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 Director Returns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69)
#69화
12월 26일, 성야의 포근함도 지나 비로소 한 해의 끝이 다가온 날.
서림은 출근해 자리에 앉았다.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알겠어.’
약 하루 간의 고민, 그 끝에서 2챕터의 구상을 끝마쳤기 때문이다.
그것은 연호의 예시에서부터 뻗어 나온 발상의 구현이었다.
딸깍, 마우스를 두드려 펼치는 파일은 연호가 제시한 레퍼런스였다.
『어둡다.
마치 하늘 위로 뚜껑이 덮인 듯한 색채, 그런 천장 아래를 바라보면 보이는 것이 있었다.
땅을 희미하게 밝히는 것은 곳곳에 세워진 촛대에서 피어난 푸른 불꽃.
바닥을 가득 메운 것은 무언가의 유해, 그 위로 솟아난 것은 비석들이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을 꼽자면 하나.
-후후후···.
비석 위에 다소곳이 앉아 웃는 여인들이었다.
그녀들은 속이 다 비치는 얇은 흰색의 천 옷을 입었으며, 피부는 창백할 정도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옷 위로는 화려한 금색의 장신구를 둘렀으며 얼굴은 하나같이 면사포로 가려져 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아주 천박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 혹은 무희 같았다.
그들의 곁에는 무기를 꼬나쥔 해골 병사가 곧은 자세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배경 설명 텍스트, 뒤이어 존재하는 것은 여전히 끔찍한 실력의 그림이었다.
대체로 이랬다.
서림은 연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풍경을 이 끔찍한 그림과 설명을 엮음으로써 구현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감성.
즉, 주목할 포인트를 잡는 일이었다.
‘대비를 생각했어.’
2챕터의 흐름상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을 했었다.
순례자는 이곳에 들어선 이후 무희와 기사들을 보며 적개심을 드러낸다.
당연스럽게 그들을 적으로 인지한 것이다.
하여 죽인다.
그 일에 작은 의심도 품지 않는다.
그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것은 해골 병사를 으깬 후 무희들의 숨을 끊는 순간이었다.
‘유리가 되지.’
피를 뿜으며 죽은 무희들은 쩌저적 굳어서 유리가 된다.
다만 면사포는 순례자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거울에 피에 젖은 순례자의 얼굴이 비치고, 그것은 말한다.
이들을 정말 죽였어야만 했냐고.
순례자는 혼란에 휩싸인다.
그제야 되새기길, ‘이들이 정말 적이었을까?’라는 의문.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빠져나가려면 죽여야 하니까.’
본디 서사가 이르길, 그것은 ‘합리화’를 뜻했다.
게임적으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여인들을 배치함으로써 그들을 죽여야만 하는 상황을 연출할 것이었다.
무희들의 의미는 하나였다.
‘희생된 민간인.’
전쟁터의 암울한 배경, 그 속에 홀로 아름답게 피어난 무희들은 무고함의 상징이었다.
그들의 치장은 생명의 가치였다.
그런 만큼 무희들의 곁엔 그들을 지키고자 했던 적군, 해골 병사가 언제나 곁에 있었다.
병사들은 적군을 의미했다.
내가 수호하는 것과 적이 수호하려 했던 것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은 모두가 안다.
하나, 그것의 가치가 그들 안에서 같을 수는 없었다.
‘대사가 삽입될 거야.’
『이 모든 건 환영일세! 죽이고 나가야만 하네! 우린 멈출 수 없어!』
군인의 대사였다.
다른 이들은 동조하며 나아간다.
그것으로 어림짐작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이 순례자들은 살아생전 전쟁을 치르며 민간인을 죽여본 경험이 있단 것이다.
역사적으로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벌을 주는 지옥에선 그 일을 바로 마주해야 할 뿐.
그렇게 만나는 바로, 챕터의 보스인 ‘헐벗은 여왕’.
그녀는 10미터에 달하는 체구로 순례자들을 내려다보며 그들이 외면했던 도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
수많은 무희를 엮어 검으로 휘두름으로써, 전쟁 속에서 그들이 해한 것에 죽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론 순례자들은 여왕조차 이겨내고 그곳을 빠져나간다.
한 줄기 빛이 내리쬐는 계단 위쪽을 향해서 말이다.
2챕터의 진짜 모습은 그제야 드러날 것이었다.
출구 앞에서 뒤돌아보면 보이는 것은 거대한 관 형태의 시체 산.
그곳에 몸을 뉘인 여왕과 무희들의 시신이 다시 한번 그릇된 선택을 회상시키니 이름 붙여 ‘미혹의 관’.
서림은 웃었다.
