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비릿하게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는 둘의 눈에 각기 빛이 서렸다.
아렌이 가진 용의 눈이 심상 너머의 황제를 탐색했고, 황제가 가진 진리안 역시 심상 너머의 아렌을 탐색하기 위해 힘을 발휘했다.
파직.
하지만 그 순간 심상 공간에 작은 균열이 가며 출렁거렸고, 동시에 둘의 눈에서 빛이 가라앉았다.
– 억지로 이어서 그런지 약하군.
가볍게 혀를 찬 황제의 목소리가 울렸고, 아렌 역시 동의했다.
애초에 아렌이 감각을 퍼트린 것은 혹시 모를 황제의 수작에 대비하고자 했던 것이고, 그런 아렌의 감각을 느낀 황제가 사념을 일으켜 심상 공간을 연결했으니 급조된 공간이 반신에 이른 두 사람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그래도 조금 보기는 했다만 너는 어떻더냐?
“나도 볼 만큼은 봤지.”
희미하게 미소 짓는 황제의 얼굴을 보면서 아렌도 마주 웃어보였다.
오러와 마법, 정령술, 신성력까지 한 몸에 갖춘 황제가 초인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 황제는 세상 모든 것의 진실된 모습을 볼 수 있는 진리안을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사람의 능력과 속마음의 진실까지 파악할 수 있었고, 진리안의 능력은 공안으로 하여금 황제에게 절대 충성하는 조직으로 꾸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렌의 용안 역시 그 짝을 찾기 힘든 능력인 것은 마찬가지.
비슷한 능력을 가진 두 초인이 서로를 엿보려 했으니 당연히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 그나저나 무엄하구나. 너 역시 제국의 귀족이 아니더냐. 짐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이 의무일 텐데.
날카로운 청년의 모습으로 미소 짓던 황제가 엄숙한 표정으로 준엄하게 꾸짖으니 위엄이 무럭무럭 솟았다.
어지간히 마음이 강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단번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게 만드는 강렬한 위엄이 심상 공간을 가득 채웠지만, 아렌은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었다.
“이제 와서 말이냐? 같잖은 수작은 그만둬라.”
빙하 같은 기운이 사방에 깔리며 위엄을 몰아내니,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던 황제의 얼굴에 거짓말처럼 미소가 피어올랐다.
– 작은 여흥이니 괘념치 말게나. 그나저나 내기는 루드비히가 이겼군. 짐 앞에서도 꼬박꼬박 반말이라니 말이야.
가족을 재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경어를 쓰지 않는다는 아렌의 소문은 제국에 유명했고, 공안들 사이에서는 소소한 내기가 벌어졌었다.
대부분의 공안들이 황제에게까지 그렇게 하지는 않을 거라는데 걸었지만, 오직 루드비히만이 반대쪽에 섰었으니, 공안들의 내기는 루드비히가 이긴 샘이 되었다.
“말이라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아렌의 우묵한 눈이 황제에게로 향했다.
“아직까지는 자격을 갖춘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 과연 오만한 자로다. 메카니는 자네에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군.
황제마저도 아렌에게 존대 받을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였으니, 굉장한 모욕이었지만 황제는 개의치 않았다.
반신에 이르러 신격을 획득하고 있는 황제의 눈에 비친 아렌은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자였고, 희미하게 떠오르던 생각은 확신이 되었다.
대적자.
황제 자신의 운명을 막아서는 대적자가 아렌임을 황제는 확인했다.
“그나저나 꽤나 밉보인 모양이군. 방법이 너무 거칠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거냐.”
말과 함께 아렌의 시선이 슬쩍 하늘로 향했고, 그 모습을 본 황제가 쓴웃음을 지었다.
초인을 넘어서 반신의 경지에 이른 황제와 아렌은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는 신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은 심상 공간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 ……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제국 밖의 인간들을 형편없는 위정자들에 의해서 고통받고 있고,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만신전의 신들은 외부에 시선이 쏠려서 인간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고 있지. 그렇다면 누군가는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확고한 신념이 가득 찬 대답은 힘이 되어서 심상을 흔들었고, 그것이 한 치의 거짓이 없는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챈 아렌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 기도 안 차는군. 그걸 왜 네가 해야 하는 거지? 누가 부탁이라도 했나?
