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352)
제352화
“이건…?”
반짝이는 팔찌는 귀금속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보아도 귀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범상치 않은 자태를 뽐냈다.
“세포이 가문의 가보로 대대로 내려오는 팔찌일세. 거기 서 있는 머메이드 해적단의 부선장이라면 이 물건의 진위와 가치를 충분히 알 수 있겠지?”
“거, 해적이라니 무슨 실례되는 말씀을. 본인은 머메이드 상단의 부단주이오만.”
“이런, 실례했군. 우리가 아직 그쪽 상단하고는 거래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입에 좀 붙지 않은 모양이네. 털렸던 적은 많지만 말이야, 하하하.”
“…쯧!”
텟사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혀를 찼지만, 그의 시선은 레오드가 탁자 위에 올려둔 팔찌에 고정된 채 떨어지지 않았다.
‘…확실히, 텟사이의 안목이라면 믿을 수 있겠지.’
군도의 해적들 가운데 간부들이 가진 심미안과 감정 기술은 어지간한 대상단의 상인들에게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해적질이란, 본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상대방의 물건을 약탈하는 행위.
즉, 해적들은 늘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작업(?)에 임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본인이 약탈한 물건이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여부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머저리들이라면.
살벌했던 군도 바닥에서 해적으로서 살아남지 못했을뿐더러, 애초에 군도의 해적들이 그토록 거대한 세력을 일구지도 못했을 것이다.
즉, 사령의 한 축이었던 머메이드 해적단의 부선장 출신인 텟사이라면.
제국의 주요 명가가 관리하는 가보에 대한 정보는, 당연히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흐음… 정교하게 양각된 천사의 문양과 재질. 그리고 이 특유의 가시가 난 줄기가 얽힌 형태…. 확실히, 세포이 가문에서 이름 높은 가보와 완벽하게 일치하는군요. 반박할 수 없는 진품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걸 내밀었다는 건.”
텟사이의 시선이 레오드에게 향했다.
“증명할 자신이 있으니, 꺼내 들었다는 말이겠지요?”
“텟사이, 증명이라니 무슨 소리지?”
“세포이 가문은 신성제국에서 황후를 선출한 것은 물론, 수많은 명신(名臣)들을 배출한 명가 중의 명가지요. 하지만, 그들은 기사나 주교들이 아닌 관료 가문입니다.”
관료 가문.
특별한 강자를 배출한 적이 없는 문관 가문이라는 소리였다.
“자연히, 세포이 가문을 사칭하는 이들의 숫자 또한 기사나 주교의 가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았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이들은 오러나 신성력이 없는 가문. 사기꾼들이 사기 치기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죠.”
팔찌를 조용히 내려놓은 텟사이가 레오드 앞으로 슬며시 팔찌를 내밀며 말했다.
“이에, 세포이 가문은 자신들의 물건에 일종의 검증 장치를 설치해 두었습니다.”
이어서, 작은 소도 하나를 꺼내 레오드 앞에 추가로 내밀었다.
“직계의 피를 만난 팔찌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도록 말이지요.”
“하하, 이거 못 당하겠군. 설마 우리 가문 가보의 역사까지 줄줄 꿰고 있을 줄이야.”
레오드는 굳이 구구절절 더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 탓인지, 텟사이가 자신들의 가보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을 오히려 기꺼워했다.
“텟사이 부단장의 말대로네. 내가 나를 증명하는 방법은 간단하지.”
샤아악!
텟사이가 내민 소도를 들어 자신의 손가락 끝을 깊게 베어내자, 손끝에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세포이 가문의 직계라는 사실을, 이 팔찌가 증명해줄 테니까 말이야.”
또오옥!
무게감을 이기지 못할 만큼 커진 핏방울이 반지 위로 떨어지자, 양각되어 있던 천사가 쥐고 있는 보석이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푸른 바다와 같이 반짝이던 보석은 어느새 보랏빛으로 그 색을 바꾸었다.
“우리 가문 직계의 피가 아니라면, 이 반지는 결코 색을 바꾸지 않아. 어떻게, 답이 좀 되었는가?”
슬쩍 텟사이를 바라보자, 그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진실이라는 뜻.
“…뭐, 좋습니다. 당신이 세포이 가문의 직계라는 사실은 인정하도록 하지요.”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는다.
도대체 어떻게, 관료 가문의 자제가.
아디르 공작의 손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단 말인가?
“나머지 의문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군. 내가 아디르 공작의 손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는 간단하네.”
레오드의 얼굴에 쓴웃음이 깃든다.
“나는, 우리는. 세포이 가문에서도 철저하게 배제되었기 때문일세.”