‘거창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잖아.’
2챕터가 이르는 것은 전쟁 속의 개인.
폭력에 익숙해지며 도덕적으로 망가지는 인간이었다.
어떻게 그런 서사를 가볍게 여기란 말인가.
한 번씩 떠올리는 생각은 연호의 감성이 너무 메말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그랬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이중성을 나타내는 서사에 불과하다.
즉, 2챕터는 병사를 짓이기는 것도 모자라 무희까지 해치는 일로 도덕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챕터였던 것이다.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슥―
펜이 움직였다.
배경 설정은 건드리지 않았다.
무희와 여왕의 큰 디자인도 건드리지 않았다.
다만 바꾼 것 하나.
‘모션, 그리고 시선 처리. 그걸로 이질감을 자아내.’
오로지 하나, 무희의 모션과 시선 처리를 다시 함으로써 그들이 무고한 희생자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도망치듯 달음박질하면서 플레이어블 캐릭터에 달려드는 거야.’
거기서 끝나선 안 된다.
‘시선은 뒤를 봐야 해. ···그래, 목을 130도 정도만 돌려. 쫓기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야.’
그러니 중요한 건 애처롭게, 다급하게.
도주의 형상을 한 공격.
‘이거다.’
인풋에서 아웃풋이 나온다.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서 비로소 새로운 것의 단초가 될 이미지가 나오는 것이다.
서림은 일을 시작하고 꽤 많은 게임을 플레이해봤다.
주로 연호가 시키는 호러 게임이었다.
서림은 이 컨셉의 완성본을 떠올렸다.
‘께름칙할 거야.’
몬스터를 잡고 루팅을 하고, 그렇게 여왕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무희와 싸우는 유저는 끊임없이 께름칙할 것이다.
자신을 향해 달아나는 상대를 죽여야 할 테니까.
그걸 생각하니 확신이 짙어졌다.
펜의 움직임은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다음 날.
“컨펌, 훨씬 좋다.”
서림의 디자인은 무사히 연호의 컨펌을 받아냈다.
* * *
모델링이 완성된 것은 1월 하순이었다.
애초에 기존에 작업해두었던 모델을 수정한 정도였기에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그것들을 확인했다.
130도 정도 고개가 돌아간 채로 도주하듯 달려드는 얇은 옷의 무희, 그들을 지키는 해골 호위병과 여왕.
백미는 여왕이 들고 있는 검이었다.
그것은 무희들이 서로 끌어안으며 얽혀있는 형상의 검이었는데, 경계를 뭉뚱그려 표현함으로써 무언가가 녹아내린 듯한 질감을 자아냈다.
그 오묘한 디테일이 시선을 빼앗는 것이다.
여하튼 사족을 걷어내고 결과물만 말하자면 긍정.
모델링은 나뿐만 아니라 사내 모든 부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실물을 플레이하는 QA 부서는 드물게 그런 사족을 달았다.
[무희 개꼴]···단어의 천박함은 미뤄두자.
중요한 것은 플레이나 버그가 아닌 모델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이란 것이다.
즉, 그런 사족을 달 정도로 모델링이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호러 게임에서 기형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형 몬스터가 컬트적인 인기를 끌어왔던 역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예시로 들 것이 아주 많았고, 대표만 말하자면··· 그래.
누구나 가슴 속에 얼굴 없는 간호사를 품은 일이 한번은 있지 않던가?
예상 외의 수확이다.
특히 헬릭은 그 몬스터를 단순한 적 이상의 의미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것은 더 큰 장점이 될 수 있었다.
“이거 커스터마이징 모델은 뽑았어?”
커스터마이징 파츠의 파밍.
무희들은 유저가 사용할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의 재료가 됨으로써 흥행에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호들갑 듀오가 답했다.
“당연하지! 조각내도 꼴릴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으니까!”
“?”
“명규명규 오빠도 꼴리게 만들었으니까!”
“???”
순간, 나는 들려온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얘, 얘들아···!”
명규 형이 토마토가 됐다.
···뭐가 됐든 일은 잘 진행되는 듯하다.
* * *
보통 게임에서 테스트 버전을 가장 많이 플레이하는 부서는 QA다.
그리고, 보통 그다음으로 많이 플레이하는 부서를 꼽으라면 프로그래밍 부서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스튜디오 리와인드는 달랐다.
프로그래밍 부서의 플레이 타임은 세 번째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두 번째가 누구냐, 그리하면 답은 조금 경이적인 영역으로 뻗어나가야 했다.
“으음···!”
조아윤(21세), 현 리와인드의 사운드 디렉터이자 유일한 사운드 담당.