– 고귀한 핏줄과 힘을 타고난 자는 그에 걸맞은 의무가 있는 거다. 나는 컬리넘의 염원을 가지고 태어난 자. 기쁘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의무를 다할 뿐이야.
엄숙한 표정의 황제의 모습에서 위엄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만개의 길이 있어도 그 끝이 하나로 귀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가지 말아야 하는 길이 있는 거다. 태생부터 업이 쌓였고, 걸어온 길에 피가 마르지 않았으며, 앞으로 걸어갈 길에 피와 시체가 가득하니 그 끝을 누가 영광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아렌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 황제의 표정에 균열이 가게 만들었다.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아렌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가득 실려 있었고, 신들의 시선이 강해지는 것을 느낀 것이다.
“너에게는 대의가 없다. 그저 커다란 대의로 너 자신의 탐욕을 감추고 있을 뿐이지.”
단언하는 아렌의 말에 황제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네가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았겠지. 그저 나에게 주어진 천명대로 조용히 살았을 거다.”
아렌의 눈에 붉은 기운이 떠올랐다.
“하지만 너의 탐욕은 나에게까지 인과가 이어졌고, 결국 이 자리에 서게 만들었으니 네가 과연 바른길을 걸어간다고 할 수 있겠느냐.”
준엄하게 다그치는 아렌의 말에 황제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 닥쳐라!
황제의 일갈에 심상 공간이 크게 출렁이고, 제도의 허공을 떠돌던 감정의 흐름이 황제에게로 모여들었다.
우드득.
신성과 한없이 가까운 힘이 황제에게로 모여드니 동등한 모습으로 서 있던 황제의 모습이 무섭게 커다래졌고, 어느새 방대하기 짝이 없는 심상 공간을 가득 채웠다.
마치 인간과 개미의 크기와도 같은 차이를 보이며 커다래진 황제의 모습이 크게 발을 굴렀다.
콰릉!
심상 공간이 휘청거리며 돌풍과 먹구름이 밀려들었고, 저 높은 하늘에서 황제의 목소리가 신의 음성처럼 울려 퍼졌다.
– 희생 없이 되는 것은 없다! 짐이라고 그들의 희생이 즐거운 것 같으냐! 인간이라는 종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행하는 일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 거냐!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심상 공간이 쩌렁쩌렁 울렸고, 더욱더 커진 황제의 신체는 고개를 아무리 꺾어도 눈에 담기지 않았다.
– 너에게도 짐의 대의에 동참할 기회를 주마. 인세의 은원 따위는 종의 안녕과 번영에 비하면 하찮기 그지없는 것! 무릇 강대한 힘을 가진 자라면 그에 걸맞은 역할이 있는 법이니 짐의 곁에 서서 세상을 이롭게 해야만 할 것이다!
신의 계시와 같은 황제의 의념이 심상 공간을 가득 메우고, 아렌의 정신을 물들이려 하고 있었다.
천만의 시민이 뿜어내는 감정을 원동력으로 삼아 자신의 힘을 무럭무럭 키워온 지금의 황제는 만신전의 어떠한 신보다도 광대한 신력을 모은 상황.
천만의 의념을 하나로 모아 집중하니 일개 개인의 정신 따위는 단박에 오염될 것이 뻔했고, 준엄한 눈으로 아렌을 내려다보는 황제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떠올랐다.
처음의 종신 공격은 아렌을 방심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진정한 노림수는 지금의 이 일격.
현실이 아닌 심상 공간이니만큼 서로의 정신이 겹쳐지는 곳이었고, 그런 곳이라면 압도적인 사념으로 아렌을 세뇌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무리하게 힘을 써서 사념으로 공간을 이었으니, 황제의 당당한 모습에 한없이 가녀려 보이는 아렌은 당장이라도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을 것만 같았다.
– 무릎을 꿇고 입을 맞춰라! 내 오른쪽에는 너의 자리가 있을 것이니! 그 끝은 무한한 영광만이 가득할 것이니라!