* * *
거대한 제국 동부의 명가, 세포이 가문.
5국 연합의 소국보다 거대한 영지를 다스리는 이들은 사실상 작은 왕국의 주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권력자들에게, 하룻밤의 장난으로 아이가 잉태되는 건 조금도 드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리 태어난 서자(庶子)들이 가문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 또한, 그다지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후작가의 피가 애초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황후와 명신을 배출해온 역사가 이들을 오만하게 만들어낸 것인지는 모르겠네. 다만, 그런 일들이 다른 가문에 비해 유독 많은 것 같기는 하더군.”
축적된 경험은 노하우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가문의 우수한 피를 반은 이어받은 탓인지, 서자들 대부분은 우수함을 보였고.
세포이 가문은 그런 우수한 인력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나와, 내 뒤에 있는 장교들 대부분은 가문에서 극비리에 신분을 세탁하여 입대한 이들이야. 우리는 반강제적으로 세포이 가문의 해군에 복역해야 했지. 달리 선택권이 없었으니까.”
가문에서는 서자지만, 그렇다 해도 자신들을 낳아준 어머니가 있었다.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세포이 가문은 서자들의 능력과 젊음을 착취해왔다.
“나는 그런 서자들 중, 당대 세포이 후작의 직계 서자였고 말이야. 서자들 주제에 서열을 나누는 건 우습지만… 어쩌다 보니, 내가 이들을 이끌게 되었군.”
“응? 그런데, 그건 말이 안 되지 않나?”
레오드의 설명을 듣고 있던 살라딘이 반문했다.
“그래, 뭐 서자니까, 가문에서 쪽팔리니까… 신분 세탁까지 해서 비밀리에 부려먹던 건 이해하겠는데. 아무리 꽁꽁 숨겼다고 해도 그렇지, 신성제국의 정보망이 고작 후작가의 서자들도 발견하지 못한다고? 그게 말이 되나?”
맞는 말이다.
제국이 가진 정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죽했으면, 제롬이 인외마경인 드래곤 산맥의 오크들이 발각되는 건 아닌지 걱정했을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세포이 가문이 명가라 하더라도 그렇지, 제국의 정보 부서가 이들의 정체가 숨겨둔 서자들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건 상상이 되질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네. ‘평상시’ 제국의 정보망이었다면 당연히 우리 역시 빠져나갈 수 없었겠지.”
‘평상시’의 제국이라….
“이바렐라 황녀가 황위를 찬탈한 이후 제국은 아직 모든 것을 수습하지 못했어. 선황이 다스리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전쟁에 모든 초점을 맞춘 현재의 정보망을 속이는 건 우리 가문의 저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다네.”
“…흐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부 다 납득이 가는 설명 역시 아니었다.
“뭐, 그런 반응일 거라 예상했네. 당연히 그 정도로는 금방 발각되었겠지. 그래서, 나를 포함한 가문의 서자들은.”
꾸우욱!
탁자 위에 올린 레오드의 손에 핏줄이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단지 기분 탓이었을까.
“…우리 손으로, 직접 죽였다네.”
“…어?”
설마, 하는 시선으로 레오드를 바라본다.
“역적, 세포이 가문의 식솔들. 그 모든 이들을 처형한 것은 우리였어. 나 역시 이 손으로… 세포이 후작의 목을, 직접 베었지.”
“…….”
레오드의 말에 잠시간 아무런 말도 이을 수 없었다.
레오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아버지를 직접… 베었다는 소리였으니까.
감정이 북받친 탓인지, 레오드의 목울대가 잠시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미안하군. 아무튼, 우리는 열성적으로 그들을 도륙했기에. 제국 역시 우리에게까지 수사망을 확대하지는 않더군. 그러기에는, 확실한 것들만 조사해도 인력이 모자랐으니 말이야.”
“…그렇다면 더더욱 이상하군요. 외람된 말이지만, 그대들의 어버이는 그대들을 착취한 이들이 아닙니까. 간신히 살아남았건만, 어째서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와 접촉하는 겁니까?”
비록 혈육이라 하나, 자신들의 인생에 선택권마저 앗아간 이들이다.
그들을 베어내며 살아남은 생을, 이제 와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하! 제롬 남작, 뭔가 오해가 있군. 내가 세포이 후작을 벤 것에 대해 마음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나?”
레오드가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방금 말을 잇지 못한 것은, 그 탐욕스러운 돼지 때문이 아니야. 그자의 옆에서 내 칼을 담담히 기다리시던 어머니 때문이다.”
‘…그거였나.’
