 고집을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 그럼 이렇게 하죠. 이모 님이 지낼 집은 유일 씨가 부담하고, 유일 씨가 지낼 집은 JJ엔터 측에서 부담하도록 하는 걸로.
– 다시 말하지만 이건 투자입니다.
···더 거절했다간 밤을 샐 것 같아서 일단 알겠다고 했다.
일주일처럼 흘러간 하루였다.
‘···정신은 없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정리는 되었다.
집이 구해질 때까지 이모는 가까운 친구 집에서 지내기로 했고, (유일은 자신의 집을 내주겠다는 장재이 실장과 김선아를 말리느라 꽤 애를 먹어야 했다) 어차피 곧 출국인 유일은 잠시 머물 곳을 찾아야 했다.
“···편하게 써.”
그가 지금 박영현과 같은 집에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집 되게 좋네. 엄청 깨끗하고.”
작은 방이 두 개 있는 20평대의 집을 둘러보던 유일은 영현이 극도의 ‘모던’ ‘블랙 앤 화이트’ 신봉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가는 청주라서. 성인되고 나서부터 독립했어.”
박영현은 게스트룸이 있다며 방 하나를 보여줬다. 거실은 하얀 벽인데 반해, 모든 방은 검은 벽지로 둘러싸여 있었다.
게스트룸이라고는 했지만 지금껏 게스트가 있었을지 의문일만큼 사용감이 없는 방이었다.
박영현은 변명하듯 말했다.
“···한 번씩 엄마가 오긴 해.”
박영현과 한 테이블에 조용하게 앉아있을 때, 유일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건 이는 뜻밖의 인물이었다.
– 형, 괜찮아···?
얜 대체 어떻게 알았지.
가라앉은 김하랑의 목소리는 꽤 낯설었다.
– 우리도 많이 당했거든. 특히 첫 숙소 쓸 때는 사람들이 숙소 문 앞에서 서 있고 그랬던 적도 있어. 그래서 다 같이 매니저 형 집에서 잔 적도 있고 그래.
···생각만 해도 어지러운데.
아이돌이란 여러모로 다사다난한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며, 유일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난 괜찮아. 지금은 어느정도 해결은 됐으니까. 곧 이사도 할 거고.”
– 진짜지?
하랑은 금세 가볍게 분위기를 전환했다.
– 형은 보면 맨날 괜찮다고 하니까 진짜 괜찮은 건지 알 수가 없더라구~
그리고 김하랑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며 유일의 시간을 까먹기 시작했다.
‘스케줄도 많으면서 왜 안 자냐.’
조금 귀찮았던 건 사실이나, 오늘 그에게 벌어졌던 일과 거리가 있는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조금씩 기분이 나아졌다.
– ···근데 일일 형!
“응.”
– 팬미팅 할 때 스피드 퀴즈, 뭐 그런 거 없어?
【이번 온라인 팬미팅 다섯 번째 순서가 스피드 퀴즈입니다.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퀴즈를 풀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브윈에게 들은 그대로 말하자, 곧바로 답이 들렸다.
– 나 그거 할래!
“···그래라.”
유일은 알지 못했다. 이 결정이 어떤 파장을 끌고 올지를.
*
직장인은 빠르게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다.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은 뒤 자리를 잡았다. 오튜브엔 이미 영상이 대기 중이었다.
[한유일 온라인 팬미팅 : 첫걸음(First step)]이게 바로 직장인이 회사에서 바람처럼 뛰쳐나온 이유였다.
‘내가 살다살다 배우 온라인 팬미팅을 기다리다니.’
아주 잠깐 현타가 올 뻔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스크린-물론 온라인 팬미팅도 스크린이긴 했으나-으로만 봤던 유일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였다.
무엇보다 팬클럽 이름을 유일과 함께 정한다고 하지 않는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곧 오후 7시였다.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