취미는 게임이며 특기는 작곡, 회사 내 최연소 직원이자 모든 직원의 악몽.
바로 그녀 되시겠다.
아윤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모니터에 떠올라 있는 것은 테스트 버전의 헬릭3였다.
아윤이 회사에 와서 온종일 하는 일은 이 테스트 버전을 플레이하는 것이었다.
이번이 72번째 플레이였고, 그에 아윤은 속으로 평했다.
‘심심해···.’
게임이 심심하단 뜻은 당연히 아니다.
지금 2챕터를 플레이하며 떠오르는 곡조가 심심하다는 말이었다.
천장이 덮여 어두운 배경, 푸른 촛불로 은은하게 밝혀진 주변과 무희, 그리고 해골 병사들.
이젠 꽤 경험이 쌓인 아윤은 알았다.
2챕터는 고요함 속에서 존재감을 발하는 무희들에 의해 완성되는 챕터였다.
그러니 BGM 역시 그 무희를 중심으로 짜는 게 맞다.
그런 포인트에 집중하면 연상되는 것은 낮은음의 오케스트라.
다만 풍성함과 웅장함 지운 후 그 사이로 음울한 바람 소리를 삽입한 그런 음악이었다.
분위기를 따져봤을 때 꽤 좋은 구성이었고, 역시 문제는 그런 음악이 실제로 게임에 삽입되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심심할 것 같다는 점이었다.
‘안 돼. 게임에 완전히 묻힐 거야.’
따지고 보면 혜지와 유미 탓이었다.
두 사람이 이상한 장인정신을 발휘해 무희를 너무 야릇하게 뽑아버리니 단순한 구성으로는 그 끈적한 감상을 제대로 표현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아윤의 고민은 깊어졌다.
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음울함과 아슬아슬함, 그리고 야릇함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챕터의 분위기를 음악적으로 더 돋보이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으으···.’
머리를 쥐어 싸매던 아윤은 일단 들이박아 보자는 마음으로 작곡 프로그램을 켰다.
하지면 역시 온갖 악기를 써 코드를 쌓아봐도 원하는 감성엔 다가갈 수 없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기분!
아윤은 그만 “그아아악···!” 하고 괴성을 내질렀다.
‘당···! 당이 필요해···!’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을 향했다.
와중에도 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아윤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곡조와 사운드가 쉼 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베이스가 될 음은 이미 구체화의 영역에 들어간 상태.
그것이 굳어져 하나의 포인트만 짚으면 되는데 그게 영 보이지 않는다.
그런 순간이었다.
“쯧―”
아윤의 몸을 덜컥 멈추게 한 소리가 들린 것은.
‘···어?’
아윤은 휘둥그레하게 눈을 뜨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연호가 그곳에서 있었다.
미간은 작게 찌푸려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삐져나온 옷의 실을 뜯어내고 있었다.
아니, 그건 중요치 않았다.
‘쯧, 쯧···.’
직전의 혀 차는 소리가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정확히는, 그 침 섞인 소리가 머릿속에 재생되던 음악 위로 절묘하게 내려앉은 것이었다.
그 순간 아윤은 등골이 찌릿해지는 희열을 느꼈다.
‘찾았다···!’
BGM에 들어갈 포인트.
즉, 사운드에 비어있던 끈적함.
“사, 사장님!”
아윤은 연호의 옷깃을 잡았다.
연호가 아윤을 바라봤다.
“응?”
아윤은 입술을 달싹이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속삭임···!’
짧게 끊어지는 혓소리를 믹싱해 음악 위에 얹는다면 끈적함이 더해질 것이다.
중요 박자나 타이밍에선 그 소리가 튀어 오르며 청각을 자극할 것이다.
아니, 그러기 위해선 혀 차는 소리론 안 된다.
그것보다 더욱 끈적한 감상을 자아내는 소리가 있었다!
“왜 그러니 아윤아?”
묻는 연호에게 아윤은 답했다.
한껏 신나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며, 또한 연호의 입술을 바라보며.
“노, 녹음실로 따라와 주세요···!”
삽입할 사운드는, 입맞춤의 ‘쪽!’ 소리였다.
연호의 입술이 달싹였다.
“···아윤아, 혹시 내가 뭐 잘못했니?”
아윤의 귀엔 들리지 않는 말이었다.
* * *
사내 녹음실, 방음 유리 너머로 조아윤이 눈을 빛내며 내게 지시했다.
조아윤의 손은 내 앞 마이크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 거기에 쪽! 하고 뽀뽀해주세요. 치, 침 섞어서···!”
무심코 생각하고 말았다.
직장 내 성희롱, 이대로 괜찮은가.
평가 (1)