비록 서자들이라 할지라도, 가문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룻밤 대상이 되었던 그들의 ‘어머니’는, 그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희망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전쟁이 끝난다면… 지금은 주춤한 제국의 정보망이 정상적으로 운용되기 시작하겠지. 우리는 평생을 언제 발각될지 모를 불안에 떨며 살고 싶지 않아.”
“그래서, 이쪽에 붙겠다는 말입니까?”
“천만에.”
내 질문에 레오드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세포이 가문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언정, 나는 자랑스러운 제국민이야. 연맹에 항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레오드가 손을 움켜쥐며 말을 이어간다.
“역적, 이바렐라를 폐위시키고 세포이 가문을 다시금 부흥시킬 것이야. 서자를 차별하지 않고, 오로지 능력만으로 올라갈 수 있는 그런 가문으로!”
과연. 이제야 납득할 수 있었다.
제 부모, 아니, 이 경우는 어머니인가. 자신들의 소중한 이들에게 반역의 죄를 씌운 이바렐라를 용서할 수 없다.
그리고 적통이 씨몰살 당한 가문을 이참에 새롭게 뜯어고치겠다, 라는 의미였다.
“다만, 그 꿈을 위해서는 나와 부하들만의 힘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그러니.”
“우리의 손을 빌리겠다, 라는 거군요.”
“적의 적은 동지라고도 하지. 만약 그대들이 내 제안을 수락한다면, 바티칸을 향해 최단 기간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겠네.”
“거절한다면?”
“어차피, 이대로 시간이 흘러 정보망이 정상화되면 우리가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야.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역적보다는 충신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군.”
제안을 거절하면, 목숨을 걸고 우리의 진격을 방해하겠다는 소리군.
“…흐음.”
고개를 들어 눈앞의 남자를 직시한다.
레오드 폰 세포이.
제 부모와 혈육들을 참하면서까지 혐의를 벗어나고, 미래를 도모한 인물이다.
게다가, 제국의 해상 경로로 진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측하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이자의 비상한 머리와 통찰력을 알 수 있었다.
‘적으로 삼기보다는, 아군으로 삼아야 할 인물이야.’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이자의 행동까지도, 모두 다 이바렐라가 계획한 함정이라면 어떻게 하냐는 거지.’
비록 이번 삶에서는 사사건건 계속된 나의 방해로 인해 많은 일들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전생에는 그 작은 머리에서 만들었던 계책들로 이 대륙의 판도를 뒤바꾸었을 만큼 재능이 넘쳤던 여자다.
어쩌면 내 계획을 눈치챈 이바렐라가 이자들을 이용하여 다시 한번 계략을 꼰 것은 아닐까.
“아직도 망설여지나? 좋은 자세야. 덜컥 나타난 이들을 순진하게 믿고 결정을 내리는 자였다면, 오히려 내 쪽에서 실망했을 테니.”
내 고민을 지켜보던 레오드가 부관에게 눈짓하자, 시립해 있던 부관이 서류 뭉치를 탁자 위에 쏟아부었다.
후두두둑!
“이건…?”
“제국의 해양 전도일세. 아마, 그대들은 북부의 로렌트 항구를 통해 제국으로 상륙할 생각이었겠지?”
“……!!”
놀랍게도, 레오드는 우리가 향할 목표 지점까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야. 장담하건대, 로렌트 항구로 간다면 그대들은 원하는 결과를 절대로 이룰 수 없을 거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모르겠나? 그대들의 계획이 이미 이바렐라에게 모조리 간파당했다는 소리일세.”
“……!!”
“내가 이 해안으로 향한 이유가 무어라 생각하나? 제국 해군 전체에 로렌트 항구로 소집령이 떨어졌어. 그때 바로 눈치챘지. 연맹 측에서 제국의 뒤통수를 향해 상륙 작전을 펼치려 한다는 사실을.”
즉, 그 사실을 깨달은 레오드가 먼저 연맹의 해군과 접촉하기 위해 이곳에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뭐, 설마하니 남부의 철권쯤 되는 이가 이런 위험한 작전에 직접 참여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제롬을 흘긋 바라본 레오드가 말을 이어갔다.
“동부 가문들 가운데 아디르 공작에게 짓밟히지 않은 이들은 거의 없어. 그들 대부분은 현 황제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품고 있지. 그러니.”
스윽!
레오드의 손이 해도 안쪽의 선, 유피테르 강을 가리킨다.
“해로가 아닌, 우리가 제공하는 수로(水路)를 사용하도록 하게. 그대들의 원래 목적지인 로렌트 항구보다, 몇 배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