송곳처럼 모아진 의념이 다시금 아렌의 심상을 물들이려 하고 있었고, 그렇게 쐐기를 박으려던 그때였다.
쿠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 흡!
자신을 바라보는 강렬한 시선에 황제가 헛숨을 들이쉬며 아렌에게로 시선을 떼어 심상 공간 저 너머를 응시했다.
콰릉!
어느새 사방을 어둑하게 만든 먹구름 사이로 전광이 춤추고, 산보다도 커다래진 황제의 육신을 덮을 기세로 불어난 먹구름 사이로 샛노란 안광이 떠올랐다.
– 허업!
쿵!
황제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산과 같은 덩치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 한 발자국에 커다란 진동이 일어났고 한계까지 달한 심상 공간이 삐걱거렸지만, 황제는 자신이 뒷걸음친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용.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흑룡이 광기에 가득 찬 눈초리로 황제를 노려보고 있었고, 어느새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과 함께 번개 폭풍을 휘감으니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힘에 신과 같은 황제마저도 모골이 송연해진 것이다.
“세상을 이롭게 한다고 했느냐?”
사방이 천둥소리와 폭우 소리로 가득 찼지만 아렌의 나직한 목소리는 송곳처럼 황제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어느새 공중에 떠올라 용의 머리 위에 서 있는 아렌이 붉은 기가 가득한 눈으로 황제를 노려보니, 황제는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이 맺혔다.
초인을 넘어서 반신에 이른 황제의 정신력에 천만 인간의 의념까지 더해졌건만 아렌의 의식을 뚫지 못했고, 그것이 황제에게 강렬한 위기감을 심어 준 것이다.
무인으로서 아렌이 이룬 정신은 굳건하기 그지없었고 용으로 진화해가는 육신과 신성의 씨앗까지 더해졌으니, 지금의 아렌의 정신은 어지간한 신과도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고 광폭한 기운을 흘리는 용의 모습.
아렌의 심상에 새겨진 모습은 황제의 상상을 아득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너 따위가?”
입꼬리를 틀어 올리며 한껏 비웃은 아렌이 손을 들어 올리니 그 끝을 모를 정도로 기다란 용이 몸을 꿈틀거리며 커다란 입을 벌렸다.
파지지직!
먹구름 사이로 자유롭게 춤추던 번개가 흑룡의 입으로 모여들고, 세상 그 무엇보다도 파괴적인 기운이 압축되었다.
– 놈!
실질적인 힘과 광폭한 살기에 저절로 반응한 황제가 일갈하며 산과 같은 몸을 움직여 앞으로 나섰지만 거칠게 날뛰는 전하는 이미 용의 입가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주제를 알아라.”
콰르릉!
송곳 같은 한 마디와 함께 세상 무엇이라도 파괴하는 힘의 정화가 심상 공간을 가득 메웠다.
* * *
“흠.”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눈을 뜬 아렌의 앞에 디어뮈드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도련님.”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렌을 호종하면서 곁을 지킨 디어뮈드는 정체되어 있었던 경지를 높여가고 있었고, 소드마스터와 초인의 경계에 바짝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 디어뮈드였기에 아렌이 뭔가를 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화들짝 놀라서 아렌의 막사에 들어선 것이다.
“괜찮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찻잔을 들어 올린 아렌이었지만 디어뮈드의 눈썰미는 아렌의 얼굴에 서려 있는 피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디어뮈드의 시선을 느낀 아렌이 예의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제하고 가벼운 인사를 했다. 별일 아니니 물러가라.”
“…… 밖에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잔뜩 얼굴을 굳힌 디어뮈드가 막사 밖으로 나가고 아렌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심상 공간이라는 특성상 아렌이 한 방 먹인 모양세가 되었지만, 황제는 만만한 자가 아니었고, 그것이 현실의 싸움이라면 아렌도 필승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쉬운 싸움은 없지.”
피식 웃은 아렌이 다시금 눈을 감았다.
용의 눈으로 파악한 황제의 모습을 생각하며 심상을 가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